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그 선생님 성함이 뭐였죠?
“교수님께서 말이 통하는 분이시라 다행입니다. 그럼 저희가 원하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리팀장은 대화가 쉽게 풀릴 거라고 확신하며 말을 이었다.
“그 환자에게서 손을 떼 주셨으면 합니다.”
“손을 떼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이죠?”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느릿하게 두드리던 권수현의 눈빛이 차례대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가만있자……. 다른 병원이라 하면 혹시 전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언론에서 자꾸 거론되는 거 자체가 저희한테는 부담이라서요.”
“부담이라…….”
“네. 그래서 아예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쾅-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권수현이 주먹으로 책상을 살짝 내리치며 두 사람을 향해 눈을 흘겼다.
“저 역시 두 분이 오기 전 뉴스 영상을 봤습니다. 아직 환자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길고 위험한 수술이라 굳이 제가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를 찾아온 환자를 아무 이유 없이 보내기는 의사로서 좀 그렇습니다.”
마치 환자를 위하는 것 같은 권수현의 발언을 듣고 있던 관리팀장이 그의 의도를 눈치채며 옆에 있던 직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교수님?”
직원이 꺼낸 흰 봉투를 건네받은 관리팀장이 책상 위로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상당히 실례되지만, 그 불편하신 마음 저희가 조금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어허! 이거 참!”
권수현은 입맛을 다시며 봉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위로가 가능할까요?”
“저희 백화점 상품권으로 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뭐! 나쁘지는 않네요. 하지만 말이죠. 이게 좀 변수라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예? 변수라니요.”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혹시라도 알려지게 된다면 제가 비난을 받을 여지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그 점을 고려하면 금액이 조금 아쉬운 거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돈이 아쉬운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일에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또 서로가 확실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러시다면 천오백만 원은 어떠신가요?”
“뭐, 나쁘지 않지만……. 그냥 깔끔하게 이천만 원이면 지금 바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교수님. 그렇게 하시죠. 그럼 일단 저희가 소지한 것을 바로 드리고 나머지는 계좌를 알려 주시면 돈으로 즉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참! 아주 대화가 잘 통하시는 분들이군요. 그래요. 그렇게 하시죠. 그럼 살펴들 가세요.”
“네, 교수님. 뒤처리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백화점 직원들과 모종의 거래를 마친 권수현은 만족한 얼굴로 인사를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 시각-
전공의는 감지연의 CT를 면밀히 보고 있었다.
“선생님, 이 환자분 살 수 있을까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면 가능할 거 같아요. 물론 여기 보시면 여기와 여기 혈관 복판에 무언가가 있는데요. 그것만 잘 제거한다면 나머지는 뭐 하나하나 제거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게 뭔데요?”
간호사는 전공의가 가리키는 모니터를 빤히 쳐다봤다.
“지금 봐서는 아마 유리일 거 같아요. 지금도 저 환자 배 위에 떡하니 있잖아요.”
두 사람의 시선이 감지연의 복부에 꽂혀 있는 유리 조각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Rrrrrrrrrr
“네, 교수님.”
전공의의 휴대폰을 급하게 울린 사람은 권수현이었다.
-그 환자 있잖아? 백화점에서 온 여자 말이야?
“아, 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수술…….”
-아니. 그러지 말고.
환자 수술 관련해서 말하려고 했던 전공의의 말허리를 딱 잘라 버린 권수현은 황당한 소리를 연달아 남겼다.
-그 환자 전원 보내.
“……예?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순간 제 귀를 의심하게끔 만든 말에 전공의는 못 들은 척 다시 확인했다.
-뭐가 예야. 그 환자 전원 보내라니까.
“갑자기요? 무슨 연유로 그러시는지…….”
-야!
이유를 묻는 전공의에게 날카로운 고함이 고막을 때렸다.
“네, 교수님.”
-내가 결정 내리는데 하나하나 일일이 너한테 설명해야 하냐? 어?
“아, 아닙니다. 그럼 혹시 어디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것까지 내가 너한테 찾아줘야 해? 그냥 적당히 알아서 외곽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보내면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권수현과의 통화를 마친 전공의의 표정이 똥 씹은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이 개새끼…….”
“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욕설에 간호사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왜 그러세요? 권 교수님이죠? 뭐라고 했는데요?”
“하! 아니에요. 그리고 저 환자 전원 보내기로 했어요.”
“네?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 상태로 가도 괜찮아요?”
“야! 인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간호사의 말을 뒤로하고 전공의는 한쪽에서 일을 보던 인턴을 크게 불렀다.
“네, 선생님!”
“거기서 대충 들었지? 저 환자 전원 보내기로 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 둘러대고 수도권 외곽에 있는 아무 병원 찾아서 전원 보내. 혹시 보호자가 안 간다고 하면 죄송하다고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치료 못 한다고 둘러대서 보내.”
“아. 네. 알겠습니다.”
전공의는 마른세수를 하며 인상을 심하게 찌푸렸다.
아무리 권수현이 환자 보기를 돌같이 보는 나쁜 새끼라 해도, 갑자기 왜 환자를 보내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비슷한 경우가 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놀라운 것은 없지만, 이번에는 뭔가 이상하다.
이전에는 확실히 귀찮거나 자신이 없거나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때랑 달랐다.
아까 그 백화점 직원들이 오고 나서 결정이 내려진 거라 무언가 더러운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 버리겠다. 진짜!”
젊은 여자가 배가 관통당해 왔는데 지금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솔직히 x같았다.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이 상황에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 이건 선을 넘는 건데…….”
혼잣말을 하면서 걷던 전공의는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았다.
“선생님?”
별안간 걸음을 멈춘 그가 대화하던 간호사를 불렀다.
“네? 부르셨어요?”
“그 저기……. 그 훌륭한 그 선생님 성함이 뭐였죠?”
“네? 누구요?”
“그, 왜 있잖아요. 선생님이랑 제가 응급실에서 맨날 대단하시다 닮고 싶다고 말했던 분이요. 외과에 계시다가 오늘 당직인 개새끼 때문에 밀리시고 요번에 방송에 나오신……. 열 받으니까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요.”
“아!”
전공의의 말을 대번에 이해한 간호사는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김태경 선생님이잖아요.”
“맞아요. 김태경 선생님. 혹시 그분 지금 어디에서 일하시는지 알아요?”
“그건 왜요? 듣기로는 작은 병원에 원장님으로 계신다고 하던데요.”
“그 병원 외곽인가요? 크기도 작은 편이고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경기도 근처 서울이고 크기도 여기보단 작다고 하니까 그러겠죠.”
“혹시 병원 이름 알아요?”
“김태경 선생님 방송 나온 뒤로 유명해서 검색하면 거의 나올걸요.”
전공의는 즉시 핸드폰으로 병원을 검색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인턴?”
“네, 선생님.”
“잠깐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냥 일 봐. 감지연 환자 내가 알아서 보낼게.”
“아. 네 알겠습니다.”
인턴에게 말을 한 전공의는 태경에게 전화를 걸려 하고 있었다.
권수현 그놈이 분명 알아서 전원을 보내라고 했으니 어디로 보내는지는 본인 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환자를 확실히 치료할 수 있고, 믿고 맡길 수 있는 태경에게 보내기로 했다.
‘저 환자는 반드시 그 선생님께 보내야 해.’
* * *
-다음 뉴스입니다.
저는 지금 서울에 있는 JQ 백화점에 앞에 나왔습니다.
가장 큰 백화점으로 기네스에 올라 외신에도 보도가 될 만큼 화제가 된 백화점인데요, 오늘 오후 이 백화점 안에서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백화점에는 천장에 유명한 장식물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자료화면처럼 장식물 아래는 어째서인지 간단한 안전선만이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서 있는 그 위로 장식물 하나가 떨어집니다.
아이에게 다가오던 엄마가 온몸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장식물을 대신 맞았습니다.
이 사고로 아이의 엄마가 크게 다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가족에서 생긴 이 비극은 백화점의 장식물 안전 관리에서 비롯됐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요. 현재…….
식당 한쪽에 있는 TV 소식을 뒤로한 채 구석진 곳에서 태경은 식사하고 있었다.
병원 근처 맛집을 잘 알고 있는 의진의 추천으로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게 된 것이다.
“여기 맛있는데?”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끓어오르는 전골을 한술 뜬 태경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맛있죠? 여기 맛집 맞다니까요?”
“그러네. 병원 가까운 곳에 이런 식당이 있었는데 왜 그동안 몰랐지?”
“선배가 워낙 병원에만 집중하니까 그렇죠.”
“그건가? 앞으로 자주 와야겠는데? 다음에 이 선생이랑 최 선생도 같이 와야겠다.”
“좋죠. 참! 선배 아까 뉴스에 나왔던 백화점 사고 소식 들었어요? 이것 좀 보세요.”
의진은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사고 현장 사진을 태경에게 보여줬다.
“아까 병원에서 뉴스 봤어. 어떡하다 이런 일이……. 피를 많이 흘렸네. 피해자 괜찮으려나?”
“제 말이요. 그런 기업에서 어떻게 일을 이렇게 대책 없이 하는지 원.”
“사고가 진짜 조심한다고 해도 한순간 아차 하면 생기는 거잖아.”
“그렇죠.”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부실 공사가 맞다면 크게 논란될 거 같다.”
“인터넷 글 보니까 부실 공사 기사 올라오는 거 자꾸 내린다고 하는데……. 어, 이 선생. 왜?”
태경과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의진은 갑자기 걸려 온 이찬희 전화에 말을 하다 말고 휴대폰을 받았다.
“정말? 알았어. 잠시만. 선배 전화 안 받아서 저한테 했대요. 받아 보세요.”
“그래? 핸드폰이 진동이었네. 어, 무슨 일이야?”
주머니에 있던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한 태경은 의진의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선생님, 오늘 오후에 대장 절제한 환자가 복부 불편감을 계속 호소해서 복부 엑스레이를 촬영했는데, 일레우스(ileus, 물리적 혹은 생리학적 이유로 인한 소장 마비) 소견이 보입니다.
“얼마나 안 좋은데?”
-소장의 직경이 5cm 정도였어요.
“일단 환자 L-tube하고 나 밥 먹고 들어가서 같이 엑스레이랑 신체검사도 해 보자.”
-네, 알겠습니다.
“환자 건이요?”
“어, 우리 아까 대장……. 잠시만.”
Rrrrrrrr
태경이 환자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테이블에 꺼내 놓은 휴대폰은 격하게 진동했다.
“여보세요.”
-실례지만, 혹시 김태경 선생님 핸드폰이 맞나요?
“제가 김태경인데 누구시죠?”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씩씩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감지연을 담당했던 전공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