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농에 삭으면 뼈도 녹아
김성훈의 집-
“다 했다.”
이애숙은 정리를 마치고 주방에 불을 껐다.
“세상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들어가 자야겠다.”
도와주던 딸이 들어가 자고 혼자 남아 음식을 마무리하니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하지만 이애숙의 얼굴에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곧 날이 밝으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들 잘생겼네.”
“아니! 이 사람아?”
“엄마! 깜짝아!”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 속 아들의 사진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던 이애숙이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애숙을 놀라게 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 김오훈이었다.
그는 자다가 아직도 방에 들어오지 않은 아내 때문에 거실로 나온 상태였다.
“깜짝 놀랐잖아요. 당신은 무슨 기척도 없이 나와요.”
“기척 했잖아. 그건 그렇고 안 잘 거야?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음식을 하고 있어. 너무 유난 떨지 말고 적당히 해.”
뭔가 말은 무뚝뚝한 듯 보였지만, 김오훈 역시 아들의 첫 휴가를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아내가 힘들까 봐 돌려서 표현한 말이었다.
“적당히 다 했어요. 이제 더 할 것도 없어요.”
“그렇게 좋아?”
“아니, 그럼 좋죠. 당신은 안 좋아요?”
“좋긴.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뭐 대단한 곳 같다고…….”
“그런 사람이 성훈이 군대 간 뒤로 휴대폰 배경 화면을 아들 사진으로 해 놔요?”
“그거야 그냥 한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얼른 들어가 자자고.”
“그래요. 알았어요.”
아들 이야기로 대화를 하던 부부가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바로 그때였다.
Rrrrrrrrrr
이애숙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벨 소리가 고요한 거실 위로 거칠게 울렸다.
“뭐야! 이 시간에 웬 전화가 오고?”
“그러게 말이에요. 보나 마나 스팸 전화 그런 거겠죠.”
“이상한 거면 받지 마.”
받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 휴대폰 화면을 보자 처음 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여보세요?”
-늦은 시간 실례합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백석부대 최태식 대위였다.
-김성훈 이병 어머님 되십니까?
느낌이란 게 있다.
뭔가 정확히 정의 내릴 수도 없고 수학의 공식처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사람이 어느 순간 본능에 따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특히나 부부 사이의 일이나 자식에 관한 일에는 그런 느낌이 마치 초능력처럼 발휘되고는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순간, 안 좋은 느낌이 이애숙에게 썰물처럼 밀려왔다.
낯선 남자 입에서 들려오는 ‘김성훈 이병’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아들에게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우리 성훈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확인하고 싶지만, 반대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다.
‘제발……. 제발 아니게 해 주세요.’
답을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내 아들이 부디 무사하기를 아무 일이 없기를. 괜찮기를.
머리카락 한 올조차 멀쩡하기를.
-현재 김성훈 이병이 병원에서 수술 중에 있습니다.
“……!”
타탁-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이애숙이 거실 바닥에 주저앉고 손에 들린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보!”
놀란 김오훈이 아내를 잡아 같이 주저앉으며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급히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저 성훈이 아버지입니다. 그쪽과 통화 후 아내가 놀라 주저앉았는데 무슨 일인가요?”
-안녕하십니다. 최태식 대위입니다. 현재 김성훈 이병이 병원에서 수술 중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급히 좀 오셔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디입니까? 병원이?”
김오훈은 침착한 어조로 아들이 있는 병원을 물었다.
-우리병원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제가 전화를 끊고 자세한 주소를 문자로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이애숙은 전화를 끊으려던 김오훈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최태식을 불렀다.
“하나만……. 하나만 알려 주세요. 우리 성훈이……. 많이 안 좋은가요?”
사시나무 떨리듯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이애숙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 성훈아! 흐흑!”
“여보!”
철컥-
“엄마? 무슨 일이야?”
“아빠, 엄마 왜 그래요?”
“성훈이가 병원에 있단다.”
전화를 끊은 이애숙은 오열하기 시작했고, 자고 있던 가족들이 하나둘씩 나와 동생의 소식을 접했다.
* * *
‘개복이다.’
도구를 통해서 복강 내의 농들이 나오고 있었다. 끈덕지고 지독한 냄새를 동반한 농이었다.
“복강경 안 되겠네요. 배 열게요. 메스 주세요.”
더는 복강경이 안 된다고 판단한 태경은 빠르게 메스를 건네받은 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가운데로 길게 절개선을 넣었다.
평소보다도 빠르게 배를 열고 들어갔다. 열자마자 배 안 가득한 농이 보였다.
“석션!”
태경이 최모나에게 말했다.
최모나는 오늘 이찬희에게 자신이 어시를 하겠다며 직접 나서서 들어왔다.
아무래도 친오빠의 부대 사람이다 보니 신경이 쓰여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충수염으로 이렇게 심해질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아마 이 환자 엄청 아팠을 거야. 뭐, 군대니까 여러 가지로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겠지.”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태경의 말이 맞았다.
언젠가 오빠인 최태식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체계가 잡히고 규율을 중시하는 군대라 할지라도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고.
특히나 병사들의 건강 문제는 더욱 관리 감독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전공 분야였다.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간혹 자신의 전공과 전혀 무관한 다른 진료를 보는 군의관들도 있었다.
실제로 이런 문제가 뉴스에까지 제기됐지만, 아직도 그 현실은 크게 바뀌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정작 급한 상황에 놓인 병사들의 증상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면 최태식은 늘 힘들어하곤 했었다.
“여기 보이지? 소장으로 해서 따라가 보자.”
“네, 선생님.”
태경이 길고 긴 소장의 일부분을 들고서 하나하나 따라가 본다.
일반 소장의 굵기가 손가락 하나 정도인 것에 비해서 현재 김성훈의 소장은 손가락 3개 정도의 굵기로 부어 있었다.
연분홍이었던 소장들은 시뻘건 염증으로 물들어 있었고 몇몇 군데는 검은색으로 썩어 있었다.
“농이 이렇게 무서운 거야. 농에 삭으면 뼈도 녹아. 소장은 말할 것도 없고…….”
“예, 정말 너무 심합니다.”
태경이 농에 의해서 끈덕지게 다른 장기에 붙어 버린 소장을 조심스럽게 분리하면서 보고 있었다.
“어! 여기!”
“소장에도 천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CT상으로는 안 보이지 않았습니까?”
“충수 부위와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비조영이라서 더 안 보였던 것도 있고, 그렇더라도 너무 심하네. 충수 위에 대장 일부와 천공된 소장과 썩은 곳을 다 자르자.”
“수술이 굉장히 커졌습니다.”
“물론 안 자르고 나으면 좋지만, 확실하게 가야지. 이후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이게 낫고. 얼마나 깊이 썩었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또 환자 배를 여는 것보다 낫지.”
태경은 시뻘건 소장을 들고서 중간에 검게 변한 장을 들었다. 그리고 앞뒤로 5cm 모두 10cm의 장을 자르기로 했다.
현재 염증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장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동맥이 가운데에서부터 원을 그리면서 퍼져 있다.
문제가 되는 부위의 동맥들을 하나하나 실로 매듭을 지어 준다.
이 과정에서 출혈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동맥의 시작점과 끝을 실로 강하게 묶고, 주변의 퍼져 있는 지방들을 조심스럽게 치워 가면서 10cm 되는 구간을 반복한다.
“장 집을 거 주세요. 최모나?”
“네, 선생님.”
“그거 들고 네가 양쪽에서 장을 줄여 줘. 그리고 절개해서 붙일 장을 나란히 두고……. 그래. 그렇게 하면 돼.”
굵은 집게 모양의 장 문합 스테이플러를 이용해서 연결할 소장의 두 부분을 나란하게 놓는다.
그 뒤 집게의 사이에 연결할 장을 끼우고서 경계면을 잘 맞도록 조심스럽게 장과 장을 맞추는 것이다.
기구에 의해서 연결하고자 하는 소장의 다른 부분이 천공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장을 당기면서 경계를 맞춰 나간다.
딸깍- 드르르륵
기기를 이용해서 연결할 소장을 붙이고 보완하기 위해서 실로 다시 연결 부위를 봉합해 준다.
하나하나 정성스럽지만, 강하게 경계면에 누출이 없도록 했다.
하지만 역시 너무 강하면 피가 안 통하므로 적당하게 당겨야 한다. 이것도 순전히 감의 영역이었다.
“그 천공된 부분은 그냥 봉합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어. 그럴 거야. 바이크릴(vicryl, 녹는 실) 주세요.”
충수와 맞닿아 있어서 구멍이 난 소장은 구멍 주변의 앞뒤로 소장을 뭉쳐서 봉합했다. 일차적인 봉합만으로 치료되기 때문이다.
“자! 배 안에 이리게이션(irrigation, 식염수나 소독약 등으로 병소를 씻어 내는 행위)할게요.”
“네, 얼마나 하실 건가요?”
“8L 주세요.”
“알겠습니다.”
태경이 보고 있는 시야에서는 소장 안에 있어야 할 변과 소장 밖에 가득한 농이 어지럽게 보였다. 이것은 기다린다고 가라앉을 것이 애초에 아니었다.
오히려 환자의 의식이 떨어져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환자가 그만큼 큰 통증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배를 연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정 선생님. 현재 환자 혈압은 괜찮은가요?”
“수축기 75 정도 보이고요. 지금 수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변이 아주 적지만 조금씩 나오고 있고요.”
“그래? 아! 다행이다.”
의진에 말에 태경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소변이 나온다니 정말 다행이다. 아니 다행을 넘어 감사하다는 마음이 속으로 절로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환자의 멱살을 잡고 요단강에서 끄집어낼 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의 가능성이 보였다.
이 또한 정말 다행이었다.
모든 환자가 다 소중하지만, 지금 수술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젊은 환자가 사경을 헤매일 때는 의사로서 그 마음이 더 아프고 간절하다.
나라의 공권력에 의해서 그 괴로운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우리 군인들이 어머니 곁으로 잘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태경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이쿠! 이런. 물 너무 차가워요. 따뜻한 거 주세요.”
“죄송합니다.”
배 벽을 층층이 맞추어 닫은 태경은 심각했던 수술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 이거지!’
마스크 속 태경의 입가는 살짝 웃고 있었다.
수술방에 가득했던 다섯 번째 바이탈인 포르말린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하게 단계가 내려간 거긴 하지만, 그만큼 위급한 상황을 넘겼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태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환자가 가진 병마와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 그건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진이 마찬가지였다.
오늘 김성훈처럼 위급한 환자일수록 병마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평소보다 더욱 간절하게 들었다.
‘애썼어요. 환자분.’
특히나 죽을 수도 있는 경우였기에 더욱 살리고 싶었는데, 일단 그 고비를 넘겨준 환자가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우리 젊은 군인 환자가 고생이 많았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수술이 끝나고 환자에 대한 오더도 끝낸 태경이 인사 후 나가려다 말고 김성훈을 보며 멈칫했다.
그 모습을 보며 최모나가 물었지만, 여전히 미동이 없자 이번에는 의진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뭐, 잘못됐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