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25화 (224/472)

225화. 탈영

조금 전-

당직사령인 최태식은 부대를 순찰하고 있었다.

보통 순찰은 당직사관이나 당직부관 정도가 돌고 보고를 받지만, 최태식은 보고를 받고도 따로 순찰을 하고 있었다.

“충성.”

“그래.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불침번을 하고 있는 병사에게 격려한 최태식은 생활반 복도를 걷다 우연히 화장실로 향하는 김성훈의 뒷모습을 봤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태식은 별생각 없이 밤에 볼일을 보러 가는 군대에서 흔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을 순찰하고 가려는데 다른 병사가 나오는 걸 봤지만, 아까 들어갔던 김성훈은 보지 못했다.

물론 계속 화장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것이 아니니 그 전에 들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충성.”

“쉬어. 혹시, 아까 저쪽 생활반에서 나온 병사 다시 들어갔나?”

근처에서 불침번을 하고 있던 병사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직 안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다.”

병사와 이야기를 마친 최태식은 조용히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군대는 아무리 조심해서 한순간 방심하면 예측 불가한 일이 생기는 곳이다.

게다가 요즘 군대는 좋아졌다고 편해졌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옛날 군대가 지금보다 기간도 길고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군대는 폭력과 괴롭힘이 거의 대물림하다시피 했으니, 그분들의 힘듦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군대가 쉬운 건 또 아니었다.

특히나 직접 군대에 입대한 병사들에게는 군대가 편하다는 그런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창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해서, 자유를 누리던 삶과 반대로 규율에 몸을 맡겨야 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병사들과 함께 어우러져 생활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선임과 높은 사람들이 병사들을 잘 관리한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의 고충을 전부 다 알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가능한 병사들도 잘 살펴서 큰일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

화장실 문 앞까지 걸어온 최태식은 최대한 모든 기척을 줄이고 귀를 기울였다.

고요함이 느껴지던 화장실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최태식은 아주 조심스럽게 발걸음이 최대한 들리지 않도록 소리가 들리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흐흑!”

그러더니 이내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울고 있는데?’

확실히 우는 소리였다.

똑똑-

“안에 누구야? 이봐!”

똑똑-

“……!”

날카로운 면도날을 왼쪽 손목에 대던 김성훈은 생각지도 못한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나 당직사령 최태식인데 안에 누구야? 야! 안에 누구냐고?”

“이병! 김성훈입니다.”

“너, 지금 안에서 뭐 해?”

“보, 볼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볼일?”

“예, 그렇습니다.”

놀란 김성훈은 안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던데?”

“그, 제가 아직 잘 안 나와서…….”

“김 이병?”

“이병, 김성훈!”

“너 이 문 열어 봐.”

“아직 볼일을 다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못 본 거면 안 나오는 거잖아. 알았으니까 일단 문 열어.”

“…….”

“빨리!”

“예, 알겠습니다.”

당황한 김성훈은 변기 물을 내리기 위해 레버를 누르고 변기 뚜껑 안에 면도칼을 버렸다. 그리고 유서를 쓴 종이를 다시 접어서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죽으려고 했던 김성훈은 그 행동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제발 걸리면 안 돼!’

아니, 지금은 그저 최태식한테 자신이 죽으려고 했던 일이 걸리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걸리기라도 한다면 생활반 악마 같은 두 놈은 물론 온 부대 안에 소문이 날 것이다. 그리고 곧 관심 병사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뭐 해! 빨리 안 열고?”

“예, 대위님. 바로 열겠습니다.”

철컥-

“이병! 김성훈.”

“바로. 너 화장실에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자다가 볼일을 보러 왔습니다.”

“이쪽으로 나와 봐.”

김성훈이 바깥쪽으로 나오자 최태식을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변기 뚜껑을 열고 변기 뒤쪽을 살폈다.

혹시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 혹시라도 김성훈이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런 정황이나 사정을 최태식은 알지 못했지만, 대위로서 여러 부대에 있으며 별별 일을 겪다 보니 더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김 이병?”

“이병. 김성훈.”

“너, 괜찮은 거야?”

최태식은 김성훈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빨갛게 충혈이 된 눈과 그 주위에 있는 눈물이 누가 봐도 울었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예? 괘, 괜찮습니다.”

“아픈 건?”

“…….”

최태식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에 김성훈은 더욱 놀랐다.

자신은 볼일을 보러 왔다고 했지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최태식이 김성훈이 아픈 사실을 알게 된 건 오늘 오전이었다.

어제 여동생을 만나고 핸드폰을 가지러 부대 잠시 들렀을 때, 그때 본 김성훈의 안색을 보고 의무실을 찾았다.

특히 이병 일이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다른 계급의 병사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최태식은 늘 이병들 일에도 한 번 더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아직 군대 적응 중인 신병들이었기 때문이다.

“보니까 너 의무실을 꽤 자주 찾았던데 아픈 건 괜찮은가 해서 물었다.”

“……괜찮습니다.”

“김 이병?”

“이병. 김성훈.”

“뭐, 힘든 일 있나?”

“……!”

처음이었다. 부대 배치를 받고 누군가에게 힘들 일이 있냐는 말은 들은 게 처음이었다.

저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이 짧은 찰나의 순간, 김성훈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추악한 괴롭힘을 말할까 말까 미친 듯이 고민했다.

“힘든 일 있으면 편하게 말해?”

“아닙니다. 없습니다.”

하지만 김성훈은 결국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군대 안에 있는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너 그리고 이거 하나는 확실히 기억해라.’

또한 고철수가 늘 했던 말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세뇌되어 떠올랐다.

‘너 만약 나랑 병덕이 이야기하는 날에는 그냥 제삿날이라고 생각해. 내가 아주 전역을 해서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괴롭힐 거니까.’

저런 말을 들으면 아마 그 누구도 쉽게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최태식 대위를 붙잡고 말을 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근데, 왜 울어? 너 괜찮은 거 맞아?”

“예, 맞습…….”

대답을 하던 김성훈은 별안간 입을 닫았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다른 건 말을 해도 될 거 같았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사실 생활관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오늘부터 군의관은 휴가였기에 정말 만에 하나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희망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김성훈은 기회를 봐서 탈영할 생각이었다.

“대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제가…… 실은 몸이 좀 안 좋습니다.”

김성훈은 눈물까지 보이며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즉흥적으로 탈영을 생각한 김성훈은 자신의 몸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고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2주 전부터 배가 아픕니다. 그리고 대소변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의무실을 계속…….”

“따라와!”

김성훈의 설명을 전부 들은 최태식은 생활반으로 돌아가 자고 있던 분대장을 조용히 깨웠다.

“지금 그래서 김 이병을 데리고 외부 병원으로 갔다 올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대위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래.”

최태식은 군의관이 휴가 중이었기에 지휘관에게 빠르게 보고를 하고 급하게 절차를 받은 뒤 민간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급히 보고를 마치고 출발하기 전 동생인 최모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병원으로도 갈까 싶었지만, 비슷한 거리였기에 아무래도 동생이 있는 병원이 더 괜찮을 거 같았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은 어두운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 우리병원에 도착했다.

“김 이병? 뭐 해?”

“아, 아닙니다.”

최태식이 부르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성훈이 움찔하며 답했다.

“얼른 들어가자.”

“예, 알겠습니다.”

최태식은 김성훈은 앞세워 최모나에게 전화를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통화음만 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응급실 진료를 보러 왔는데 실례지만, 최모나 선생님 지인인데 혹시 진료 중인가요?”

“잠시만요. 지금 병동 환자를 보고 계셔서요. 접수하시겠어요.”

“예, 접수해 주세요.”

“네, 어디가 아프세요?”

“제가 아니라 우리 병사가 아픈데요. 김 이병?”

“이병, 김성훈.”

“여기 선생님께 증상 말씀드려.”

“예, 알겠습니다.”

김성훈과 최태식은 접수를 마친 뒤 응급실로 향했다.

* * *

진료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태경은 진료실에서 의진과 함께 모니터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진이 네가 보기에는 어때?”

마우스를 움직이며 모니터 곳곳을 훑는 시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음. 쉽지 않겠는데요?”

“내 생각도 같아. 쉽지 않겠어? 이 왼쪽은 어때 이거 괜찮을까?”

“뭐, 나쁘지 않은데……. 오른쪽도 사실 저는 괜찮다고 보거든요?”

“그래? 그러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아.”

두 사람은 30분 전에 수술실에서 나온 뒤였다. 의진은 팔짱을 한 채로 고민 중이었고, 태경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 중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뭔가 심각한 환자의 결과를 두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 같았다.

“그냥 이쪽 거랑 이쪽 거를 함께 하면 어떨까?”

“저는 왼쪽이랑 그 아래요?”

늘 의견이 같았던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지금 두 분 아직도 이러고 계시는 거예요?”

미세하게 열린 문을 열고 진료실로 들어온 임정숙 간호사가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무슨 치킨 메뉴를 아직까지 고르고 계세요. 네?”

그렇다. 태경과 의진은 야식으로 먹을 치킨을 고르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수술실에서 나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 상태였다.

“이게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무슨 소리야. 정 선생이 결정을 못 해서 그렇지.”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치킨 메뉴를 환자 자료 분석하듯이 하고 계시네. 그냥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할게요. 불만 없으시죠?”

“역시 치킨은 양반 후반이지.”

“당연하죠. 수 쌤, 같이 가요.”

철컥-

심각하게 메뉴를 고르던 두 사람은 허무할 정도로 임정숙 간호사의 말에 공감하며 야식 소동을 마무리했다.

“치킨 하니까 맥주가 땡기네.”

Rrrrrrrrr

배달 올 치킨을 생각하며 모니터로 환자 자료를 보던 태경은 책상 위에 울리는 핸드폰을 받았다.

“네.”

-원장님, 응급실인데요. 외과로 입원 대기 중인 57세 남자 있잖아요. 통증이 있다고 해서요.

“우선 tyrenol IV제제 있잖아요. 그거 주시고요. 계속 아프다고 하면 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 잠시만요?”

전화를 끊으려던 태경이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예, 원장님.

“지금 응급실 환자 의무 기록들 보고 있는데 복통으로 온 21세 남자가 있네요. 환자 분류했나요?”

-네, 방금 했습니다. 군인이고요. 보호자라고 간부랑 같이 왔더라고요.

“그래요. 특이사항은 없고요?”

“네, 그냥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근데 겉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아파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2주 정도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간호사의 설명이 한참 이어지던 그때였다.

“대소변을 거의 못 본 지 하루 좀 넘었다고 했어요.”

“네?!”

그 소리를 들은 태경의 동공이 크게 확장하며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크게 말했다.

“방금 소변을 못 봤다고 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