201화. 달밤의 추격전
“이거 내가 너무 빨리 뛰어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최 선생 못 따라오는 거 아닌가?”
평소 체력에는 자신 있는 장득칠은 병원 정문을 뛰어나가며 혼잣말을 했다.
“최 선생, 내가 너무 빠르지? 무리하지……!”
장득칠은 행여 최모나가 빠르게 달리는 자신을 쫓아오지 못할까 봐 살짝 속도를 줄이며 고개를 돌렸다.
“아! 깜짝이야!”
그런데 우려와 달리 바로 뒤에서 미친 듯한 속도로 바짝 쫓아오는 최모나를 보며 놀랐다.
“걱정하지 마십쇼.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최 선생 달리기 겁나 빠르네? 뭐 이렇게 잘 달려?”
“아버지께서 체력은 국력이라고 어릴 때부터 운동장을 뛰게 하셔서 달리기는 자신 있습니다.”
“우와! 진짜 잘 달리네.”
“그런데 장 요원님은 노숙자 못 보셨습니까?”
“내가 주차장 순찰하다 정문에 있었는데 못 본 거 같아. 근데 아까 병원 들어올 때는 멀쩡해 보이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태경의 말만 듣고 무작정 나온 장득칠은 사실 노숙자를 왜 찾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까 보니까 우리 원장님 표정이 엄청 심각하던데. 혹시 돈 떼먹고 도망갔어?”
“그것도 맞긴 하지만 현재 그 환자 거의 시한폭탄이라서 선생님이 빨리 찾으라고 하신 겁니다.”
“시, 시한폭탄? 그럼 빨리 찾아야겠네. 최 선생, 우리 저쪽 택시 정류장으로 가 볼까?”
“아니요. 거긴 보나 마나 안 갔을 겁니다.”
최모나는 거의 확신의 찬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돈 없어서 도망간 사람이 택시를 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에 할증까지 붙을 시간인데 제가 보기엔 그 사람 그럴 돈은 없는 거로 보였습니다.”
“가만 보면 우리 병원 선생님들을 다들 머리가 대단해. 나는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데 확실히 다르네.”
“아닙니다. 장 요원님 저기 포장마차부터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최모나는 낮에도 술을 마시고 구토를 했었다는 노숙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낮에 술을 마실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밤에 술을 안 마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례합니다.”
“예, 어서 오세요. 두 분이세요?”
두 사람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포장마차 주인이 반색하며 맞이했다.
“편한 데 아무 데나 앉으세요.”
“그게 아니라…….”
“실례지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손님인 줄 알고 너무 좋아하는 주인을 보며 장득칠이 머뭇거리자 뒤에 있던 최모나가 불쑥 앞으로 나왔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50대 초반 남자고 위, 아래 카키색 복장에 빨간 운동화 신은 사람 여기 왔었나요?”
“아니요. 그런 사람 못 봤는데.”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장 요원님, 우리 나머지 포장마차 다 들어가 보고 술집에도 물어본 다음에 편의점 라인 쪽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자고.”
두 사람 나란히 붙어 있는 포장마차와 동네 호프집을 확인한 뒤 태경과 이찬희가 있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 시각, 태경 쪽 역시 노숙자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 하아……. 서, 선생님!”
이찬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편의점에서 나온 태경에게 힘겹게 다가갔다.
안 그래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있는데 병원 주차장에서부터 미친 듯이 뛰어가는 태경을 따라가느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뭐야! 이찬희 너 왜 이렇게 느려!”
“아니……. 제가 하! 느린 게 하! 아니라……. 하아! 선생님이 빠른 건데요.”
병원에서 먹고 자고 수술만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체력을 유지하는 건지 이찬희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아니, 선생님 체력이 왜 이렇게 좋으세요?”
“그거야 운동하니까 그렇지.”
“예? 병원에서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거죠?”
“마음만 먹으면 운동이야 길바닥에서도 하는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따라와.”
딩동-
“어서 오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50 초반의 남자고요 입은 옷은…….”
태경은 다음 편의점으로 들어가 이찬희가 알려 준 노숙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오지 않았나요?”
“아니요. 제가 30분 전에 교대했는데 그런 사람 못 봤어요.”
“네, 수고하세요.”
“여기도 허탕이네요. 선생님 이거 완전히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아닌가요?”
“그래도 찾아야지.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아오! 이 아저씨는 진짜 어디를 간 거야!”
이찬희는 씩씩거리면서도 태경의 뒤를 따라 열심히 노숙자를 찾았다.
두 사람은 편의점은 물론 먹자골목에 있는 24시간 국밥집과 구멍가게를 오가며 그야말로 열심히 노숙자를 찾았다.
‘술 먹고 어디 가서 잠들어 있으면 찾기 힘들 텐데…….’
태경은 노숙자가 아직 술은 먹지 않았길 바라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가다가 편의점이 보이면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편의점은 어찌나 많은지 골목골목마다 일정 간격으로 있는 곳을 전부 들어가 확인했다.
‘젠장! 작은 냄새도 안 느껴진다.’
병원 베드에서 분명 강한 3단계 냄새가 남아있었다. 환자가 지나갔다면 잔향이라도 남아있을 텐데 여기서도 느껴지진 않았다.
‘이쪽 길이 아닌가? 아니면 이미 다른 곳으로 간 건가? 빨리 찾아야 하는데…….’
같은 냄새라 할지라도 단계마다 느껴지는 강도가 다른데 현재 노숙자는 4단계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패턴의 냄새가 났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경은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었다.
그렇게 10분쯤 정신없이 주변 일대를 찾던 두 사람은 갈림길을 마주했다.
“이찬희?”
“네, 선생님.”
“내가 오른쪽으로 돌 테니까 네가 왼쪽으로 돌아서 다시 합쳐지는 길에서 만나자.”
“네, 알겠습니다.”
각자 갈림길로 들어가 둘러봤지만, 안타깝게도 노숙자는 보이지 않았다.
“없어?”
“네. 선생님. 없어요.”
“이런! 여기가 마지막인데……!”
병원으로 돌아가기 전, 태경이 착잡한 표정으로 마지막 골목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냄새다!’
그토록 찾던 다섯 번째 바이탈이 마지막 골목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 노숙자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야! 확실히 여기에 있다.’
태경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지금 이 마지막 골목 안에 있는 편의점은 두 군데뿐이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태경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하게 변하자 이찬희가 물었다.
“이찬희!”
“네, 선생님.”
“이렇게 하자. 내가 이쪽에 있는 편의점 볼게. 찬희 너는 저쪽 아래 가로등 보이지?”
태경은 맞은편 뒤쪽으로 보이는 가로등을 가리켰다.
“네.”
“저쪽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 봐. 아마 그 노숙자 이 근방에 있을 거야.”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시간 없어. 일단 빨리 찾아!”
“아, 네. 알겠습니다.”
태경이 마지막으로 남은 두 군데 편의점 중 한 곳으로 들어가고 이찬희 역시 나머지 편의점을 향해 천천히 뛰어갔다.
‘여기가 진짜 마지막인데…….’
답답한 마음과 함께 편의점 문을 열려던 바로 그때였다.
“……!”
익숙한 모습과 함께 웬 남자가 소주 팩을 손에 쥐고 편의점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진짜 있다. 찾았다!’
편의점에서 나와 눈앞에 지나가는 남자는 아까 그 노숙자였다.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것처럼 이찬희는 내적 기쁨이 가득했다.
그를 잡기 위해 호들갑을 떨지 않고 침착하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뭐요?”
아직 이찬희를 알아보지 못한 노숙자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이찬희가 자연스럽게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불렀다.
“환자분!”
“어! 이런! 시x.”
웃는 얼굴로 반갑게 부르는 이찬희를 알아본 노숙자는 잡힌 옷자락을 빠르게 뿌리치며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 환자분? 선생님 여기에요! 저기 환자 도망가요.”
큰 소리로 소리치는 이찬희의 외침에 마침 편의점에서 나오던 태경도 두 사람을 확인하고 쫓기 시작했다.
“환자분! 잠시만 멈춰요. 아니 왜 뛰는 거예요? 네?”
“우이씨!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지금 돈 때문에 나 쫓아온 거잖아.”
노숙자는 병원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있는 힘껏 도망갔다.
“돈 때문이 아니라고요. 제발! 멈춰요. 빠르긴 엄청 빠르네.”
“됐어!”
“아저씨 몸 때문에 그래요.”
범죄자를 잡을 때 뒤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다리를 걸어 잡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상대는 가성동맥류 환자였기 때문에 모든 물리적 힘을 가해서는 안 되는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설득하거나 좀 더 빨리 달려서 환자를 앞질러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 나이도 있으신 분이 뭐 이렇게 잘 뛰세요. 돈 안 받을게요.”
“거짓말하지 마! 난 의사 놈들 안 믿어!”
이찬희가 숨을 크게 몰아쉬며 노숙자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던 찰나, 뒤에 따라오던 태경이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환자분!”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다섯 번째 바이탈이 선명하게 밀려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병원에서 느꼈던 3단계 냄새가 더 진하게 올라간 상태였다.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분뇨 냄새 때문의 노숙자의 쾨쾨한 냄새 따윈 태경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어! 쫓아오지 말라니까.”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태경의 놀란 노숙자는 당황하다 저도 모르게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그곳이 하필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뛸 곳이 없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달리기는 멈췄다.
“아니 하……. 그 돈 얼마나 한다고……. 아으! 숨차.”
갑자기 전력 질주한 노숙자는 숨이 찬 듯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건물도 허름하니 만만해서 일부러 들어간 건데……. 하아! 이렇게 사람을 쫓아올 정도로 돈이 없나? 하아! 참말로 독한 의사들이네. 아이고! 죽겠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 진짜 죽는 다고요!”
타들어 가는 의료진들 속도 모르고 함부로 말하는 노숙자를 향해 뒤쫓아 온 이찬희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죽다니 내가 왜 죽어?”
“하아! 숨차……. 아까 혈변 봤다고 했잖아요.”
“아니, 피똥 좀 쌌다고 사람이 죽는다고?”
“그게 아니라. 아저씨 혈변 본 게 안에서 혈관이 터져서 그럴 확률이 높아서 그래요.”
“에이! 아무리 내가 길바닥 생활하는 노숙자라고 해도 그렇지 누굴 바보로 아나? 데려가서 돈 받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리고 배 안에서 혈관이 터지면 배가 부풀지 혈변으로 나오나? 의사 양반 나 너무 얕봤어.”
“저기, 환자분?”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태경이 환자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야! 어라, 이분 텔레비전 나온 분이시네.”
노숙자는 태경을 알아보며 깜짝 놀라더니 이찬희 때와는 다르게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이고, 유명한 의사분이시잖아요.”
“저 아세요?”
“알죠. 이번에 유명한 프로에 나와서 그 뭐냐 상금도 많이 따셨잖아요.”
“잘 아시네요. 제가 상금 때문에 돈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돈 때문에 환자분 쫓아온 거 아니에요, 여기 이 선생이 말했던 대로 현재 환자분 상태가 안 좋아서 살리기 위해서 이 밤에 병원 의사들이 뛰어나온 겁니다.”
“어! 진짜 찾았네.”
“찾아서 다행입니다.”
골목에 울리던 발소리와 함께 연락을 받고 온 최모나와 장득칠도 때마침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 두 사람도 보이시죠? 지금까지 병원 근처 골목골목 다 뒤져서 환자분 찾으려고 네 사람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고요?”
“아니에요. 환자분 큰 병원에서 수술받고 병원비 지불하셨나요? 안 했죠?”
“예!? 아, 예예…….”
잠시 얼버무리던 그는 뭔가 생각난 듯 급히 말을 이었다.
“노숙자라고 하니까 확인한 뒤에 지자체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안 받았어요.”
“우리 병원도 똑같아요. 환자분한테 돈 받지 않습니다.”
“그럼 진짜로 나 같은 놈 하나 살리겠다고 의사 선생님들이 이 밤에 뜀박질한 거란 말이에요?”
“맞습니다.”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해도 이상할 거 없는 노숙자였다.
말 그대로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밑바닥 인생인데 잘난 의사들이 자신을 찾아다녔다는 말에 의심으로 가득했던 남자의 눈빛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환자분 일단 저랑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이상 없으면 돌아가시고, 문제가 있으면 치료받으세요. 네?”
“이상 없으면 잡으라고 해도 안 잡아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한층 순해진 남자는 태경과 장득칠 사이에 끼어 팔짱을 낀 채 얌전히 병원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환자분 찾아서 다행이다.”
“참나! 내가 그렇게 말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만…….”
이찬희는 최모나와 함께 뒤에서 걸어가며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선생님만큼 신뢰도가 안 느껴졌나 보지.”
“그런가?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손에 든 건 뭐냐?”
이찬희가 아까는 보이지 않던 최모나의 손에 들린 봉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 돈이야.”
“돈! 우와! 야,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
봉지 안에 들어 있는 5만 원짜리 다발을 본 이찬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환자 설득 안 되면 돈으로 설득하려고 찾았어. 노숙자들이 돈이랑 술을 제일 좋아한다잖아.”
일단 사람을 살려야겠다 싶은 최모나는 편의점에서 돈을 찾았다. 그런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버튼을 잘못 눌러 액수가 상당히 인출된 것이다.
“근데 너 돈이 왜 이렇게 많아?”
“쓸데가 없으니까 그냥 은행에 넣어 둔 거지.”
“야, 최 쌤? 아니. 모나야? 모나 씨, 우리 사귈래요?”
“죽여 버린다.”
“야! 농담이다. 나도 싫어”
농담에 살벌하게 반응하는 최모나를 보며 이찬희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 후 한밤에 추격전을 마친 태경과 일행은 병원에 도착해 노숙자의 CT를 다시 찍기로 했다.
“환자분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CT를 찍을 건데 이번에는 조영제를 쓸 거예요. 아셨죠?”
“예, 뭐! 그렇게 하세요.”
빠르게 촬영을 마친 남자의 결과가 잠시 뒤 나왔다.
“선생님 CT 결과 나왔습니다.”
태경의 눈빛이 모니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