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좀 이상한 상처?
그 모습을 보며 최모나가 물었지만, 여전히 미동이 없자 이번에는 의진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뭐, 잘못됐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거 말이야?”
태경이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아까도 있었나?”
검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의진과 최모나의 시선이 빠르게 향했다.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는 김성훈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을 하자면 김성훈의 상체를 향하고 있었다.
“뭐를 말씀하시는 건지…….”
두 사람은 도통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수술이 끝나고 난 뒤 태경의 이런 행동을 처음 봤기 때문에 뭔가 어리둥절했다.
“이거 말이야. 이거!”
답답한 태경은 베드 가까이 다가와 김성훈의 상체를 가리켰다.
“여기 잘 봐. 이 주변이 좀 이상하잖아. 이거 원래 이랬나?”
좀 더 확실히 말하면 유두 주변이 마치 꼬집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뭔가 살짝 패인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글쎄요. 저도 지금 알았네요. 최 쌤 알았어?”
“아니요. 저도 지금 알았습니다.”
태경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수술에 정신이 팔려 그런 상처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사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태경 역시 수술을 끝내고 인사하고 가려던 찰나, 김성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속으로 그를 응원하다 우연히 눈에 상처 부분이 들어온 것이다.
“근데, 저게 왜요?”
“좀 이상하지 않아?”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최 쌤이랑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이 상처는 고철수와 박병덕이 김성훈을 괴롭히다가 낸 상처였다.
여느 때처럼 말도 안 되는 게임을 만들었고, 김성훈을 인간 다트판으로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볼펜으로 유두 부분을 과녁 삼아 던지는 행위를 하며 김성훈에게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김성훈 너, 이 자식 만약 손으로 막거나 피하면 그때는 아주 각오해야 할 거야.’
‘그렇지. 피하는 건 반칙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하다 볼펜 심지가 유두 주변에 날아와 피부를 살짝 찌르다 보니 상처가 생긴 것이다.
“그냥 이 환자가 유두 주변 피부가 안 좋은 거 아닐까요?”
“그런가?”
태경은 환자가 군인이라 자신이 뭔가 예민하게 반응한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이지 이때까지만 해도 이 환자가 그런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태경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저건 잘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니까 김성훈 환자요.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어요.”
태경을 보던 의진이 뭔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이상한 부분이라니?”
“마취하기 전에 저한테 대뜸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수술하다가 못 깨어날 수도 있는 거냐고. 그래서 제가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료진이 바로 옆에서 잘 지켜보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는데……. 스치듯이 작은 소리로 안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거 같아요.”
수술 전, 그것도 의식이 쳐지고 있던 김성훈은 마취하기 전 힘든 표정으로 말했었다.
낮게 읊조리던 소리에 의진은 긴가민가했지만, 자신이 들은 게 맞는다면 분명 그런 뉘앙스로 말한 게 확실했다.
“근데 이건 제 생각인데, 아까 환자분이 의식도 쳐지고 아프고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그럼 환자 잘 부탁하고……. 아! 최모나?”
의진의 이야기를 들은 태경이 수술방을 나가려다 걸음을 멈칫하며 후배를 불렀다.
“네, 선생님?”
“같이 온 간부 말이야. 그 대위라는 사람?”
“예.”
“남친 맞지? 저번에 왔던?”
“맞다! 나도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네. 일부러 여친 있는 병원까지 오고 은근 로맨틱하네. 최 쌤 도대체 언제 연애를 한 거야?”
“예? 두 분 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못 짚으셨습니다. 최태식 대위는 제 친오빠입니다.”
“최태식, 최모나…….”
“아! 그렇구나. 둘이 성이 같구나?”
두 사람이 연인 사이인 줄 알았던 태경과 의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남매를 연인으로 오해했네.”
“아무튼 오빠라니 다행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아쉬워하는 거 같아서.”
“누가요?”
“있어. 그럼 난 보호자 만나러 갈게.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최모나의 물음에 대답을 피한 태경은 수술방을 나와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 * *
보호자 대기실-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금 전, 병원에 도착한 김성훈의 가족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최태식 대위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성훈아! 우리 성훈이가 왜……. 왜! 수술을 받고 있어. 왜!”
“엄마, 엄마 진정해.”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건지 물었습니다.”
보호자 대기실 모니터 위에 떠 있는 아들의 이름을 보며 또다시 울음이 터진 이애숙을 딸이 말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오훈이 죄송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최태식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게, 김성훈 이병이 2주 전부터 배가 좀 아파 의무실을 찾았는데 그사이 맹장염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이보세요. 대위님?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까?”
김오훈은 버럭 소리를 높였다.
“나도 군대 전역한 사람으로 군대가 사회보다 모든 게 열약하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맹장이 아픈 애를 2주 가까이, 그것도 아픈지 몰랐다는 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저도 오늘 갑자기 터진 일이라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업이 군인이다 보니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태식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변명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대위라는 계급을 가진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저기요?”
이애숙을 진정시키고 있던 큰딸이 날 선 표정으로 다가왔다.
“전, 성훈이 큰 누나인데요. 혹시 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예? 다른 문제라는 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성훈이가 생활반 사람들과는 사이가 좋았는지 묻는 거예요. 그리고 막말로 대위님이 간부인데 병사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가족보다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죄송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최태식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오는 동안 별생각을 다 한 첫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동생이 내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라 걱정돼서 물었어요.”
“그 부분 또한 제가 알아보고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임져!!”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이애숙이 최태식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여보, 진정해!”
“이게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김오훈이 아내를 말리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이 진정이 될 만큼 납득이 가요? 그래요? 난 안 그래! 그리고 당신 간부라면서. 대위라면서?”
조금 무례해 보일 수도 있고 거칠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당사자인 최태식은 이애숙의 태도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아들의 첫 휴가를 기대했던 부모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군대 보내 놨더니 아들을 다 죽여서 돌려보내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김성훈 환자 보호자분?”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가운데 때마침 수술방에서 나온 태경이 보호자 대기실을 찾았다.
“저, 저예요. 접니다.”
눈물을 쏟으며 소리를 높이던 이애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경에게 달려왔다.
“제가……. 제가 성환이 엄마예요. 우리 아들 괜찮은가요?”
“걱정 많으셨죠? 우선 수술은 잘 끝났고 한고비는 넘겼습니다.”
“아휴! 아오! 세상에!”
태경의 말을 듣자마자 이애숙은 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모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이애숙은 태경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우리 환자분이 잘 견뎌 줬어요.”
그 뒤, 나머지 자세한 사항들을 가족과 최태식 대위에게 전한 뒤 태경은 보호자 진료실로 향했다.
그리고 임정숙 간호사가 들어와 면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했다.
“조금 전에 원장님께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알려 드릴게요. 현재 김성훈 환자는 현재 의식이 없어요. 면회할 때 놀라지 마시라고요.”
김성훈은 워낙 염증이 심했던 터라 수술 후 의식이 아직 없었다.
혈압이 정상화되고 염증 수치가 떨어지면 의식이 돌아올 것이다.
“네. 아까 원장님께 들었어요.”
“중환자실 면회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요. 가족 중 한 분만 면회가 가능하세요. 지금은 수술 후라 잠시 면회가 가능한데 어느 분이 가시겠어요?”
“당신이 가야지.”
“맞아. 엄마가 갔다 와.”
모든 가족이 애가 타도록 김성훈을 보고 싶은 마음은 같았지만, 그래도 이애숙이 가장 보고 싶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가시겠어요?”
“네, 제가 갈게요.”
“그러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애숙은 임정숙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중환자실로 향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수술 잘됐으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마세요. 저쪽 베드에 환자분 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애숙은 천천히 걸어와 김성훈이 누워있는 베드로 향했다.
“어머! 세상에…….”
여러 장치를 달고 누워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쏟아져 내렸다.
‘엄마? 나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지내고 있지. 나, 군대 체질인가 봐. 다들 잘해 줘요. 선임들도 다 좋아요.’
‘나 아픈 곳 없으니까 엄마랑 아빠 누나들이나 건강하세요. 군대 있는 동안 씩씩하고 늠름한 아들이 되어서 돌아올게요. 보고 싶어요.’
그동안 아들이 했던 말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픈 곳이 없다는 말과 달리 몰라보게 핼쑥해진 아들의 얼굴이 괜찮지 않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성훈아…….”
가뜩이나 체구가 작고 마른 아들은 그사이 더 말라 있었다.
군대를 가면 살이 붙어서 나온다고 다른 엄마들이 그랬다.
그 말 때문에 첫 휴가를 나오면 아들이 체력적으로 보기 좋게 변하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좋아지기는커녕 더 안쓰러운 모습으로 죽은 고비를 넘긴 채 병상에 누워있었다.
“흑! 아들!”
이애숙은 입을 틀어막으며 조용히 오열했다. 눈앞에 아들이 있어도 만질 수도 없고 마음껏 안아줄 수도 없었다.
가끔 재벌 집 어느 자식은 군대에 안 갔다는 기사와 어느 연예인이 군대를 피했다는 기사들이 종종 세상 이슈가 되고는 했다.
그때마다 이애숙은 속으로 혼잣말을 했었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 금쪽같은 새끼를 군대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기에, 나라의 부름을 받았기에 나라를 믿고 하나뿐인 아들을 군에 보냈다.
훈련소에서도 그랬다.
나라를 믿고 아들을 군대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나라를 믿고 보낸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얼마나 참고 또 참았으면 몸속에 농이 차오를 때까지 몰랐던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속이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불쌍한 내 새끼…….’
사실 김성훈은 수술방에서 마취를 받기 직전, 차라리 수술 도중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었다.
의식이 없는 지금, 김성훈은 아마 본인이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애숙은 면회가 끝날 때까지 아들의 얼굴을 보며 울다 나왔다.
* * *
한편 김성훈이 병상에 누워 있던 그 시간, 백석부대-
길었던 새벽어둠이 걷히고 생활반에 있는 두 악인은 간밤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침을 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