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정확히 어떤 뜻이죠?
-네, 권수현입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사장의 백으로 태경의 자리를 차지했던 권수현이었다.
“네, 교수님. 응급실 노티 드리고자 연락 드렸습니다. 36세 여자로 업도미널 블리딩(abdominal bleeding, 복부 출혈) 환자입니다.”
“아! 됐고.”
권수현은 인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딱 잘라 말했다.
“바이탈 흔들려?”
“아, 네. 교수님. SBP(수축기혈압)가 100 미만이며 HR가 118회입니다.”
“그거 우리 그 전공의 아무나 전화해서 오더 넣으라고 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CT 등 뭐 검사도 알아서 하고 완료되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전해.”
“저 교수님. 죄송하지만, 전공의 누구 말씀하시는 건지……?”
“그 3년 차한테 연락하면 되잖아. 게네들이 중환자실에서 매일 해서 나보다 잘해.”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이 환자의 보호자가…….”
뚝-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수화기로 너머로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티를 하던 응급실 인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던 간호사를 바라봤다.
“하! 이 교수님은 정말 강아지이신 것 같아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인턴이 오죽하면 권수현을 강아지라고 표현할까 싶었다.
솔직히 강아지라는 말도 아까웠다. 속으로는 연신 개새끼라는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옆에 있던 간호사조차 인턴의 편을 들며 동의할 정도였다.
“맨날 그런다니까요. 금수저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성이 원래 쓰레기인지 일도 너무 안 하려고 해요.”
“제 말이요.”
“저 간호사 된 이래 저렇게 공부 안 하는 의사는 처음 본다니까요. 환자들만 불쌍한 거죠.”
“하! 진짜. 그래도 전공의 선생님들이 잘하시겠죠.”
인턴은 답답하고 짜증 나는 표정으로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응급실 노티 드리고자 전화 드렸습니다. 36세…….”
“나, 여기 있어.”
인턴이 전화하고 있던 와중 3년 차 전공의가 그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긴 내가 알아서 볼게. 너 할 일 해.”
“네. 감사합니다.”
“아니, 근데 교수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환자가 왔는데 직접 보지도 않고 뭐한데요. 무슨 사이버 닥터도 아니고 참나.”
간호사는 전공의를 보자마자 권수현을 두고 불평했다.
“에휴! 누가 아니랍니까. 저번에는 너무 위험한 환자였는데 그냥 저희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바이탈 흔들리는데 저희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시잖아요. 진짜 덕분에 실력은 많이 늘 거 같아요. 빌어먹게 감사하죠.”
“진짜, 그 교수님 때문에 다들 피해가 너무 커요. 저번에 수술방에서도…….”
“그거 뭔 줄 알아요. 저도 다 들었어요. 우선 환자부터 보죠.”
“아, 네. 선생님.”
“지금 출혈도 많으신 거 같은데 우선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혈관수축제) 걸고요. 플라즈마 솔류션(plasma solution, 수액의 한 종류로 체액의 비율과 흡사한 전해질 비율이 배합됨) 1L bolus로 주고 수혈할게요.”
“네.”
“보호자 들어오라고 하고요. 필요한 동의서 다 받도록 하세요. 아직 호흡은 괜찮아서 다행이네요. 환자 혈압 잡고 바로 CT 찍으러 갈게요. 아, 참! 배 뚫은 거 뭐예요? 제가 직접 안 봐서요.”
“무슨 유리인 거 같은데요?”
“그래요. 직접 봐야겠네요.”
급하게 오더를 내린 전공의는 감지연에게 갔고 간호사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걱정하고 있는 이민우에게 찾아갔다.
“저기, 감지연 환자 보호자분?”
“네, 선생님. 접니다. 우리 와이프 어떻게 됐나요?”
“많이 걱정하셨죠? 지금 선생님께서 환자분 보시고 계세요. 일단 CT를 찍어야 해서요. 저랑 같이 들어가셔서 제가 동의서 설명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민우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진정하며 간호사를 따라갔다.
* * *
고급 한식당-
“이거 술이 아주 달아. 응?”
“그렇죠?”
계획대로 기부금을 잘 받은 고계득은 윤부실과 식사를 하며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안에 든 산삼이 아주 귀한 거예요. 제가 오늘 선배님 드리려고 특별히 가져온 겁니다.”
“이거 내가 고 원장 때문에 입이 아주 호강하네. 하하하!”
백화점이 발칵 뒤집힌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던 그때, 요란한 노크 소리와 함께 윤부실의 비서가 들어왔다.
드르륵-
“회장님!”
“아니, 자네가 갑자기 여긴 왜 들어와?”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백화점에 사고가 나서 사람이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라니?”
기분 좋은 술자리에 핸드폰을 진동으로 하고 있던 윤부실은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이거 좀 보시죠?”
“하! 이런 젠장! 골 아프게 생겼네. 이런 일이 있으면 빨리빨리 연락했어야지!”
“전화를 계속 드렸었는데……. 죄송합니다.”
“장식이 떨어졌다고?”
“네, 회장님.”
“그 물건이 얼마짜리인데. 사고당한 사람은 많이 다쳤대?”
“지금 파악 중인데 피를 많이 흘린 거로 알고 있습니다.”
“병원은? 어디로 갔는데? 빨리 알아봐.”
“그게, 신화대병원에 있다고 합니다.”
“……!”
비서의 입에서 ‘신화대병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윤부실과 고계득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의 눈빛은 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우리 쪽 사람이 거기 가 있나?”
“네, 관리팀장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알았어. 내가 연락할 테니까 자네는 나가서 대기해.”
“네?”
“뭐가 네야. 나가서 대기하라니까.”
“……네, 회장님.”
드르륵-
“고 원장? 자네도 다 들었지?”
“네, 선배님. 어떻게 또 사고를 당한 사람이 마침 우리 병원에 있다니 참 다행입니다.”
“내 말이. 오늘 내가 우리 고 원장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자네가 좀 어떻게 적당히 처리해 주면 안 될까? 예전에도 안전사고가 있었는데 기자를 들이닥치고 언론에서 생난리를 치르고 아주 피곤했어. 조용히 잘 지나갔으면 하는데…….”
윤부실은 크게 이슈가 되기 전에 이번 사고를 조용히 묻으려 하고 있었다.
벌써 언론에 부실 공사 관련 기사가 한두 개씩 올라왔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요. 선배님.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역시 우리 고 원장 성격이 아주 화끈하다니까. 내가 조만간 연구비도 두둑이 챙겨 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 제가 전화 한 통만 좀 하겠습니다.”
“그래, 얼마든지.”
전화를 갖고 일어난 고계득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부실 역시 홍보실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사에 기사를 막고 부실 공사 관련 정정 기사를 내도록 지시했다.
본인의 관리·감독 부주의는 쏙 빼놓은 채 유리한 쪽으로 기사가 나가도록 말이다.
* * *
“환자 BP 좀 어때요?”
감지연을 봤던 전공의가 다시 내려와 간호사에게 물었다.
“네, 105/78입니다. HR는 95회입니다.”
“packed RBC(혈액 성분 중 산소 운반에 관여하는 성분) 수혈하고 있죠?”
“네. 그리고 플라즈마 솔루션 2L 들어갔습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분당 4마이크로그램 투여 중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유지하고 CT 찍었죠?”
“네.”
“선생님 그런데 아까도 그렇고 오늘은 콜하자마자 바로 오셨네요?”
옆에 있던 높은 연차의 간호사가 물어봤다.
“백화점에서 가까운 병원 중의 하나가 우리 병원인데, 저쪽은 늘 TA(교통사고) 환자 많으니까 우리 쪽으로 오겠다 싶었죠. 그리고 뉴스에도 백화점 사고 소식 나고 뭐, 난리가 난 거 같더라고요.”
“백화점이랑 뉴스요?”
“아, 네. 아직 못 보셨구나. 그 왜 백화점 새로 열었잖아요. 그 엄청나게 커서 기네스에도 올랐다는 거기요.”
“아! 거기요? 저도 주말에 가 보려고요.”
“거기서 사고 난 거예요. 뭐, 천장 장식이 떨어지면서 다쳤대요.”
“저런! 그러면 저렇게 다친 것도 무리가 아니네요.”
“운이 좋은 거죠. 물론 지금도 많이 다쳤지만, 머리나 복부 중앙에 박혔으면 저 환자는 즉사했을 거예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보호자분 계속 우시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왜 아니겠어요. 부인이 다쳤는데. 아무튼 그 백화점이 유명해서 기사에서도 부실 공사니 뭐니 하는 거 보니 좀 시끄러울 거 같아요.”
“저, 실례합니다만…….”
전공의가 간호사와 대화를 하는 사이 정장 차림의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진료 보러 오셨으면 먼저 접수부터 해 주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백화점에서 다치신 분이 여기로 오셨다고 해서요.”
“지금 치료받고 있는데 누구시죠?”
“혹시 그 환자 담당하시는 교수님을 좀 뵐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성함이라도…….”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데요?”
“네, 저는 JQ 백화점 관리팀장인데요. 저희 책임도 있기에 조금 도울 일이 있을까 해서요.”
구급차를 뒤따라왔던 백화점 직원들은 보호자인 이민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 윤부실의 전화를 받고 기회를 보다 급히 응급실에 들어왔다. 피해자의 보상 논의보다는 병원과의 접촉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저희가 직접 말씀드릴 문제라서요. 죄송합니다.”
“저도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제가 주치의입니다. 저에게 말씀하시든지 그냥 돌아가든지 하세요.”
“그럼, 잠시만요.”
생각보다 강경한 전공의 태도에 놀란 직원들이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Rrrrrrrrrr
그러더니 잠시 뒤 전공의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교수님.”
-누가 나 찾는다며?
전화를 건 사람은 권수현이었다.
“네, 방금 외상 환자가 다친 백화점 직원이 왔습니다. 교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요.”
-내 사무실로 안내해 드려.
“예? 괜찮으십니까? 그래도…….”
-나도 싫은데 갑자기 원장님이 전화하셔서 그래. 뭐 대화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일단 안내해 드려.
“네. 알겠습니다.”
전공의는 고개를 갸웃하며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 백화점 직원은 전공의의 안내를 받으며 권수현 사무실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직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정중한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JQ 백화점 관리팀장입니다. 이쪽은 제 부하 직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절 직접 보자고 하셨는지…….”
“그 사실 저희가 이번에 환자 다친 것과 관련해서 굉장히 우려가 큽니다. 우선 환자분에게 끼친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잠시만요.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관리팀장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자 권수현이 손을 들고 말허리를 잘랐다.
“이미 원장님께 전화 받아서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기업하시는 분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그냥 본론만 말씀하시죠.”
“교수님께서 말이 통하는 분이라 다행입니다. 그럼 저희가 원하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리팀장은 대화가 쉽게 풀릴 거라고 확신하며 말을 이었다.
“그 환자에게서 손을 떼 주셨으면 합니다.”
“손을 떼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