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혈액이 풍선 터지듯
또다시 수술방에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유리 조각을 떼어 낸 지 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하!”
네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작업하던 태경이 고개를 들며 짧은 한숨을 터트리며 말했다.
“자! 복강 내 있는 유리 조각들은 완전히 제거된 거 같다.”
감지연의 복부에서 나온 자잘한 유리 조각들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짜 양이 어마어마하네요.”
“어휴! 애쓰셨어요. 선생님.”
“뭐,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그 초음파 다시 줘 보세요.”
“네.”
“아니…….”
초음파를 보면서 모니터에 보이는 흑백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이리저리 소장을 살피던 태경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저거 정확하게 막고 있네.”
“저 혈관 말입니까?”
“응. 보니까 메센테릭 아테리. (mesenteric artery, 소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동맥 같은데 중간에 혈전이 떡하니 막고 있어.”
“그럼, 저거는 어떻게 합니까?”
최모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여기 포가티 벌룬 카테터(fogarty balloon catheter, 끝에 부풀릴 수 있는 풍선이 달린 가는 관) 있나요? 제가 저번에 구비해 달라고 말했었는데.”
“네 원장님. 있습니다. 몇 프랜치로 드릴까요?”
“5로……. 아니 4로 주세요. 워낙 작아서 그걸 해야 할 거 같아요.”
간호사가 태경의 말에 아주 가늘고 긴 기구를 갖고 와서 멸균이 깨지지 않도록 수술 테이블 위에서 포장지를 뜯어서 떨궜다.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아주 가늘어서 혈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구로, 동시에 끝쪽에서 공기를 넣으면 반대쪽 끝에서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구조였다.
“불독 클램프(bulldog clamp, 빨래집게 같은 기구로, 혈관의 앞뒤를 막는 데 쓰임) 주세요.”
클램프를 건네받은 태경은 혈전이 생긴 동맥의 앞뒤를 기구로 집어서 흐르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혈전이 있는 쪽 기구를 풀었다.
원래는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와야 하지만 혈전으로 막혀서 혈액이 흐르지 않았다.
“포가티 주시고 헤파린에 한 번 담근 다음에 주세요.”
기구를 잡은 태경은 막혀 버린 동맥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초음파를 보면서 혹시나 있을 유리 조각들이 밀려들어 가지 않도록 유심히 살펴봤다.
다행히 이상 소견이 확인되지 않자 기구를 더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쳤다. 진짜 보통 일이 아니다.’
옆에서 집중하는 태경을 따라 어시를 하고 있던 최모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감탄했다.
감지연의 복부의 박혀 있는 수많은 유리 조각을 하나하나 찾아 전부 떼어 낸 일은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네 시간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같은 자세로 크고 작은 조각들을 찾는 건 상당히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환자가 어떤 연유로 우리병원까지 전원을 왔는지 최모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의사로서 장담하건대 아마 이 환자 입장에서는 태경에게 온 것이 전화위복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수많은 유리 조각을 떼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 수술 자체가 쉽지 않은 수술이기 때문이었다.
‘수술은 무조건 실력이다.’
병원이 아무리 크고 시설이 좋다고 하더라고 결국 환자를 살리는 건 집도의였다.
수술을 보며 생각하던 최모나는 집도하는 손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어시의 집중했다.
“자! 주사기 주세요.”
기구 반대쪽에 주사기를 연결하고 공기를 주입하자 육안으로도 혈관이 부풀어 오른 것이 보였다.
태경은 포가티를 잡더니 천천히 당겨서 빼기 시작했다.
이럴 경우 혈관 안에 공간이 풍선으로 가득하게 되므로 혈전을 포함한 불순물들이 함께 밀려서 딸려 나오게 된다.
태경은 동맥이 찢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당기고 있었다.
‘보는 내가 더 긴장되네.’
최모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사실 저 혈관이 터질 위험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조금씩 당겨지던 포가티의 풍선이 어느 순간 끝에 도달하자 다시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
태경은 조심히 조금 더 강한 힘으로 포가키를 힘껏 당겼다.
뻑-
“어!”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풍선이 동맥 밖으로 나오는 순간 동맥에 있던 혈액이 풍선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슉-
0.3cm 직경 정도밖에 안 되는 동맥이지만 혈전이 막혔던 곳이라서 그런지 아주 많은 양이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어찌나 강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던지 태경은 물론 최모나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클램프!! 빨리 줘요.”
태경은 급하게 클램프(겸자)로 열린 동맥 부분을 다시 집었다. 그러자 무섭게 뿜어져 나오던 출혈이 멈췄다.
“머, 멈췄습니다.”
“최 선생 괜찮아?”
본인 얼굴에 훨씬 더 많은 혈액이 튄 태경이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이런 출혈은 최모나에게 처음이었다. 평소와 같이 손상된 혈관에서 출혈이 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터질 듯한 출혈에 의료진들이 적잖이 놀랐지만, 다행히 동맥이 손상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이크로 포셉(micro forcep, 20cm 정도의 포셉으로, 끝이 아주 가늘어서 머리카락 두께의 봉합 실을 다룰 때 사용함) 주세요.”
태경은 불독(Bulldog, 큰 혈관들을 잠시 완전히 차단할 때 쓰는 기구로, 끝이 길고 굽어 있다. 빨래집게와 작동 원리는 유사함) 사이에 있는 포가티 진입 구멍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간격을 매우 일정하게 봉합하고 있었다.
수술방 시계 숫자는 하염없이 올라가고 어느새 수술을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오랫동안 불편한 자세로 수술을 하는 태경을 보며 의진이 물었다.
“출혈 때문에 정신이 확 나서 괜찮아.”
수술 시간이 길면 지치는 건 사실이었지만, 조금 전 출혈로 다시 집중력이 올라간 덕에 어려운 혈관 봉합을 빠르게 완료할 수 있었다.
“휴! 이제 더 없네.”
“유리는 다 제거된 겁니까?”
“응. 모두 제거한 거 같아. 그 GI(GI stapler의 약자로, 소장 등을 절개하면서 그 절개 면을 따라 스테이플러로 봉합해 주는 기기) 주세요.”
태경은 손상된 소장의 한쪽 구멍에다가 손가락 크기 정도의 15cm 정도 되는 기구 끝을 밀어 넣고, 반대쪽 구멍에다가도 기구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두 개의 기구를 맞닿게 조작한다. 그러면 잘린 소장이 평행하게 맞닿게 된다.
‘탈각’하는 소리와 함께 기구의 손잡이를 밀었다가 당기자 맞닿은 소장 면이 잘리면서 면의 위아래가 봉합되었다.
평행하던 소장이 하나가 됐다. 이어서 안쪽의 출혈 여부를 확인한 태경은 하나로 합쳐진 소장을 기구와 십자가가 되도록 조작했다.
손잡이를 밀었다가 다시 당기자 소장이 잘리고, 잘린 면이 스테이플러로 봉합됐다.
손상된 소장이 제거되고 정상인 소장끼리 연결된 것이다.
“자, 이제 이리게이션할게요. 웜 셀라인(warm saline, 체온과 비슷하게 가열된 식염수) 주세요”
혹시나 있을 유리 조각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안을 세척했다.
워낙 꼼꼼하게 진행했고 유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세척을 진행한 것이다. 그 뒤 다시 소장을 옆으로 밀고서 뒤 배벽부터 하나하나 봉합해 나갔다.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진행했다.
또한 환자의 다친 몸과 함께 놀랐을 환자와 가족들 마음의 상처도 봉합되길 바라면서, 층층이 확인하며 정성스럽게 봉합을 이어 나갔다.
“파샤(fascia, 근막) 닫을 거 주세요.”
이제 마무리 단계로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태경이 수술을 하면서 수백 번도 더 한 행위였다.
중요한 단계지만 아무래도 이때가 되면 어느 정도 팽창했던 긴장감이 풀리기도 했다.
“훗!”
태경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온 수술방을 돌아다니던 포르말린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술에 집중하느라 냄새가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다.
‘환자분 잘하고 계세요.’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낀 뒤, 급박했던 단계가 내려가는 이 순간이 가장 좋았지만, 오늘처럼 기분이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네.”
“네, 뭐 말씀이십니까?”
“뭐가요?”
“왜 그러세요?”
태경의 한마디에 수술방 의료진들이 돌아가면 한마디씩 물었다.
“아니, 그 백화점에서는 이 환자에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나 보죠? 그리고 우리한테 뭐 연락 온 것도 없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왜 그랬지? 보통은 피해자부터 찾아서 무조건 사과를 하는 게 기본인데.”
“그러니까요. 기본 중의 기본도 안 된 사람들 같아요.”
“정 쌤 말이 맞습니다. 기본도 없고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최모나?”
“네, 선생님.”
“최 선생은 오해하면 안 돼.”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다양한 가치관이 많잖아.”
태경은 배벽을 봉합하며 말을 이었다.
“뭐, 성평등부터 합리적 소비, 노동운동, 자본, 경영 기타 등등. 여러 가지의 가치가 범람하잖아.”
“네.”
“그런 것들도 다 중요할 수 있어. 물론 다 의미가 있지.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가장 기초가 되는 것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야. 우리는 사람이야.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해. 그리고 그게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데 이 당연한 전제가 너무 많이 무시되고 있어. 그것도 아주 자주 말이야.”
의사로서, 그것도 수술을 하는 써전으로 살다 보니 믿을 수 없는 사고로 다치고 생명을 잃는 사람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뭐, 열 번 양보해서 오픈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바빠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우선 피해자가 괜찮은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지 이건 아니야. 아무리 돈이 중요하더라도 생명보다 더할 순 없어.”
태경은 수술이 마무리되어서 홀가분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실에 씁쓸해하고 있었다.
“자! 이제 끝났다. 감지연 환자 당연히 금식하고 풀 모니터링하고, 환자 중환자실로 가자.”
“수고하셨습니다.”
“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특히 더 고생하셨어요.”
“그래요. 다들 오늘 고생 많았어요.”
태경은 수술 가운을 뜯고서 수술방을 나갔다. 그리고 곧장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감지연 보호자분?”
“네?”
태경이 보호자를 부르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이민우와 감덕찬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수술 끝났나요? 우리 아내는요?”
“제 딸아이 괜찮은 겁니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복부 쪽에 있는 유리 조각을 하나하나 제거하다 보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현재 환자분 회복실에 있다 중환자실로 이동할 예정이고, 앞으로 며칠 경과 두고 본 뒤 이상 없으면 일반 병실로 옮길 겁니다. 두 분 다 걱정 많으셨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내…….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병원으로 막 전원을 왔을 때만 해도 잔뜩 화가 난 채 아무도 믿지 못하던 이민우의 모습은 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