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26화 (225/472)

226화. 배달 사고

그 시각-

김성훈의 집은 늦은 시간임에도 온 집 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주방에는 마치 명절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각종 음식이 하나둘 식탁 위를 수놓았다.

“엄마? 엄마!”

옆에서 일손을 돕고 있던 딸이 가스 불 앞에서 집중하고 있는 이애숙을 연이어 불렀다.

“응? 불렀어?”

“좀 쉬면서 하시라고요. 그러다 엄마가 병나겠다.”

“병은 무슨 병이야. 이게 뭐 힘들다고.”

딸에 물음에 이애숙은 끄떡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들통에 있는 국자를 계속 저었다.

“엄마 허리 약하잖아. 계속 그렇게 있으면 허리 더 아파. 들어가 주무세요. 내가 좀 보다 잘게.”

“엄마는 평생 하던 일이라 하나도 안 힘들어. 그리고 내일 성훈이가 맛있게 먹을 생각하면 없던 힘도 막 솟아나.”

“하긴! 성훈이가 또 음식은 잘 먹잖아. 생각해 보니까 막내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뭐 해 주면 참 맛있게 먹긴 했어.”

“맞아. 체구는 작은 애가 먹는 건 어찌나 잘 먹던지…….”

딸과 예전 일을 떠올리며 대화를 주고받던 이애숙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엄마 울어?”

식탁에 앉아서 전을 굽던 딸은 갑작스러운 엄마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티슈를 가져왔다.

“아고! 우리 이 여사님 다 늦은 이 시간에 왜 또 우실까?”

“어휴! 그러게 엄마 왜 이러니. 내일 우리 아들 보는 좋은 날인데……. 다 늙어서 주책이네.”

“그게 왜 주책이야. 울 엄마 아직도 소녀네. 성훈이 생각 때문에 그렇지?”

늘 살가운 딸은 엄마가 왜 우는지 그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냥. 다른 엄마들 다 보내는 군대인데 엄마는 그렇게 우리 성훈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아들을 군대 보내고 나니 그 마음이 평소 같을 수는 없었다.

이애숙도 아들은 군대 보내기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뿐인 아들이 입대하니 그제야 군대 보낸 부모의 마음이 이해됐다.

밥은 잘 먹는지.

선임은 괜찮은 사람인지.

훈련은 힘들지 않은지.

자는 곳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몸이 아픈 곳은 없는지.

매일 매 순간 모든 게 아들의 걱정뿐이었다. 아마도 아직 첫 휴가를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더 그런 거 같았다.

가끔씩 뉴스에서 들려오는 군대 사고 소식이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병사들을 볼 때면 그날은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우리 성훈이는 별일 없겠지?’

온 신경이 아들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내성적이고 체구가 작아 괴롭힘을 당할까 봐 늘 노심초사였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자대 배치를 받고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군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온다고 하니, 그동안의 걱정과 대견함이 섞여 눈물이 흘렀다.

“엄마, 그만 울어.”

“그냥 성훈이가 참 기특해서.”

“당연하지. 나도 터울이 있다 보니까 성훈이 군대 가고 많이 생각나고 기특한데 엄마는 오죽하겠어.”

“아들 둘 있는 집은 이걸 어떻게 두 번 할까?”

“그러게. 우린 아들이 하나라 다행이네.”

“성훈이 아마 지금쯤 내일 집에 올 생각하면서 자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그만 울어요.”

“그래야지. 이것만 마무리하고 들어가 자자.”

“네.”

이애숙은 내일이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눈물을 닦았다. 들통 안에 있는 국자를 젓는 손길이 어느 때보다 사랑이 가득했다.

* * *

-대소변을 거의 못 본 지 하루 좀 넘었다고 했어요.

“네?!”

그 소리를 들은 태경의 동공이 크게 확장하며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크게 말했다.

“방금 소변을 못 봤다고 했어요?”

-네? 네…….

“지금 당장 갈게요. 우선 환자 full lab 다 나갈 거고.”

수화기를 넘나드는 목소리가 그러데이션처럼 커지고 있었다.

“하트만 솔루션(Hartmann solution, 수액의 한 종류로 인체의 전해질 등이 포함되어 있음) 500 제한 걸지 말고 그냥 쏟아 주세요. full drip이요, 그리고 CT 촬영하고요. 지금 바로 갈게요.”

태경의 속사포 오더에 간호사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물었다.

-네, 원장님. 하트만 외의 다른 수액이나 약품은 없을까요?

“Nak1도 시간당 80cc로 우선주고요. 환자 몸무게 확인하고 추가 수액도 많이 낼 거예요. 과거력과 복용 약 파악하고요. 지금 바로 가긴 할 텐데, 저 기다리지 말고 CT 촬영할 수 있으면 바로 해요.”

-조영제는 지금 달면 될까요?

빠르게 오가는 오더 속에서 급하게 묻던 간호사에게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 돼요!!!”

-앗! 네 알겠습니다. 조영제 없이 CT 촬영하겠습니다.

“절대! 절대로 조영제 주면 안 돼요! 비조영 CT로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세요. 촬영하면서도 꼭 비조영이라고 강조해야 해요.”

-네, 원장님.

태경이 이렇게 화들짝 놀라면서 지시 사항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소변!!

바로 소변이 안 나온 것 때문이다. 소변을 못 봤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큰 사인이다.

‘왜! 느낌이 안 좋냐…….’

태경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물론 다양한 비뇨기과적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젊은 남자 환자가 그러기에는 쉽지 않다. 그것도 하루밖에 안 되었다는 것은 급성 질환이다.

거기다 2주 정도 된 복통이 있다는 것은 복부의 염증으로 소변이 안 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염증이 심하면 전신으로 퍼질 수 있고, 우리 몸의 혈관들은 그 영향으로 모두 다 이완되게 된다.

그러면 원래 피가 가야 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사이사이로 혈액들이 빠져나가는, 쉽게 설명하자면 배달 사고가 난다.

그 신호가 바로 소변의 감소로 보일 수 있다.

“패혈증은 아니어야 할 텐데.”

그것도 하루 종일 한 번도 못 보았다는 것은 아마 그 전날부터 감소 추세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 상태가 심각해서 패혈증 단계일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이 단계이면……. 그 단계라면…….

환자는 죽을 수 있다!

정말 초응급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태경의 다리는 이미 진료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응급실을 향해 뛰고 있었다.

‘하! 냄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왜 하필 이 냄새냐!’

응급실이 가까워지고 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마치 다섯 번째 바이탈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의 입장을 반겼다.

결코 반갑지 않았고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환자의 고통의 냄새였다.

‘4단계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환자의 상태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21세 남자, 복통으로 온 환자 어디 있어요?”

응급실로 전력 질주한 태경이 급히 들어오며 물었다.

“3번 베드입니다.”

챠륵-

정적인 베드 안에 빠르게 커튼이 소리가 나자 머리가 복잡한  김성훈이 고개를 돌렸다.

“…….”

태경이 환자 곁으로 가자 얼핏 보기에도 핏기가 없는 얼굴의 왜소한 체구인 군인이 눈에 들어왔다.

김성훈은 여전히 배가 아팠다.

그냥 느낌이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좀 더 아픈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냥 뭔가 어리둥절함이 더 컸다.

머릿속에는 탈영할 수 있을까? 언제 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만약 이대로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면 그때는 여전한 괴롭힘 속에 살아야 했기에 끔찍함이 밀려왔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이 병사 간부입니다.”

온갖 생각을 하고 있던 김성훈 대신 태경을 본 최태식이 인사와 함께 짧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 병사가 얼마 전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하고 의무실을 다녀와도 복통이 낫질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부대 군의관이 휴가 중이라서요. 그래서…….”

자세한 설명들이 이어졌지만, 최태식이 하는 말은 하나도 태경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상한 성격의 그가 환자와 보호자를 보면 늘 인사부터 했지만, 생명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딴 것들은 고민할 것이 못 됐다.

“2주? 2주 정도 됐죠?”

“김 이병, 선생님께 대답해야지.”

“이병! 김성훈.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환자분 편하게 말해요. 복통을 느낀 지 2주 맞나요?”

“……네, 맞습니다.”

김성훈의 입술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부대에서보다 힘이 없었다.

“환자분 무릎 구부려 봐요.”

“무릎이요?”

“네.”

태경이 김성훈의 배를 지그시 누르자 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강직이 보였다.

“이런! 젠장!”

“네?!”

태경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튀어나오자 최태식이 뭔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급한 오더였다.

“지금 바로 수액 달아 줘요! 빨리. 그리고 CT 가요. 당장!”

“예, 알겠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오더를 내리는 이유가 있었다.

배를 약하게 누르기만 해도 강직이 온다는 것은 이미 배벽에 염증이 다 퍼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우려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저기, 의사 선생님이신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설명을 좀…….”

최태식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태경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대답도 하지 않고 모니터 앞으로 급히 걸어갔다.

“lab 언제 나갔어요? 바로 검사 결과 내라고 전화하세요.”

“방금 전화했습니다. 5분 내로 된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태경이 lab 검사를 열자 결과가 하나하나 올라오고 있었다.

“백혈구 수치가…….”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누르며 올라오는 결과를 보던 태경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놀라고 있었다.

“백혈구가……. 38,000! 염증 수치가 34! 이런 씨x!”

심각한 얼굴 위로 미간이 확 좁혀지더니 짜증과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백혈구는 10,500까지 정상이며 염증 수치는 5까지가 정상이었다.

그러니 지금 김성훈의 상태는 그 정상 범위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거였다.

“잠시만요! 의사 선생님!”

다급한 태경과 의료진의 모습을 보던 최태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 말도 없이 이러시는 거는 좀. 무슨 상황인지 말부터 하시고 검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 말도 없이 검사부터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네, 간부님 말이 맞습니다. 그건 예의가 아니죠. 잠시……. 잠시만요!”

“네?!”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태경의 태도에 최태식은 어이가 없는 눈치였다.

사실 두 사람 다 이상할 건 없는 상황이었다.

최태식은 부대 병사가 어떤지 알아야 했고, 태경은 김성훈의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오더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이보세요. 선생님. 그럼 설명을 해 주셔야죠! 예?”

태경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보는 가운데 최태식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태경의 모든 신경은 김성훈의 결과를 향했다.

특히 더 집중해서 보는 것은 바로 신장의 기능을 나타내는 수치였다.

그 수치인 eGFR은 저 나이의 젊은 남자면 90 이상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제 막 화면에 뜬 수치는 8이었다.

“이거 보세요? 의사 선생님!”

최태식이 화난 표정으로 언성을 더 높였다.

“우리 부대 병사가 아파서 왔는데 지금까지 아무 설명 없이 계속…….”

무관심하다고 오해하며 화가 난 최태식이 따지려고 하던 바로 그때였다.

“보호자분, 저 환자 오늘 밤에도 죽을 수 있어요.”

도저히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그의 입을 순식간에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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