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도망갈 때 가더라도
다음 날-
전날 정신없던 밤이 지나고 평온한 아침이 찾아왔다.
응급실에 있던 태경은 노숙자의 상태도 살필 겸 언제나처럼 이른 회진을 돌기 위해 스테이션에서 일어났다.
“병동 좀 갔다 올게요.”
“네. 근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들고 계신 거예요?”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이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책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요?”
“네, 아까 진료실 갔다 온 뒤로 환자 볼 때 빼고는 계속 들고 계시던데 뭐 중요한 거예요?”
“그럼요. 중요하죠.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거라고나 할까요?”
“네? 인생을 바꿔요? 누구 인생을요?”
“인생이 바뀌면 그때 알려 드릴게요.”
“뭐지? 혹시 로또 1등 당첨되셨나?”
응급실을 나가는 태경의 뒷모습을 보던 이찬희가 엉뚱한 답변으로 최모나의 눈총을 받았다.
“재미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서 환자나 봐.”
“어, 그래.”
잠시 후-
환자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마지막 병실을 보기 전, 태경은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이병출 씨 어디 안 갔죠?”
“그럼요. 제가 30분 전에도 확인했습니다.”
간호사가 확인했다던 이병출이은 노숙자의 이름이었다.
태경은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병동으로 온 이병출이 혹시라도 또 도망갈지 몰랐다. 그래서 병동 당직 간호사들에게 틈만 나면 확인하라는 말을 남겼었다.
물론 이제 막 수술은 끝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환자가 아직 회복도 안 된 몸으로 도망가겠나 싶겠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한 번 도망간 사람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쉽게 도망갈 수 있기에 그만큼 잘 살펴봐야 했다.
“매번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말씀을요. 그럼 쉬세요.”
다인 병실에 들어와 차례대로 환자들을 만난 태경은 마지막으로 노숙자인 이병출이 있는 베드 앞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굳게 닫힌 커튼 앞에서 그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 없이 고요했다.
“이병출 환자분?”
드르륵-
“어! 원장님, 그 아저씨 아까 나갔는데?”
태경이 커튼을 막 걷으려던 찰나, 병실 화장실에서 나온 보호자가 말했다.
“나갔다고요?”
도망간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순간 태경은 마음이 철렁했다.
“네.”
챠륵-
보호자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태경이 커튼을 확 열었는데 진짜 베드 위가 휑했다.
“이 환자 나간 지 얼마나 됐나요?”
“글쎄요. 한 20분 전인가 30분? 한 그 정도 된 거 같은데…….”
보호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을 나온 태경이 스테이션으로 향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
빠른 걸음으로 병동에 있는 휴게실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앉아 있는 이병출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환자분!”
“원장님 아니세요?”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네?”
“환자분 보러 병실 갔는데 자리에 없어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왜요? 저 또 도망간 줄 아셨어요?”
태연한 표정을 한 이병출이 맞은편에 앉은 태경을 보며 말했다.
“또 도망간 줄 알았어요.”
“어휴. 참! 원장님도.”
“침대에 누워 있지 왜 나와 계세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냥 얼굴만 번지르르한 TV 나온 의사인 줄 알았는데 원장님 아주 보통이 아니시더라고요.”
“예?”
아픈 곳 없느냐고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원장님은 환자들 마음까지 생각하는 명의라면서 수술 잘 받았다고요.”
“그런가요? 그거 너무 과찬인데요?”
“실력 좋은 분이 수술하셔서 그런지 수술한 곳도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수술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술을 받아서 그런 건지 고집을 잔뜩 부리던 이병출의 모습은 조금 유해진 느낌이었다.
“아까 왜 나와 있냐고 물으셨죠? 그냥 좀 답답해서 나왔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예? 아니, 환자분 자꾸 그러면 보안요원 불러서 24시간 지키라고 합니다. 농담 아니라 퇴원할 때까지 도망가면 안 돼요.”
진짜 농담이 아니었다. 대놓고 도망가려 했다는 말에 태경은 진지하게 장득칠을 불러서 베드 옆에 항시 대기를 시킬 생각까지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정말이죠?”
“그럼요. 제가 어디를 가서 저 같은 놈 찾겠다고 쫓아오는 의사를 또 만나겠어요.”
“환자분, 전에 수술하셨다는 그 병원이요.”
“네.”
“그 병원에서 도망치셨죠?”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원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셨대요? 혹시 저 수술했던 병원에 전화하셨어요?”
“그럴 리가요. 환자분이 수술한 병원이 어디인지 전 모르죠.”
이병출이 전에 있던 병원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한 건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언행 때문이었다.
전날 이찬희에게서 그의 사정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사람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다 도망갔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병원에서 이병철이 노숙자라는 게 확인되면 분명 그에게 병원비 관련해서 그에 따른 설명을 충분히 해 줬을 것이다.
그러면 본인은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란 걸 알고 응급실에서도 진료 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오히려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진료에 응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벽에 편의점 앞에서 잡혔을 당시 태경이 설명했을 그때도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환자분 큰 병원에서 수술받고 병원비 지불하셨나요? 안 했죠?’
‘예!? 아, 예예…….’
그 질문을 받고 순간 얼버무리는 이병출의 표정이 마치 모든 정답을 말해 주는 것과 같았다.
“저, 사실 전에 있던 병원에서 퇴원 전날 도망쳤어요.”
“왜 도망쳤는데요?”
“그게……. 쪽팔려서요.”
뻔뻔할 정도로 고집이 셌던 이병출은 어울리지 않게 말끝을 흐리더니 상당히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저 더럽고 냄새나죠?”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요.”
늘 환자들의 냄새에 둘러싸여 사는 태경은 누구보다 각종 냄새에 익숙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냄새는 아무렇지 않았다.
노숙자인 이병출이 일반 사람 같은 말끔한 겉모습은 아니었지만, 눈을 찌푸릴 정도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태경에게는 그랬다.
“선생님도 참 특이하시네요.”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태경을 보며 이병출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도망친 이유를 전했다.
“전에 병원에서 수술받고 병실에 있는 동안 사실 마음이 좀 불편하더라고요.”
거리 생활을 하는 노숙자였기에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는 의식주가 그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밥은 주로 무료 급식이나 단체에서 나눠 주는 빵이 주식이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새벽에 간헐적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
옷은 의료수거함을 뒤져 철마다 갈아입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냄새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이병출은 스스로 사회에 실패한 떳떳하지 못한 노숙자 신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몸이 아프면 그냥 나을 때까지 미련하게 버티는 게 전부였다.
버티고 버텨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는 노숙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니는 곳에 노숙자는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도 그랬다. 그런데 참다 참다 너무 아파서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내던 지하철 공익 근무 요원 청년이 병원에 데려다줬다.
‘아저씨! 또 이러시네. 오늘은 저랑 병원 가세요. 네?’
‘괜찮아. 일없어.’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119 불렀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친절한 청년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회복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병원 계단에서 도움을 준 청년과 통화를 하고 내려오던 그때였다.
‘몰라! 얼마나 안 씻었으면 하수구 냄새가 나는지……. 토할 것 같다니까.’
담당 교수 옆에 늘 따라다니며 자신을 담당했던 젊은 의사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 죽겠어. 처음에 ER에서 노숙자길래 안 받으려고 했는데 과장님이 치료해 주고 미담 기사로 내보내자고 해서 받았지.’
작년에 의료 사고가 있던 병원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고 있었고, 노숙자인 이병출 역시 그런 케이스의 환자였다.
‘자기야? 웃긴 게 뭔 줄 알아? 그 노숙자한테 1인실을 줬거든. 냄새나서 다른 환자들 컴플레인 들어올까 봐. 근데 그런 것도 모르고 그놈은 좋다고 웃더라니까. 돈이 없으면 자존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왜 저라나 몰라.’
매일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걱정하던 의사 속마음을 듣게 된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이병출은 그날 밤 퇴원을 하루 앞두고 도망쳤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닌데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의사고 간호사고 다들 얼굴 보기가 쪽팔리고 속으로 내 욕을 할 것만 같았어요. 결국 저러다 병원비까지 내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무작정 나왔죠.”
이 세상 누구도 노숙자가 되라고 등 떠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량한 자격지심이었지만 길바닥 인생이어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왜 노숙자가 됐어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태경은 그가 왜 노숙자가 됐는지 궁금했다.
“저요? 뻔하죠. 연이은 사업 실패해 마누라랑 다툼만 늘어나다 이혼하고 이렇게 살고 있네요. 자식들 보고 싶어도 떳떳하지 못해서 연락도 못 해요. 원장님 같이 성공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야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이병출 환자분?”
“네.”
“이렇게 사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근데 사람이 계속 실패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계속 포기하면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리고 방금 저한테 성공한 삶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한 거죠?”
답답한 이병출의 말에 태경의 톤이 살짝 올라갔다.
“그야 돈을 많이 버니까 그렇죠.”
“글쎄요. 전 돈을 많이 번다고 성공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떳떳한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포기하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습관이에요.”
“……!”
“두려워도 한 번 더 도전해 보는 건 어때요?”
“……도전이요?”
“자! 이거 받으세요.”
태경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책자를 이병출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환자분이 떳떳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요.”
건네받은 책자를 펼쳐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던 그는 이 책자가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는 책자라는 걸 알게 됐다.
이병출은 왜 이 책자를 자신에게 준건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태경은 예전부터 노숙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책자를 꾸준히 구입하고 있었다.
내용도 알찼지만, 무엇보다 노숙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립을 위해 직접 판매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병출을 수술하고 진료실로 들어왔을 때 책상에 꽂혀 있던 이 책자가 눈에 들어와 주게 된 것이다.
“환자분의 삶을 책임지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에요. 전 환자분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태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도, 모든 걸 포기한 채 노숙자로 계속 사는 것도 이병출 본인의 선택이었다.
“얼른 병실로 돌아가서 쉬세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도망갈 때 가더라도 치료 다 받고 가세요. 그럼 안 붙잡을게요.”
“안 도망간다니까요. 원장님!”
이병출이 휴게실을 나서는 태경을 향해 큰 소리도 말했다.
“저 도망 안 갑니다. 그리고 이거 감사합니다.”
그는 손에 든 책자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10년 동안 지하철 바닥에 떨어진 동전과 돈을 구걸해 살던 이병출이 처음 느껴 보는 진심이었다.
아무 관련도 없는 태경이 보낸 그 진심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래요. 다음 회진 때 또 뵐게요.”
웃으며 휴게실을 나온 태경은 부디 이병출의 저 다짐이 한순간의 마음이 아니길 바라며 계단을 내려갔다.
“원, 원장님?”
1층으로 내려오자 최 팀장이 달라붙다시피 바짝 다가왔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회진 시간 좀 줄이세요. 한 번 나갔다 하면…….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식당에 좀 가 보세요.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 식당에요?”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찾아올 사람이 없던 태경은 손님이란 말에 의아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있는 손님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어이, 김 원장!”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식당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뜻밖에 인물이 태경을 불렀다.
“여기야, 여기!”
“이 시간에 회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온 사람은 누가 그룹 김건형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