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30화 (229/472)

230화. 김 이병 맞선임 누구야?

한편 김성훈이 병상에 누워 있던 그 시간, 백석부대-

길었던 새벽어둠이 걷히고 생활반에 있는 두 악인은 간밤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침을 맡고 있었다.

“…….”

기상송을 듣고 일어나던 고철수는 비어 있는 김성훈의 자리를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뭐야, 아침부터 멍 때리냐?”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새끼 어디 갔을까 해서.”

“어떤 새끼?”

“성훈이 새끼지 어떤 새끼야. 저것 봐. 쟤 자리에 없잖아.”

“화장실 갔나 보지.”

“야! 너 지금까지 김성훈이 이 시간에 자리에 없던 거 본 적 있어?”

그러고 보니 고철수의 말이 맞았다.

아침에 기상송을 듣고 일어날 때면 김성훈은 늘 자리에 있었다.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이 시간에 없던 걸 못 본 거 같았다.

“맞네. 성훈이 놈 항상 있었네.”

“야! 너희 혹시 성훈이 괴롭힌 거 아니지?”

“예? 저, 저희가요?”

“그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군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보통은 맞선임들이 후임을 갈구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분대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사람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러면 근래 성훈이가 이상하거나 아프다고 한 적은? 저번에 보니까 의무실 자주 가던데?”

“그건, 배가 좀 자주 안 좋은 거 같아 의무실을 자주 가긴 했는데, 저도 그렇고 병덕이도 그렇고 상태가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너희 혹시 성훈이가 아프다고 했는데 일부러 안 보내거나 그런 건 아니지?”

“당연ㅎ…….”

박병덕이 자신 있게 말을 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철컥-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최태식이 생활반 안으로 들어왔다. 계속 병원에 있던 그는 이제 막 부대 복귀한 상태였다.

“충성!”

“쉬어!”

최태식의 눈빛은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잡아먹을 듯이 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평소 부대 내에서도 병사들을 두루두루 잘 챙기는 그였지만, 한 번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기에 병사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분대장, 애들한테 김 이병 소식 전했나?”

“네, 대위님. 지금 막 수술했다고 알렸습니다.”

“방금 분대장이 한 말 그대로 현재 김성훈 이병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좀 더 정확히 알려 준다면 김 이병이 밤사이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

“…….”

“……!”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고철수와 박병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속으로 뜨끔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신병 휴가를 나갔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발생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다들 알고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병사들에게 김성훈 소식을 전하고 돌아서려던 최태식이 다시 돌아서서 제자리에 멈췄다.

“내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다들 잘 듣고 대답하도록. 여기 생활반에서 김성훈 이병에게 가혹행위나 그에 준하는 행동이 있었나?”

순간 싸한 공기가 생활반에 흐르며 다들 최태식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문제의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쳐다보지 않고 각 잡힌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대장? 없어?”

“예, 그렇습니다.”

“김 이병 맞선임 누구야?”

“일병 고철수입니다.”

“일병 박병덕입니다.”

최태식의 부름에 두 사람이 용수철처럼 튕기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등 성명을 댔다.

“평소 성훈이한테 이상한 점 없었나?”

“없었습니다. 김성훈 이병이 워낙 조용하고 얌전한 스타일이라 따로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너희는 성훈이랑 문제없었어?”

“예, 그렇습니다.”

고철수가 당당하게 답했다.

“분대장 확실해? 너희 다 문제없었어.”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렇습니다.”

분대장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의 두 사람은 주로 선임들이 없을 때만 심하게 괴롭혔고 다른 병사들이 있을 때는 아닌 척 굴었다.

그러니 분대장은 그런 가혹행위나 괴롭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알았다.”

최태식은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윗선에 보고하기 위해 생활반을 나갔다.

철컥-

“야, 너 그렇게 대답하면 어떡해?”

김성훈의 문제로 생활반 병사들이 어수선한 사이 박병득이 고철수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뭐가! 그럼 대위한테 씨발 우리가 그 새끼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말해? 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야! 성훈이 그 자식이 다 말하면 어떡하지?”

“병신아, 넌 김성훈을 그렇게 보고도 모르냐? 그 자식 절대 말 못 해.”

고철수는 잠자리를 정리하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성훈이 그 자식 개 소심하잖아. 그런 애들은 자기 괴롭힘당한 거 입 밖으로 절대 내뱉지 못해. 말했을 거면 벌써 말했겠지.”

“그건 맞아. 김성훈이 소심하긴 졸라 소심하지.”

고등학생 때도 질이 좋지 않던 고철수와 박병덕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잘못보다는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픈 김성훈을 무시하며 자신만만해했다.

“만약 김성훈이 말을 한다고 해도 그때는 그냥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면 돼.”

“하긴. 잡아떼야지.”

“그냥 친해서 가볍게 장난을 친 적은 있지만 절대 괴롭힌 적은 없다고. 너랑 나만 입을 맞추면 된다고.”

“오케이. 알았어.”

사경을 헤맸던 김성훈의 안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두 사람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침구를 정리했다.

* * *

우리병원-

철컥-

“선생님, 부르셨어요?”

이찬희는 태경의 콜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찬희야?”

“네, 선생님.”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부탁이요? 그럼요. 뭔데요?”

태경이 자신에게 부탁한 적이 없었기에 이찬희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수락했다.

“양쪽 팔을 좀 들어 봐.”

“파, 팔이요? 이렇게요?”

“어. 그렇지. 잠깐이면 되니까 좀 참아.”

“예? 뭘 하시려고……. 아니! 선생님?!”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팔을 들던 이찬희는 별안간 양쪽 가슴으로 향하는 태경의 손을 보고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서,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설마 제 젖x지를 만지려던 건 아니시죠?”

양팔로 다소곳하게 가슴을 가린 이찬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는데?”

“아니, 선생님 이거 아니죠. 선생님 설마 취향이 그런 쪽……. 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악!”

태경이 아프지 않을 만큼 이찬희의 팔뚝을 내리쳤다.

“이놈아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뭐 좀 실험해 보려고 그래.”

“그런 거라면 선생님 몸에 직접 하세요.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야! 찬희야? 그럼 네가 나한테 해 볼래? 잠깐만 참으면 돼! 이찬희!”

태경의 간곡한 부름에도 이찬희는 인사와 함께 빠르게 진료실을 나갔다.

“음! 뭐지? 꼬집은 건가? 아니면 그냥 단순 피부염?”

의자에 깊게 앉은 태경은 팔짱을 낀 채 김성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설마 군대 가혹행위 뭐 그런 거? 아닌가?”

몇 시간 전, 수술방에서 봤던 김성훈의 상체 상처가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 씨. 내가 괜히 예민한 건가……. 됐다.”

똑똑-

고개를 좌우로 짧게 흔들며 환자 자료를 보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하던 태경은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철컥-

“원장님 안녕하세요.”

드르륵-

안으로 들어온 상대를 보자 태경은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그가 밝은 표정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우리병원에서 오랫동안 청소를 맡고 있는 김 여사였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김 여사는 주방에 있는 오계순 다음으로 우리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었다.

“아닙니다. 지금 괜찮아요. 앉으세요. 여사님. 어디 아프세요?”

“아뇨. 아프긴요.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 몸땡이는 감사하게도 멀쩡하답니다.”

“건강하셔서 다행이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원장님께 드려야 할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저한테요?”

“네.”

“이거예요.”

김 여사는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책상 위로 내밀었다.

“아까 응급실 청소하다가 바닥에서 발견한 건데 그냥 버릴까 하다가 열어 봤거든요. 근데 뭔가 좀 이상해서요.”

몇 시간 전, 김성훈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가기 전 입원복으로 갈아입을 때 옷에 넣어 놨던 유서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 당시 의료진이 자신을 둘러싸고 왔다 갔다 하며 정신이 없었기에 김성훈은 유서를 쓴 종이가 떨어진 줄도 몰랐다.

그러다 몇 시간 뒤, 김 여사가 응급실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청소를 마치고 정리를 하던 김 여사는 뭔가 이상해서 종이를 열어 보고서야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태경을 찾아온 것이다.

“원장님께 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

김 여사의 말에 종이를 열던 태경은 깜짝 놀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유서. 누가 봐도 유서였다.

“여사님, 이 종이 혹시 어디에서 주웠는지 기억나세요?”

“네, 정확히 기억나죠. 3번 베드였어요.”

3번 베드라면 중환자실로 가기 전 김성훈이 있던 자리였다. 확실하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으셨죠?”

“그럼요. 늙은 사람들은 눈치랑 입단속은 기가 막히잖아요. 염려하지 마세요. 그럼 전 이만 나가 일 볼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철컥-

김 여사가 진료실로 나가고 태경의 시선이 손에 들린 종이로 향했다.

맨 윗줄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갈수록 태경의 동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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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니까.”

“근데 화장실 간 거 아니냐? 이병 놈 자리에 없는 거 갖고 뭘 그렇게 예민해.”

“예민하긴 시x 누가 예민해. 그냥 안 보이니까 그런 거지.”

“야! x발 혹시 이 새끼 간밤에 탈영한 거 아냐?”

“오! 그럼 개꿀. 크크. 근데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김성훈이 그럴 깡이냐 있겠냐? 그냥 화장실 갔겠지.”

“그냥 웃자고 한 소리다. 하긴 김성훈이라면 절대 그럴 일은 없지.”

사람이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드는 걱정이란 생각을 고철수와 박병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장난감이 없어 아쉬운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잠시 주목!”

두 사람이 김성훈의 행방을 궁금해할 즈음 생활반 분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려야 할 사항이 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병사들이 분대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집중했다.

“보면 알겠지만, 현재 성훈이가 자리에 없다.”

분대장이 김성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고철수와 박병덕은 눈을 마주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간밤에 최태식 대위님과 병원에 갔어. 나 역시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성훈이가 수술을 했다고 하더라.”

“예? 아니, 이정민 병장님, 방금 수술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분대장과 다른 병사의 문답을 듣고 있던 고철수와 박병덕의 얼굴 위로 순간 당황함이 스쳤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내 말이. 아니, 멀쩡하던 놈이 왜 갑자기 수술이야. 수술은.”

“그러게. 야! 혹시 성훈이 자식 왜 계속 배 아프다고 했잖아. 그거 때문인가?”

“모르지. 하! 아무튼 기분 찜찜하네.”

“그리고 고철수, 박병덕?”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던 두 사람은 별안간 자신들을 부르는 분대장 호령에 움찔하며 반응했다.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너희 둘, 이리 와 봐.”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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