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징계위원회 결정
“정말 잘못했습니다.”
“너희는 진짜 잘못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시끄러우니까 더러운 입 닫아! 닫고 내 말 똑똑히 들어.”
최태식은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두 사람에게 자비 없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만약 너희가 그 어떤 외부의 힘을 빌려 빠져나간다고 한다면, 나는 김성훈 이병을 도와 어떡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가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고철수 박병덕!”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너희가 사람이라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아무 소리 말고 죗값 달게 받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들어가.”
두 사람은 거지 같은 차림으로 일단 생활반으로 들어갔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그렇게 후임병에게 잘해 주라고 했잖아?”
세면장에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생활반으로 복귀한 고철수와 박병덕은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이 씻는 사이 최태식에게 모든 일의 경위를 들은 분대장은 화를 냈다.
분대장은 대학 전공도 체육 쪽이어서 그런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자유 시간에는 다른 생활반 병사들과 운동으로 심신 단련을 하러 나갔다.
고철수와 박병덕에게도 운동을 권했지만, 자신들은 운동을 싫어한다며 따라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김성훈을 포함한 세 사람이 자유 시간에 생활반에 함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분대장과 다른 병사들은 김성훈이 이 두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이게 잘해 주는 거야? 어! 고철수, 박병덕?”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모든 기력이 소진한 두 사람은 지친 목소리로 힘겹게 관등 성명을 댔다.
“운동 안 한다고 내가 니들한테 싫은 말 한마디라도 한 적 있어? 생활반 잘 지키고 후임 관리나 잘하라고 내버려 뒀더니, 그사이에 일병들이 작당하고 막내를 괴롭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뭐가 아니고 뭐가 죄송한데. 죄송할 일을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등신이냐? 요즘 사회가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이딴 짓을 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야! 너 내가 이러면 좋아?”
분대장은 검지로 고철수와 박병덕의 이마와 가슴 신체 부위를 기분 나쁘게 찌르며 비꼬았다.
“새끼야 좋으냐고?”
“아, 아닙니다.”
“어쭈! 똑바로 안 서?”
이미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두 사람은 가볍게 찌르는 힘에도 자꾸만 다리가 풀렸다. 뒤로 밀리는 두 사람에게 분대장은 날카롭게 말했다.
“고철수 박병덕?”
“일병 고철수.”
“일병 박병덕.”
“저쪽 가서 너희들이 한 짓거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반성해. 장난으로 반성하지 말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반성하라고.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분대장 역시 두 사람은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바퀴를 뛰었다는 것도 알고 지금 당장 쓰러질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 마음이 지금 연병장을 뛰었다고 힘들다고 해서 아마 바로 반성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 둘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다.
어쨌든 분대장도 생활반에서 가장 높은 선임이었기에 이번 일에 마음이 아팠다.
* * *
다음 날, 우리병원-
“뭐라고!”
“그, 그게……. 사실이야?”
병실로 다 함께 면회 온 가족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얼어붙었다.
“네……. 전부 사실이에요.”
김성훈이 가족들에게 군대 가혹행위에 대해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너 그럼 맹장 이렇게 녹을 때까지 있던 것도 그 새끼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거네. 맞지?”
“사이코 놈들!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성훈아?”
“네, 아버지.”
격분하는 딸들 사이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오훈이 아들에게로 다가가 두 손을 움켜잡았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돼서 그렇게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네가 잘 지내는 줄로 알고…….”
김오훈은 목이 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에요. 아버지. 그런 말 마세요. 제가 말씀 안 드렸으니까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엄마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애숙 역시 눈물을 머금으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성훈아?”
“내 동생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해 동생아.”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세 명의 누나들까지 모두 김성훈을 감싸 안았다.
온 가족들이 따뜻하게 안아 주며 아들을, 동생을 응원했다.
“저, 이제 괜찮아요.”
태경의 도움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김성훈은 오히려 가족들을 걱정하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기까지 했다.
가족들이 괜히 자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까 봐 미안했다.
“이제 걱정하지 마라.”
한바탕 울음바다가 됐던 병실에서 서서히 울음소리가 그쳤다. 가족들은 속상한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가 알았으니까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그럼. 아빠 말 들었지? 엄마가 변호사도 선임할게. 내 새끼들 건드는 사람은 엄마가 가만 안 둬.”
“잘됐네. 우리 회사 과장님 친구분이 군대 전문 변호사인데 내가 물어볼게.”
“내가 예전에 성훈이 입대할 때 한 말 기억나? 군대에서 이런 일은 무조건 공론화시켜야 해.”
“그건 둘째 언니 말이 맞아. 나랑 언니가 온라인에 싹 다 글 올리고 뉴스에 제보할게.”
“그래, 막내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아주 그냥 싹 다 개망신을 줘 버려야 해. 어디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미친놈들 어디 전국적으로 얼굴 팔리고 신상 짝 퍼져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
“그래, 좋다. 지금 말한 대로 하면 될 거 같아.”
가족들은 저마다 돌아가며 내놓은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잠시만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던 김성훈이 가족들 틈에 끼어들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랑 누나들이 한 말 전부 틀린 말 아니에요. 그런데 일단 조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다려 달라니.”
“그래, 성훈아 너 그 미친놈들 가만히 두려는 거야? 네가 왜?”
“큰누나. 그게 아니야. 실은 어제 대위님에게 제가 겪은 모든 일들 말씀드리고 오늘 오전에도 출근 전에 오셔서 저랑 말씀 나누고 부대로 가셨어요.”
“군대에서 그 꼴을 당했는데 어떻게 군대 사람을 믿어!”
이애숙이 목소리를 높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멀쩡한 아들이 군대 가서 아픈 것도 모자라 심한 괴롭힘을 당했는데 어떤 부모가 군대를 또 믿고 싶겠는가?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도 그랬어요. 근데 대위님은 좀 달라요. 진정성 있는 진짜 군인이에요. 아까 말했던 사항들은 군대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거 같아요.”
순간 가족들은 김성훈이 어딘가 묘하게 달라진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분명 말도 못 하게 힘든 상황을 겪었을 텐데 이상하게 김성훈이 뭔가 어른스러워진 기분이었다.
“동생아. 너 괜찮은 거 맞지?”
“그럼. 누나 괜찮지. 사실 나도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이제 너무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오늘 아마 부대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릴 거예요.”
“그래?”
“네. 그러니까 일단 기다려 보려고요.”
“그래, 알았다.”
가족들은 당장이라도 가서 나쁜 놈들을 패고 싶었지만, 김성훈의 의견을 존중하고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 * *
그날 오후-
최태식을 포함한 부대 간부 몇몇이 모여 징계위원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전날, 생활반에서 진술서를 쓴 고철수와 박병덕은 심각하게 돌아가는 사태에 동태 눈깔이 된 채 벌벌 떨며 앉아 있었다.
“다들 전날 진술서를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두 사람이 후임인 김성훈 이병에게 행한 가혹행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항들이 아닙니다.”
“그래, 그건 최 대위 말이 맞아.”
간부들은 이미 최 대위가 병원에서 핸드폰으로 찍어 온 김성훈의 영상과 자필 진술서 그리고 유서를 확인한 상태였다.
그리고 문제의 두 사람이 쓴 진술서 역시 모두 읽은 상태였다.
당연히 당한 사람 입장인 김성훈의 진술서가 훨씬 디테일했지만, 고철수와 박병덕이 쓴 진술서와 대부분 일치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구멍은 그저, 최대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야! 우리 어떡하냐?’
‘뭘 어떡해. 막말로 너나 내가 집안에 빽이 있어 아니면 돈이 많아. 그냥 무조건 싹싹 빌고 잘못했다고 해야지.’
‘징계 먹겠지?’
‘당연하지.’
‘철수야, 우리 설마 군사 경찰한테 끌려가는 거 아니겠지?’
‘서, 설마? 내가 예전에 알아본 건데 우리 부대는 아직 가혹행위 크게 터진 적이 없어서 부대 오점 남기는 걸 대령님이 싫어하신다고 했어.’
‘그럼 일단 군기교육대겠네?’
‘그렇겠지. 하! 나도 피가 마르는 거 갔다.’
‘군기교육대 갔다 오면 군 생활 꼬이는데.’
고철수와 박병덕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잘못하면 갔던 영창이 없어지고 군기교육대가 생겼다. 보통 부대 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정해지는 징계는 크게 군기교육대, 감봉, 휴가 단축, 근신으로 나뉘게 된다.
가장 큰 잘못을 했을 때 군기교육대로 가게 되며 최대가 15일 정도이다.
당연히 그곳을 갔다 왔다고 해도 군 생활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무 일자도 늘어난다.
예전의 영창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반성문을 쓰고 일종의 정신 교육을 받는 것과 비슷한 곳이다.
그러고 나서 부대로 돌아오면 바로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된다. 이때 타 부대로 가면 안 좋은 소문이 퍼져 남은 군 생활이 힘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간부들의 회의를 들으며 뻔뻔하게도 제발 군기교육대만 아니길 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럼 징계 여부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임으로서 후임병인 김성훈 이병에게 가혹행위를 한 고철수, 박병덕 일병은 군기교육대로 생각했으나…….”
가장 심한 징계인 군기교육대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두 사람은 끝나지 않은 간부의 말에 갑자기 싸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해자인 김성훈 이병이 당한 폭력과 성적 수치심 그리고 자칫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든 것까지 두 사람의 죄질이 매우 지독하므로, 이 사건을 군사 경찰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
“……!”
군사 경찰이란 말에 고철수와 박병덕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왔다.
군사 경찰로 사건이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일단 그쪽으로 사건이 넘어가면 군사 경찰의 조사 후 군검찰로 송치된다.
그리고 군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되는데, 군법이 무서운 이유는 일반 형법과 달리 벌금형이 없고 실형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이 개정되어 가혹행위에 대해 처벌이 더 강해졌다.
최종적으로 김성훈에게 행한 폭행과 가혹행위가 재판에서 모두 인정된다면 7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을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한마디로 고철수와 박병덕의 인생은 똥통에 빠진 벌레가 됐다는 말이었다.
“자, 자, 잠시만요.”
“자,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야, 이 새끼들아!”
두 사람은 사색이 돼서 손을 싹싹 빌었지만, 오히려 간부의 무거운 질타만 돌아왔다.
“너희 때문에 한 사람이 몸도 마음도 다 찢겨서 죽을 뻔했어. 알아! 어디 감히 군대에 들어와서 전우를 괴롭히고 있어?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아 죄를 지었으면 죗값 치러.”
사실 군사 경찰로 사건이 넘어가게 된 것은 최태식 덕분이었다. 고철수와 박병덕의 말대로 부대에서는 이 사건을 군기교육대 징계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성훈과 약속한 최태식은 자신보다 높은 간부들을 찾아가 군대가 달라져야 한다며 설득했다.
‘군대가 달라져야 합니다.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한 병사가 나오지 않아야 하고, 이런 일일수록 피해자인 병사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 줘야 합니다.’
결국, 이성적이고 끈질긴 최태식의 설득의 간부들도 마음을 돌렸다.
“최 대위?”
“대위 최태식.”
“자네가 책임지고 군사 경찰에 연락해서 사건 넘기고 내일 와서 이 새끼들 데려가라고 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간부의 말에 최태식은 확실하게 답하며 징계위원회가 마무리되었다.
“너희는 군복 입을 자격도 없어. 이 쓰레기 놈들아.”
간부의 거친 음성과 함께 고철수와 박병덕은 당장 내일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채 회의실 밖으로 끌려나갔다.
앞으로 두 사람은 군사 경찰의 강한 조사와 긴 재판을 거쳐 실형을 선고받을 것이 확실시된 것이다.
최태식은 김성훈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간부로서 군대 안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병사들을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