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생명이 위험하면 열어야지
“선생님 CT 결과 나왔습니다.”
태경의 눈빛이 모니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노숙자 역시 덩달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아…….’
노숙자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CT 영상은 역시나였다. 수술받은 부위에서 간 쪽으로 들어가는 혈관 끝에서 조영제가 배 공간 안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기, 환자분. 이쪽으로 좀 오시겠어요? CT 찍은 거 설명해 드릴게요.”
“네, 선생님 저 어떻게 나왔나요?”
“이거 수술…….”
“예!? 수술이요?”
설명이 시작하기도 전에 ‘수술’이란 단어를 들은 노숙자는 흥분하며 반문했다.
“네, 사실 대부분 이런 경우 인터베이션이라고 수술보다는 혈관을 통한 시술을 진행합니다.”
“혈관을 통해서요? 그러고 보니까 먼저 병원에서 들어 본 거 같아요. 그럼 저 인터베이션인가 뭔가 그거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환자분은 인터베이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 아니. 왜요? 설마 또 개복인가 뭔가 하면서 제 배 여는 건 아니죠?”
“지금 상태가 급해서 개복을…….”
“어휴! 선생님 저 그거 못 해요. 개복 못 합니다.”
노숙자는 개복이란 말에 정색하며 강한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아세요?”
“환자분 말이 다 맞아요. 개복하는 게 정말 아프고 한번 수술해서 아문 지도 얼마 안 되셨는데 다시 배를 연다는 게 힘드실 거예요.”
“아니, 거부고 자시고 저 못 합니다. 그걸 또 하라고요? 인터베션인가 그거 해 줘요.”
“환자분. 현재 우리 병원에서는 그와 관련된 기기가 없어요. 만약 계속 인터베이션을 원하시면 전원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셔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이 정도의 출혈이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요. 지금 당장 수술방 들어가서 묶어야 해요.”
“환자분.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희가 괜히 환자분 찾으러 다녔겠어요.”
옆에 서 있던 이찬희가 고집을 부리는 노숙자에게 달래다시피 말했다.
“하! 나 참 돌겠네. 아니, 원장님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그 큰 병원에서 나보고 암이라고 해서 배를 열었더니 정상이고, 그것 때문에 혈관이 터져서 또 열고 이게 말이 됩니까? 네?”
노숙자는 먼저 수술했던 병원에 화가 많이 난 듯 불만을 쏟아냈다.
“환자분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혈관 그냥 두면 사망합니다. 아까도 여러 번 말했지만 오늘 밤 넘기기 힘들어요. 여기 이 영상 보세요.”
태경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부분 보이시죠? 현재 배 안에 피가 차고 있잖아요. 환자분, 이럴 시간 없습니다.”
“그…….”
진지한 눈빛과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함을 토로하는 태경을 보며 노숙자는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한 걸 말하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할게요. 수술해요.”
“정말이죠? 아, 잘 생각하셨어요.”
이찬희는 결심한 환자를 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채 가시지도 전에 환자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대신, 복강경! 복강경으로 해 주세요.”
단호하게 튀어나온 그 말이 순간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환자분 아까부터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결국 참다못한 이찬희가 목소리를 높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우리 좋으라고 이러고 있는 줄 알아요? 환자분 살리려고 그러잖아요. 복강경은 무슨 복강경이에요? 얼마 전 개복했으면 이미 배 안이 엉겨 붙어서 보이지도 않는다고요.”
이찬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현재 노숙자는 복강경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개복 수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소 심줄 같은 고집으로 복강경을 외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복강경으로 하다가 혈관 결찰이 잘 안 되면 그땐 환자분 진짜 죽어요. 개복해야 안전하다고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니, 왜 소리를 질러요! 그러는 젊은 의사 양반은 개복 수술받아 봤어요? 그게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혈관 하나 묶는 거 별것도 아니잖아요. 의사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별것도 아니라고요? 혈관을 묶는 게 무슨 종이접기인 줄 알아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봐요!”
이 정도면 고집이 아니라 진상이라고 생각한 이찬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려던 그때였다.
“이 선생!”
두 사람의 정신없는 대화를 듣고 있던 태경이 후배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진정시켰다.
그 뒤 차분한 표정에 따뜻한 미소를 더 하며 말했다.
“환자분, 복강경으로 하면 수술하실 거죠?”
“네? 네…….”
“그래요, 그럼 복강경으로 해 볼게요. 그러면 바로 수술 시작하죠.”
“정말이세요?”
“정말이죠.”
“어……. 그러면 수술받을게요.”
“자! 그럼 빠르게 수술 준비합시다.”
“선생님. 근데 저 노숙자 환자 조금 전까지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었을 텐데요.”
이찬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태경에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그렇긴 한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환자 L-tube 넣어서 음식물 다 빼내고 수술하자.”
“근데 정말 복강경으로 가능할까요?”
“해 봐야지. 어쩌겠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묻는 이찬희를 보며 태경이 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지만……. 저 환자 너무 막무가내에다가 똥고집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환자 본인 몸이잖아. 선택권도 당연히 환자에게 있고. 답답해도 그 점 잊으면 안 돼.”
“네…….”
“환자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준비하자. 어서!”
“네, 알겠습니다.”
그 뒤, 노숙자를 수술하기 위한 준비가 빠르게 진행됐다.
수술 준비를 마친 뒤 수술방으로 들어온 환자는 음식물을 빼낸 뒤 의진의 주도 아래 전신 마취가 꼼꼼히 이뤄졌다.
“마취 다 됐습니다.”
“수고했어. 정 선생. 수술 끝날 때까지 잘 부탁해.”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 수술 시작할게요. 메스 주세요.”
간호사가 메스를 태경의 손에 쥐여 주자 맞은편에 있던 이찬희가 배꼽 밑 아랫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메스를 잡은 태경이 1.5cm 정도의 절개를 얕게 넣었다.
“투스포셉(tooth forcep, 피부를 잡을 때 쓰는 포셉으로 끝에 이가 있음)하고 보비(Bovie, 전기 소작기) 주세요.”
태경이 절개선의 한쪽을 기구로 잡아당기자 이찬희가 맞은편도 같이 기구로 잡아당겨서 절개선 안쪽이 드러나도록 한 뒤, 전기 소작기를 통해서 얕은 절개선을 파 내려갔다.
수술방 안에 피부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조금 파 내려간 뒤 태경이 그 안쪽을 유심히 봤다.
“센(senn-muller retractor의 약어, 끝이 90도로 꺾여서 양쪽으로 벌리는 기구로 폭 0.5cm 꺾인 부분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임)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이 기구를 건네받고 깊어진 절개선에 기구를 넣어서 양쪽으로 벌린 뒤에 요리조리 지방층을 벌려 가면서 당기자 하얀색 파샤(fascia, 근막)가 보였다.
“코카(Kocher, 20cm 정도의 가위형 기구로 상어 입처럼 끝이 꺾여 있음) 주시고요.”
코카로 파샤(근막)층을 잡아서 당기자 간호사가 코카를 하나 더 건넸다. 그렇게 두 개의 코카로 잡아서 당긴 후 전기 소작기로 아주 얇게 파샤(근막)에 상처를 냈다.
“이 선생?”
“네, 선생님.”
“이 선생도 나중에 집도할 거잖아.”
“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하다 보면 습관이 돼서 그냥 쑥쑥 하는 순서인데.”
“트로카(trocar, 복강경 기구가 배 안에 드나드는 구멍에 고정하는 기구) 넣을 때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넣을 때도 그렇고 지금과 같이 배벽에 구멍을 넣어서 트로카가 잘 들어가게 할 때가 너무 위험해. 특히 위 환자는 더 그렇지. 왜 그런지 알아?”
“장에 상처를 줄까 봐 그렇습니다.”
“그렇지. 이렇게 열면 바로…….”
태경이 약간의 상처를 낸 곳에 끝이 뭉툭한 기구로 구멍을 내자 노란색 층이 보인다.
“잔뜩 붙어 있네요?”
그 모습을 본 이찬희가 답했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이미 한번 배를 크게 열어서 장간막이 배벽에 잔뜩 붙어 있는 거야.”
“선생님 그럼 복강경으로의 수술이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니야. 가능은 해?”
“예? 아니, 트로카가 못 들어갈 정도로 험한데 어떻게 가능하시다는 건지…….”
태경은 의아해하는 이찬희를 뒤로 한 채 다시 메스를 받아 들더니 환자의 오른쪽의 갈비뼈 아래로 10cm 정도 되는 곳에 절개선을 넣었다.
‘아! 저렇게 하는구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한 이찬희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하나 더 뚫어서 두 개의 구멍으로 우선 장간막 치우자. 빨리! 시간 없어.”
“네.”
태경이 아까와 같은 순서로 빠르게 구멍을 뚫고 끝이 다소 뭉툭한 트로카로 옆구리에 구멍을 냈다.
“CO2 켜 주세요.”
환자의 배 안으로 CO2가 들어가자 누워 있는 환자의 배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스콥(scope, 배 안을 보여 주는 의료용 카메라) 들어가자.”
“스콥 들어갑니다.”
이찬희가 옆구리에서 스콥을 이용해 들어가자 노란색 지방이 대부분인 장간막이 앞 배벽에 잔뜩 붙어 있었다.
“초음파 절삭기(5000번 이상의 음파 진동으로 에너지를 전달하여 응고 및 조직 절개를 하는 기계로, 총 모양의 손잡이로 작동 부위는 50cm 정도 길게 되어 있음.) 주세요.”
“선생님, 근데 구멍이 두 개뿐이라서 카메라 빼면 구멍이 한 개인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냥 묘기지 뭐. 오랜만이라 쉽진 않겠지만 할 수는 있어.”
“예? 전에도 해 보셨어요?”
“해 봤지. 신화대에 있을 때 무슨 놈의 VVIP가 그렇게 많았는지 몰라. 그 사람들의 요구들이 워낙 많아서 배가 붙어 있건 어쩌건 다 복강경으로 해야 했고 또 구멍도 적게 내야 했어.”
“아…….”
“이 초음파 절삭기는 음파의 떨림 에너지로 혈관이나 조직을 자르는 기구라서 주변의 손상이 거의 없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거야.”
태경은 초음파 절삭기의 손잡이를 잡은 뒤 기구의 끝이 모이다가 완전히 맞닿으려고 할 때 떼는 방식으로 조직을 치워 나갔다.
기구가 완전히 맞닿으면 에너지가 투여되면서 조직이 잘리게 된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아주 날카로운 가위로 잘리기 쉬운 것들을 옮기다가 잘라야 하는 곳이 있으면 자르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군요.”
이찬희가 태경의 손놀림의 눈을 떼지 못한 채 감탄했다.
“근데 위험해서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고 너는 이 기구로 조직을 옮기거나 하지 마. 자신 있어도 하지 마.”
“네…….”
그 후 태경의 빠른 묘기가 20분 정도 지속되고 배벽에 붙어 있는 장간막이 모두 분리되었다.
“다시 배꼽으로 스콥(의료용 카메라) 넣고 난 이쪽에서 들어간다. 화면 잘 보여 줘.”
“네, 선생님.”
장 앞에 커튼처럼 매달려 있는 장간막을 걷어 내자 그 안에서 피가 고여 올라오고 있었다.
슉-
태경이 기구를 빠르게 내려놓고 석션과 전기 소작기가 모두 가능한 기구를 집어넣어 시뻘건 피를 빨아들이자 방방 뛰는 혈관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옆으로 피가 새어 나오듯 분출되고 있었다.
“이런! 엄청나네요.”
“그래도 다행히 완전히 터지진 않았네. 음……. 헤모락(hemolock, 혈관을 잡은 채로 유지되는 V 모양의 플라스틱 집게) 주세요.”
“헤모락으로 집으시려고요?”
“집어야지.”
헤모락을 건네받은 태경이 조심스럽게 혈관들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출혈이 발생한 동맥혈의 부풀어 오른 부위를 잡았다.
“다행입니다. 이제…….”
“아니, 아직 아니야.”
“네?”
“결찰한 거 아니라고. 타이도 한번 할 거야.”
“복강경으로 동맥혈 타이를 말입니까?”
이찬희가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해야지. 저것만으론 믿을 수 없어.”
지금 수술하는 부위는 간과 위의 사이 공간으로, 조금만 실수해도 엄청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는 혈관들이 위아래 좌우로 빼곡히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바늘과 실을 기구로 집어서 배 속으로 집어넣는다.
60cm 정도 되는 기다란 기구 끝에는 뾰족한 바늘이 있고, 폭탄과도 같은 동맥혈 사이에서 태경은 바늘로 아주 약한 동맥을 관통시켰다.
“……아, 됐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태경과 달리 보고 있던 이찬희가 더 긴장하며 집중했다.
출혈이 있는 혈관을 우선 관통시키자 태경은 바늘을 잡아 뜯어서 밖으로 꺼냈다.
“여기서도 조심해야 돼.”
바늘을 관통시킨 후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매듭을 혈관 주변에 딱 맞도록 해야 한다. 너무 잡아당기면 관통된 혈관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밀가루 면에 실을 관통하여서 매듭을 짓는 것과 유사하다. 이 작업을 긴 기구의 끝으로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위험한 곡예와도 같았다.
“두 번 정도 묶으면 충분해. 휴! 됐다. 가위 주세요.”
태경이 매듭을 지은 뒤 긴 실 부분을 잘라 밖으로 꺼냈다.
“이제 닫자. 오랜만에 긴장했네.”
“긴장하셨다고요?”
언제나처럼 집중한 눈빛으로 위험한 작업을 태연하게 마친 태경을 향해 이찬희가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이런 경우는 나도 긴장을 하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전 장갑 안으로 땀이 흥건합니다.”
“뭘 흥건할 거까지야. 여차하면 열면 돼지.”
“네?”
“물론 주권은 환자에게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일 순 없잖아. 나중에 고소를 당하든 멱살을 잡히든 생명이 위험하면 열어야지.”
“……!”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해. 우리 의사는 항상 그럴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 가치 중에서 가장 상위는 바로 생명이야. 물론 지금처럼 다른 것도 지켜 주면 더 좋고.”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자, 그만 닫자.”
복강경이므로 구멍 3개만 근막부터 닫아 주면 된다. 빠르게 마무리가 끝나고 노숙자의 수술도 마무리가 됐다.
“끝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지잉-
태경은 수술실을 나오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잊지 못할 밤이네.”
아주 오랜만에 미친 듯이 뛰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피곤함이 느껴지는 새벽이었다. 그래도 노숙자를 살렸다는 사실에 마음은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