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33화 (232/472)

233화. 특이한 의사

어렵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고 달라져야 바꿀 수 있기에 태경은 그 부분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 봐. 너 안 괜찮잖아.”

태경은 의자를 베드 가까이 더 끌어당겨 앉으며 물었다.

“성훈아? 너 근데 왜 괜찮은 척했어?”

“누가 살려 달라고 했어요? 전 살려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아픈 거 고쳐 달라고 한 적도 없다고요.”

“야! 인마 너 그래도 내가 너 살리려고 수술방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럼 서운하다. 응?”

“…….”

태경은 혹시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지만, 김성훈은 가만히 있었다.

“하긴!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성훈이 너, 처음 응급실 왔을 때 네 입으로 살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 맞지?”

“…….”

“그래서 이거 쓴 거야? 죽으려고?”

애써 태경의 말을 외면한 채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김성훈의 눈앞에 별안간 종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

놀란 동공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종이에 반응했다.

김성훈은 그 종이를 보자마자 자신이 찾던 유서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서, 선생님이 이걸 어떻게…….”

탁-

말을 하다만 김성훈이 유서를 뺏으려 했지만, 태경의 손이 더 빨랐다.

“주세요.”

“왜?”

“왜라니요. 선생님과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상관이 있고 없고는 내가 판단해. 이거 주면 어떻게 하려고?”

“선생님께 말씀드릴 이유 없어요.”

“그것도 맞긴 하지. 그럼 나도 너한테 돌려주든지 말든지 나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지? 너한테 말할 이유 없으니까. 그렇지?”

“모님…….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말아 주세요.”

“왜?”

“걱정 끼쳐 드리기 싫어서요.”

부모님에 관해 말을 하자 김성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부모님께 말씀 안 드리면 그러면 너 마음 고쳐먹을래?”

“아니요…….”

“그래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근데 너도 한 번쯤은 네 속에 있는 말 시원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어. 너 그러면 인마 속병 생겨!”

“선생님이 뭘 아시는데요? 예? 제가 그동안 얼마나 x같이 살았는지 알기나 하세요?”

김성훈은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꽉 막혀 있던 수도꼭지가 물을 쏟아 내듯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터트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빌었어요. 다음 날 아침 기상송이 울리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요. 전 더는 삶에 미련이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용기는 내 봤어? 힘들다고 주변에 이야기는 해 봤어?”

“시x 군대 놈들 다 똑같은데 네가 그딴 쓰레기 집단에 어떻게 제 사정을 말해요. 말하면 뭔가 달라져요. 네?”

“가족한테는? 널 목숨보다 아끼는 부모님한테는 말해 봤어? 너 그렇게 가고 나면 남은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 그래.”

“…….”

“그리고 네가 왜 죽어 죽기는! 진짜 잘못한 새끼들은 지금도 웃으면서 잘살고 있는데. 벌 받아야 할 놈들이 누군데 네가 왜 죽어. 어!”

“선생님같이 성공한 사람이 평생 찌질이로 살아온 내 마음을 아세요?  아무리 그래도 제 마음 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착한 척하지 마세요.”

“착한 척? 김성훈?”

순간 태경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너 진짜 죽는 게 뭔지 알아? 내 비밀 하나 말해 줄까?”

“……!”

“난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암 환자였어.”

태경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기 죽음의 관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죽다 살아난 그 미스터리한 일을 전부 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를 통해 성훈이의 마음이 움직이길 바랐다.

“나보고 그랬지? 성공한 삶이라고. 웃기지 마. 난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어.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기 전까지 매일 노예처럼 죽어라 일만 하다가 보기 좋게 쫓겨났어. 그러다가 암에 걸린 거고.”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김성훈의 날 선 표정이 미묘하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너처럼 다 포기하려 했어. 왜냐고? 삶의 희망이 안 보였거든. 근데 죽음을 기다릴수록 무섭더라. 생각해 보니까 죽으면 끝이잖아. 그리고 나도 성훈이 너처럼 날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거든.”

“선생님도요?”

“그럼. 뭐, 나라고 특별할 게 있나. 성훈이처럼 나도 똑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심지어 그 사람은 내가 불행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짓밟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어.”

태경은 고계득의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김성훈이 겪은 일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공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 이대로 죽기에는 억울하더라고. 막말로 죽으면 끝이잖아. 내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살았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 말고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거야.”

“…….”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살고 싶었어. 아직 젊은데,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렇게 내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치료받았지.”

고개를 숙이거나 벽을 보고 있던 김성훈의 고개가 어느새 조금씩 태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살고 싶다고 느낀 게 뭔 줄 알아?”

“……뭔데요?”

“복수심.”

“보, 복수심이요?”

“어. 뭔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한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어떻게 하셨는데요?”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했어. 나는 안 될 거라고 속단하며 내가 불행하기를 바라는 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지금 이 병원에 원장으로 일하게 된 거고. 왜 너무 뻔한 결말이니?”

“조금은요. 결국 선생님은 힘들게 했던 사람은 여전히 잘살고 있는 거잖아요.”

“날 괴롭힌 사람이 잘살고 있다고 누가 그래? 그 나쁜 놈 검찰에 넘어가서 재판받고 있어. 사건 담당자분이 그러는데 실형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하더라. 이래도 뻔한 결말이야?”

“아니요. 잘됐네요.”

“성훈아? 세상이 불공평한 거 같지?”

베드 끝에 걸터앉은 태경은 김성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근데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그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공평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거고. 그런데 네가 겪지 않아도 되는 불공평함이 있다면 그건 바로잡으면 돼.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나는 네가 그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을 만큼 힘들겠지만, 너 절대 혼자 아니야.”

“……!”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죽고 싶은 거야? 아직도 마음이 확고해?”

찰나의 정적이 병실 안의 고요함을 선사하고 시계 초침만이 두 사람 사이에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천천히.

김성훈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 사실……. 죽고 싶지 않아요.”

가슴 가장 깊이 숨겨 놨던 김성훈이 진짜 속마음을 고백했다.

“죽는 거 두렵고 무서워요.”

꼭 잡은 손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사실 김성훈은 무서웠다.

그동안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무섭고 두려움이 앞서 그만두고 싶었다. 마음속에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수록 그 뒤에는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뒤따라왔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살려 달라는 말을 할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이대로 모든 게 끝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생활반으로 복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태식 대위에게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포기를 하며 무조건 도망치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기대 없이 온 병원이었다.

그런데 전혀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수술해 준 의사에게 위로를 받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도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데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괜찮아. 성훈아.”

태경은 그런 김성훈을 환자가 아닌 친동생을 대하는 형의 마음으로 안아 주며 위로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잘 견뎌 줘서 고마워. 포기하지 않고 살아 준 것도 고맙고.”

“흐흑! 흑흑!”

김성훈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껏 울었다.

“참지 말고 실컷 울어. 그리고 성훈아, 네가 꼭 알았으면 하는 게 있어. 네가 잘못된 사람이라서 아니면 뭔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그놈들이 널 괴롭힌 게 아니야.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이상하지도 않아.”

“흐흑……. 흑!”

“이상한 건 그놈들이지 네가 아니야. 그러니까 절대 너 스스로 너를 괴롭히지 마. 넌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네. 선생님…….”

그 뒤, 김성훈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고 태경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 줬다. 그렇게 눈이 벌겋게 부어오른 뒤에야 복잡했던 김성훈의 마음이 진정됐다.

“자! 물 좀 마시고. 괜찮아?”

“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긴. 그 인사는 내가 해야지. 내 말 잘 들어 줘서 고맙다. 성훈아, 일단 가족들에게는 알리는 게 좋을 거 같아.”

“네, 안 그래도 내일 부모님 오시면 말씀드리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리고 사실 최태식 대위님도 이 사건을 알고 있어.”

“대위님이 알고 계시다고요?”

태경은 최태식과 나눴던 대화를 설명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줬다.

“최 대위님 좋은 분이야. 너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매일 병원도 오고 네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분 믿어도 돼. 네가 나를 믿어 준 것처럼 그분도 믿어 줬으면 좋겠다.”

“예, 그럴게요.”

“자! 그럼 마지막 하나가 남았는데, 이 유서는 어떻게 할까?”

태경은 가운 주머니에 넣었던 종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직도 필요하니? 이거 내가 버릴까?”

“아니요.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아직은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요. 대위님께 보여 드리면서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 잘 생각했다.”

태경은 한결 편안해진 김성훈에게 유서를 쓴 종이를 건넸다.

“성훈아?”

“네? 선생님.”

“용기 내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저기 선생님?”

의자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가려는 태경을 김성훈이 불러 세웠다.

“어, 왜? 뭐 할 말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그래서 지금은요……?”

“지금은이라니. 무슨 소리야.”

“몸이요. 선생님 몸은 이제 괜찮은 건가 해서요. 괜찮으세요?”

김성훈은 내심 아까부터 태경의 몸 상태가 은근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됐다.

“당연하지. 완전 건강해.”

“다행이네요.”

“성훈이도 얼른 회복하자.”

“그런데요. 선생님 좀 진짜로 특이한 의사인 거 아세요?”

“특이한 의사?”

“네. 선생님 같은 의사 처음 봐서요. 무슨 의사가 이렇게까지 환자들 일에 신경 써요.”

“당연히 내 환자 일이니까 신경 써야지. 너 속병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괜히 몸까지 덧난다.”

태경의 말에 김성훈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나 같은 의사도 있어야 환자들이 뭔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 마음이 편하면 몸도 더 편해지고 좋잖아. 안 그래?”

“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거 같네요.”

“쉬고 있어.”

태경이 병실을 나간 뒤, 김성훈은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부탁한 뒤 최태식 대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태식입니다.

“충성! 최태식 대위님, 저 이병 김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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