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왜 괜찮은 척했어?
간호사의 친절한 설명이 계속 이어지던 그때 별안간 김성훈의 머릿속에 ‘유서’의 행방이 떠올랐다.
“저기 선생님?”
“네.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뭐 좀 물어보려고요.”
“네. 뭔데요?”
“제 기억으로는 중환자실 가기 전에 제가 응급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제 옷가지는 어디에 있는지 해서요.”
김성훈이 자신이 옷에 넣어 두었던 유서가 옷가지에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최태식 대위가 급하게 문을 열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분명히 군복 안쪽 주머니에 잘 쑤셔 넣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서 종이가 응급실 바닥에 떨어져 태경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아, 그때 잘 보관했다가 어머님에게 전달해 드렸어요.”
“어머니요?”
“네, 그날 수술한 저녁에 가족들이 전부 오셔서 계속 병원에 계셨어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계속 면회 시간에 어머님이 오셔서 환자분 걱정을 많이 하셨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불편한 곳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네…….”
어머니에게 전달했다는 간호사의 말에 김성훈은 행여 그 유서를 가족들이 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어차피 죽으면 가족들은 물론 부대 사람들에게까지 전부 알려질 유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유서의 내용을 다른 그 누구도 아직은 보지 않았으면 했다.
아직은…….
김성훈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술이 잘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어떡하면 죽을 수 있을까, 어떡하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이 상태로 또다시 군대로 돌아가 봤자 어차피 기다리는 건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삶에 미련 따윈 없었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김성훈에게 태경이 다가왔다.
“저 누군지 기억나요?”
“네, 제 수술을 해 주셨던 선생님이요.”
“맞아요. 수술은 잘됐어요. 기분은 좀 어때요?”
“잘 모르겠습니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없을 텐데 쉬어요.”
“네…….”
“아! 김성훈 환자?”
등을 보이며 돌아서던 태경이 다시 베드로 다가왔다.
“네?”
“힘들었을 텐데 버텨 줘서, 이겨내 줘서 고마워요.”
“…….”
무엇을 버텼고 무엇을 이겨냈다는 건지 주어가 빠진 말에 김성훈은 그 어떤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술이요. 워낙 위급한 경우였기 때문에 쉽지 않았는데 환자분이 잘 견뎌 줘서 의료진도 힘내서 수술할 수 있었어요.”
“아, 네.”
“그럼, 또 봅시다.”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태경을 보며 김성훈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다음 날,
김성훈은 면회를 온 엄마를 마주했다.
“성훈아?”
“엄마…….”
“내 새끼. 고생 많았지? 세상에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의식이 돌아온 아들을 마주한 이애숙의 표정은 안도감과 감사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공존했다.
“아니야. 엄마 나 괜찮아.”
그런데 김성훈의 표정은 이애숙과 달랐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의 얼굴이었는데 반가워 보이질 않았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질 않았다. 입만 억지로 거짓으로 웃고 있었다.
어머니를 본 게 싫어서가 아니었다. 나쁜 마음을 먹은 채로 엄마를 보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면회 시간에 맞춰 자는 척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우리 아들 살아 줘서 고마워.”
살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여전히 죽고 싶은 김성훈은 대답 대신 살짝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저기 성훈아?”
“응?”
“엄마가 물어볼 게 있는데…….”
마음이 진정된 이애숙은 아들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혹시 군대에서 누가 너 괴롭히거나 그런 일 있었어?”
그리고 이미 어머니가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 예상한 김성훈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런 거 없어.”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그랬으면 내가 벌써 집에 알렸지.”
이애숙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본 김성훈은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이 상황을 넘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면회 시간에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최태식 대위가 중환자실을 찾았다.
하루 한 번뿐인 면회 시간이 중요했지만, 가족들은 혹시나 한 마음에 면회를 양보했다.
최태식은 아직까지 가족들에게 군대 가혹행위를 알리지 않았고, 문제의 두 병사에게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김성훈의 발언이 가장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면회를 마친 후 가족에게도 알리고 그 후 고철수와 박병덕을 조사할 예정이었다.
“김성훈 이병, 오랜만이네.”
“아! 대위님.”
“일어나지 마. 누워있어.”
김성훈이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최태식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죄송합니다.”
“네가 왜 죄송해. 아픈데 진작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닙니다.”
“몸은 좀 어때?”
“의료진분들이 잘 돌봐주고 계셔서 지금은 괜찮습니다.”
최태식은 간단한 안부를 물은 뒤 오늘 찾아온 목적을 바로 말했다.
“실은 내가 오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 보통 부대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물어보는 절차니까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 주면 좋겠다. 혹시 생활반에서…….”
“대위님?”
질문이 채 시작도 되기 전에 김성훈이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게다가 최태식이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연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혹시 괴롭힘이나 가혹행위에 관해 물으시려는 거 맞습니까?”
“……!”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일 없었습니다.”
“김성훈 이병? 너 확실해?”
“예, 그렇습니다. 제가 워낙 조용한 성격에 내향적이라 그런지 어제 저희 어머니도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대위님께서 면회를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마 그 질문을 하시지 않을까 했는데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김성훈이 가족한테는 물론 최태식 대위에게도 사실을 숨기려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걱정하는 게 싫었고, 더 이상 군대와 관련된 사람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해 주신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김성훈의 말을 듣는 최태식은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했다.
‘얘 지금 뭐라는 거지?’
그럼 도대체 그 유서는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은 상황에 유서에 관해 물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럼 너 그 ㅇ…….”
그런데 바로 ‘유’자가 나오기도 전에 입을 닫아버렸다.
순간 삼 일 전, 태경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김성훈 환자는 이 문제를 부인할 겁니다. 그땐 대위님께서 일단 모른 척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른 척이요? 아니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괴롭힘을 당한 병사를 모른 척하라는 말씀입니까?’
‘황당하실 거 압니다. 그런데 계속 모른 척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김성훈 환자를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태경의 예상대로 김성훈이 부인하자 최태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태경과의 약속도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큰 수술까지 받은 김성훈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대위님, 저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알았다.”
“네, 또 뵙겠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조리 잘하고 또 보자.”
몇 시간 뒤, 최태식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태경은 진료가 한가해진 틈에 김성훈을 찾아왔다.
그사이 김성훈은 중환자실에서 1인 병실로 옮긴 상태였다.
원래 내일 오전에 병실을 이동하려고 했는데, 회복 상태가 좋아서 일찍 병실을 바꿀 수 있었다.
가족들은 내일 병실을 옮기는 거로 알고 있었기에 병실에는 김성훈 혼자 있었다.
태경은 그가 혼자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온 거였다.
철컥-
“아까 회진 때 보고 또 보네요.”
“네.”
“병실 옮겼는데 부모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일 오전에 오실 거라 괜찮습니다.”
“그래요. 불편한 곳 있으면 알려 줘요. 근데 환자분?”
“네?”
“좀 괜찮아요?”
“…….”
괜찮은지 묻는 말에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김성훈은 마음과 멘탈이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의식이 깨어나고 자신을 보는 사람마다 괜찮은지 물어보는 탓에 저 말 자체가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식이 깨어난 후 태경이 틈만 나면 중환자실을 찾아와서 저 질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도대체 괜찮다고 하는 사람에게 왜 자꾸 물어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안 괜찮았다.
괜찮을 리 없었다. 그러니 제발 저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주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김성훈 환자, 괜찮…….”
“아니요. 저 안 괜찮아요. 진짜 안 괜찮으니까 제발 그 말 좀 그만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왜요?”
“네!?”
“왜, 안 괜찮은데요?”
“하아!”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이 베드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
“뭐가요?”
“그 질문 일부러 하시는 거잖아요. 저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데요? 아! 수술 잘해서 살려 주셨으니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듣고 싶으신 거예요?”
김성훈의 표정과 말투에는 점점 짜증이 더해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됐어요?”
“성훈 씨? 아니다. 동생 같으니까 말 편하게 할게요. 성훈아 다시 한번 물을게. 너 괜찮니?”
“하! 시x 안 괜찮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 이제 됐습니까? 안 괜찮다고! 나 안 괜찮다고!!”
김성훈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늘 얌전한 애. 말수가 적고 조용한 해. 내성적인 애. 눈치를 보는 애. 그게 김성훈을 나타내는 수식어였다.
그래서였을까?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솔직하게 감정을 터트린 것이다.
철컥-
“저기, 선생님? 괜찮으세요?”
병동 스테이션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올라온 임정숙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노크 후 들어왔다.
“그럼요.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네.”
안심하라는 태경의 표정을 본 임정숙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문을 닫았다.
문이 확실하게 닫힌 걸 확인한 태경은 베드 근처에 있는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한껏 감정이 고조된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김성훈을 쳐다봤다.
한참 어린 친구에게 욕을 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대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태경은 김성훈이 내뱉은 욕설이 다른 누군가에게 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젊은 청년이 감정에 솔직할 수 있도록 태경은 지금까지 일부러 계속 그의 마음을 두드리고 노크한 거였다.
김성훈의 몸에 생긴 병은 염증이 심해 농이 차올라 수술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마음에 생긴 병은 그 염증이 터지지 않은 상태였다.
곪고 또 곪은 그 상태로 마음속에 응어리진 채 커지고 있었다.
태경은 마음속 고름이 김성훈을 잡아먹지 않도록 터트려 주고 싶었다.
안 그러면 정말로 저 아이가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혼자 담을 쌓고 포기한 성훈이를 잡아 주고 싶었다.
그저 유서를 발견했다고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을 진행한다면 결국 김성훈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고 달라져야 바꿀 수 있기에 태경은 그 부분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 봐. 너 안 괜찮잖아.”
태경은 의자를 베드 가까이 더 끌어당겨 앉으며 물었다.
“성훈아? 너 근데 왜 괜찮은 척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