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14화 (213/472)

214화. 맞기 전에 그 입 닫아라

태경은 감덕찬과 대화 후 응급실에 있었다.

챠륵-

“김 원장?”

베드를 돌며 환자를 보고 있는데 별안간 커튼이 열리더니 웬 노인 환자가 태경을 불렀다.

“예,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이리.”

노인은 태경을 향해 검지를 세우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큰일 난 거 같아.”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며느리가 좀 이상해.”

“며느님이요?”

“어. 아까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리모컨이 없어서 한참을 찾았거든. 그런데 글쎄 리모컨이 냉동실에 들어가 있었다니까.”

노인은 마치 동화 구연을 하듯 과장된 손짓과 표정으로 꽤 심각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핸드폰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어. 우리 며느리 치매 맞지?”

“세상에! 그러셨어요?”

“에잉! 지금 자네 웃었어? 남의 집 이야기라고 그렇게 웃고 그러면 안 돼. 김 원장이 우리 며느리 좀 고쳐 주면 안 될까?”

“제가요?”

“그래. 우리 며느리 젊어서는 얼마나 똑똑했는데 세월에 장사 없어. 약 하나만 처방해 줘.”

“그럴까요? 제가 약 하나…….”

“아버지?”

“아버님.”

심각한 노인의 말에 답을 하던 태경의 뒤로 중년 부부가 다가왔다.

“아버지 수납 끝났으니까 이제 저희랑 집에 가세요.”

“잠깐 있어 봐. 어미야? 너 여기 원장님한테 진료 좀 봐라. 응?”

“예. 아버님 저 진료 받고 갈게요. 그이랑 먼저 차에 가세요.”

며느리는 방긋 웃는 얼굴로 남편과 베드에서 내려오는 노인을 살뜰하게 챙겼다.

“그럼, 원장님. 좀 부탁해요.”

“네, 어르신 살펴 가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노인이 아들과 함께 응급실을 나가자 며느리는 태경에게 난감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사실 치매는 며느리가 아니라 시아버지인 노인이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사는 노인은 나름 응급실 단골 환자였다.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그는 올 때마다 며느리와 아들을 돌아가며 치매 환자로 몰았다.

우리병원 직원들은 노인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짜증 내는 사람 없이 그의 장단에 잘 맞춰 주곤 했다.

치매 환자를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태경역시 노인이 오면 오늘처럼 잘 맞춰 주고 있었다.

“보호자분이 왜 죄송해요.”

“다들 바쁘신데 우리 아버님이 괜히 정신없게 하신 건 아닌가 싶어서요.”

“어르신이 치매가 있으셔서 그렇지 얼마나 좋으신데요.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참 한결같이 따뜻하시네요. 저희 남편이 선생님 같은 의사 없다고 그래서 저희가 이사를 못 가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더 잘해야겠네요. 처방전에 어르신 위장약도 같이 넣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치매 있는 시아버지를 정성으로 챙기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태경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는데 임정숙 간호사가 다급하게 불렀다.

“빨리 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병동이요?”

“아니요. 진료실이요. 그게 누가 찾아왔는데 본인들 말로 JQ 백화점 직원이래요.”

“JQ 백화점이요?”

그 사람들이 왜 본인을 찾아온 건지 의아하던 그때 임정숙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선생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알았어요. 내가 가 볼게요. 응급 환자 오면 콜하세요.”

“네. 선생님.”

진료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태경의 시선이 대기실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이었다.

‘이 시간에 날 찾아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백화점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아! 보상 때문인가?’

급하게 발걸음을 서두르던 태경은 피해보상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공의로 한창 바빴을 당시, 사고를 당한 환자를 수술했는데 환자의 상태를 알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위해 회사 측에서 찾아왔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피해자를 돕는 이유로 찾아온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철컥- 드르륵-

태경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혹시 감지연 씨를 수술한 원장님 되십니까?”

“네. 제가 감지연 환자 주치의 김태경입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늦은 시간 불쑥 찾아온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태경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남자는 권수현과 만났던 관리팀장과 그 직원이었다.

이 둘은 거래 후 권수현을 통해 감지연이 우리병원에 온 사실을 알고 서둘러 병원에 온 거였다.

“저는 JQ 백화점 관리팀장이고 이쪽은 부하직원입니다.”

“아, 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죠?”

태경은 관리팀장이 건넨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피해자분이 걱정돼서요. 수술은 잘 끝난 건가요?”

“길고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환자분이 잘 견뎌 줬습니다.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수술은 잘됐고요.”

“수술이 잘됐군요. 다행이네요.”

수술이 잘됐다는 말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뭔가 관리팀장이란 사람의 표정이 어쩐지 살짝 이상했다.

“원장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겠습니다.”

“저보다는 환자분이 고생하셨죠.”

“저기……. 원장님? 실은 저희가 원장님을 급히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JQ 백화점은 우리 회사가 10년 동안 준비해서 공을 들인 백화점입니다. 개점 후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는데 안타깝게 이번 사고가 좀 흠이 될 거 같아서요.”

“흠이요?”

“네. 그래서 말인데 환자의 진단서를 작성할 때 저희 회사 측과 상의 후 작성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태경은 순간 본인이 이야기를 맞게 들은 건지 제 귀를 의심했다.

“물론 그냥 맨입으로 해 주십사 하는 건 아닙니다. 저희 백화점 상품권입니다.”

“그러니까 환자의 상태를 실제보다 가볍게 진단해 달라 뭐 이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하! 미친놈들인가.”

태경은 일부러 두 사람이 들리게끔 말했다.

“예? 방금 뭐라고…….”

“뭐긴! 뭐가 예야? 미쳤냐고! 당신들 지금 장난해!”

관리팀장이 내민 흰 봉부를 집어 든 태경은 미간을 좁히며 두 사람을 향해 봉투를 던졌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어디 감히 환자를 두고 흥정을 하려 하다니.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이봐! 사람이 죽을 뻔했어. 사람이. 그것도 젊은 엄마가 아이를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해서 죽을 뻔한 걸 살아났다고. 그런데 뭐? 백화점에 흠? 사람이 우선이라고 사람들아!”

“…….”

관리팀장과 직원은 태경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분명 권수현이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당신들 피해자한테 사과는 했습니까?”

“예? 아, 그게 아직……. 원장님을 뵙고 만나려고 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태경을 만나기 전 이민우에게 연락했지만, 화가 난 그는 백화점 직원들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서 거절했다.

“내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가서 사과가 맞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네 백화점 회장인지 하는 사람이 와야지. 새벽에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여보세요? 진료실로 좀 오세요.”

두 사람에게 호통을 치던 태경이 별안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컥-

“부르셨습니까. 원장님?”

그러자 곧장 장득칠이 들어왔다.

“장 요원님. 여기 이 정신 나간 사람들 좀 치워 주시겠어요? 이 사람들이 백화점 사람들인데 환자를 갖고 흥정하려 드네요.”

“예? 그게 진짜입니까?”

태경의 말을 듣던 장득칠이 남자들을 향해 눈을 흘기자 두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큰 키에 한 덩치는 물론 왼쪽 뺨에 있는 좌상까지 더한 장득칠은 쉽게 말을 걸기 힘든 험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야, 이 쓰레기 새끼들아! 너희가 사람이냐?”

“어! 이, 이러지 마세요.”

“이거 놓고 이야기하세요.”

“맞기 전에 그 입 닫아라.”

장득칠은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아 강제로 일으키며 정문까지 끌고 가 손을 놓아 버렸다.

탁-

“악!”

그러자 두 사람이 바닥 위로 넘어졌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 사람 잘 못 봤어. 우리 원장님 그런 사람 아니야. 하여간 인간말종들. 얼른 꺼져!”

장득칠의 으름장에 두 사람은 기겁하며 냅다 병원 밖으로 뛰어갔다.

* * *

다음 날-

신화대병원 원장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여?”

출근한 고계득은 전날 기부금 덕분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눈앞에 폭탄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자신의 원장 자리가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 있었다.

“우리 이사장님 곧 귀국 예정이라고 하셨지?”

“네, 일정대로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보다 어제 그 백화점 사고 말입니다. 그거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원래 사고 나면 언론이다 뭐다 해서 난리 나잖아. 한 며칠 지나면 또 조용해질 거야.”

“아닐 거 같은데요.”

“아니라니?”

“어제 그 사고 난 피해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래요.”

“뭐, 뭐, 뭐라고? 국회의원?”

“네, 감덕찬 의원이라고 언론에서 떠들고 난리도 아닌데요?”

국회의원이라니?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고계득이 재빨리 원장실에 들어가 TV를 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감덕찬 국회의원의 가족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감덕찬 의원은 4선 의원으로 지역구 주민에게 발로 뛰는 진정한 국회의원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가족의 사고 소식을 접한 감덕찬 의원은 이번 사고에 백화점 측 부실 공사를 지적했습니다.

또한 서울의 위치한 대형 병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짜 국회의원 딸이었어? 저게 진짜야?”

뉴스를 접한 고계득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새파랗게 질려 가는 사이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권수현이 들어왔다.

철컥-

“원, 원장님? 큰, 큰일 났습니다.”

함께 나락행 급행열차를 탄 권수현 역시 얼굴이 질려 있긴 마찬가지였다.

“어제 왔던 그 피해자가 감덕찬…….”

“나도 지금 봤어. 권 교수 자네는 몰랐던 거야?”

“제가 그걸 어떻게 아나요? 원장님.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문제가 또 있다니?”

“지금 온라인에 피해자가 신화대병원에서 쫓겨났다는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권수현의 말을 들은 고계득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터치해 온라인을 접속했다.

-님들, 대박! 어제 백화점 피해자분 진료 거부당한 병원이 신화대병원이라 함.

-거기, 요즘 왜 이렇게 문제가 많아?

-원래 윗대가리가 쓰레기임. 원장 놈이 노답이야. 우리 누나가 거기서 일하는데 원장이 그지 같다고 함.

-아무튼 이번에 국회의원 딸이 다쳤으니 내가 보기엔 관련된 사람 전부 나락행임.

“이, 이봐, 권 교수? 자네 그 피해자 어디 병원으로 보냈어?”

“피해자요?”

“그래. 빨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고계득은 우선 피해자를 찾아가 대가리를 박고 최대한 미안한 모습으로 사과부터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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