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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220화 (219/472)

220화. 싸늘한 주검

“좋은 걸로 맞아서 그런지 아주 개운……!”

이찬희와 함께 걸으며 대화하던 태경의 표정이 순식간에 확 구겨졌다.

‘뭐지? 이 냄새……?’

응급실과 가까울수록 코끝을 강타하다 못해 마비시킬 정도의 강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마치 시체가 썩고 타는 듯한 냄새였다. 그리고 유황 같기도 했다.

온갖 인상을 찌푸리던 태경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으며 걸어가고 있던 그때였다.

“원장님? 김태경 원장님?”

냄새가 가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던 그때 태경을 알아본 3번 베드 오재발이 반가움에 인사를 건넸다.

“저, 기억나시나요? 3년 전에 직장으로 수술받은 떡집 한다고 했던 오재발입니다.”

“어! 그럼요. 안녕하세요. 오랜만…….”

인사를 하던 태경은 또다시 멈칫했다. 어마어마한 악취를 동반한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큰일이다.’

그리고 느꼈다. 오재발이 당장 처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환자 lab 어떻게 돼?”

“네?”

급격하게 좁혀지는 미간과 점점 올라가는 태경의 목소리에 이찬희가 긴장하며 답했다.

“그게 아직 결과가 안 나왔습니다.”

“환자분 온 지 얼마나 됐는데?”

“어, 그게……. 한 두 시간 정도 된 거…….”

“이 선생, 정확히 말해.”

“세 시간이 좀 넘은 거 같습니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네!?”

“……!”

생각지도 못한 욕설에 모여 있던 모두가 놀랐다.

특히 이찬희는 더 깜짝 놀랐다. 평소 아무리 화가 나도 비속어를 쓰지 않는 태경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재발 환자 지금 당장 full lab 다 긁어! 빨리!”

“네, 알겠습니다.”

“환자분, 기운이 없다고 하셨는데 다른 증상은요?”

혼비백산한 이찬희가 자리를 뜨고 태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목소리를 진정하며 오재발을 살폈다.

“아이고, 원장님 제가 오늘 원장님 뵈려고 기차 타고 왔는데. 이렇게 보니까 없던 기운도 나는 거 같네요.”

“예, 환자분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배는요? 배는 안 아프세요? 열감은 없고요?”

“네. 그냥 기운이 쭉쭉 빠지네요.”

정말이었다. 입과 눈은 태경을 봐서 반가워하고 있었지만, 오재발은 기력이 점차 빠지는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원장님 lab 나왔습니다.”

급하게 뛰어온 이찬희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WBC(백혈구, 감염 시 증가할 수 있음):46000, CRP(C-반응성 단백질, 염증 소견 시 증가):20.7이며…….”

“뭐 하는 거야! 이찬희 선생! 너 의사잖아? 그동안 수련받으면서 가장 중요한 게 죽어 가는 환자 놓치지 않는 거라고 내가 아까도 그렇게 말했는데……. 이런 환자를 3시간씩 방치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냥 봐도 셉시스(sepsis, 패혈증. 균 감염이 있으며 그로 인한 신체 반응이 생명에 지장을 주는 상태)잖아! 환자 죽어! 혈압만 봐도 이상한데 왜 그래.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우선…….”

“환자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혈관수축제) 투여하고 제한 항생제(균이 이 항생제에 대해 저항이 발생할 경우 대체재가 적어서 사용에 허가가 필요한 항생제) 중에 지금 프렙(prep, 바로 사용할 수 있게 상시 보관된 것) 있나요?”

“네, 원장님. 메로페넴(meropenem, 제한 항생제 중 복강 내 감염에 효율적임) 있습니다.”

“그거 당장 주시고요. 물론 주기 전에 바로 blood 균 배양 검사 나가 주세요, 두 쌍씩! 빨리요!”

다급한 태경의 고함이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그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직원들이 빠르게 오재발 곁으로 몰려들었다.

10명 가까이 되는 의료진들이 환자가 있는 베드 주변에서 각각 맡은 일들을 빠르게 해나가기 시작했다.

“저, 이 쌤? 혈관수축제랑 항생제 용량은 어떻게 할까요?”

간호사가 이찬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환자 몸무게가 60kg이니까 30microgram부터 시작할게요.”

“MAX로 달아. 둘 다 MAX로 해.”

태경이 시선은 환자 상태를 나타내는 모니터에 고정한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오더를 내렸다.

“저 선생님. 그러면 말초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여 사지로 혈액 공급이 안 되고, 항생제로 인한 신독성이 가속되어 신부전(신장이 다양한 손상으로 인해 기능을 못 하게 되는 상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선생! 패혈증이야……. 이 환자 패혈증이라고?”

다시 한번 진정됐던 태경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다.

“그렇게 약을 쏟아부어도 살까 말까야. 살리고 팔다리 자르면 수지맞는 거지.”

환자에 대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오재발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신장은 줄 수도 있어. 우선 살려야 해. 환자 혈압 봐 봐. 이러다 환자 죽어! 오늘 밤에! 내 말 이제 알겠어?”

띠띠- 띠띠띠띠- 띠- 딕-

마치 태경의 방금 외친 말을 증명이라도 할 것처럼 오재발 옆에 있는 모니터에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 띠- 띠-

응급실 기계의 알람음이 퍼지고 여러 사람들이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에 나타난 환자의 호흡 파형이 매우 불규칙하며 정상 수치의 두 배가 넘는 호흡수가 보였다.

“환자 넘어간다! 산소 주고. 이찬희 ABGA(동맥혈 가스분석) 해. 기도 삽관할 거니까 준비해 주고.”

“예, 선생님.”

“앰부백(ambu bag, 산소 등의 공기를 환자에게 불어넣는 장치)주세요. 산소 틀어요. full로 틀어요. 거기! 선 밟지 말고 조심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태경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환자 주변에 모인 직원뿐만 아니라 응급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느낄 정도였다.

평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태경의 성격이 나빠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로서 당연한 모습이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태경의 결정으로 오재발이 십 분 뒤에 싸늘한 주검이 될지 말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생명이란 아무리 그 가치를 낮게 잡아도 또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그 어떤 생명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살려야 하는 그런 것이다.

“ABGA 결과입니다. 체내 pH:7.1 혈중산소포화도 80-혈중이산화탄소 56-바이카보네이트(수소이온과 결합하여 중화되는 분자, HCO3-) 6입니다.”

“바이카보네이트 주세요. 환자 산성도가 너무 높아요. 이거 지속하면 안 돼요. 바로 주세요.”

“네.”

옆에 있던 간호사가 태경의 말을 듣고 환자의 정맥으로 수액처럼 주기 위해 선을 길게 한 뒤 오재발 팔에 연결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경이 다가오더니 간호사가 하고 있던 일을 가로챘다.

“어!”

그 바람에 간호사가 놀라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태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액 통에 있는 것들은 50cc 주사기로 옮긴 뒤 환자의 혈관에다 주사기로 그냥 밀어 넣었다.

“삼십 분 있다가 동맥혈 분석 다시 해 주세요. 기관 삽관할 것들 준비해 주세요. 자! 서둘러요.”

“여기, 있습니다.”

반달의 날처럼 생긴 기관 삽관 도구가 태경의 손에 쥐어졌다.

“환자분? 지금 처치를 하면 놀라서 움직일 테니까 조금 재워 드릴게요. 수면 마취 주세요.”

약물이 들어가자 환자의 눈이 스르륵 감기면서 사지에 힘이 빠졌다.

그러자 환자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태경이 그의 머리를 뒤로 젖혀 입이 벌어지게 했다.

이제 길게 휘어져 있는 도구를 환자의 입에 넣고 혀를 밀면서 기도의 입구 앞까지 밀어 넣었다.

그 뒤 기도의 입구를 가리는 후두덮개(기도 입구를 마개처럼 가리고 여는 구조물)를 열어야 한다.

태경은 환자의 머리 쪽에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길게 뺀 채 환자의 입속을 보고 있었다.

기관 삽관 도구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어두운 입안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후두덮개 위를 끝으로 들어 올렸다. 이제 덮개가 열리면 기도로 관을 넣기만 하면 됐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달려든 태경과 모든 의료진의 모습이 흡사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의 모습처럼 매우 급박했다.

“튜브 주세요.”

곁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튜브를 태경의 오른손에 쥐여 주고, 요리조리 보면서 튜브를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울컥- 울컥-

“푸악!”

오재발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태경의 얼굴 전체에 피가 흩뿌려졌다.

환자의 후두덮개로 들어 올리는 순간 기도 바로 아래의 있는 식도에서 한 움큼의 피가 올라온 것이다.

“……!”

이 순간은 그 아무리 태경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피로 기도가 막히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으로 숨을 못 쉬게 된다면 환자는 바로 죽는다.

‘제발!’

속으로 간절하게 환자를 응원하며 태경은 피 묻은 얼굴로 잠시 허리를 폈다.

띠- 띠- 띠- 띠-

“환자 산소 포화도 떨어집니다. 85, 82, 80, 79입니다.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찬희가 간호사가 들고 있던 앰부 백을 뺏어 환자의 입을 덮어 버렸다.

“선생님, 우선 산소 공급하겠습니다.”

“그래, 잘했어.”

“산소 포화도 다시 오릅니다. 현재 85입니다. 이제 90, 95입니다.”

“다시 주세요.”

태경이 허리를 구부리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왼손에 들린 기구를 다시 환자의 입에 넣고서 있는 힘을 다해 환자의 후두덮개 뿌리 부분을 눌러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불빛 끝에 기도 입구가 작게 걸쳐서 보였다.

“빨리! 빨리!”

튜브를 건네받은 태경은 빠르고 조심스럽게 튜브를 밀어 넣는다.

“됐어! 벤틸레이터(ventilator, 호흡하도록 하는 기계) 연결해 주세요.”

옆에 있던 이찬희가 목에 걸치고 있던 청진기를 꺼내 환자의 양 가슴을 청진했다.

“기관 삽관 확인됐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진짜 고생 좀 한 거 같다. 찬희야?”

“네, 선생님.”

“내가 너무 화냈지?”

“아, 아닙니다.”

이찬희는 태경의 마음을 알고, 태경도 후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의사 또한 사람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계속 깨지고 배우고 경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더 성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찬희는 태경의 이런 호통이 전혀 무안하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쁘다며 환자의 급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아까 화낸 건 잊고 우선 환자를 살리자.”

“네. 정말 죄송합니다.”

“동맥혈 다시 나가고 환자 항생제는?”

“아까 말씀하신 항생제 투여, 그리고 균 배양, 동맥혈 방금 다 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기운 넘치는 목소리로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을 보며 답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눈빛으로 지금 잘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응원과 환자를 살리자는 의지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지금 급한 불은 껐으니까 일단 CT 찍고 올게요. 바로 응급으로 해 달라고 하세요.”

“네, 진행하겠습니다.”

기관 삽관은 해내지 못할 시 5분 이내로 환자가 죽는다.

사실 힘들거나 어려운 것이 없는 술기이지만 지금 환자처럼 피 혹은 음식물들이 울컥 나오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도 머리가 하얗게 될 수밖에 없다.

중환 환자들을 아무리 많이 봐도 그건 당연한 것이다.

“하! 덥네.”

태경이 의사 가운을 벗자 안에 입고 있던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 선생, CT 찍는 동안 앰부백 짜 주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줘.”

“네, 알겠습니다.”

30분 뒤-

“선생님, 결과 나왔습니다.”

CT 결과가 나왔다.

스테이션 모니터에 앉아 CT 영상을 위, 아래로 반복해서 보던 태경이 답답한 듯 팔짱을 꼈다.

“오재발 환자 장 천공된 건가요?”

옆에 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찬희가 물었다.

“아니야. CT는 정상이야.”

“네?”

“장이 뚫렸다거나 어디에 농이 고였다거나 하는 문제는 없어.”

“그러면 어쩐 일로…….”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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