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23화 (222/472)

223화. 이병! 444번

부대원과 인사를 한 최태식이 휴대폰을 가지러 건물로 걸어가던 그때, 무언가를 본 그가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온 이등병이 많은 쓰레기를 혼자서 정리하고 있었다.

보통은 맞선임과 함께 다니기 때문에 최태식은 이등병이 왜 혼자인지 궁금했다.

“자네 지금 뭐 하나?”

“충성! 이병!”

최태식은 다가오자 군기가 바짝 든 이병이 재깍 인사를 했다.

“김성훈! 쓰레기 정리 중이었습니다.”

“그래, 쓰레기 정리 중인 건 알겠는데 왜 혼자야?”

이등병은 보통 동기나 맞선임 등 타인과 함께 다니게끔 관리한다. 혼자 있다가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최태식의 말에 우물쭈물하던 김성훈은 이내 마지못해 대답했다.

“제 맞선임인 고철수 일병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잠깐! 너 혹시 어디 아파?”

질문하려던 최태식은 느닷없이 김성훈에게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 뭔가 표정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아픈 곳 없습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근데 일병은 안 보이고 왜 너 혼자야?”

“혼자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맞선임에 대해 묻자 김성훈은 빠르게 답했다.

“그러니까 일병 어디 가고 너 혼자 일하느냐고.”

“고, 고철수 일병…….”

“충성! 일병! 고철수!”

그 순간 근처 건물 입구에서 나온 일병이 최태식 앞으로 총알같이 뛰어와 거수했다.

“그래, 충성. 고철수?”

“일병 고철수!”

“너 후임 혼자 일 시키고 농땡이 부린 거야?”

“아닙니다. 같이 정리하고 있다가 제가 점심부터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맞습니다.”

“김 이병, 이 말 맞아?”

“예, 대위님. 맞습니다.”

최모나와 다르게 성격이 꼼꼼한 최태식은 이등병에게 상황이 맞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래, 알았다. 빨리 정리하고 들어가.”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내가 할게. 넌 좀 쉬어.”

“아닙니다.”

최태식은 뒤에서 들려오는 부대원의 대화를 들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할게. 나 화장실 갔다 온 동안 네가 했잖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당연히 네가 해야지. 시x새x야!”

최태식이 완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성격 좋아 보이던 김성훈의 맞선임인 고철수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아까 나 대위님한테 꼰지르려고 했지?”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내가 아까 다 숨어서 봤어. 하! 이 새끼 거짓말하네. 야!”

고철수는 검지를 들고 김성훈의 유두 부위를 콕콕 찌르며 조용히 험한 말을 내뱉었다.

“왜? 꼽냐? 어?”

“아, 아닙니다.”

“뭘, 쳐다봐 새끼야. 눈깔아. 진따 병신 같은 놈이. 야,”

“이병 김성훈!”

“알아, 알아!”

고철수는 본인이 불러 놓고 김성훈이 관등 성명을 대자 그의 모자챙을 손끝으로 내리쳤다.

“빨리 버려. 들어가게.”

“예, 알겠습니다.”

쓰레기통을 차례로 비우는 김성훈은 어쩐지 뭔가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빨리 와!”

“네, 갑니다.”

철컥-

“쓰레기 버리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쉬어라.”

생활반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에게 분대장이 말했다.

“애들이랑 헬스장 갔다 올 테니까 방 잘 지키고 있어라.”

분대장은 일이병만 남겨 두고 상병장들과 함께 헬스장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항상 있는 일과였다.

들고 온 쓰레기통을 원래 자리에 갖다 두고 온 김성훈은 제자리에 앉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오른쪽을 향했던 동공은 다시 왼쪽을 향하고 그러다 다시 고철수에게 향했다.

맞선임 중 한 명인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심장은 털썩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훈은 고철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괴롭힘과 같은 악폐습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군대 곳곳에서는 여전히 뿌리 뽑아야 할 후임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문화가 여전히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고철수가 또다시 자신의 앞을 지나자 김성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미세하게 움찔했다.

여기서 크게 리액션을 했다가 그의 심기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랐다.

김성훈은 이제 갓 군대를 들어온 지 100일 가까이 된 이등병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

군대를 들어오기 전 내성적이고 작은 체구 때문에 김성훈 역시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혹시라도 만만하게 보이진 않을까, 무시를 당하진 않을까 하며 입대 전까지 인터넷을 검색하며 걱정을 했었다.

-님들. 나 곧 입대인데 고민 있음. 나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군대 생활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건 님의 마음가짐에 달림. 나도 소심한 성격에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적응 잘하고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음.

-요즘은 그렇게 예전처럼 돌아이 새끼들 없는데, 그래도 선임이 병신이면 그때부터 군 생활 꼬임.

-이게 진짜 뻥 아니라 100% 사실. 선임이 이상한 놈이면 진짜 답 없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걱정은 더해 갔다.

이런 답답한 심정을 가족에게 털어놓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자신보다 더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입대하고 훈련소를 지나 자대 배치를 받았다.

“이병! 김성훈.”

“그래, 이름 좋네. 환영한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렇게 함께 지내는 생활반 병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며칠이 지난 김성훈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생각과 달리 모두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잔뜩 긴장해 있는 자신을 잘 이끌어 주고 챙겨 줬다.

입대 전 했던 걱정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음의 걱정이 모두 사라질 즈음, 모든 게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사고로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부대의 배려로 김성훈은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사실 말이 휴가지 장례 절차만 치르고 바로 부대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자신을 향한 생활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맞선임 두 명이 태도가 바뀌었다.

하필이면 김성훈이 장례를 다녀온 며칠 동안 부대에 혹독한 훈련 일정이 있었고, 맞선임들은 그걸 불만으로 문제 삼았다.

“야! 이 새끼야. 너 할아버지 돌아가신 거 그거 너 뻥 아니냐?”

“아닙니다.”

“구라 치네. 그럼 x발! 어떻게 딱 훈련 날 나가.”

“이 새끼 존x 장례식 핑계로 꿀 빨고 온 주제 대답은 또 당당한 거 보소.”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랑을 주셨던 친할아버지의 죽음이 충격이었던 김성훈은 선임들의 말을 듣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죽은 일로 이렇게 비아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철수 일병과 박병덕 일병.

이 두 사람이 문제였는데, 그나마 박병덕의 괴롭힘은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고철수의 괴롭히는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인신공격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바지를 내리고 면박을 주며 기분 나쁘게 뺨을 치기도 했으며, 유두를 찌르는 건 기본이었다.

또 어느 날은 PX 데려가 괴롭히기도 했다.

“자! 내가 사랑하는 우리 후임 김 이병 앞으로.”

“이병 김성훈.”

“내가 오늘 특별히 너한테 먹고 싶은 걸 다 사 줄 테니까 어디 원 없이 골라 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선임이 사 준다잖아. 그럼 내가 고른다.”

정중하게 거절하는 김성훈 대신 온갖 과자를 잔뜩 골라 온 고철수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겼다.

“자! 맞선임의 사랑이 가득 담긴 것들이니까 이 자리에서 남기지 말고 다 먹는다. 실시!”

그날 김성훈은 고통 속에 온갖 과자들을 억지로 먹고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토해내며 눈물을 흘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괴롭힘 속에 김성훈은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밤에 잠들면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했고, 훈련 중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리고 있어 모든 게 심적인 고통 외에 육체적인 고통까지 더해져 괴로움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 배 아프다.’

자리에 앉아 있던 김성훈은 또다시 시작된 복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의무실을 가고 싶었지만, 맞선임에게 보고를 해야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단 한 번을 곱게 보내 준 적이 없다 보니, 김성훈은 참고 또 참다가 정말 힘들 때만 보고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참기가 힘들었다. 뭔가 약이라도 받아서 먹어야 할 거 같았다.

“고, 고철수 일병님?”

“왜!”

10번을 넘게 생각한 끝에 용기를 낸 김성훈이 지나가는 고철수에게 말하자 역시나 날카로운 외마디가 들려왔다.

“왜. 이 자식아. 불렀으면 대답을 해.”

“이병 김성훈, 의무실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하! 이 새끼 보소!”

고민하던 김성훈이 간신히 말을 꺼내자 고철수가 조소 섞인 비웃음을 내뱉으며 싫은 티를 냈다.

“왜? 또 배가 아파요~ 이 지랄 떨라고?”

“저, 정말 아픕니다.”

“너 의무실 저번 주부터 열라 다녔잖아.”

“저번 주 아니고 그 저번 주일걸.”

근처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또 다른 일병 박병덕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이병님 우리보다 의무실 더 다니잖아.”

“맞아! 그 저번 주였다. 너 내가 아까 똥 싸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너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의무실 간다고 구라 치는 거지?”

“아, 아닙니다. 정말 배가 계속 아파서 그렇습니다.”

“아니, 이 새끼야, 몸이 아파서 의무실을 몇 번을 갔다 왔는데 계속 아프다는 게 그게 말이 돼?”

“그 말인즉슨 그럼 우리 의무실 군의관이 병신이란 말인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던 박병덕은 재미가 없었는지 김성훈 말에 딴죽을 걸었다.

이런 말 한마디가 고철수를 더 자극하기도 했다.

“근데, 우리 군의관 좀 빙신은 맞지 않아? 나 저번에 다리 아프다고 약 달라고 하니까 소화제 주더라.”

“빙신아 그건 약을 잘못 준 거고. 근데 진료를 확실히 못 보긴 하더라. 뭔가 애가 맹한 느낌?”

“전역한 내 친구가 그러는데 원래 군의관들이 군대에서 그렇게 진료를 귀찮아해서 잘 안 한대.”

고철수와 박병덕은 아파서 의무실을 가야 하는 김성훈을 두고 쓸데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야! 철수야 성훈이 울겠다. 그만 보내 주자. 선임들 돌아왔을 때 이놈 울고 있기라도 하면 우리만 또 깨진다.”

“어? 그럴까? 김성훈?”

“이병! 김성훈.”

“너 의무실 갔다 와.”

“감사합니다. 다녀오…….”

“잠깐!”

김성훈이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자! 그럼 444번 오징어 지금부터 의무실을 가기 위한 게임을 시작합니다.”

악마 같은 음성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한 번도. 단 한 번을 그냥 보내 주는 적이 없었다. 의무실을 가야 할 때면 고철수는 늘 말도 안 되는 게임을 시작했다.

자신이 즐겨 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게 있으면 조금씩 악랄하게 변형 시켜 그걸 김성훈에게 써먹었다.

요즘은 몇 달 전, 전 세계를 강타한 드라마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김성훈에게 죽을 4자를 붙여 444번이라고 부르며 생활반 출입문 반대쪽에서 미션을 줘서 성공해야 의무실을 갈 수 있었다.

만약 중간에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성공할 때까지 해야 했다.

“왜? 너 의무실 가기 싫어?”

“아닙니다.”

김성훈은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우리 444번 오징어 출발선에 섭니다.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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