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38화 (237/472)

238화. 핏빛 전쟁

오래된 주택가-

“아이고! 선이 엄마 고마워서 어째?”

집 근처에서 나온 중년 여자가 신상 과자가 담긴 봉지를 들고 편의점을 나오고 있었다.

“고맙긴.”

“고맙지. 우리 막내 내일 집에 오잖아. 과자 좀 구해 달라고 어찌나 극성을 부리던지. 일주일 내내 전화를 하더라니까.”

“내일 친정 오는구나?”

“응. 막내라 그런가 시집가도 아직 애 같아.”

중년 여자는 시집간 딸이 부탁한 요즘 유행인 과자를 구해서 기분이 좋았다.

“당연하지. 원래 자식들은 나이를 먹어도 부모 눈에 애 아니겠어?”

“그것도 맞지. 근데 선이 엄마 나 때문에 이 시간에 괜히 편의점 나온 거 아니야?”

“아니야. 어차피 오늘 알바가 첫날이라 나도 알려 줄 거 있어서 겸사겸사 나왔어. 그나저나 자기 그거 들었어?”

“뭐?”

“요 아래. 미용실 영기 엄마 요번에 아주 난리도…….”

중년 여자 두 명이 본격적으로 수다 타임을 가지려던 바로였다.

“야! 이 시xx아?”

어디선가 고막을 때리는 거친 욕설이 두 여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나 닥쳐 씨x롬아!!”

또 한 번 거친 욕설이 들려오자 두 여자의 고개가 동시에 편의점 건물 바로 옆 주택으로 향했다.

“또 시작이네?”

“어째 이번 주는 조용하다 싶었다.”

“아니, 왜 저러고 사나 몰라.”

“누가 아니래.”

“참! 둘 다 대단해.”

여자들은 익숙한 듯 체념한 표정으로 욕설이 들려오는 집을 쳐다봤다.

“가만 보면 둘 다 지치지도 않나 봐. 어떻게 하면 매번 저럴까?”

“내 말이. 오죽하면 자식들이 진절머리가 나서 집에 잘 안 오려고 하잖아.”

“우리 집 양반이 그러는데 저 관계는 둘 중에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거래.”

“하긴 그것도 맞지. 어휴 또 한바탕 시작하려고 시동 걸었나 보다. 이야기하기 글렀네.”

“그러게.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들어갈게.”

“선이 엄마 과자 고마워.”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려던 두 사람은 급하게 마무리 짓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내가 아주 지겨워 죽겠어.”

편의점 옆 주택 건물 2층 집안에서 들려오던 욕설은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

“너만 지겨운 줄 알아? 그리고 내가 돈이 없고 싶어서 없냐?”

“지x하지 마. 네가 주식이랑 사업 망해서 꼬라박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이렇게 거지같이 살지는 않았어.”

“뭐! 지랄? 야! 이 미친 여편네야? 잘살려고 하다 그런 거 아니야.”

“놀고 있네. 잘살려면 일을 해야지 퇴직금을 다 날려 먹고서는 얻다 대고 큰소리치고 지랄이야.”

“이x아? 그러는 너는! 너는 얼마나 돈을 벌었다고 자꾸 지랄지랄 거리냐? 너나 지랄하지 마.”

“야, 인간아! 애들은 혼자 컸니? 너 그러고 다니는 동안 내가 다 키웠잖아. 집안일이며 애들 일이며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난리야.”

“난 그동안 놀았냐? 놀았어? 난 돈 벌었어.”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 네가 날린 돈이 더 많아. 내 말만 들었어도 이렇게 안 됐어.”

또 시작이다!

여느 평일과 다름없는 밤.

중년 부부의 서로를 향한 독설은 멈출 줄 모르고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여느 부부들이 하는 부부 싸움의 수준을 벗어난 두 사람의 다툼은 이미 서로에게 악밖에 안 남은 듯 날카롭지 그지없었다.

부부 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이 부부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밥 먹듯이 싸우는 두 사람의 다툼에 지친 동네 사람들은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은 둘이 싸우려고 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하며 대단하다고 했다.

또다시 싸움 소리가 들려오면 언제나 혀를 차며 무시할 뿐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데! 너 때문이야!!”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야! 나도 마찬가지야.”

쿵- 탁- 탁-

쨍그랑-

부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이윽고 물건 던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 위로 더해졌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돌이켜 보면 시작부터 꼬인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가장 먼 사이가 바로 부부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가장 먼 사이만이 존재한 것만 같았다.

본능에 이끌려 몸이 가까웠던 적은 있을지언정 단 한 번도 마음이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부부는 결혼 후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된 주택 월세 생활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지긋지긋함을 견디지 못한 자식들도 이미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늘 싸움과 하는 부모를 보며 자식들은 일부러 먼 학교와 직장을 골라 집에서 도망치듯 독립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조졌어! 알아?”

“터진 입이라고 막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이 정도의 다툼은 부부에게 늘 있는 일이었다. 마치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수많은 욕설과 고성이 오간 부부는 그런 말들에 내성이 생겼는지 아무렇지 않았다.

아내가 칼을 들기 전까지 말이다.

“야아아아!”

아내 이한순은 주방에서 목청이 찢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나 이렇게 더는 못 살아! 못 살겠다고 x발!”

“어, 그래. 또 칼이야?”

이한순의 이런 행동이 한두 번은 아닌 듯 남편 김노담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어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이한순은 여전히 칼을 들고 김노담을 향해서 들고 있었다.

“나쁜 새끼!”

“그래, 마음대로 해라. 너나 나나 우리 서로 나쁜 연놈들인 건 맞으니까.”

“정말 지긋지긋해.”

“이보세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내 삶이 지옥이야.”

별안간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던 이한순은 칼끝을 본인의 배로 천천히 가져갔다. 그리고 배를 찌르려고 자신의 손에 들린 부엌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표정이 얼마나 악에 받치고 처절한지 본인도 김노담도 알지 못했다.

“xx 새끼야!”

“놀고 있네. 왜? 찔러 봐. 어! 어디 한두 번 당하냐? 찌르라고!”

“너랑 나는 서로에게 지옥…….”

여느 때와 똑같은 남편의 반응을 물끄러미 듣고 있던 이한순은 순간 자신의 배를 향해 들고 있던 칼에 힘을 주었다.

“아악!!!!!”

그녀가 자신의 배를 스스로 찌른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붉은 선혈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 아니, 이 여편네가!!”

갑자기 들려온 비명에 티브이를 보고 있던 김노담이 고개를 돌렸다.

“악!! 나 너무 아파. 으악!!”

김노담은 당연히 찌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몇 번 난리를 치다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 여자가 진짜 미쳤어. 지금 뭔 짓을 한 거야?”

“119!! 빨리 119불러!!”

늘 겪던 부부 싸움이 핏빛 전쟁이 될 거라고 예상 못 한 부부였다. 김노담은 아내의 복부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급하게 119에 연락을 취했다.

잠시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가 부부의 집에 도착했다.

“환자분은 어디 계신가요?”

“여기요, 여기 있습니다. 제 아내가 좀 다쳤습니다.”

“환자분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119 생활을 하며 이 꼴 저 꼴 말도 안 되는 일을 다 겪은 대원들은 집 안 풍경을 보고 분위기를 파악한 듯 환자에게만 집중했다.

“아으! 저 배가…… 배가 너무 아파요.”

“저희가 베드에 옮겨서 차로 이동할게요. 일단 말씀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거죠? 남편분?”

“네?”

“같이 안 가세요?”

“아, 예. 갑니다. 가야죠.”

자해 현장을 보고 있던 김노담은 119 구급대원의 말에 함께 집을 나섰다.

* * *

한 시간 뒤-

이한순과 김노담은 우리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왔어도 서로에 대한 걱정보다 환멸이 더 깊은 부부는 가까이하지 않고 있었다.

멀어진 거리만큼 두 사람의 거리는 3m 이상 떨어진 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부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생각보다 여러 사람이 부부 싸움을 하다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았고,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는 병원에 와서도 개 닭 보듯이 심드렁한 부부도 많았다.

“저기……. 보호자? 그런데 아내 분은 왜 칼에 찔리신 거예요?”

이찬희가 참으로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몰라요.”

“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노담이 관심 없다는 듯이 말을 간단하게 답했다.

“미친x!”

그러자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내 이한순이 남편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작은 소리도 욕을 내뱉었다.

“장기가 안 다치셔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해맑은 이찬희가 두 사람의 시끄러운 속도 모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칼이 있으면 조심하셔야 해요. 아시겠지만, 칼이라는 게 아무리 잘 써도 순간적으로 아차 하다 나도 모르게…….”

퍽!

쓸데없이 길어지는 말에 보다 못한 임정숙 간호사가 이찬희의 등을 내리쳤다.

“아오!”

답답한 임정숙이 이찬희를 붙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수 쌤 왜 갑자기 때리고 그러세요.”

“내가 진짜 못 살아. 그야 이 쌤이 눈치 없이 구니까 그렇죠.”

“눈치요?”

“이 쌤? 저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예? 아내분이 다친 상황이잖아요.”

“어휴! 내가 진짜 속이 터져. 우리 이 쌤은 다 좋은데 눈치만 살짝 좀 더 업그레이드하면 완벽할 거 같아요. 딱 보면 모르겠어요? 부부 싸움으로 온 거잖아요.”

누가 봐도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가 자해한 것인데 응급실 의료진 중에 이찬희만 그걸 몰랐다.

사실 이찬희가 눈치가 조금 부족한 탓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유도 있었다.

첫째는 유난히 부부 싸움을 한 환자 경험이 적은 탓이었고, 둘째는 상식적으로 부부가 싸움하다가 자해를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사랑이 충만한 이찬희 성격상 저런 상황 자체가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내분이 싸우다가 자해한 거라고요?”

“네. 그렇다니까요. 아까 119 대원님 말 못 들었어요?”

“아까 환자에 집중하느라 잘 못 들었어요. 진짜로 스스로 칼로 찌른 거란 말이죠?”

“쉿! 들리겠어요. 목소리 좀 낮춰요.”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놀라서. 전 사실 저런 경우는 처음 봤거든요.”

병원 생활 하면서 별일을 다 겪어 봤지만, 이런 환자는 또 처음이었기에 이찬희도 나름 황당했다.

“이 쌤, 부부 싸움으로 온 환자 많이 못 보셨구나?”

“네, 제가 본 건 말다툼하다 서로 할퀴는 정도가 다였어요. 그 환자들도 얼마나 살벌한데요.”

“그 정도면 약과에요. 남녀 싸움 환자 중에 가장 살벌한 게 바로 부부 싸움 환자들이에요.”

“진짜 살벌하긴 하네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부부인데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원래 한 번 사이가 틀어지면 남보다 무서운 사이가 부부예요. 그래서 부부는 무촌이라고 하잖아요. 이 쌤 전화요.”

“아, 네. 예, 선생님 전화 받았습니다.”

임정숙 간호사와 대화하던 이찬희는 태경의 콜을 보고 얼른 휴대폰을 터치했다.

-이 선생 지금 어디야?

“지금 응급실에 있습니다.”

-복부 자상 환자 왔다며?

“예, 상복부가 칼에 찔린 여자 환자가 119에 실려 와서요.”

-그래? 현재 상태가 어떤데?

“그게 현재 뎁스(depth, 깊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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