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개나리 조카 색연필!
서울의 어느 주택 지역-
“그대 가슴에~!”
아담한 키의 중년 여성이 방을 청소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더는 먼지 나올 곳이 없어 보였는데 여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 안을 계속해서 청소했다.
“엄마?”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청소를 하는 엄마를 향해 딸이 문 앞에 서서 말했다.
“그만해. 안 힘들어?”
“힘들 게 뭐 있어. 집안일 하고 청소하는 게 평생 내 일인데.”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개미 새끼도 미끄러지겠다.”
“그래야지. 우리 성훈이 얼마 만에 집에 오는 건데.”
“이 여사님 막내아들 집에 오는 게 그렇게 좋슈?”
“당연하지. 엄마는 선미 너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갔을 때도 매일 보고 싶었어. 내 자식 밥은 잘 먹나? 공부는 잘하나? 힘든 일은 없나 하고. 선영이 때고 그랬고.”
한참을 말하던 이애숙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 속 사진으로 향했다.
남자치고 마른 체형에 흰 피부, 안경을 쓰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건 막내아들 성훈의 사진이었다.
이애숙이 애틋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사진 속 막내아들인 성훈은 몇 달 전, 군대 입대했다.
“엄마는 우리 딸들 집 떠나 있을 때도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솔직히 성훈이 군대 보낼 때가 제일 보고 싶고 가슴 아팠어.”
이애숙은 결혼해 딸 셋을 내리 낳았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만 셋을 낳은 게 아니라,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셋을 계획했고 세상과 바꿀 수도 없는 귀한 딸 셋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힘든 육아 속에서도 딸 셋을 키우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느덧 종알종알 예쁘게도 떠들던 첫째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에 당황했지만,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늦둥이를 낳았다. 그게 성훈이었다.
그렇게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성훈이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막내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 이 애숙은 한 달 전부터 가끔씩 눈물을 훔치는 날이 많았었다.
이유는 아들의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이었다. 활달하고 당당한 누나들과 달리 성훈이는 상당히 내성적이고 조용했다.
게다가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체구도 작았기에 학창 시절에는 괴롭힘도 받았었다.
그런 이유로 성훈이가 입대할 때 본인보다 가족들의 걱정이 더 많았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은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입대했다.
아들이 입대하고 하루하루 무사하기를, 몸 건강하기를 기도하며 지냈던 이애숙은 이제 곧 아들의 첫 휴가를 앞두고 매일 들떠 있었다.
“군대 보낸 게 엊그제 같은데……. 선미야. 엄마는 막둥이 휴가 나온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알아. 엄마 마음 어떤지.”
옆에 있던 딸이 문지방을 넘어 침대에 앉아 있는 엄마 옆에 자리했다.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뭘?”
“성훈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면이 더 단단한 사람이야. 속이 얼마나 꽉 차 있는데.”
“알지. 내 배로 낳았는데 그걸 왜 몰라. 내 새끼들 장점이라면 종일 쓰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쓸 수 있어.”
“엄마도 참!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래.”
“이 세상에 내 새끼들 자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 부모 눈에는 다 예쁘지.”
“아무튼 성훈이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자유 시간에 연락도 자주 오잖아.”
“그럼. 잘하고 있어서 대견해서 그래.”
이애숙은 딸의 손을 잡고 사진 속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흐뭇하게 따라 웃었다.
* * *
며칠 뒤-
오재발 환자 건으로 정신을 차린 이찬희는 그 어느 때보다 환자들을 보는 일에 충실했다.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오재발은 물론 외래 환자나 응급실 환자, 병동 환자 할 거 없이 할 수 있는 역량 한에서는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이 선생?”
응급실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이찬희를 태경이 불러 세웠다.
“네, 선생님.”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아, 예.”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다 보면 저녁때를 놓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얼른 가서 저녁 먹고 와.”
“예?”
“저녁 아직 안 먹었잖아.”
“아, 네.”
“내가 볼 테니까 가서 저녁 먹어.”
태경은 환자들이 또 몰리기 전에 이찬희의 저녁을 챙겼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 이찬희 밥 먹을 자격도 없습니다. 환자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환자 위하려면 더 잘 먹어야 해. 얼른 가!”
“네, 그럼 얼른 먹고 올게요.”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한동안 오재발 건으로 인해 온갖 풀이 죽어 있던 이찬희가 다시 기운을 차린 거 같아 태경은 마음이 좋았다.
응급실을 나온 이찬희는 재빨리 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어이! 나의 친구 개모나 쌤? 언제 왔어?”
“수술방 나와서 바로 옴.”
콩나물국을 대접으로 마시던 최모나는 확연히 달라진 이찬희의 표정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굴 보니까 이제 좀 기운 차렸나 보다.”
“허! 기운이라니. 누가 들으면 뭐 내가 다 죽어 간 줄 알겠네.”
“아니었어? 요 며칠 아주 비 맞은 강아지처럼 하고 다니던데?”
“강아지? 하긴 내가 또 귀여운 구석이 있어? 뭐랄까 요즘 인기 많은 강아지상이라고 할까?”
“컥!”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최모나는 순간 콩나물국이 목에 걸릴 뻔했다.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
“헛소리 나리. 오늘도 병동 회진하는데 환자분이 나보고 최우식 배우 닮았다고 했어.”
“개나리 조카 색연필! xxx!”
이찬희의 말도 안 되는 소리의 참다못한 최모나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사정없이 흘러나왔다.
“이 선생, 조용히 밥 먹자. 응?”
“어휴! 내 친구 모나는 너무 무서워.”
“시끄럽다. 참! 병동 308호 환자 아까 콜 왔었는데 확인했지?”
“당연하지. 나 요즘 메모장 다시 들고 다녀.”
“좋은 자세네. 나도 들고 다녀야겠다. 근데 선생님 말이야?”
“응.”
“진짜 좋은 분이지 않아?”
“우리 선생님?”
“응.”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의 주제는 자연스레 태경으로 이어졌다.
오재발 환자의 일이 있고 난 후 태경은 이찬희뿐만 아니라 최모나에게도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은 알려 줬다.
물론 이미 두 사람도 의사로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좋은 태경에게 배운 것은 뭔가 달랐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도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집중했다.
“좋은 분이지. 사실 그렇잖아. 우리가 인턴도 아닌데 누가 저렇게까지 알려 주려고 하겠어.”
“맞아. 사실 나, 환자들 공감 못 하는 것도 선생님이 깨뜨려 주셨잖아.”
“맞지. 우리 개모나가 한때 병능제였지.”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환자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던 최모나는 태경으로 인해 그런 마음가짐을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보니까 최 쌤 네가 아니라 요즘에는 늘 내가 문제였네. 선생님도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거 알면 이 쌤 너 좀 잘해!”
“그래야지. 맞다! 최모나 너 그 한정판 젤…….”
“최 쌤?”
이찬희가 무언가를 물어보려던 그때, 임정숙 간호사가 최모나를 급히 불렀다.
“네, 선생님. 환자 콜입니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거 아닌데.”
그러더니 뒤이어 따라온 의진까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예? 그럼 무슨 일로?”
“나 말이야, 우리 최 쌤을 믿었어. 안 그래요. 수 쌤?”
“그럼요. 믿고말고요. 난 계속 믿었다니까요.”
“헤헤!”
다정하게 팔짱은 낀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는 최모나가 귀여운 듯 웃고 있었다.
“아니, 두 분 무섭게 왜들 그러십니까?”
“그러게. 정말 왜 그러세요?”
옆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이찬희도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보였다.
“최 선생? 멋있더라.”
“네……?!”
게다가 물을 먹으러 온 태경까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나갔다.
최모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기, 저 무슨 잘못 했습니까?”
“으음! 아니~이.”
“전혀요!”
두 사람이 동시한 합창으로 대답한 뒤 의진이 최모나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어머! 수 쌤, 우리가 너무 기분 좋아서 깜빡 잊었네요. 최 쌤 얼른 나가 봐.”
“나가 보라고요?”
“응. 밖에 남친 왔어.”
“푸핫!”
‘남친’이란 소리에 당사자인 최모나보다 돈까스를 욱여넣던 이찬희가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남친!! 개모나 아니, 우리 최모나 남친이요? 너 남친 있냐?”
“무슨 소리야! 두 분 지금 저한테 남친 왔다고 하셨습니까?”
이찬희에게 버럭 한 최모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응! 되게 멋지던데? 그렇죠. 정 쌤?”
“키도 아주 훤칠하던데요?”
“최 쌤, 얼른 나가 봐.”
“개모나 너 남친 없다고 했잖아?”
남자 친구는 고사하고 남자 사람 친구도 없는 최모나였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지금 눈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찬희가 유일했다.
“……!”
밥알까지 티면 열변을 토하는 이찬희를 보던 최모나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야! 개모나?”
“최 쌤이 남친 있다는데 왜 우리가 뿌듯할까요?”
“글쎄요. 뭔가 여동생 같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러네요.”
식당을 나서는 최모나를 보며 이찬희가 따라 나가고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가 흐뭇하게 바라봤다.
급하게 식당을 나온 최모나는 1층 대기실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아! 자…….”
그리고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최모나의 얼굴 근육이 급격하게 움직이며 빠르게 뭔가를 말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여! 우리 예쁜이!”
모두가 남친이라고 했던 대기실의 남자가 손을 번쩍 들며 낯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 소리에 병원 직원들은 최모나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놀란 최모나는 남자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하! 미쳤어?”
병원 앞마당 구석 벤치로 남자를 끌고 온 최모나가 짜증을 부렸다.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야?”
“보고 싶어서 왔지.”
“미쳤구나?”
세상 감정 기복 없는 최모나가 온갖 감정을 다 드러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친오빠였다.
“야, 넌 오랜만에 보는 오빠한테 그게 할 소리냐?”
“갑자기 직장 찾아와서 직원들 다 보는데 실언한 사람이 누군데…….”
“재미있잖아.”
“아, 됐고? 왜 온 거야?”
“어제 본가 다녀왔는데 엄마가 이거 너 갖다주라고 해서. 사골 얼린 거야.”
“뭐 하러 수고스럽게…….”
“수고는 무슨. 이 김에 동생 얼굴도 보고 좋지.”
“뭔 소리야. 오빠 말고 엄마 말이야. 아니, 근데 안 바빠? 나 일하는 곳까지 오고.”
“넌 오빠한테 관심이 없냐? 나 근처로 왔잖아.”
최모나의 오빠인 최태식은 육사 출신으로 현재 대위였다. 퇴근 후 모처럼 동생을 보기 위해 저녁에 시간을 내서 우리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래? 몰랐어. 가까워?”
“뭐, 여기서 4, 50분쯤? 저쪽 다리 건너면 경기도잖아.”
“그 정도 거리면 먼데. 알았어. 고마워. 잘 가!”
“야! 뭐야, 너 설마 이대로 가는 거냐?”
세상 쿨한 여동생의 인사의 최태식은 살짝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 한잔하라는 소리도 없이 가려는 동생이 서운했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하자.”
“바빠! 나 없으면 안 돼. 다음에 해.”
“알았다. 돈 있어. 용돈 줄까?”
“오빠보다 내가 더 벌거든. 여친이나 사 줘. 몸조심하고.”
“야! 모나야? 근데 저기 저 친구는 네 남친이야?”
최태식은 정문에서 이쪽을 기웃거리는 이찬희를 가리켰다.
“아니거든. 얼른 가.”
“그래, 동생아. 오빠한테 연락 좀 하고…… 아! 내 휴대폰?”
“어휴! 보나 마나 부대 두고 왔겠지. 나 간다.”
“역시 나를 너무 잘 알아.”
최태식은 씩씩하게 걸어가는 최모나의 뒷모습을 보며 병원을 나와 부대로 향했다.
경기도 외곽 백석 부대-
탁-
“충성!!”
차에서 내린 최태식을 본 부대원이 각이 잡힌 자세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태식 대위님, 퇴근하신 거 아니셨습니까?”
“어. 휴대폰을 두고 가서. 수고해.”
부대원과 인사를 한 최태식이 휴대폰을 가지러 건물로 걸어가던 그때, 무언가를 본 그가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