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복부 자상 환자라고 하던데?
“예, 상복부가 칼에 찔린 여자 환자가 119에 실려 와서요.”
-그래? 현재 상태가 어떤데?
태경이 수술한 사이 온 환자였기에 아직 환자를 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게, 현재 뎁스(depth, 깊이)는 머슬 레이어(muscle layer, 근육층)라서 CT를 촬영했으나 퍼포레이션(perforation, 관통) 의심되는 소견은 없기에 거즈 패킹(packing, 압박을 받을 정도로 밀어 넣음) 후 봉합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왜요? 선생님이 오라고 하세요?”
“네, 예상보다 수술이 길어진다고 잠깐 오라고 하시네요. 저 갔다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수술방에 있는 태경의 콜을 받은 이찬희가 후다닥 뛰어갈 때 베드에 누워 있던 이한순이 입을 열었다.
“서, 선생님?”
하지만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한 탓에 급히 나가는 이찬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아으!”
사실 지금 이한순은 배가 살살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남편과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 괜히 약한 소리를 못 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인이 아픈데 저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남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기에 이한순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 아! 으음! 저, 저기요?”
앓는 소리를 내던 이한순은 때마침 베드 가까이 온 간호사를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불렀다.
“간호사님.”
“네,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저 배가…… 배가 너무 아픈데요.”
“환자분 지금 진통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많이 아프세요?”
간호사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사실 이한순이 통증을 호소해서 그에 따른 진통제가 들어간 뒤였다.
“네, 점점 더 아파지는 거 같아요.”
“저기요?”
아내와 간호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김노담이 조용히 간호사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 아까 의사 선생님께 아내에 대해서 한 번 더 물어봐 주실래요? 와이프가 자꾸 아프다고 하네요.”
“네. 그런데요. 아까 찍으신 CT상에 아내분께서 장기 손상이 없으셔서 응급 상황은 아니시거든요. 물론 배 근육까지 드러나서 아프신 거는 당연하겠지만, 현재…….”
“무슨 말인지 압니다.”
알아듣게 천천히 설명하던 간호사의 말허리를 김노담이 딱 자르며 자신의 의견을 다시 피력했다.
“물론 저희보다 더 잘 아시겠죠. 전문가인데. 그런데 보세요. 저렇게 아파하니까요. 한 번만 더 부탁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한편 간호사가 이한순 김노담 부부와 대화를 끝낸 그 시각, 이찬희와 태경이 수술방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Rrrrrrrr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이찬희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이찬희입니다.”
-선생님, 여기 응급실인데요. 그 이한순 환자 때문에 연락 드렸어요.
“네, 아까 그 자상 환자요? 아니, 당연히 아프죠. 그래도 깊게 찔렀는데…….”
-그게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그 남편분도 이제 신경이 쓰이는지 선생님께 연락해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하고 있거든요.
“일단 그냥 진통제 주세요. 네. 그렇게 하세요.”
“왜, 무슨 일이야?”
수술방을 나오면서 모자를 벗던 태경이 물었다.
“아까 보고 드렸던 상복부 자상 환자가 통증을 호소한다고 해서 진통제 주라고 했습니다.”
“진통제를? 왜?”
“예?”
환자가 통증을 호소해서 진통제를 처방했다는 말에 ‘왜’라는 의문이 들려오자 이찬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예’가 아니라 왜 그랬냐고.”
“아, 네. 그게 현재 환자가 통증이 있다고 해서…….”
“그래. 근데 무슨 근거로 진통제를 주라고 했는지 그걸 묻는 거야.”
“…….”
이찬희는 태경이 하는 질문을 이해하질 못했다.
약간 근엄한 표정의 태경은 어이없는 정도가 아니라 길을 잃은 듯한 후배의 표정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찬희야?”
“네? 선생님.”
순간 심각해진 이찬희의 표정을 보며 태경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잘 들어 봐. 우리가 진통제를 줄 때는 우선 진통제를 주어도 되는 상황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해. 다시 말해서 진통제를 주어서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네, 맞습니다.”
“진통제로 인해서 해가 되는 경우는 진통제 약물 자체에 의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통제로 인해서 통증이 가려져도 되는지가 중요해. 즉 지금 진통제만 주고서 끝낼 상황인지 아니면 다른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야.”
“아! 물론이죠. 하지만 선생님 아까 환자 CT상…….”
“그래,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나? CT상 특별한 게 없으면 괜찮은 거야?”
“……!?”
“정말 그런 걸까?”
“……!”
이찬희는 이제야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래. 가서 환자 파악하고 다시 연락해. 다른 과 의사는 몰라도 우리 과는 절대로 직접 환자를 보지 않고서는 판단을 내리면 안 돼. 검사나 영상보다도 일단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야. 우리가 환자 곁에 있을 때 더 정확하기 때문이지. 경험이 그렇고 사실이 그래. 명심해라!”
“넵! 다시 가서 신체검사 및 문진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얼른 가 봐.”
“네, 선생님.”
“이 선생이 요즘 한참 물이 오른 거 같네요.”
수술방 복도를 뛰어나가는 이찬희를 보며 의진이 흐뭇하게 말했다.
“그런가?”
“네. 예전에는 뭐랄까? 선배가 숟가락을 손에 쥐여 줘야 뭔가 이해하고 움직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숟가락 쥐는 방법만 들어도 그 뒤까지 척척 이해하고 따라오는 기분이에요. 이 쌤도 많이 성장했네.”
“잘하고 있긴 하지.”
“그렇죠? 이 쌤도 그렇고 최 쌤도 그렇고 요즘 얼마나 열심히들 하나 몰라요. 그러니까 가끔 칭찬도 좀 해 주세요.”
“아직 멀었어. 괜히 칭찬해 주고 그러면 찬희 성격에 또 풀어진다고.”
“그것도 그렇긴 해요. 선배 살짝 출출하지 않아요?”
“그러게. 요즘은 저녁에 수술 끝나면 배고프더라. 컵라면 하나 할까?”
“좋죠.”
수술을 끝낸 태경과 의진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 * *
“환자분?”
수술방에서 곧장 응급실로 달려온 이찬희는 바로 이한순이 있는 베드로 향했다.
“이한순 환자분?”
“……네.”
이한순은 오만 인상을 쓰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 이 선생님, 수술 끝났어요? 안 그래도 이제 진통제 들어가려고 합니다.”
“아니요. 잠시만요. 아직 진통제 주지 마세요.”
“예?”
“환자에게 진통제 주지 말라고요.”
간호사가 이제 막 진통제를 주려고 하자 이찬희가 말렸다.
“선생님? 저 너무…… 아파요.”
“환자분, 처음 병원에 오실 때보다 지금이 더 아프세요?”
“네……. 더 아파요.”
이찬희는 이한순을 이리저리 살피며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손가락 끝으로 아픈 곳을 한 번 짚어 보시겠어요?”
“여, 여기요. 이 부분이 아파요.”
이한순은 본인이 칼로 찌르고서 상처가 생긴 명치 주변을 가리켰다. 곧이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찬희가 그녀가 가리킨 부분을 꾸욱 눌렀다.
“으아악!!”
그러자 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이찬희는 눌렀던 배를 떼어 본다.
“으으윽! 아악!”
어떻게 된 건지 이찬희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환자분 잠시만요.”
신체 진찰을 하고 나서 잠시 베드를 벗어난 이찬희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급히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접니다.”
-어, 그래. 어떻게 됐어?
“방금 신체 검진을 마쳤는데 신체 검진 상 리바운드 텐더니스(rebound tenderness, 반발통), 머슬 가딩(muscle guarding, 촉진 시 통증으로 인한 근육수축)이 보여요. 따라서 복막염이 의심되며 CT상 특이 소견이 없더라도 복부 내 손상이 의심됩니다.”
이찬희는 검진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의학적 소견을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태경에게 알렸다.
-그래? 그러면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수술해서 복부 내의 손상이 없는지, 손상으로 인해서 복막염이 야기되지는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확실해?
“네, 선생님. 확실합니다.”
-그래? 다른 검사는 필요 없어?
“네, 지금은 한시라도 수술을 빨리하는 것이 더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이 판단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확신에 찬 이찬희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더 확신에 찬 말이 되돌아왔다.
-아니야. 나한테 있는 거야. 내가 그 환자를 널 믿고 맡긴 거니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선생님…….”
-환자가 이후 항의해도 내가 다 책임질게. 그러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 내가 생각해도 찬희 네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더 이상 네 의견만이 아닌 거야. 내 의견이고 내 결정인 거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 믿고 고수하고 환자 수술 잘 설득해 봐.
“네, 알겠습니다. 저기, 선생님?”
전화를 끊으려는 태경을 이찬희가 간절하게 불렀다.
-왜? 뭐 또 할 말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선생님께 배울 수 있어서 저 진짜 행복해요. 항상 생각하지만, 의사로서 인간적으로서 여러모로 멋있고 존경스러워요.”
-찬희야?
“네?”
-과하다. 과해. 요즘, 숙제를 안 내줬더니 많이 풀어졌네? 어떻게 잠잘 시간 없이 숙제 다시 해 볼까?
“아, 아니요.”
-그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환자나 가서 설득해!
“네, 바로 하겠습니다.”
태경의 말에 한껏 힘을 받은 이찬희는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이한순에게 다가갔다.
“환자분, 조금 전에 했던 신체 검진 상 현재 아파하시는 정도가 내부 장기의 손상이 의심되고 있거든요.”
“네…….”
“그래서 수술을 해서 안의 상태를 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수술이요? 왜요? 싫어요?”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한순은 매우 놀라며 거부했다.
“환자분, 그게 내부 장기의 손상 등으로 염증이 복벽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럴 때는…….”
“저기요, 의사 선생님?”
이한순은 이찬희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건 아니죠. 선생님이 아까 CT에서 이상 없다면서요. 그렇게 아프다고 할 때 가만히 있다가 왜 인제 와서 수술이라고 하는 거예요? 예?”
“아니, 그게 아니라요. 환자분.”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이한순의 말투에 점점 짜증이 느껴지자 이번에는 조금 떨어져 앉아있던 남편 김노담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가왔다.
“보호자분 저희가 환자분을…….”
“아, 됐고. 이게 그렇잖아요. 지금 우리 와이프가 하는 말 틀린 말 있어요? 아까부터 그렇게 아프다고 할 때는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두다가 무슨 갑자기 수술입니까? 뭐 이상이 생긴 거예요? 그럼 처음부터 그러든가? 방치해서 이상 생긴 거 아니에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절대 저희가 방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방치한 것도 아닙니다. 환자분의 상태를 살펴 가면서…….”
“아니라고?”
이찬희는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날카로운 성격으로 살아온 김노담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렇잖아요. 예?”
“저기 보호자분.”
생각지도 못한 격한 반응에 이찬희가 적잖이 놀란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온 부드러운 말투에 당장이라도 욕을 날릴 것만 같은 김노담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