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50바퀴
태경이 병실을 나간 뒤, 김성훈은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부탁한 뒤 최태식 대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태식입니다.
“충성! 최태식 대위님, 저 이병 김성훈입니다.”
-김 이병?
“예, 대위님.”
-아니, 너 무슨 일이야? 어디 몸 안 좋은 거야?
갑자기 걸려 온 김성훈 전화에 최태식은 걱정하며 물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뭔데?
“대위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래, 뭔데 말해 봐.
“대위님 아까 면회 오셨을 때 저한테 하셨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다 기억해.
“다 맞습니다.”
-뭐, 뭐라고?
“사실 저 그동안 생활반에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너, 그거 진짜야?
최태식은 다시 한번 물었다. 분명 오늘 오전에 면회를 하러 가서 물어봤을 때만 해도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물론 태경이 말해 줬던 몸의 상처와 유서 그리고 짐작하던 모든 것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라던 사람이 반나절 만에 달라진 모습을 보이니 놀랍고 어안이 벙벙했다.
-김 이병?
“네, 대위님.”
-면회하면서 내가 물어봤을 때 너 아니라고 했었지?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번복한 거야? 너도 알겠지만 이런 문제가 가벼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나도 확실한 너의 의사를 알아야 해.
부대 내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고 심각한 사안이기에 최태식은 확실하게 물어보고 판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살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었고, 특히나 군대에서 생긴 일이라서 대위님께도 말씀드리기 겁나서 그랬습니다. 그냥 저 혼자 모든 걸 끌어안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부당함을 당한 저 자신이 주저앉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주춤하는 일은 없었다.
김성훈은 예전보다 당당한 말투로 자기 생각을 차분하고 똑 부러지게 전달했다.
“나는 잘못한 사람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내가 용기를 내고 당당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야. 넌 죄송할 것 없어. 그리고 잘 생각했다. 이제 내가 물어볼게. 널 괴롭힌 놈들 그 새끼들 누구야?
“맞선임인 고철수 일병과 박병덕 일병입니다. 저는 그 두 사람으로부터 수 개월간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김성훈은 통화하면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서 하나하나 전부 자세히 설명했다.
최태식은 사전 동의를 얻어 녹음하며 그 모든 말을 전부 경청했다.
‘미친 새끼들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김성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이상입니다. 제가 직접 쓴 자필 유서와 제 상체 가슴 부근에 있는 상처 사진도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몸 회복에 힘써야 하는데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 진작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것도 미안하고.
어린 신병이 혼자 겪은 일에 대해 최태식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며 사과를 전했다.
“아닙니다. 대위님? 저 이번 일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군 문제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서라도 그들이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할 생각입니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모두 옳고 꼭 잘될 거라고 나 역시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 문제를 알았으니 네가 힘들었던 만큼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할게. 나 믿어.
“대위님 감사합니다.”
-아니야. 일단 여기 일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몸부터 챙겨.
“네. 알겠습니다.”
최태식과 통화를 마친 김성훈은 뭔가 한결 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아직 이 일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상관에게 알렸다는 본인이 어쩐지 대견하기까지 했다.
* * *
백석 부대-
김성훈과 전화를 끊은 최태식은 상부에 올릴 보고서를 빠르게 작성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병사들이 이용하는 화장실로 향했다.
철컥-
“충성!”
화장실을 사용하던 병사들이 놀라서 인사를 건넸지만, 최태식은 반응하지 않고 김성훈이 있던 가장 안쪽 화장실 칸으로 곧장 들어갔다.
‘제가 있던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어보시면 그 안에 면도칼이 있을 겁니다. 그때 제가 당황해서 버릴 곳을 찾다가 거기에 숨겨 뒀습니다.’
휴대폰 불빛을 비춰 그 안을 들여다보자 김성훈의 말대로 면도칼이 보였다.
“하! 진짜 있네.”
최태식은 화가 치밀었다. 가끔 꼭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답답하고 속상했다.
청춘의 가장 예민한 시기에 나라를 위해 군대 온 전우끼리 도대체 왜 이런 짓들을 하고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긴, x발! 그딴 놈들 머리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화를 억누르던 최태식이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이 자유 시간임을 확인한 그는 화장실을 나와 김성훈이 지낸 생활반으로 향했다.
쾅-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생활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충성!”
“충성!”
순간 깜짝 놀란 생활반 병사들이 순간 멈칫했다. 빠르게 경례를 했다.
“바로!”
병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지금 최태식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눈빛에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지는 게 누구 하나라도 잘못 걸리면 아작이 날 것만 같았다.
“고철수, 박병덕 앞으로.”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총알같이 앞으로 나오면 관등 성명을 댔다.
“고철수 그리고 박병덕.”
“일병 고철…….”
“입 닫아.”
낮은 음성이 서늘하게 내리깔자 두 사람은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화가 난 최태식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본인들에게 직접 화난 모습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너희 두 사람이 솔직하게 답해 주길 바란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고철수, 박병덕 너희 나한테 할 말 없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
화장실에서 분노를 삼키며 오는 동안 그래도 문제의 병사들이 양심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분명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게 맞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이 스스로 자백할 거로 생각했고 그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치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들의 뻔뻔한 표정에 울화가 치밀었다.
“시간 5분 준다.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뭘 멀뚱히 보고만 있어. 이 새끼들아!”
“시, 실시!”
정확히 5분이 지나고 고철수와 박병덕은 30kg 넘는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으로 나왔다.
최태식은 본격적인 조사가 들어가기 전에 이 두 사람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김성훈이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도와주고 함께해야 할 후임병을 갖은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는 게 화나서 견딜 수 없었다.
결코 김성훈이 느낀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이 두 사람이 그런 마음을 느끼며 잘못을 깨닫기 바랐다.
“지금부터 연병장을 열 바퀴 돌고 온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만약 뛰는 동안 잡담을 하다가 걸리면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실시!”
“실시!”
고철수와 박병덕은 그대로 연병장을 돌았다.
“야!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그걸 지금 내가 어떻게 알아.”
두 사람은 최태식에게 잘 보이지 않은 코너를 돌면서 작게 속삭였다.
“하아!”
“후우!”
“바로!”
열 바퀴는 다 돌고 온 두 사람이 최태식 앞에 섰다.
“다시 묻겠다. 너희 두 사람이 현재 왜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뛰는지 알겠나?”
“모, 모르겠습니다.”
“30바퀴 뛴다. 실시!”
“시, 실시!”
모른다는 말에 이번에는 무려 30바퀴를 돌게 했다.
“하! 진짜 죽겠다.”
30kg 넘는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뛰는 건 생각보다 상당히 고욕이었다.
한 바퀴 한 바퀴 돌수록 속도는 떨어지고 어깨도 아려 왔다. 입은 바짝바짝 말라 오고 어느새 두 사람은 말이 없어졌다.
가까스로 30바퀴를 전부 돈 두 사람이 다시 제자리에 멈췄다.
“고철수, 박병덕?”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다시 묻는다. 왜 뛰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
“지금부터 50바퀴를 뛴다. 실시!”
“예? 대, 대위님?”
“히…… 힘듭니다.”
50바퀴라는 소리에 두 사람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호소했다.
“힘들어?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진짜 힘든 게 뭔 줄 알아? 지금 어디서 힘들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어! 좋은 말할 때 빨리 뛰어.”
최태식의 무서운 호통에 고철수와 박병덕은 다시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하아!”
“아!”
두 사람은 뛰는 게 아니라 거의 걷다시피 했다. 너무 힘이 들었다.
요령이 아니라 진짜 힘들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똑바로 안 뛰어!!”
그때 뒤에서 두 사람을 향해 소리치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철수와 박병덕은 죽도록 힘들어서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팔다리가 파르르 떨리고 근육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이 뛰고 걸어서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을 턱 끝까지 차올랐고, 어깨는 주저앉는 것만 같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완전군장을 한 번이라도 해 본 군인이라면 지금 고철수와 박병덕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 잘못했습니다.”
“뭘?”
제자리를 찾은 두 사람은 다짜고짜 잘못을 빌었고 최태식은 냉정하리만치 차분하게 물었다.
“너희들이 뭘 잘못했는지 알긴 해?”
“예, 그렇습니다. 김성훈 이병을 괴롭……. 흑! 괴롭혔습니다.”
“역겨우니까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김성훈 이병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무시했습니다.”
“저도 고철수 이병과 함께 괴롭힘에 가담했습니다.”
“이 새끼들아, 너희들 이게 뭔 줄 알아?”
최태식은 군복 주머니에서 볼펜 한 개를 꺼내 보였다.
이 볼펜은 몇 시간 전 김성훈이 알려 준 세탁실 한쪽에서 찾은 볼펜이었다.
심지가 나오는 부분에 벌건 피가 말라붙어 있는 볼펜은 두 사람이 김성훈을 괴롭힐 때 사용한 것이었다.
“서, 성훈이……. 저희가 성훈이를 괴롭힐 때 사용했던 겁니다.”
모든 근육이 끊어질 거 같고 서 있을 힘조차 없는 두 사람은 최태식이 묻는 말에 술술 말했다.
여기서 버티다가는 진짜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야! 너희들이 사람이야? 어! 어떻게 감싸고 서로 함께해야 할 전우를 그딴 쓰레기만도 못하게 괴롭히고 있어!”
“죄송…… 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지금 힘들어 죽을 거 같지? 너희 어깨에 메고 있는 완전군장의 무게 때문에 몸이 부서질 거 같지? 이 새끼들아 김성훈은 날마다 그보다 더한 고통의 무게를 견뎠어. 왜 괴롭혔어?”
“그냥…….”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없었습니다.”
“흑흑! 죄송합니다.”
고철수와 박병덕은 다른 말 없이 계속해서 잘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군대나 사회 또는 학교에서도 그렇듯이 이들 역시 김성훈을 괴롭힘에 대한 이유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들보다 약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라 아무 생각 없이 저런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죄책감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로 여겼다.
최태식은 단순히 상부에 보고를 하는 거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간부로서 부대원을 지키지 못한 마음과 이런 썩어빠진 병사들에게 이렇게 얼차려를 통해서나마 고통을 느끼고 잘못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너희는 진짜 잘못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시끄러우니까 더러운 입 닫아! 닫고 내 말 똑똑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