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틀린 그림 찾기
“안녕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온 부드러운 말투에 당장이라도 욕을 날릴 것만 같은 김노담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그리고 보호자분.”
응급실에 걸어 들어오던 태경이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김노담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 딱 보니까. 여기 원장님이시구나? 맞죠?”
김노담이 태경을 위아래도 훑어보며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인제 보니 그 TV에 나온 유명한 원장님이시네. 이름이 김태……경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래. 이제야 얼굴을 보이네. 아니. 내가 한마디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하세요.”
“이 의사분이 처음에 이상 없다고 했거든요. 그러다가 우리 마누라가 아프다~ 아프다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대뜸 와서 배 몇 번 만져 보고는 갑자기 수술하자고 하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예? 이게 다 돈 벌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보호자께서 많이 당황하신 거 같은데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하나하나 설명을 좀 해 드려도 될까요?”
“그래요. 어디 설명 한 번 해 보슈.”
김노담은 팔짱을 낀 채 한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말투를 던졌다.
“이한순 환자의 CT상 이상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안심했고요.”
“그런데요?”
“그래서 배 표면의 상처만 봉합해 드리고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여기 있는 의사 선생님이 신중하게 하고자 조금 더 경과를 본 겁니다.”
태경은 옆에 서 있는 이찬희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왜냐하면m 안의 장기가 손상이 있어도 CT상 안 보일 수 있고요. 혹은 CT 촬영 때는 정상이었지만, 약해진 벽을 통해서 내용물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복부 통증을 호소하는 분 중에 병의 경과를 보려고 하는 분들은 일부러 진통제를 드리지 않아요.”
“그건 왜 그런데요?”
“그건 매번 CT를 찍을 수도 없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 악화 여부로 경과를 보기 위함입니다. 물론 환자분이 아프다고 할 때마다 와서 이러한 설명을 드리지 못한 건 분명 저희의 잘못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분께 위해를 가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적합한 치료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럼……. 그게 그러니까 어쨌든 갑자기 수술해야 하는 건 왜 그런 겁니까?”
눈을 마주치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설명이 이어 가자 김노담의 표정과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지금 신체 검진 상 복벽에 자극이 보이거든요. 이럴 때는 장기의 손상이 의심되어서 빨리 수술해서 장기손상을 찾고 봉합을 해 주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수술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안의 장기를 꿰맨다고요? 자, 장기를요?”
“네 물론이죠. 아니면 안의 내용물이 계속 흘러나와서 점점 더 심해지실 거예요.”
“그럼 배를 여는 건가요? 그 뭐시기냐? 보, 보 뭐라고 했는데?”
“복강경이요?”
“맞아요. 그 복강경으로는 안 돼요?”
“가능은 하죠. 하지만 그것이 환자에게 득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수술은 어떤 목적을 갖고서, 그러니까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있는지 진단과 치료를 한꺼번에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수술명도 탐색술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는 복강경이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환자의 손상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
“보호자분? 남편으로서 아내분을 아끼시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감정이 고조된 것은 이해가 갑니다.”
“아, 예. 그거야 남편이니까…….”
‘사랑’이란 단어에 듣고 있던 김노담은 물론 베드에 누워 아파하고 있는 이한순까지 적잖이 놀랐다.
태경은 부부가 들으라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까 직원식당에서 응급실로 오는 동안 임정숙 간호사에게 두 사람이 부부 싸움을 했고, 아내가 자해한 상태라는 것까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태경은 일부러 부인 옆에 있는 남편에게 ‘사랑’이란 단어를 들먹인 것이다.
대개 저런 성향의 사람일수록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많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날카롭고 거친 언행을 하는 사람은 칭찬해 주면 생각보다 순한 양처럼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년간의 병원 생활을 통해 여러 인간군을 만나며 깨우친 하나의 통계였다.
현재 수술방으로 들어가 환자의 상태를 빨리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다시 부부 싸움을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잘 잡고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다.
자칫 다시 감정이 격해져서 부부 싸움이라도 한다면 환자나 의료진에게나 모두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희는 최고의 선택을 매번 환자를 위해서 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럼 어떻게 수술 성명을 더 드려도 괜찮을까요?”
“아, 네. 뭐, 그러세요. 여보 우리 설명을 좀 들어 볼까? 당신 생각은 어때?”
“뭐, 들어 봐야지.”
“조, 조심히 일어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사실 지금까지 태경이 설명한 부분을 이찬희가 100% 알고 있지는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태경에게 전화로 조언을 듣기 전까지 매우 바쁘다 보니 CT상 이상이 없어서 그냥 둔 것도 있었다.
“괜히 죄송하네……. 그래도 결과적으로 다 맞으니까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들린다.”
이찬희가 조용히 혼잣말하자 근처에서 환자를 살피고 온 최모나가 쓱 다가와 한마디 거들었다.
“꿈보다 해몽이 컸는데 해몽이 좋아서 다행이다.”
다른 의료진들은 모르지만, 최모나는 이찬희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야! 조용히 해 들릴라.”
“됐거든!”
“찬희야?”
“아, 네. 선생님.”
그사이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끝낸 보호자와 환자, 그리고 태경이 걸어왔다.
다행히 완강하던 환자는 남편의 설득으로 수술받기로 결정했다.
“정 선생님한테 말해 놓고 바로 수술방 올라가자.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없어. 바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 뒤 수술을 위한 진행이 빠르게 이어지고 태경은 이찬희와 함께 수술방에 들어왔다.
“자! 수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태경에게 메스가 전해지자 이찬희가 상복부의 피부를 양쪽으로 당긴다.
“찬희야, 절개선은 당연히 상처의 연장으로 해야 한다.”
“네, 선생님.”
태경은 환자가 자신의 배를 찔러서 생긴 상처의 아래 끝에서부터 깊게 배를 절개해 나갔다.
시원시원한 절개로 인해 환자의 배 피부가 모두 절개되고, 이어서 보비를 통한 절개로 환자의 배 속이 훤히 보이게 되었다.
“우선 보이는 곳의 이상은 없는지 보자.”
당연히 찌른 방향 밑으로 이상이 있는지가 먼저였다.
환자가 자해 시 배 겉에서부터 찌른 것이므로 배의 가장 밖인 장간막부터 하나하나 봐야 했다.
위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있는 지방막인 장간막에는 혈관들도 거미줄처럼 있기 때문에 손상 시 환자에게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태경이 장간막을 하나하나 엄지와 검지를 통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5cm씩 이동하면서 정말 꼼꼼하게 확인했다.
환자가 스스로 찌른 부위는 배꼽과 명치의 중간쯤 되는 부위였다.
그 방향을 따라서 장기들을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태경은 꼼꼼한 성격으로 인해 장간막 겉면 전체를 조금 조금씩 모두 보고 있었다.
“음……. 가만있자. 하아!”
태경이 뭔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난 이상한 건 모르겠네. 이 선생은 알겠어? 혹시 보여?”
“예? 아니요. 선생님께서 못 찾으시는 걸 제가 어떻게 보겠어요.”
“아니야. 이건 뭐랄까……. 의술과는 상관없어. 찬희야 너 틀린 그림 찾기 해 본 적 있니?”
“그럼요. 예전에 해 봤어요.”
“이게 그래. 뭔가 일종의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거야.”
“틀린 그림이요?”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당연히 놓칠 수 있어. 그래서 더 꼼꼼하게 봐야 해. 원래 틀린 그림 찾기는 꼼꼼히 보잖아. 지금 너랑 나랑 별 차이 없어.”
말 그대로였다.
지금 이 수술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첫 번째 목표인 이상 여부를 판단하는 데 의술과는 상관이 없었다.
상처!
그러니까 평소랑 다른 부위를 찾는 것인데 그것은 말 그대로 장기의 틀린 그림 찾기였다.
“보자……. 장간막은 됐고 이제 소장이다.”
장간막을 걷어내고 나서 그 밑에 있는 소장을 보고 있었다.
“흐음! 이상하네…….”
“정상인 것 같습니다.”
태경의 말에 이찬희가 의아스럽다는 말투로 답했다.
“그래도 일단 하나씩 다 보자.”
“네.”
김태경이 찌른 부위 밑의 소장뿐만 아니라 소장의 시작에서부터 한 뼘 한 뼘 모든 소장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10cm씩 소장을 잡고서 이찬희와 둘이서 뚫어지라 소장을 봤다.
사실 탐색술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지나친 세심함이었다. 이건 태경이 꼼꼼한 성격이어서 그런 것만은 절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괜히 제가 잘못 판단해서…….”
이 정도로 꼼꼼히 보고 또 보고 또 봤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이찬희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괜히 일을 크게 벌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네!?”
“네가 죄송할 리가 없다고. 나도 환자를 봤고 환자의 상태를 봤어. 분명 환자 장기에 손상이 있는데 우리가 못 찾는 거야.”
그것은 단순히 아집이 아니었다. 많은 경험을 통한 의학적 확신이었다. 이찬희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묵묵히 태경이 하는 것을 같이 뚫어지라 보았다.
‘아니야. 분명 잘못된 게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응급실에서 이한순을 봤을 때부터 몸에서 느껴지는 다섯 번째 바이탈의 3단계 냄새가 계속 풍기는 중이었다.
마치 그 냄새가 술래잡기하듯이 슬슬 약을 올리는 것만 같았다.
“흠……. 소장도 정상이네.”
“…….”
“자, 이제 다른 곳도 볼까?”
“네? 하지만 배를 찌른 곳과는 나머지 장기들이 너무 거리가 멀지 않을까요?”
“알아.”
태경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인의 확신에 의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도 살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이제 대장을 보기 시작했다.
태경이 배 속으로 양손을 집어넣어서 피부부터 지방, 근육을 포함한 모든 층인 두께 3cm, 5cm 나가는 배벽 한쪽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배벽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불 위에 또 이불이 있고 또 이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모든 이불이 다 붙어 있는 상태다.
그렇게 합쳐있는 두꺼운 이불을 한 번에 드는 게 배벽을 들어 올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무거웠다.
“찬희야, 봐 봐!!”
“네?”
“내 쪽에 있는 대장 괜찮은지 보라고. 무겁다. 얼른 봐라.”
“아! 네!”
“아니 손으로 장 치우고 불 맞춰서 봐야지!”
있는 힘껏 당겨서 손이 살짝 떨리는 태경이 빨리하라고 재촉한다. 이게 생각보다 무게감이 나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네!”
그때서야 이찬희가 양손을 집어넣고서 소장을 밀고 오른쪽 대장을 꼼꼼하게 차례대로 살펴봤다.
“어때?”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아니. 두 번 봐!”
“네!”
“이상 없어?”
“네.”
“휴우! 자 들어!”
“아! 네! 악! 무겁네요.”
“그게 좀 무거울 거다.”
태경이 했던 대로 이찬희가 양손으로 배벽을 들어 올렸다.
반대로 이번에는 태경의 양손이 이한순의 배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그리고 소장을 치우고 대장을 꼼꼼하게 위에서부터 확인했다.
“이상 무! 자, 이제 그만 닫자.”
정말, 이 잡듯 뒤졌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점이 없자 태경은 결국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아! 이상하네.”
참으로 오랜만에, 아니 수술방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찜찜한 기분이었다.
“환자한테는 뭐라고 할까요?”
“어쩔 수 없지. 환자랑 보호자한테는 이후 재수술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야지.”
“정말 이상하네요.”
“그러게 우리가 확인할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리 확인해도 장기들은 멀쩡했다.
‘내가 잘못 느낀 건가? 처음으로 뭔가 틀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