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쇼
“피해자요?”
“그래. 빨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고계득은 우선 피해자를 찾아가 대가리를 박고 최대한 미안한 모습으로 사과부터 할 생각이었다.
“가서 사과해야 할 거 아니야? 사과를!”
“아, 사과요?”
“자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 보여?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아, 네. 알겠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고계득을 보며 권수현은 전날 감지연을 담당했던 전공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교수님.
“어. 난데. 어제 그 환자 있잖아?”
-환자요?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전화를 받은 전공의는 순간 속으로 ‘미친놈인가?’라고 받아쳤다.
본인이야 환자를 잘 안 보고 얼굴도장이나 찍자고 병원에 나오는 거겠지만, 전공의는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면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꼴이었다.
“야! 그 환자가 누구겠어? 그 백화점 피해자 말이야.”
-네, 그 환자라면 전원 잘 보냈는데요?
“그게 아니라 그 사람 전원 보낸 병원이 어디야?”
-병원이요? 우리병원으로 보냈는데 뭐 때문에…….
“알았어.”
전공의가 병원 이름을 말하자 권수현은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우리병원으로 보냈다는데요?”
“뭐! 우리병원?”
병원명을 듣는 순간, 고계득은 마른 침을 삼켰다.
‘김태경 그놈이 있는 병원이잖아?’
고계득은 즉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피해자분 수술한 병원 우리병원이라고 함.
-그 방과 후 시험 시간에 나온 훈남 의사분?
-맞아. 그분이 수술해서 살려 놓으심. 역시 명의!!!
‘왜! 하필 김태경이 수술해서 이런 시x!!’
태경이 수술했다는 걸 안 순간 고계득은 뭔가 일이 제대로 꼬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네는 하고많은 병원 중에 왜 거기로 보내고 야단이야?”
“아니, 제가 보낸 거 아닌데요? 그냥 적당히 작은 병원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런데 원장님,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초조해하실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급한 고계득과 달리 믿는 구석이 있는 권수현이 다급했던 아까 모습과 달리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원장님, 제가 누굽니까? 우리 아버지도 금배지 달고 있는 국회의원 아닙니까?”
“그래. 맞아.”
갑자기 닥친 일에 정신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권수현의 아버지 또한 국회의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의 힘이 안 닿는 곳이 없으니 고계득은 쪼그라들던 마음이 점점 풀어지는 듯했다.
“권 교수 자네가 아버지께 좀 도와 달라고 해 봐.”
“안 그래도 제가 원장님 보러 오기 전에 아버지랑 통화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
“네. 감덕찬 의원 만나서 잘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권수현은 원장실로 오기 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국회의원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살면서 늘 아버지 찬스로 위기를 벗어났던 그는 이번 일도 역시나 그랬듯이 아버지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이봐! 권 교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우리가 입을 맞춰 두자고. 그 피해자 전원 보낸 건 환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았지?”
“그럼요. 그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공의한테도 잘 말해 둘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마음 놓고 계세요.”
“그래, 내가 우리 권 교수가 있어서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고계득은 권수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같은 국회의원끼리는 서로 봐주니까. 쫄 거 없어.’
* * *
한편, 그 시각.
사무실에 있던 감덕찬은 JQ 백화점 회장인 윤부실의 대국민 사과 영상을 보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백화점 광장에서 진행된 사과는 윤부실을 필두로 주요 경영진이 함께 자리했다.
-저는 오늘 저희 백화점에서 있던 사고에 관한 사과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분과 그 가족분께 머리 숙여 사과를 전합니다.
피해 보상과 대책 마련을 위해 힘쓸 것이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오전에 감덕찬 의원이 부실 공사를 지적했는데 그거에 대한 답변을 해 주시죠.
앞쪽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가 윤부실에게 별안간 질문을 던졌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팟-
“지랄하고 자빠졌네.”
TV를 끈 감덕찬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철컥-
“의원님?”
수석 보좌관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누군가 찾아왔음을 알렸다.
“오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모셔.”
“아이고! 감 의원!”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등장한 사람은 권수현의 아버지 권오현이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런 일로 찾아와서 미안하네.”
“의원님, 커피 드릴까요?”
“아니야. 이 수석. 난 신경 쓰지 마.”
“자네는 나가 봐.”
“네, 알겠습니다.”
수석 보좌관은 인사를 하고 나가면서 감덕찬과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문 옆에 있는 책장 선반 위 액자를 살짝 건드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감 의원, 내가 못난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 그놈이 또 실수한 모양이야.”
“실수? 이봐! 권 의원.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히 말하지 그래? 내가 모를 것 같나?”
“……!”
“내 딸이 왜 갑자기 신화대병원에서 전원을 갔는지 난 이미 다 알고 있어.”
“미안하네. 나도 우리 수현이가 백화점 놈들한테 돈을 받고 전원을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
“의사라는 놈이 어떻게 환자를 돈을 받고 옮겨! 어!”
“그 녀석이 사실 내 힘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라서 실력이 없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감덕찬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의사를 하지 말았어야지? 나 이번 일 그냥 안 넘어가. 싹 다 고소할 거라고.”
“감 의원, 내가 이렇게 빌겠네. 어떻게 날 봐서라도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나? 내가 서운하지 않게 잘할게.”
권오현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덕찬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럼 내가 화를 풀 방법이 있긴 한데.”
“그래? 그게 뭔가? 내가 뭐든 할게.”
안 그래도 여직원 성추행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권오현은 어떻게든 아들의 이번 사건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다.
아들이 걱정되기보다는 자신의 국회의원 자리 때문이었다.
“내가 아직 당사자들한테 사과 한마디 못 들었어. 적어도 사람이라면 사과를 먼저 해야지. 이런 거지 경우가 어디 있나?”
“미안하네. 잠시만 기다려. 여보세요?”
감덕찬에 말에 권오현은 그 즉시 권수현과 고계득 그리고 윤부실까지 전부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세 사람이 앞다투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철컥-
“의원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세 사람은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윤부실 회장님? 당신 나한테 그것밖에 할 말이 없습니까? 내가 아까 영상 보니까 부실 공사가 아니라던데, 내가 외국에 있는 작가와 직접 통화까지 했는데 이래도 계속 발뺌할 건가요?”
감덕찬은 생각보다 철저하고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핸드폰으로 통화한 작가의 음성과 함께 작가와 윤부실이 계약했던 사고에 관한 각서 사본까지 꺼내 들며 그를 압박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의원님 다 제 잘못입니다. 사실 부실 공사가 맞습니다.”
뉴스에 내보내지 않았던 확실한 증거를 보자 크게 놀란 윤부실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작가가 안전상 케이블 선을 더 설치하자 했지만 제가 말렸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사고가 날 줄은 몰랐습니다.”
“고계득 원장, 그리고 권수현 교수?”
감덕찬의 윤부실의 사과를 무시한 채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권수현 교수님은 백화점 측에 상품권을 받았다고요?”
감덕찬은 백화점 관리팀장과 부하 직원, 신화대 전공의까지 만나서 모든 사실을 확인한 상태였다.
“아니, 그게 저는 잘 모릅니다. 사실 저는 원장님께서 시켜서 무조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수현은 이미 아버지인 권오현에게 모든 걸 고계득에게 떠넘기라는 말을 듣고 온 뒤였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고 원장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전원을 시켰다?”
“네, 맞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고 원장님?”
바로 옆에서 손가락질까지 해 가며 말하는 권수현의 태도에 고계득은 잠시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도 억울합니다.”
그러더니 권수현과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억울하다고요? 그렇다면 잘못이 없다는 뜻인가요?”
“그럴 리가요. 제가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의원님 저도 사실 여기 윤 회장님의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런 겁니다. 월급 받는 원장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역시나 뱀 같은 고계득은 윤부실에게 덮어씌우려 하고 있었다.
“저도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윤 회장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뭐, 뭐, 뭐야?”
그 옆에 있던 윤부실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고계득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이 미친놈아? 뭐라고? 내가 시켜서 그래? 네가 밥 먹으면서 해결해 준다고 해서 내가 네놈한테 돈까지 더 준 거 아니야.”
“회장님. 다른 분들이 들으면 오해하시겠습니다. 저는 그저 기부금 때문에 찾아뵌 건데 회장님이 멀리 보내라고 하신 거잖습니까.”
“야! 이 쥐새끼 같은 놈.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너랑 대화한 거 녹음까지 했어. 너 내가 나만 죽을 거 같아?”
눈이 뒤집힌 윤부실은 급기야 묻지도 않은 고계득의 치부를 아낌없이 폭로하기 시작했다.
“고계득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우리 아들들 군대 빼 준다며 돈을 요구한 게 누군데 나를 팔아. 너 제약회사 대표들한테 리베이트 받고 일반 환자는 바퀴벌레 같다고 VVIP만 환자 취급하는 거 이쪽 사람들은 다 알아.”
“아니, 회장님 그, 그게 무슨…….”
당황한 고계득은 급기야 말을 더듬었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지나쳐? 그리고 저 권수현인지 뭔지 저 사람 교수로 앉히려고 여기 국회의원에게 돈 받고 김태경 선생도 일부러 내쫓았다며? 지금 돌고 있는 소문도 다 고계득 너잖아. 네가 환자 갖고 장난친 그 의사잖아. 이번 사건만 봐도 딱 너라는 게 나오네.”
“이보세요. 그러는 당신은! 어! 당신은 돈 싸 들고 나 찾아와서 아들 군대 빼 달라고 했잖아?”
“내가 그래도 너처럼 쓰레기는 아니야. 너는 의사 자격도 없어.”
감덕찬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들의 폭로전을 방불케 했다.
“다들 조용하지 못합니까!!”
마치 지금까지 일부러 조용히 지켜보던 감덕찬이 이만하면 됐다는 듯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목소리를 버럭 높였다.
“사과하러 온 사람들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죄송합니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 모인 네 사람 모두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은 없는 거 같네요. 이만 다들 나가 주시죠.”
“아니, 감 의원. 이러지 말고 우리 따로 이야기하자고. 응?”
“내가 자네랑 이야기할 건 없을 거 같은데?”
“이거 내가 준비한 건데…….”
생각한 것과 달리 사과 현장이 난장판이 되어 버리자 마음이 급한 권오현은 양복 재킷에서 흰 봉투를 급히 꺼냈다.
“의원님, 이건 제 성의입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윤부실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고계득까지 돈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여기 모인 쓰레기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진짜 반성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 정신 나간 인간들! 지금 나를 뭘로 보고……. 정신 차려! 이 나쁜 놈들아!”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감덕찬은 급히 보좌관을 불렀다.
“이 수석!”
철컥-
“네, 의원님? 부르셨습니까?”
“여기 이 쓰레기들 내 눈앞에서 당장 치워. 그리고 당신들 앞으로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말고 썩 꺼져!”
“자, 다들 이만 나가시죠?”
“아! 의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감 의원! 난 자네만 믿겠네.”
네 사람은 보좌관들에게 억지로 끌려나가는 그 순간까지 헛소리를 잊지 않았다.
철컥-
모두가 사무실을 나가고 가만히 서 있던 감덕찬은 조금 전, 보좌관이 다가갔던 책장 선반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액자 뒤에 있던 핸드폰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대형 병원 원장과 의사 그리고 대기업 회장의 썩은 부조리를 보셨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렇게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국회의원으로 이런 놈들을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감덕찬 TV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감덕찬은 핸드폰으로 송출되는 영상을 오프했다.
지금까지 서로의 죄를 공개하며 싸우던 고계득, 권수현, 권오현, 윤뷰실의 모든 장면은 감덕찬의 너튜브 채널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국회의원과 대기업 회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번 일에서 빠져나갈 게 뻔했다.
감덕찬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들지 고민하다 실시간 방송을 하게 됐다.
네 사람을 동시에 불러서 한 명씩 자극하면 분명 서로가 물고 뜯는 개싸움이 날 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제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국회의원과 대기업 회장이라 해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본 이 방송에서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를 속인 이 기막힌 쇼는 전부 태경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