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선의의 거짓말
그런데 그런 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노담은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서, 선이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이혼이라니…….”
“말 그대로예요. 아빠 엄마 그만 이혼하세요.”
다시 한번 이혼이라는 말을 꺼낸 큰딸의 표정 위로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하는 눈빛도 없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아니다 초등학교 때, 아마도 기억은 그때부터였던 거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동생이랑 집으로 들어가면 큰딸 선이는 늘 동생한테 하던 말이 있었다.
‘잠깐만! 여기서 50까지 세고 있어. 알았지?’
‘누나 오늘도 놀이하는 거야?’
‘응.’
선이는 항상 대문이 보이는 골목에서 동생과 숫자 놀이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놀이를 가장한 시간벌기였다. 동생이 50까지 숫자를 세는 동안 후다닥 뛰어가 아빠 엄마가 싸우는지를 살폈다.
그 당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집에 자주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잦은 사업 실패로 실직 상태였던 거 같았다.
‘오늘도 싸우네…….’
그렇게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부모님의 말소리가 들려오면 선이는 한숨을 쉬며 다시 동생에게 향했다.
‘스톱! 47.’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애써 잊으며 동생에게 다가온 선이가 동생이 몇까지 세고 있는지 맞히는 거였다.
‘땡! 45야.’
‘아깝네. 누나가 틀렸으니까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좋지. 근데 오락실 가면 안 돼? 오늘은 비행기 오락도 한 판 하고 싶은데…….’
‘그럼 떡볶이도 먹고 오락실도 가지 뭐.’
‘정말이지? 우리 누나 최고!’
선이는 간간이 부모님이 주는 용돈을 항상 이렇게 사용했다.
‘선이야. 집에 올 때 혹시 큰 소리가 나면 선욱이랑 밖에서 좀 놀다 들어와. 알았지?’
엄마의 부탁이 있기도 했지만, 동생에게 부모님의 부부 싸움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늘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선이의 이런 노력 때문에 동생은 한참 후에야 부모님이 잦은 싸움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때문에 선욱이도 한동안 방황도 많았다. 하지만 늘 싸움에 치중한 부부는 자식들의 고민을 할 턱이 없었다.
“나랑 선욱이는 늘 이랬어요. 아빠 엄마 잘 몰랐지?”
“……!”
그동안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딸아이의 고백에 김노담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도대체 아빠도 엄마도 왜 그렇게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같이 사는지 이해가 안 가요. 그 미워할 시간에 헤어지고 각자 인생 편하게 사는 게 좋을 거 같아.”
“…….”
“나도 선욱이도 처음에는 그래, 아무리 싸워도 부모님 이혼하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결혼할 때도 뭔가 그게 나을 거 같았어요. 근데 내 착각이었어.”
“선이야, 미안하구나. 근데 그건 다 너희를 위해서 참고 사는 거야.”
아이러니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김노담의 말은 사실이었다.
부부는 자신들의 부부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고 힘들었지만, 차마 자식들 때문에 갈라서지는 않았다.
만약 이혼을 하면 그 피해를 자식들이 고스란히 받을 것만 같았다.
둘 다 그 생각은 같았기에 서로 싸워도 이혼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아니 아빠,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지금까지 나랑 선욱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아빠랑 엄마가 알기는 해요? 진짜 우리를 위한다면 그런 소리 하시면 안 돼요.”
김노담의 말을 들은 딸은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저 가벼운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말 우리를 위했다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잖아요. 아빠도 엄마도 나랑 선욱이가 사춘기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진로 때문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려고 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인제 와서 우리 때문이라고…….”
“선이야 그건…….”
“아빠 저번에 통화할 때 나한테 그랬지? 왜 남자친구 안 사귀느냐고? 안 사귀는 게 아니라 못 사귀어서 그래. 나한테 아무리 좋은 사람이 온다 해도 나는 그 관계를 망치고 말 거야. 내가 아빠 엄마의 딸이니까.”
성실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며 성격도 좋은 김선이는 남자를 믿지 못했고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마음을 닫아 버렸다.
사랑보다 싸움이 익숙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자신은 평범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 있는 남자 친구도 지금까지 없었다.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남매가 부모에게 배운 건 사랑보다는 불신이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
“하!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세요. 정말 지겨워. 그러니까 우리 때문이라는 그딴 소리 그만하고 제발 자식들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세요.”
감정이 격해진 딸은 그동안 숨겨 왔던 속내를 전부 쏟아 내고 울면서 대기실을 나갔다.
“……!”
밖에서 그 말을 전부 듣고 있던 태경은 급하게 나오는 김선이의 모습을 보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이……. 아! 선생님?”
딸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김노담은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오는 태경을 보며 나가려던 걸음을 멈칫했다.
“수술은 어떻게 됐습니까?”
“걱정 많이 하셨죠? 수술 잘 끝났습니다.”
“그런가요?”
“환자분께서 계속 아프다고 하셨던 이유는 위에 난 작은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위요? 아니, 그러면 아내가 찔렀던 칼이 위에 상처를 냈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래도 상처가 크진 않아서 잘 치료하고 마무리까지 잘됐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아까 응급실에서 목소리 높여서 죄송했습니다.”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네요.”
사과를 전한 김노담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답답한 듯 손을 들어 마른세수했다.
“조금 전에 저랑 딸이 하는 대화 들으셨죠?”
“잠시 밖에서 대기하다가 들었습니다.”
“아내랑 제가 둘 다 성질이 똑같아요. 서로 참지 못하고 한 마디도 안 지려는 성격이다 보니 늘 싸움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부부가 싸움을 얼마나 박 터지게 했으면 병원까지 오고, 선생님 보기 민망하네요.”
“생각보다 많습니다.”
“네?”
“보호자분은 모르시겠지만, 부부 싸움 하다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 그런가요?”
“네.”
태경은 김노담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제가 두 분의 깊은 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 그렇게 미워하시지는 않나 보네요.”
“훗!”
그 말을 듣고 있던 김노담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공허하게 말했다.
“그건 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아까 제 딸이 하는 소리 들으셨잖아요. 늘 싸움만 한다고…….”
“근데 그거 아세요?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있죠?”
“알죠.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 진짜 죽을 정도로 미우면 그림자도 보기 싫거든요. 말 한마디조차 섞고 싶지 않고 그 사람이 뭘 하든 관심이 없어요. 쉽게 말해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거죠. 그런데 아직 싸울 힘이 남았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게 바라는 것도 관심도 남았다는 거 아닐까요?”
“……!”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김노담을 보던 태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아, 맞다! 아내분께서 보호자분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예? 제 걱정을요?”
“네, 본인 때문에 놀랐을 텐데 우리 남편 괜찮으냐고요.”
태경은 순간 선의의 거짓말을 해 보기로 했다.
“이 정도면 아내분께서 보호자께 관심 있는 거 맞죠?”
물론 이한순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매일 싸운다는 부부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태경이 거짓말을 한 건 조금 전 울면서 말했던 딸 때문이었다.
딸은 이혼하라며 김노담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아마 지금까지 부모님의 이혼을 바라지 않았기에 참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의 싸움으로 생겨난 불신의 마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다시 가까워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본다면 남매의 닫힌 마음도 조금씩 열릴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부부의 관계가 다시 잘되려면 근본적으로 서로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저 한마디로 바뀔지 안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보호자분?”
“예, 선생님.”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주제넘은 말이겠지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자식들에게 거울이 되어 주세요.”
그 뒤 김노담은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한순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여, 여보?”
“당신, 왜 이제 와?”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좀 뵙고 오느라…….”
“방금 왔다 가셨는데?”
“화장실 들렀다 왔어. 선이는?”
“편의점 갔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당신 아픈 곳 찾아서 잘 치료하셨대.”
“안 그래도 들었어. 선생님이 참 꼼꼼하시더라.”
“그러니까. 좀 괜찮아?”
김노담은 어색한 표정으로 아내가 누운 베드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수술받느라…… 고생 많았지?”
“고생은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내 탓이지 뭐.”
“……!”
이한순의 말에 김노담은 순간 움찔했다. 아무리 수술을 했다지만, 저런 반응이 나올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날 선 목소리로 ‘너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당연하지.’라는 늘 했던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말이 나오자 살짝 당황한 것이다.
사실 이한순이 저런 말을 한 것은 역시나 태경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조금 전, 김노담보다 먼저 병실에 들른 태경은 아내에게도 선의의 거짓말을 던졌다.
‘남편분께서 환자분이 괜찮은지 계속 묻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자신을 걱정했다는 말을 들은 이한순 역시 남편과 같은 반응이었다. 평생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남편이 걱정했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다.
“저기……. 선이 엄마? ……안해.”
“응? 뭐라고?”
“그게 내가 미안해.”
“…….”
남편의 사과에 이한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나 당신이 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럴 줄 몰랐거든. 근데 막상 병원에 와서 수술까지 하는 거 보니까 내가 심했던 거 같아.”
그동안 입 밖으로 ‘미안해’라는 말을 내보낼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어렵게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나니 그다음은 생각보다 쉬웠다.
무엇보다 늘 화난 얼굴 모습과 함께 드센 여자로 보였던 아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 좋았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이 소용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 하고 싶었어.”
“웬일이야? 다, 당신 어디 아파?”
남편의 사과의 이한순은 어리둥절했다.
“아픈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 나 멀쩡해. 오늘은 나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당신 때문인가……. 나도 똑같지. 내 성질 못 이겨서 그런 거지 당신 탓 아니야.”
“내가 앞으로 조심할게. 선이 엄마, 우리도 이제 평범하게 살자. 미안해.”
진심이 느껴지는 남편의 말에 이한순은 저도 모르게 울컥함이 밀려왔다.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 새로운 시작이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잘해 준다는 말은 못 해도 평범하게는 살게 해 줄게. 그만 싸우자.”
“평범한 게 어때서? 그게 제일 어려운 거야.”
“맞는 말이네. 그나저나 당신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나 당분간 금식이야.”
“맞다! 금식이지?”
“퇴원하면 족발에 소주 한잔해.”
“술은 더 있다 먹고 족발은 사 줄게.”
조금은 어색하지만 다른 부부처럼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은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더 이상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태경이 두 사람에게 했던 선의의 거짓말이 통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병실 밖에서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편의점 갔다 왔어?”
“응. 엄마 좀 어때?”
“괜찮아.”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서로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 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멍하니 서 있어요? 박혁 환자 보셨어요?”
스테이션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멍하니 서 있던 이찬희에게 다가왔다.
“아, 네.”
환자를 보러 왔다 우연히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이찬희는 칼부림까지 날 정도로 싸우던 부부의 화해가 신기했다.
“이한순 환자요. 남편분이랑 화해한 게 신기해서요. 응급실에서 분위기 완전 살벌했거든요. 당장이라도 이혼할 거 같더니…….”
“나중에 이 쌤도 결혼하면 알겠지만, 진짜 이혼할 사람들은 싸움도 안 해요.”
“아무리 그래도 전 좀 이해 안 가는데요?”
“원래 죽을 듯이 싸우다가도 다시 사는 게 부부예요. 한없이 멀다가도 또 한없이 가까운 거. 그게 부부거든요.”
“미혼인 제가 이해하기에는 부부의 세계는 어렵네요.”
“당연하죠. 그거 이해하려면 결혼해야 해요.”
“뭐, 어쨌든 환자분이랑 보호자분이 화해해서 다행이네요.”
“그럼요. 다행이죠. 이 쌤 내가 좋은 사람 아는데 소개해 줄까요?”
“정말요? 누군데요? 예뻐요?”
“예쁘죠. 성격도 당차고. 이 쌤도 알 걸요?”
“누군데요?”
“음. 최모나 선생님?”
“예? 개모나요? 어휴! 수 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최 쌤이랑 저는 전우라고요. 전우!”
이찬희는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병동을 뛰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