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자면 안 돼! 잠들지 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사고로 인해 백화점 안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자! 자!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거기! 이봐! 더 위쪽으로 올리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피해자가 119로 이송되고 백화점 직원들은 사고 현장을 가림막으로 황급하게 가리며 주변을 정리하기 바빴다.
“어머! 어떡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새 안타까움과 탄식이 가득했다.
“저기, 사고 난 거예요?”
다른 층에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를 따라 사고 현장에 모여들고,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던 사람들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위에 저 장식이 떨어졌는데 그 아래 있던 아이를 살리려고 아이 엄마가 몸을 던져서 대신 맞았어요.”
“애 아빠는 부인 보고 소리 지르고 아이는 놀라서 울고 그 와중에 백화점 직원 놈들 빨리 오지도 않아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아이도 달래 주고 그랬어요.”
“어머! 세상에!”
“피가 많이 났는데……. 그 아이 엄마 괜찮을지 모르겠네. 딱해 죽겠네.”
쇼핑하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중년 여성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지연을 걱정했다.
“아니, 저렇게 큰 장식물을 천장에 매달았으면 안전하게 해야지.”
“누가 아니래요. 애들 장난감 매단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딴 게 부실 공사가 아니라 저런 게 바로 부실 공사야.”
걱정하는 사람과 격양된 목소리로 분노하는 사람들 사이로 현장을 지휘하던 관리자가 다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갔다.
몇 시간 전, 부하 직원과 함께 장식물을 걱정하던 담당자였다.
다다다다다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기어코 이 사달이…….”
철컥-
“안에 본부장님 계시죠?”
“사고 났다는 거 진짜예요?”
“그럼, 사고를 장난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본부장실에 들어온 담당자는 사고 때문에 한참 예민해 있었다.
“아직도 전화 중이세요?”
“네, 제가 급하다고 메모 남겨 드렸는데 중요한 전화인지 도통 못 보시네요.”
“전화 좀 적당히 하지. 내가 들어가 볼게요.”
똑똑-
“본부장님!”
평소라면 전화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담당자가 본부장실 문을 급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큰일 났습니다.”
“아, 예. 그럼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본부장은 갑자기 들어온 직원에게 눈을 흘겼다.
“나, 전화 중인 거 안 보이여?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오전에 보고 드렸던 중앙 장식물 건 있지 않습니까?”
“왜? 혹시 민원 들어온 거면 대충…….”
“그게 떨어졌습니다.”
“떨어졌으면 얼른 다른 손님들이나 기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빨리 치워야지.”
‘다친 사람은 없냐?’라는 당연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본부장은 혹시 외부에 알려져 손님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 부분이 걱정됐다.
“정리는 하고 있는데……. 본부장님, 그보다 사람이 다쳤습니다. 아이와 아이 엄마가 그 아래 있다가 장식물이 두 사람 위로 떨어졌어요.”
“뭐야! 아, 시x. 골치 아프게 생겼네.”
본부장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짜증을 냈다.
“그러게 내가 좀 더 신중히 살피라고 했잖아. 내일이 주말인데 이거 어쩔 거야? 기자 놈들 또 신나게 찍어 댈 거 뻔한데. 참나! 많이 다쳤나?”
“그게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빨리 치우고 환자도 안 보이는 곳으로 얼른 치워. 그 왜 우리 회장님 사고방식 있잖아?”
“예?”
“자네 몰라? 우리 회사가 백화점, 마트 전문 기업인데 지금까지 이런 사고가 한 번이었을 거 같아. 공사하다가 사고, 뭐 하다 사고. 그때마다 돈으로 잘 해결했어.”
“…….”
물론 다친 사람이 있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피해 보상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피해자 걱정보다 돈 얘기부터 나오는 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랑 보호자 시끄럽지 않게 돈 두둑이 챙겨 줘. 만나서 무조건 죄송하다고 죽는시늉도 좀 하고. 다른 소리 안 나오게 하란 말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하! 씨, 오픈한 지 얼마나 됐다고 별 재수 없는 일이 생겨서……. 맞다! 피해자는 어떻게 됐다고 했지?”
한참을 떠들던 본부장은 이제야 다친 사람 걱정이라도 하는 듯 물었다.
“그게 사고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119에 신고를 해서 일단 구급대원들과 함께 갔습니다.”
“뭐야! 그걸 그냥 보내면 어떻게! 우리가 모셔다드린다고 하고 시간을 벌었어야지?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하지만 본부장님. 피해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언론을 얼마나 타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그래서 어느 병원인지는 알고?”
“현재 관리팀장과 직원이 뒤따라가고 있으니까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피해자 가족의 환심 사도록 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단 말이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근무하면서 사고를 처음 겪은 담당 직원은 억지로 대답을 끄집어내며 본부장실을 나왔다.
아무리 돈이 많은 대기업이라지만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 * *
금요일 저녁-
끝이 보이지 않는 교통 체증 속에 붉은색 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줬다.
“여보…….”
이동하는 구급차 안에서 감지연이 가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어, 여보.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까 누나 온 건 기억나?”
“어.”
“누나가 와서 채영이 데리고 갔어. 당신 때문에 우리 딸 다친 데 없이 멀쩡하대.”
“아이고. 형님이 고생하시네…….”
감지연과 이민우는 조금 전, 첫 번째 병원에서 다시 이동 중이었다. 백화점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진료를 볼 수 없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고당한 환자부터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응급실은 이미 정신이 없었다.
병원에서 채영이만 진료를 보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구급대원과 이민우는 다른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소식을 듣고 근처에 사는 이민우의 누나가 빠르게 달려와 채영이를 맡았다.
다행히 채영이는 놀라기만 했을 뿐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아이의 체구가 작아서이기도 했지만, 엄마인 감지연이 그 찰나의 순간 목숨을 걸고 아이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기적적으로 채영이를 살린 것이다.
“자기야…….”
“응, 여보 나 여기 있어.”
이민우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울먹이며 답했다.
괜히 면도기를 사러 간 자신이 원망스럽고 다친 아내가 안쓰러워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나 죽으면 재혼해도 되는데 우리 애 대학 보내고 재혼해야 해. 알았지?”
농담이 아니었다. 감지연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고로 다친 부위가 정말 아팠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왔고,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살면서 사고를 처음 당했기에 모든 것이 무서웠지만, 남편이 걱정할까 봐 그런 마음을 내비치긴 싫었다.
“알았지? 왜 대답을 안 해…….”
“뭔 소리야! 당신이 죽긴 왜 죽어. 나랑 채영이 두고 절대 못 가.”
울먹이는 이민우 옆으로 구조대원들이 감지연의 복부 위에다가 거즈를 잔뜩 대고 지혈을 시도했지만,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관통된 유리 조각이 오른쪽 중간 배에 있으며 끝이 깨져 있어서 날카로운 경계가 드러나 있었다.
“저기, 대원님. 조금만 빨리 가주시면 안 될까요?”
“알겠습니다.”
“여보……. 지금 차 막혀?”
“아니, 다들 비켜 줘서 막히지는 않아.”
“그럼 기다려. 고생하시잖아.”
“당신 아프니까 그렇지. 빨리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기다려.”
“그래도……. 나…… 졸려.”
감지연의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보! 지연아? 자면 안 돼! 잠들지 마. 조금만 더 기운 내자. 응? 여보 제발 잠들지 마.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옷도 함부로 벗지 않고 양말도 빨래통에 잘 둘게. 제발 정신 차려. 지연아!”
“그거 괜찮네. 자기야 혹시 모르니까 내 말 잘 들어 줘…….”
“응. 뭐든지. 말만 해.”
“우리 딸……. 우리 채영이 공부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연애도 많이 해 보라고 해. 그리고 아빠는 바보니까 잘 돌봐 주라고도 전해 주고.”
친정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선택했을 만큼 남편은 너무나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감지연은 그런 남편이 혼자 남는 건 아닐지 그게 걱정됐다.
“무슨 소리야 내가 돌봐야지. 그리고 당신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채영이가 날 닮아서 똑똑해.”
“그래 당신 말이 전부 맞아.”
“민우 씨, 그리고 우리 아빠…….”
결혼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장인어른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민우는 더 집중했다.
“우리 아빠한테는 엄마 죽고 나서 외로웠는데 일만 하셔서 미웠다고 전해 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그만 은퇴하시고 건강히 지내시라고…….”
“그런 말은 치료 다 받고 퇴원해서 장인어른한테 직접 말해. 응?”
“졸리다. 나……. 조금만 잘게.”
“자기야? 지연아?”
걱정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이민우가 연신 불렀지만, 감지연은 자꾸만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이민우의 마음은 점점 더 타들어 갔다.
“대, 대원님 우리 지연이? 지연이 왜 이래요? 네?”
“지금 환자분께서 심장 박동수나 혈압이 낮아진 건 아니에요. 일시적으로 의식이 희미해질 수 있지만, 그렇게 흔드시면 환자에게 더 안 좋아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아니에요.”
보호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구급대원은 놀란 이민우를 진정시켰다.
“대원님 우리 아내 괜찮겠죠?”
“그렇게 되게 해야죠. 저희도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저, 근데 지금 어느 병원으로 가는 건가요?”
“신화대학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구급차는 그다음으로 가까운 병원인 신화대로 향했다.
“아! 저기군요. 이제 다 와 가네요. 대원님? 저렇게 큰 병원이면 우리 아내 살릴 수 있겠죠?”
“그럼요. 도착하면 빠르게 환자 이동할게요. 보호자분은 접수부터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민우가 구급대원과 대화를 하는 사이 구급차는 신화대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 구급 차량이 멈춰 서자 대원들이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한 명이 문을 활짝 들어 올리자 나머지 대원이 후송용 베드를 빠르고 안전하게 빼고서 응급실 입구로 밀고 들어갔다.
“36세 여자, trauma(외상)로 업도미널 블리딩(abdominal bleeding, 복부 출혈)입니다.”
“여보!”
“네, 대원님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이던 간호사들이 외상환자를 위한 처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호자분. 저희가 환자분 살펴볼게요. 일단 접수부터 하시고 보호자 대기실에 계실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민우는 아내를 향한 걱정 가득한 시선을 간신히 떼며 일단 접수창구로 향했다.
“오늘 외상 담당 교수님 누구시죠?”
“복부 외상은 그분이신데.”
“그분? 아! 그 실력 없는……. 환자한테 못 할 짓이네요.”
동료 간호사와 대화 중이던 다른 간호사가 담당 교수를 떠올리며 눈살을 구겼다.
“그냥 아까 전화 받을 때 안 된다고 할 걸 그랬나 봐요.”
“쉬! 조용히 해. 그러다 보호자 듣겠다.”
그 말을 들은 동료 간호사가 눈짓을 주며 입단속을 시켰다.
“우선 빨리 인턴 선생님께 콜부터 드리라고 해.”
“네.”
간호사는 얼른 응급실 담당 인턴에게 가서 담당 교수한테 연락할 것을 알렸다. 그러자 인턴이 빠르게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네, 권수현입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사장의 백으로 태경의 자리를 차지했던 권수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