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시궁창에 빠진 쥐새끼
청소 담당자가 걱정하는 여직원을 안심시키며 바닥에 엎드려 안쪽을 살펴본 그때였다.
“가만있자……! 엄마야!!”
“왜 그러세요?”
“세상에 저게 뭐야?!”
“왜요? 뭐가 있어요?”
“구두가 있는데…….”
“구두요?”
“응. 근데 남자 구두가 있어?”
청소 담당자가 문틈 사이로 본 것은 분명히 검은색 남자 구두였다.
“남자 구두? 어! 변태 아니에요?”
남자라는 말에 여직원은 목청을 높이며 흥분을 넘어 광분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저기, 무슨 일이에요?”
두 사람이 화장실 변태로 정신없는 사이 가운을 입은 여의사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여기, 화장실 안에 남자가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문도 안 열어 주고 있어요.”
“남자?”
“아무래도 변태 같아요.”
“변태! 제가 가서 사람 불러올게요. 오늘 경찰도 많이 왔는데 저런 놈은 정신 좀 차려야 해요.”
여의사가 사람들을 부르러 간 사이 청소 담당자가 다시 한번 문을 세게 밀었다.
탁-
“어이! 안에 있는 분 마지막 경고입니다. 멀쩡한 사람이면 지금 빨리 문 열어요. 네?”
“여사님도 참!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있는 거 자체가 병X 같은 놈이죠.”
쾅- 쾅-
“야! 너 빨리 문 안 열어? 곧 있으면 경찰 온다.”
쾅- 쾅-
두 사람이 동시에 문을 발로 차며 힘으로 밀어붙이자 안에 숨어 있는 고계득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런! 시x. 미친 것들 그냥 갈 것이지 왜 여기서 지랄들이야!’
심장이 벌렁거리고 간이 쪼그라들 것만 같은 고계득이 안에서 전전긍긍하던 그때였다.
“이 변태 놈 아무래도 안 되겠네.”
단단히 뿔이 난 청소 담당자가 별안간 걸레를 빨던 통을 들고 고계득이 숨어 있는 화장실 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여사님, 그걸로 뭐 하시려고요?”
“그보다 저기 대걸레 있지? 그거 좀 들고 와봐.”
“대걸레? 이건 왜요?”
여직원이 궁금한 표정으로 대걸레를 들고 온 바로 그때였다.
“왜긴!!! 구정물 좀 먹이려고 하지.”
솨악-
청소 담당자가 고계득이 숨어 있는 화장실 칸으로 더러운 구정물을 그대로 쏟아부었다.
“으악!!!!!!”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대로 구정물을 뒤집어쓴 고계득은 소리를 지르며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쳤다.
“그거 이리 줘.”
그 순간, 청소 담당자가 커다란 대걸레를 손에 들고 화장실 문을 세차게 열었다.
철컥-
그리고 그대로 고계득 얼굴을 향해 더러운 대걸레를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여직원은 바닥에 떨어진 통을 들어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푸핫!!!”
“죽어! 이 변태 놈아!!!!”
“어디 감히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여기에요. 저기 변태가 있어요.”
때마침 경찰을 데리러 갔던 여의사가 화장실로 돌아왔다.
“아! 그만해!!”
“다들 진정하시고 잠시만 나와 보세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계득은 거의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은 것처럼 사정없이 맞았다.
직원들의 매질이 멈추자 고계득은 재빨리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경찰의 손에 끌려 나오는 순간 얼굴이 공개됐다.
“이거 봐요!! 이리 나와요.”
“어머!!”
“워, 원장님?”
화장실에 숨어있던 변태남이 고계득인 걸 알자 직원들은 물론 그를 본 경찰까지 어이가 없었다.
“고계득 씨 맞습니까?”
“…….”
신원 확인을 하는 경찰에 물음에 고계득은 바닥을 내려다본 채 입을 닫았다.
“이것 보세요, 고계득 씨 본인 맞아요?”
“네, 맞습니다.…….”
경찰에 계속된 추궁에 고계득은 짧게 답했다.
“고계득 씨, 당신을 환자 진료 거부 및 사기죄와 뇌물 수수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잠시 뒤-
경찰에게 양팔을 붙들린 고계득이 화장실 밖으로 나와 연행되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미쳤다.”
“그러니까.”
고계득이 나오자 의료진과 환자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기가 찬 표정으로 한마디씩 던졌다.
“아니, 어떻게 여자 화장실에 숨을 생각하지?”
“내 말이. 저런 사람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 직원이라는 게 쪽팔리네.”
“에라이! 네가 그러고도 의사냐!!”
“돈 없는 사람은 환자도 아니라며!!”
“이 개xx야!! 나가 죽어라!”
상황을 지켜보던 몇몇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고계득이 한 발언을 두고 쌍욕을 퍼붓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더러운 구정물을 뒤집어쓴 모습이 마치 시궁창에 빠진 냄새나는 쥐새끼와도 같았다.
의사였지만, 늘 돈을 보고 쫓았고 돈이 없는 환자들을 경멸했으며 잘난 사람들의 목숨만 보던 비열한 기회주의자.
깨끗한 성공이 아닌 추악한 성공을 좇던 고계득은 그토록 지키고 싶던 원장 자리에서 결국 비참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고계득과 태경은 둘 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더러운 성공을 좇으며 자신을 밑바닥으론 내몰던 고계득은 결국 제일 높은 곳에서 지하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태경은 반대였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옳은 길로 간 덕분에 태경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공했다.
결국 옳고 그름이 두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이다.
이로써 백화점 사고와 함께 권수현 부자와 고계득까지. 모든 쓰레기가 깨끗이 처리됐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신화대병원 이사장 고돈진이었다.
미국에서 급하게 귀국을 서두르던 그는 심각하게 돌아가는 사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병원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걱정스러웠던 그는 병원 너튜브를 통해 이사장으로서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하십니까. 신화대병원 이사장 고돈진입니다.
먼저 이번 백화점 사고와 관련하여 병원 책임자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온라인에 문제를 일으켰던 두 의사로 인해 열심히 일하는 나머지 의료진까지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고계득은 원장에서 이미 해임된 상태로 마무리를 짓던 와중에 병원과는 무관한 상태로 혼자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또한, 권수현 교수 역시 의사로서 자질 부족 논란으로 교수 자리에서 경질된 상태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물러 우리 신화대병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의료진이 환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돈진 역시 철저한 장사꾼이었다.
민망할 정도로 충성하던 고계득이 이용 가치가 떨어지자 곧바로 칼같이 선을 그어 꼬리를 잘랐다.
네 사람이 모두 경찰과 검찰로 넘어간 뒤 사람들은 온종일 이번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후련해했다.
-어휴! 속이 다 시원하네.
-진짜, 이번에는 나쁜 놈들 다 잡혀 들어가서 다행인 거 같아.
-근데, 저것들 또 집행유예나 그딴 거 받는 거 아니야? 원래 저런 사람들은 막상 교도소 안 가잖아.
-님들 들었음? 쓰레기 사인방 이번에 무조건 징역살이라고 함.
-아직 재판 시작도 안 했는데?
-지금 증권가 지라시 도는데 이번에 워낙 큰 사건이 줄줄이 엮여서 국민들 화났잖아. 그래서 정부에서 본보기로 제대로 보여 준다고 했대.
-지금까지 듣던 지라시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가십이네. 하여튼 저것들 교도소에서 나오지 말고 평생 살았으면 좋겠다.
* * *
다음 날-
“제가 이번에 우리 원장님께 신세를 크게 졌습니다.”
감덕찬은 진료실에서 태경과 함께 대화하고 있었다.
“우리 딸 수술도 잘해 주시고 벌레 같은 놈들 청소도 덕분에 아주 잘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한 것보다 의원님이 전부 하신 건데요. 저야말로 고계득 같은 사람이 죗값을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하죠.”
“고계득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까지 전부 제대로 집행을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의원님 같은 국회의원이 우리나라에 더 많았으면 좋겠네요.”
“저야말로 우리 원장님 같은 분이 의료계에 더 많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후배 양성에도 많은 힘써 주세요. 그래서 말인데 더 큰 병원으로 가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갑작스러운 감덕찬의 발언의 태경은 반문했다.
“큰 병원이요?”
“네, 물론 우리병원이 좋은 병원이라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넓은 곳에서 동료에게 경각심도 주고 후배들은 더 많이 배출했으면 해서요.”
“무슨 뜻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이 자리가 좋습니다. 여기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대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르륵-
“저는 이만 면회 시간이 돼서 일어나 보겠습니다.”
감덕찬은 딸을 보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이랑 마주 볼 생각을 하니 지은 죄가 커서 그런지 긴장되네요.”
전날 면회 시간에 중환자실을 찾았던 감덕찬은 감지연이 약 기운에 잠이 들어 얼굴만 잠깐 보고 나왔었다.
“떨리세요?”
실시간 방송에서 보여 주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감덕찬은 떨고 있었다.
“네, 많이 떨리네요.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말씀 안 하셔도 충분할 겁니다.”
“……예?”
“가족이니까요. 부모와 자식이잖아요. 감지연 환자분도 의원님도 서로 얼굴만 봐도 마음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의 사연을 알고 있는 태경은 감덕찬에게 힘을 실어 줬다.
“원장님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네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네.”
태경과 인사를 나눈 감덕찬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
딸이 누워 있는 베드를 향해 다가가자 두 사람의 시선이 떨리듯이 부딪혔다.
“아, 아…….”
감지연은 감덕찬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졌다.
“아빠!”
그동안 그토록 부르고 싶던 말이지만 부를 수 없어 가슴에 묻어 두던 그 말을 이제야 꺼내 들었다.
“지연아…….”
감덕찬 역시 눈시울 붉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딸을 눈앞에서 마주하자 이 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우리 딸 많이 힘들었지? 지연아 아빠가…… 미안하다.”
부모는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다.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감덕찬에 눈에는 딸이 아직도 아이처럼 보였다.
여전히 아이 같고 소중한 딸이 아파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빠가 왜 미안해. 그때 내가 잘못했어요.”
감덕찬이 딸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감지연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내가 아빠한테 너무 모진 말만 했어. 철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오래전 미움이 가득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아빠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사랑이 마음을 채웠다.
“아니다. 네가 왜 죄송해. 아빠가 미안하지. 이제 그런 말 하지 말자.”
“네. 그럴게요. 그냥 아빠 얼굴 보니까 정말 좋다.”
“아빠도 우리 지연이 얼굴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 지연아…….”
감덕찬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부터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 서방이랑 채영이랑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
“네, 아빠도 우리랑 같이 행복하게 살아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던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확인한 두 사람은 모든 오해를 풀고 행복한 앞날만을 생각했다.
“할부지!!”
감지연을 면회하고 나온 감덕찬에게 손녀가 뛰어가 안겼다.
“아이고! 우리 예쁜 강아지.”
“할부지 엄마 봤어?”
“그럼. 엄마 보고 왔지.”
“채영이 엄마 보고 싶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 볼 수 있어. 이 서방, 나 때문에 자네 지연이 못 봐서 어떡하나?”
“저는 수술하는 날 봤잖아요. 그리고 저보다 장인어른이 우선이죠. 지연이 좀 괜찮아요?”
“응. 얼굴이 어제보다 좋아졌어.”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장인어른. 대신 내일은 제가 면회 양보 못 합니다.”
“그래, 내일은 자네가 들어가. 이 서방 고맙네. 고마워.”
“아니에요. 이번 일 장인어른 아니었다면 나쁜 놈들 제힘으로는 어떻게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제가 감사해요.”
“채영이도 할부지 감사해요.”
“할아버지도 우리 강아지가 고마워요.”
감덕찬은 딸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마음은 찢어졌지만, 이번 일로 그는 가족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손녀와 사위와 함께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