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최고의 복수
그날 오후, 군사 경찰에게 사건을 알린 최태식은 퇴근 후 바로 우리병원으로 향했다.
김성훈에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몸은 좀 어때?”
“대위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까 부대에서 연락받았지?”
“예, 그렇습니다.”
징계위원회가 끝나고 난 뒤, 부대에서 연락을 받은 김성훈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군사 경찰로 넘어가게 됐어.”
사실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결과가 잘 나올까 싶었다.
당연히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합당한 결과를 나오길 바라고 바랐다. 군기교육대보다 더 큰 징계를 원했지만, 군대에서 예상과 빗나간 일이 많기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군대 전문 변호사를 선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철수와 박병덕이 군사 경찰로 넘어가 재판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성훈과 가족들은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론 앞으로 수사 과정이나 재판 결과까지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군대에서 이 문제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대위님께서 많이 애써 주셨다는 말 들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보다 김성훈?”
“이병 김성훈.”
“너 정말 괜찮겠어?”
“예, 대위님. 괜찮습니다.”
“나는 네가 혹시나 무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까부터 최태식 대위는 처음 병실을 들어왔을 때보다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는 최태식이 병원에 혼자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철수와 박병덕과 함께 병원에 온 거였다. 현재 문제의 두 사람은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서 부대 사람과 대기 중이었다.
징계위원회가 끝나고 대대장은 김성훈과 그의 부모님과 돌아가며 통화를 했었다.
그때 가족들은 사건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했고, 김성훈 역시 원하는 걸 이야기했다.
‘전,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김성훈이 원한 건 사과였다.
처음 가족들은 왜 뭐 때문에 그 나쁜 놈들의 사과를 받는지, 하지 말라고 했다.
법의 심판을 받고 그에 따른 결과만 보자고 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본 당사자인 김성훈의 의지는 확고했다.
‘성훈아, 뭐 하러 그놈들을 보려고?’
‘그래, 너 힘들게 하고 너 아프게 만든 이상한 미친놈들인데 왜? 하지 마. 그냥 넘어가. 응?’
‘그냥 이대로 넘어가기 싫어서요.’
하나같이 반대하는 가족들을 향해 김성훈은 자기 생각을 전했다.
‘법의 심판을 받는 것과 별개로 그 두 사람에게 제가 지기 싫어서요.’
말 그대로였다. 부대에서도 최태식 대위도 가족들도 가해자인 고철수와 박병덕을 왜 보려는 거냐고 물었다. 굳이 힘든 기억을 안긴 사람들을 왜 마주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김성훈의 생각은 달랐다. 저들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다.
물론 그 사과라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사과일 확률이 더 높았다.
그래도 받고 싶었다.
그 괴물 같은 고철수 박병덕의 입에서 ‘미안해’라는 사과가 받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잘못한 거라고. 누구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잘못한 만큼 벌도 받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마음속에 응어리를 풀 수 있고, 이번 일이 인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숨고 싶지도, 없던 일로 기억 속에 남겨 두고 싶지도 않았다. 당당하게 마주해서 깨부수고 싶었다.
이런 일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때 힘들었던 나에게 지금 달라진 내가 알려 주고 싶었다.
김성훈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어떻게 해야 자신이 앞으로 이 일을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한순간의 치기나 분노로 솟구친 감정이 아니었다.
결론은 고철수 박병덕의 사과였다. 그렇게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김성훈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물론입니다. 대위님께서 절 걱정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거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위님? 제가 그 두 사람을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그래, 알았다. 지금 올라오라고 할게.”
“예.”
철컥-
잠시 뒤, 5분 정도 지나자 고철수와 박병덕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비해 최태식 대위로 함께 자리했다.
“고철수, 박병덕?”
“이, 일병 고철수.”
“일병, 바 박병덕.”
두 사람은 모습은 마치 도살장의 끌려온 소와 같았다. 몸은 축 늘어져 있었으며 고개를 땅을 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군사 경찰에 끌려갈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정신은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너희 둘, 김성훈 이병한테 할 말 없어?”
“이, 있습니다.”
“어버버버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예, 알겠습니다.”
“서, 성훈아 미안하다.”
“나도, 정말 미…….”
“왜 그러셨습니까?”
고철수와 박병덕이 쭈뼛쭈뼛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사과를 전하던 그때 김성훈이 그들의 말허리를 잘랐다.
“제가 고철수 일병님과 박병덕 일병님께 뭔가 잘못한 부분이 있거나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 한 적이 있었습니까?”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성훈이 넌 우리가 시킨 일 잘못한 적 없었어.”
“그럼,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그, 그냥…….”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면 답니까? 네? 그냥 이유 없이 괴롭힌 겁니까? 그래요?”
“…….”
“내가 당신들 때문에 죽으려는 마음마저 먹었어. 당신들이 나를 갉아먹어서 내 몸도 마음도 다 주저앉았었다고. 그런데 고작 그냥이라고? 아무 이유가 없다고? 당신들은 쓰레기야!”
“미안해! 흑! 정말 미안하다.”
고철수와 박병덕은 조금씩 눈물을 보였다.
부대에서 병원으로 오는 동안 그동안 김성훈이 얼마나 힘들었고, 어떤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 수술을 받았는지 전부 들었다.
그런데 사실 큰 실감이 나질 않았다.
김성훈의 상태보다 당장 내일 있을 군사 경찰에게 끌려갈 일이 더 큰 걱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김성훈의 상태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래도 이들도 사람인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죽을 고비를 넘겨 수술했다는 말이 절로 실감 났다.
며칠 사이에 본 김성훈은 매우 핼쑥해져 있었다.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일까, 순간 모든 게 자신들 때문인 거 같았다.
‘너희들이 사람이야! 어떻게 같은 군인끼리 그럴 수가 있어? 어!’
‘천벌을 받을 놈들아!!’
병실 앞에서 김성훈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들었던 소리와 당장이라도 때릴 듯 매섭게 노려봤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미안해, 성훈아 진짜 미안하다. 그냥 처음에는 아무 감정 없이 장난이었어. 네가 너무 착해서 싫다는 말도 안 하고 그래서 재미있어서 점점 더 장난이 심해졌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당신들은 미안하다는 말이 참 쉽습니다. 진짜 미안하기는 한 겁니까?”
김성훈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그토록 무서워서 벌벌 떨던 두 사람은 더는 없었다. 특히나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거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니 그 꼴이 우스웠다.
거대한 거인처럼 보이던 두 괴물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들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서, 성훈아……. 염치없지만, 용서해 줘.”
“미안해. 우리가 미안하다.”
“아니, 나는 고철수, 박병덕 당신들 그렇게 쉽게 용서할 생각 없습니다. 난 두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
“……!”
복수라는 말을 듣자 고철수와 박병덕은 움찔하며 놀랐다. 게다가 병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느낀 거지만, 그동안 자신들의 기에 눌린 김성훈의 모습은 더는 없었다.
항상 착하고 순해 빠진,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복수한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들려온 김성훈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너희 두 사람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진짜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나보고 그랬지? 아무것도 못 하는 루저 새끼라고! 틀렸어. 진짜 루저는 고철수 박병덕 너희들이야.
너희가 긴 재판을 받고 구치소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남은 군 생활도 씩씩하게 받을 거야. 그리고 멋지게 제대하고 열심히 학교 다녀서 너희들과 다른 좋은 직장에 들어가 멋지게 살 거야.
평생 내 생각을 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그때 우리가 김성훈을 괴롭히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으로 교도소에 있지도 않을 텐데 라는 후회가 들 정도로 열심히 살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니까.”
“흑! 흐흑!”
“잘못했어. 용서해 줘!”
이제야 눈앞에 닥친 현실이 피부로 와닿은 두 사람은 전보다 더 눈물을 흘리며 때늦은 사과만 되풀이했다.
자기들이 재미 삼아 저지른 일로 인해 본인들의 인생이 얼마나 시궁창으로 빠졌는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앞으로 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 바르게 살 거야. 죽고 싶었던 그 마음 그대로 더 행복해질 거야.”
“정말……. 미안해.”
“그럼, 고철수 일병님과 박병덕 일병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군 생활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충성! 안녕히 가십시오.”
“서, 성훈아?”
“김성훈?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대위님 전 할 말 다 했습니다.”
“알았다. 두 사람 데리고 얼른 부대로 복귀해.”
“예, 대위님. 알겠습니다.”
철컥-
고철수와 박병덕은 마지막까지 찌질한 모습으로 병실에서 끌려나갔다.
“괜찮아?”
최태식은 살짝 감정이 오른 김성훈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대위님. 솔직히 속이 후련합니다.”
진짜 그랬다. 고철수와 박병덕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하자 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그동안 꽉 막혔던 답답했던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속을 짓누르던 그 무언가가 사라진 듯 홀가분했다.
“제가 저 둘에게 떳떳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이 자리를 꼭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 무슨.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김성훈?”
“이병 김성훈!”
“진짜 멋있었다. 아까 네가 말하면서 나도 간부로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 아주 잘했어.”
“감사합니다.”
“내가 한 가지 부탁 하나 할까?”
“뭐든 말씀하십시오.”
“쉽지는 않겠지만, 지난 일들 속에 메여 있기보다는 앞으로의 네 미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까 성훈이 네가 말했듯이 행복하게 말이야. 그게 최고의 복수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잘 알고 있습니다. 대위님. 그리고 그렇게 살겠습니다.”
김성훈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답했다.
“그래, 넌 잘할 거라 믿는다. 몸조리 잘하고 또 보자.”
“충성!”
최태식은 김성훈의 씩씩한 인사를 받으며 병실을 나왔다.
병실에서 들려오는 가족들과 김성훈의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가 기분 좋게 복도에 울려 퍼졌다.
어쩌면 평생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던 일을 김성훈은 슬기롭게 잘 이겨 냈다.
최태식은 이번 일을 계기로 또 다른 제2의 김성훈이 나오질 않길 바라며 부대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