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1화 (240/472)

241화.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내가 잘못 느낀 건가? 처음으로 뭔가 틀린 건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던 다섯 번째 바이탈이 틀린 건 아닌지 생각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의사로서 태경의 느낌도 자꾸 아쉬움이 자꾸 발목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 답답해 미치겠네.’

마치 눈 속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작은 실이 들어간 것만 같은 불편한 기분이었다.

“자! 배 닫을 거주세요.”

태경의 말이 끝나자 배의 가장 아래층을 닫기 위한 실이 바늘과 함께 니들 홀더(needle holder)에 물린 채 건네졌다.

“……!”

그런데 니들 홀더를 건네받은 태경이 미동이 없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잠시 멈칫한 그에게 이찬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 봐야 할 거 같아.”

“예? 다 했는데요?”

“아니, 아직 안 한 곳이 있어.”

“어디요?”

“위랑 간!”

“위, 위랑 간이요!!!!”

이찬희가 평소보다 완전히 크게 놀라며 반응했다.

“왜 이렇게 놀라?”

“그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위랑 간 한번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하고 말씀드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이찬희는 뭔가 의학적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아무리 살펴도 이상한 점이 안 나오니 위랑 간도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걸 왜 고민해. 그럴 때는 말 하는 게 좋아.”

“막상 봐도 없을 확률이 높겠죠?”

“그래도 확인해 보자. 다 확인해야지. 이렇게 배를 여는 것도 환자한테 부담인데 이미 연 이상 다 살펴보자.”

“네, 선생님.”

사실 조금 전에 확인한 대장도 거리나 방향으로 볼 때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위는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말해 방향이 위로 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를 안 본 이유는 위와 간을 보기 위해서는 절개를 더 넣어야 했기에 그 이유가 컸다.

배를 찔러서 생긴 상처에서 좀 더 절개를 넣어야만 보였다.

하지만 그냥 배를 닫기에는 의사로서 느끼는 꺼림칙함과 술래잡기 하듯 후각을 유린하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상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가 자꾸만 아프다고 했던 그 통증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복부에 절개선을 더 넣은 태경은 또다시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런데 위, 아래부터 이제 위쪽으로 시선이 이동하던 바로 그때였다.

“어!?”

“……!”

순간, 태경과 이찬희가 동시에 둘 다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하!”

“아니!”

두 사람의 얼굴 위로 황당함이 번지며 그 황당함이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왔다.

“이, 이게 도대체…….”

“어쩜 이러냐? 참나!”

“세상에! 저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저래요?”

태경과 이찬희뿐만 아니라 의진을 포함한 수술방 의료진들 모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기가 막히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 아니. 참 신기하네요.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이찬희의 말 그대로였다. 말이 안 됐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하!”

수술 마스크를 쓴 태경의 입에서 계속 외마디 탄식이 쏟아졌다.

그 이유는 그토록 찾고 찾았던 상처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틀린 그림을 찾긴 찾았다. 그런데 위치상 전혀 있을 수 없을 거 같은 곳에 상처가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바로 위에 상처가 난 것이다.

칼끝이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이상 상처에서 이렇게 위쪽에 이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태경과 이찬희의 눈에는 위의 찢긴 상처가 보였다.

상처가 크지는 않았다. 0.5cm 정도 위가 찔려서 내용물이 나올 정도였다.

“야! 우리 찬희가 한 건 했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위랑 간을 보자고 한 건 선생님이시잖아요.”

“너도 같은 생각 했다며. 그 생각 잘했어.”

태경은 위랑 간을 보자고 할 때 같은 생각을 하고 말한 이찬희를 칭찬했다. 그만큼 수술에 집중하고 환자를 한 번 더 생각한 후배가 기특했다.

“자! 그럼 좀 더 확실하게 볼까?”

“네!?”

방금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이찬희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또 놀라고 그래. 위의 윗면에 상처가 있으면 뒷면이 정상이라는 보장이 있어?”

“아! 맞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죠.”

“그럼 위 좀 들어 보자.”

“말레어블(malleable, 5cm 정도 폭의 긴 철로, 구부리면서 주걱처럼 장기를 한쪽으로 밀 수가 있음) 주세요.”

“네, 선생님.”

이찬희가 위를 들어 올리고서 태경이 아래를 보았지만, 잘 보이지가 않았다.

“N/S(normal saline, 생리식염수)에 포비돈 섞어서 줘 보세요. 그리고 제 장갑 새 걸로 다시 주세요.”

“네.”

태경의 말에 수술장 밖에 있던 순회 간호사가 새 장갑을 멸균 테이블 위에 뜯었다. 그리고 태경의 손에 있던 장갑을 벗겼다.

그 후, 수술장 안에 들어와 있는 간호사가 멸균 장갑을 들고서 바로 착용할 수 있도록 벌려 놓았다.

“안 돼요.”

새 장갑을 착용한 태경은 포비돈을 타서 혼탁해진 주사기를 건네받으려다 멈추며 말했다.

“최대한 아주 묽게 해 주세요. 포비돈은 소독약이지만 워낙 자극이 강해서 이 자체가 해를 줄 수 있으니까 아주 연하게 타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걸로 뭘 하려고 하시는지…….”

이찬희의 질문과 함께 태경이 조심조심 위의 아랫면에 깨끗한 새 장갑을 착용한 손을 밀어 넣었다.

“시린지(syringe, 주사기)로 저 상처 난 위에다가 넣어 봐.”

“아하! 뒷면에 상처가 있으면 새어 나오겠군요. 알겠습니다.”

위 뒷면을 보겠다고 위의 상처를 절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금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찬희가 상처 안으로 주사기에 탄 포비돈 희석액을 밀어 넣었다.

“한 번 더!!”

태경의 지시에 한 번 더 50cc의 양을 위 안으로 넣었다.

“한 번 더 할까요?”

“아니, 3분 정도 기다렸다가……. 이제 위 안을 석션으로 비워내.”

“네,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상처 안으로 석션 기계가 들어갔고 태경은 손을 들어서 장갑에 포비돈 희석액이 묻어나오는지 보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새어 나오는 액은 없었다.

“오케이. 이제 안심하고 닫자. 뒷면은 괜찮아.”

“네.”

그 뒤 태경의 손에 니들 홀더(needle holder)가 건네지고 이제 위를 봉합할 차례였다.

탐색술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지를 찾았으므로 평소대로 닫아 주면 그만이었다.

태경이 위의 상처 부위 양면에 한 땀을 뜬 후 바늘이 있는 쪽의 반대로 타이를 했다.

그리고서 상처에 최대한 가깝지만, 너무 멀어서 장력을 받지 않도록 0.5cm 미만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속해서 봉합했다.

마치 기계가 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강도의 봉합이었다.

위는 타 장기보다 워낙 혈관공급이 충분해서 덜하지만, 당연히 힘이 과하면 허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반대로 위는 워낙에 근육 덩어리라서 약하면 다시 내용물이 새어 나올 수도 있었다.

“자! 일차적으로 했고 다시 주세요.”

이번에는 봉합한 상처로부터 약간 더 떨어진 부위의 위 표면을 포 뜨듯이 살짝 바늘로 찔러서 나왔다. 그리고 상처 건너편에서도 마찬가지로 하고 외과적 타이를 했다.

이러면 상처 봉합한 곳 위로 위의 겉면이 포개져 덮이게 된다.

내장 장기는 이렇게 해야 내부가 흘러나오지 않고 안전하게 된다. 소장의 경우 이 과정이 과하면 좁아질 염려가 있지만, 위는 그럴 염려가 없기에 이 과정이 충분할수록 좋다.

“한 번 더 할게요.”

“한 번 더.”

“이게 마지막이네요.”

그 뒤 상처를 따라서 같은 매듭을 7번을 더 했다.

“자! 깔끔하네. 닫자.”

“오! 진짜 깔끔합니다.”

“얼른 닫자.”

“네, 알겠습니다.”

환자의 고통이 덜어졌다는 사실에 이찬희는 씩씩하게 답하며 마무리를 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이대로 못 찾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수술을 마친 태경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덩달아 수술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올리던 다섯 번째 바이탈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내리며 독한 냄새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대로 못 찾을 리가 있나요? 전, 선생님이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사실 아까 닫자고 말씀하셨을 때도 분명 이대로 끝내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죠. 하하하!”

의진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이찬희가 그 말에 힘을 더하듯이 덧붙였다.

“다들 믿어 줘서 고맙네. 우리 이 선생 오늘 한 건 제대로 했네.”

“아닙니다. 선생님.”

“정 선생도 수고 많았고, 다들 고생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수술방 의료진들은 다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기분 좋아?”

태경이 수술방을 나오며 싱글벙글인 이찬희에게 물었다.

“그럼요. 진짜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안 보여서 닫으려고 했다가 찾은 거잖아요. 얼마나 기쁜데요.”

“오늘 이 선생 수고 많았어. 오늘처럼만 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다 선생님이 하신 건데요.”

“끝까지 환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잖아.”

태경은 수술방에 이어 다시 한번 이찬희를 칭찬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거야. 환자가 하는 말을 흘려보내지 말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상처가 있어야 할 곳에 없다고 그냥 지나치지도 말고. 늘 환자의 통증을 의심하고 끈질기게 찾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왜?”

“도대체 왜 위에 상처가 난 걸 까요?”

“글쎄. 그거야말로 인체 신비가 아닐까?”

사실 태경도 위에 상처가 난 이유를 여러모로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가끔 아주 드물게 환자들을 수술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정말 미스터리네요. 이런 거 보면 인간의 몸은 참 신기하고 신비로운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맞습니다.”

이찬희와 대화를 마친 태경은 곧장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 * *

병원 보호자 대기실-

“하!”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괜찮을 거야. 수술하는 의사 선생님께서 실력도 좋고 유명한 분이더라.”

보호자 대기실에는 김노담, 이한순의 큰딸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상태였다.

“엄마가 수술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아빠? 내가 주인집 아주머니한테 아빠 엄마 싸우다가 병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주, 주인집 여자?”

“그거 아세요? 내가 주인아주머니한테 부탁했어. 우리 부모님 싸우다가 혹시라도 119 오면 나한테 꼭 좀 연락 달라고요.”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 딸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몰랐던 김노담은 적잖이 당황했다.

“서, 선이야 그게…….”

“아빠, 이제 그만해요.”

의자에 앉아 양손에 얼굴을 묻고 있던 딸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딸의 얼굴은 세상 근심을 모두 안고 있는 사람처럼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만하라니 뭘?”

“아빠랑 엄마 이제 그만 서로 놓아주라고요. 이혼…… 하세요.”

그동안 잦은 다툼이 있었어도 단 한 번도 이혼이라는 말을 한 적 없던 딸이었다.

자신과 아내의 싸움이 지겹다고 그만하라며 독립을 했어도 늘 전화로 부모님을 달래던 자식이었다.

그런데 그런 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노담은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서, 선이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이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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