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제세동기! 갖고 와!
CT 결과가 나왔다.
스테이션 모니터에 앉아 CT 영상을 위아래로 반복해서 보던 태경이 답답한 듯 팔짱을 꼈다.
“오재발 환자 장 천공된 건가요?”
옆에 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찬희가 물었다.
“아니야. CT는 정상이야.”
“네?”
“장이 뚫렸다거나 어디에 농이 고였다거나 하는 문제는 없어.”
“그러면 어쩐 일로…….”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지.”
태경은 의자에서 일어나 옆에 걸쳐놓은 의사 가운을 다시 입었다. 그리고 급한 처치 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환자 곁으로 걸어갔다.
옆에 있는 이찬희가 그 모습을 보며 급하게 뒤를 따라갔다.
“저게…… 말썽이네.”
“네……?”
혼잣말은 한 태경은 환자의 상의 단추를 풀며 가슴에 툭 불거져 나온 무언가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이걸 빼야 해.”
단호한 손끝이 가리킨 것은 케모 포트(chemo port,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 중 편의를 위해 가슴 피부 밑에 심어 넣는 기구로, 그 관 끝은 굵은 혈관에 들어가 있음)였다.
“아! 그럼 거기서 균이 자란 걸까요?”
“그건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특별히 원인이 확인되지 않을 때는 환자 안에 있는 것들을 빨리 제거해 주는 게 최선이야. 만약 여기서 균이 자란 거라면 아무리 항생제를 써도 좋아지지 않아. 지속해서 이 구조물에 의해 균이 공급되니까.”
“네, 그럼 지금 바로 정 쌤한테 연락드려서 수술방 열어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몸을 돌려 나가려는 이찬희의 등을 대고 태경이 말했다.
“여기서 한다.”
“예? 여, 여기서요?”
“그래. 시간 없어. 여기로 포랑 도구들 갖고 오라고 해. 빨리!”
“네, 알겠습니다.”
잠시 뒤, 수술방 간호사 두 명이 오재발의 주변으로 멸균되게 포를 펼쳤다.
환자는 이미 상의는 탈의되어 있고 케모포트 주변은 요오드 용액으로 소독되어 있었다.
태경이 보비를 들고서 둥그렇게 봉긋 솟아 있는 환자의 오른쪽 위 가슴을 절개했다. 포트의 길이는 1cm 정도로, 둥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를 절개하고서 주변 구조물로부터 떼어 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하다고 해도 피부를 절개하고 파 내려가다 보면 출혈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찬희가 그때마다 닦아냈다.
“여기 포트 아래로 들어가서 유착된 곳을 보비로 절개하면 돼. 나중에 이 선생도 해 봐. 그렇게 어려울 것 없어.”
“네, 선생님.”
포트의 입구를 모두 떼어 내고 이제 혈관에 들어가 있는 관을 끄집어낸 뒤, 길게 들어가 있는 관을 모두 꺼내어 수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때였다.
“저 봉합할 것 주세요.”
띵동! 띵동! 띵동!
“교수님 환자 심전도가 이상합니다.”
경고음과 함께 태경은 실시간 심전도를 보았다. 평상시보다 아주 얕은 파형으로 심장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교수님 A-fib(Atrial fibrillation, 심방세동)인 것 같습니다!”
“환자 BP(혈압) 떨어집니다.”
멸균된 수술 가운을 입고 있던 태경은 환자의 전신을 덮고 있던 수술포를 확 걷어내 버렸다.
“제세동기! 갖고 와!”
벼락같은 목청이 응급실에 울렸다.
“저기! 뭐해! 거기 있잖아!”
고함에 간호사가 제세동기를 갖고 와서 패드에 젤을 묻혀 태경에게 건넸다.
아직 수술 이후 봉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의 오른쪽 위 가슴에서 피가 차올랐다.
차오른 피는 환자의 오른쪽 목을 타고서 흘렀다.
그 양이 소주잔 한 잔 정도로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출혈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갑자기 심장이 떨리는 명확한 이유를 현재는 모르지만, 일단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강한 전기 충격밖에 없었다.
“200J(제세동기의 전기 세기)로 충전!”
“충전됐습니다.”
태경이 양손에 들린 제세동기 패드를 환자의 왼쪽 가슴 위와 오른쪽 아래 가슴에 가져다 댔다.
“하나! 둘! 셋!”
태경이 셋이라고 외치는 동시에 환자에게 강한 전기 충격이 주어졌다.
쿵-
전기충격의 여파로 순간 상체 근육들이 움직여서 오재발의 상체가 베드로부터 한 번 들썩 움직였다.
“파형 어때요? 돌아오나?”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심전도로 시선을 옮겼다.
“아닙니다. 다시 흔들립니다.”
“200J 한 번 더 한다. 충전!”
“충전됐습니다.”
“하나, 둘, 셋!”
쿵-
또다시 들려온 소리의 오재발의 상체가 한 번 더 들썩인 후 모두가 심전도를 쳐다봤다.
그러자 바람 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마구 흔들리던 파형이 이내 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도, 돌아왔습니다.”
“그래. 돌아왔다.”
“선생님, 제가 봉합하겠습니다.”
“휴! 부탁할게.”
한바탕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태경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힘든 환자는 정말 오랜만이다. 패혈증이 오면 신체에 굉장히 큰 무리가 오기 때문에 온갖 병이 동반된다.
하지만 제세동기를 사용할 정도의 부정맥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태경도 오재발은 다시 본 게 오랜만이라 정확한 기억은 안 났지만, 환자가 원래 부정맥을 앓고 있었다가 패혈증으로 유발된 것으로 봐야 맞을 것이다.
“환자 lab 한 번 더 할게요. 한 시간마다 동맥혈 분석해 주시고 두 시간마다 fall lab 나갈게요.”
“네, 선생님.”
“혈관수축제로도 잘 안 잡히면 도부타민(Dobutamin, 심장의 수축력을 증가시키는 약물)도 고려해 볼게요. 그리고 에피네프린(epinephrine, 매우 강한 혈관수축제)도 준비하세요. 투석기도 돌려야 될 수 있으니까 내과 선생님께 전화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급한 불은 끈 거 같습니다.”
봉합을 마무리 지은 이찬희가 수술 가운을 벗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 한 5일 동안은 이 환자 곁에서 잘 지켜봐야 해. 나도 잘 보겠지만, 찬희 너도 수시로 환자 잘 체크해.”
“네, 그렇게 할게요.”
이찬희의 말대로 급한 불은 껐다.
이제 중환자실로 옮겨서 지속해서 약물로 환자의 혈압과 신기능, 간 기능, 폐 기능, 그리고 전신적인 감염의 정도를 조절해 나가야 한다.
그 이유는 환자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만큼 주위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태경과 의료진은 그것을 잘 끌고 가야만 하는 것이다.
“외줄 잘 타 보자.”
“네, 저기 선생님,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이찬희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늘 위급한 환자를 잘 보라고 하셨고, 심지어 아까도 환자에게 신경을 쓰고 한 번 더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태경은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 누구보다 가장 속상하고 화가 나는 건 이찬희 자신일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도 한 번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본인은 오죽할까 싶었다.
무엇보다 같은 의사로서 선배로서 사람의 목숨을 위해 평생을 공부하고 발전해야 하는 이 길의 고초를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찬희야?”
태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찬희의 어깨를 힘을 주듯이 가볍게 툭 쳤다.
이미 한번 크게 혼난 이찬희에게 더 이상의 훈계보다는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고개 들어 봐.”
“네.”
“힘들지?”
“예,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야. 힘들지. 찬희야? 혹시 본과 처음 실습 시작할 때 기억하니?”
“예!?”
느닷없이 꺼낸 ‘본과 실습’이란 말에 이찬희는 무슨 말인가 싶어 반문했다.
“본과 실습 때요?”
“그래. 이제 막 본과 실습을 보기 시작할 때 그때, 네 마음이 어땠는지 기억나?”
“…….”
“그동안 책을 통해 교수님들께 배웠던 것들을 실습을 돌며 환자들은 직접 문진하잖아. 그러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환자의 작은 말에도 더 귀를 기울이고 뭔가 그들의 불편함과 아픔을 해결해 주고 싶고 그러지 않았어?”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찬희는 그때 당시의 자신을 기억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첫 실습을 시작했던 그 시기는 잊을 수 없이 선명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하얀 가운 주머니 안에는 늘 작은 스프링 메모장과 볼펜을 챙기고 다녔다.
그 작은 메모장은 하루만 지나면 이미 빼곡한 글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교수님들이 회진할 때도 메모를 열심히 했지만, 대부분은 환자에 대한 메모들이었다.
환자들이 아프다는 소리와 불편하다는 소리, 심지어는 치료와 상관없는 그들의 심적 푸념까지도 전부 적었다.
어느 날은 수술 후 치료를 이어 가는 환자가 계속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정말 아파요. 저 좀 봐주세요.’
중년 부인은 볼 때마다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이찬희는 선배 의사에게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그래서 조원들의 만류에도 교수님을 찾아가 환자를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다.
인턴도 아닌 새파랗게 어린 본과 실습 학생의 말을 교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알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환자를 담당하던 레지던트의 실수가 있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찬희입니다.’
‘자네 덕분에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나중에 좋은 의사가 되겠어.’
교수는 아주 담백하게 이찬희를 진심으로 칭찬했고 그날, 그 칭찬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었다.
지금 이 짧은 순간 생각해 보니 태경이 왜 실습 때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해됐다.
비록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환자에게 집중하고 그들의 사소하다 못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가장 크게 신경 쓰며 귀를 기울이던 때가 그때였다.
“내가 왜 실습 때 생각났느냐고 했는지 알겠어?”
곰곰이 생각하는 이찬희를 보고 있던 태경이 물었다.
“네, 선생님. 환자에게 더 집중하라고 말씀하신 거 같아요.”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내가 그 방법을 쓰고 있거든.”
그저 후배에게 좋은 소리 하기 위한 말이 아닌 진짜였다.
태경도 사람이었기에 지치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습을 처음 나갔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직 환자만 생각했던 의사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찬희야. 우리가 다루는 분야가 사람들 생명과 직결된 과니까 우리 그때 초심을 생각하면서 신중해지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어깨 펴!”
“……!”
이찬희는 생각지도 못한 위로 덕분에 순간 울컥할 뻔했다.
그러면서 어디를 가도 이런 스승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는 태경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앞으로 더 신중하겠습니다.”
“그래. 나 병동 올라가서 환자보고 올 테니까 찬희 넌, 환자 옆에서 아까 말한 약물들 조절하면서 혈압 조절하고 있어 봐. 필요하면 중심정맥관(가슴 위나 목을 통해서 심장 근처까지 관을 넣는 것) 잡아.”
“네, 선생님. 환자 잘 살펴볼게요.”
“그래, 앞으로 한 일주일은 잠 못 잔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수액 때려 박아야 해!”
“네.”
“휴우!”
이찬희에게 오더를 내리고 응급실을 나가면서 태경은 그제야 온몸을 감싸던 긴장이 풀어졌다. 그와 동시에 입안에 갈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목마르네…….”
환자가 죽을까 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물 마시는 것과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고 있었다.
“크! 물맛 한 번 죽이네.”
태경은 시원한 냉수를 가득 들이켜고는 또다시 환자를 보기 위해 병동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