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4화 (243/472)

244화. 오일머니 실세

“그럼, 일본?”

“아니, 일본 바로 옆에 있는 나라. 한국.”

“한국이라고?”

한국이라는 소리에 하마드는 목소리를 높이며 되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한국 의료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그 나라에 아주 손기술이 기막힌 의사가 한 명 있어.”

“그게 아니라 안 그래도 한국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그래? 그면 잘됐네. 가는 길에 아예 수술 일정도 잡아서 수술하고 와.”

“그 정도야?”

“응. 사실 그 선생님께 우연히 수술을 받게 됐는데 아주 만족스러웠어. 수술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환자에게 진실하고 권위적이지도 않아.”

리처드는 자신을 수술한 의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대체 자네를 수술한 의사가 누군데?”

“궁금해?”

“그럼 궁금하지. 존스 홉킨스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이 이 정도로 칭찬할 정도면 누구라도 궁금하지 않겠어?”

“가만있자. 내가 뭐 하나 보여 줄까? 잠깐만 있어 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궁금해하는 하마드에게 리처드 책상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찾더니 영상 하나를 클릭해 모니터를 돌렸다.

“하마드? 이거 한 번 봐 봐.”

“이게 뭔데? 이거! 수술 영상이잖아?”

갑자기 리처드가 보여 준 영상은 수술 영상이었다. 그것도 바로 자신의 수술 영상이었다.

“이거 내 위암 수술 영상이야.”

“뭐라고? 이게 자네 수술 영상이란 말이지?”

“그래.”

그 뒤 집중해서 영상을 보던 하마다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 이거 엄청나잖아?”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 칭찬을 했는지 이제 알겠지?”

“아니, 그러니까 자네를 수술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니까.”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는 하마드에게 리처드는 무언가를 적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 이게 그 선생님 이름이야.”

“그래? 고마워.”

하마드는 메모지에 적힌 이름을 뚫어지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며칠 뒤, 태경은 예전부터 생각했던 병원 복도 수리 건으로 이야기 중이었다.

“지금 그러니까 여기서 환자들 동선이 조금 불편한 것 같아요.”

“저 원장님.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이 정도 코너는 괜찮지 않을까요?”

“어……. 설비팀장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마시고 여기서 한번 타 보실래요?”

태경은 한쪽에 세워 둔 휠체어를 끌고 와서 가리켰다.

“네? 휠체어를요?”

“네. 한번 타 보셔서 이 코너를 직접 돌아보세요.”

설비팀장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눈빛을 보냈지만, 태경의 눈빛에 압도당해 결국 휠체어를 타기로 했다.

“어! 어이쿠!”

마지못해 휠체어를 탔던 설비팀장은 애를 써도 코너 안쪽 벽에 걸려 쉽지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이거 정말 쉽지가 않네요.”

“제 말이 맞죠? 나와 다른 누군가를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직접 경험을 해 봐야 해요. 그래야 그만큼 어려움을 알 수도 있고 개선할 수도 있으니까요. 쉽지 않겠지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부탁드릴게요.”

“네, 원장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이쪽 문에서 저기 재활치료실까지…….”

한참 설비팀장과 다음 주제로 넘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워, 원장님!!”

우리병원 소식통인 최 팀장이 헐레벌떡 계단을 내리 뛰어오고 있었다.

“원장님?!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이건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고 제 이야기에 집중하세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왔습니다. 왔어요.”

“왔다니 뭐가요?”

“놀라지 마세요.”

“그 국회의원…….”

“국회의원이요?”

“예, 감덕찬 국회의원과 ……이 왔다니까요.”

“감 의원님이야 병원에 올 수도 있죠.”

일전에 백화점 사고로 수술을 했던 감덕찬의 딸은 잘 회복 후 무사히 퇴원했다.

그 뒤 감덕찬은 가끔 병원을 찾아 태경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병원을 왔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팀장님 숨넘어가겠어요. 좀 진정하세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뛰어온 건지 숨을 몰아쉬는 최 팀장에게 태경은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건넸다.

“네? 아, 감사합니다.”

숨이 찬 최 팀장은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원장님, 그러니까…….”

음료수를 다 마신 최 팀장인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려 하자 태경은 어느새 자리를 벗어나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얼래! 그냥 가시면 안 되는데? 원장님?”

“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할 말이야 늘 많죠. 아니, 그보다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고요. 일단 빨리 정문으로 가 보세요.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이요?”

“네, 그것도 어마어마한 오일머니라니까요.”

“오일머니요?”

“아! 빨리 가 보시라니까요.”

“……!”

그 말에 어리둥절한 태경은 일단 최 팀장이 말한 대로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로비로 향하자 감덕찬 의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전통 복장을 한 남자와 감덕찬의 수행원들 말고도 양복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외국인 수행원들도 함께 보였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우리 김 원장님 반가워요. 반가워.”

태경이 인사를 건네자 김덕찬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반갑게 화답했다. 그런데 뭔가 평소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항상 무게감을 유지하며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던 평소의 감덕찬이 아니었다.

약간 상기되었고 무언가에 긴장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약간 공손해 보이기까지 한 느낌이었다.

“김 원장, 잠시만 이쪽으로.”

감덕찬은 태경을 한쪽으로 이끌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나 하면…….”

감덕찬은 감자기 태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비장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나랑 인사할 때 저기, 전통 옷 입은 사람 봤죠?”

“아, 네.”

사실 태경은 로비에 온 뒤부터 계속 전통 복장을 한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랍에미리트 남자들의 전통 복장인 칸도라를 입고 쉬마흐라고 불리는 두건과 그 위에 얹는 이갈이라는 링까지 한, 그야말로 진짜 전통 복장을 착장한 남자였다.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하고 있어서 그 남자를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에게서 다섯 번째 바이탈을 감지한 탓에 남자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중동 지역. 그러니까 아랍에미리트의 아주 힘 있는 사람이에요. 그냥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진짜 중요한 사람이란 뜻이죠. 지금 기말 사항이라 누군지 정확히 말은 못 하는데 적어도 우리나라 대통령만큼 아주 중요하다고 보면 돼요.”

“아, 네…….”

“내가 이 정도까지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 남자가 그쪽 왕족이에요. 왕족!”

“왕족이군요.”

“그래요. 미리 연락하고 올까 하다가 무슨 신변 보호에 엄청 까다롭더라고. 그래서 갑자기 오게 됐어요. 아무튼 엄청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 그러네요.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감덕찬의 열띤 설명에도 불구하고 태경은 허무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사실 저 사람은 왕족이든지 귀빈이든지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한참 병원 일을 해야 하는데 또 어디선가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태경의 성격상 높은 사람 같은 거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병원에 들어온 순간 모두가 동등한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병원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다른 환자에게 하듯이 정도껏 잘 대접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 병원에는 어쩐 일로 온 건가요?”

“그게 저분이…….”

“Excuse me.”

한참 은밀한 대화를 이어 가던 두 사람 사이로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잘생긴 중년 남자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그 바람에 태경과 감덕찬은 화들짝 놀랐다.

놀란 마음을 다잡은 감덕찬은 옷매무새를 만지더니 아랍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Nice to meet you. Dr. Kim.”

그 뒤 칸도라를 입은 남자는 양손으로 태경의 손을 덥석 잡더니 영어로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My name is Hamad.”

남자는 자신을 하마드라고 소개했다.

“저기, 의원님 일단 제 사무실로 함께 자리를 옮길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

태경의 안내를 받으며 하마드 일행과 감덕찬은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했다.

테이블에는 태경과 그 옆으로 감덕찬 의원이 자리했고, 맞은편에는 하마드와 그의 직속 통역사가 함께 자리했다.

“그러니까 저분이 아랍에미리트 왕족이라는 거죠?”

“맞아요. 근데 그냥 왕족도 아니고 석유 수출과 관련된 기관의 실권자에요.”

감덕찬의 말을 듣자마자 최 팀장이 아까 오일머니라고 했던 말이 이해됐다.

“그리고 저분이 현재 위암에 걸린 상태고요. 아니, 그런데 저렇게 대단한 분이 왜 저한테 오신 거죠?”

“당연히 원장님을 만나기 위해서죠.”

이제야 뭔가 상황 파악이 된 태경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저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나 싶었다.

현재 몸이 안 좋은 상태라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왕족에 국회의원인 감덕찬이 직접 안내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왔나 싶었다.

물론 우리나라 큰 병원들도 해외 환자 유치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그들로 인해 괜찮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한국 의료 기술이 점점 세계로 알려지면서 해가 갈수록 여러 나라 환자가 찾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대형병원들 이야기였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은 병원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잠시 VIP께서 하신 말을 번역해 드리겠습니다.”

태경의 표정을 읽었는지 하마드는 통역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김태경 선생님.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전 하버드에서 천문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해서 의학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알고 있어요.”

하마드는 계속해서 통역사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

“특히 위암과 관련한 복강경으로 수술 시 한국과 일본의 수술 성과를 서양이나 중동 쪽에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태경의 말을 하마드에게 전한 통역사는 다시 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런데 일본은 너무 강박적인 림프절 절제를 하는 경향이 있고, 한국의 전반적인 의료 기술이나 기구들이 투자가 더 잘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원장님이 신화대학병원에서 있을 때 그 현란하고 신기에 가까운 복강경 수술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닌데 실례지만, 어느 분께서 전달해 주신 건가요?”

“과거 존스 홉킨스 대학의 병리학 교수인 리처드가 위암으로 원장님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죠?”

“아! 네 맞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수술했던 환자들은 어지간하면 다 기억을 하는 태경이었다. 그런데 리처드는 존스 홉킨스 교수였으니 아무래도 더 기억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때는 원하시는 교수님께서 개인적인 일로 제가 대신 한 것입니다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실은 원장님께서 수술한 리처드가 저의 친구입니다.”

조금 전 자신을 하마드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며칠 전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친구 리처드 교수를 찾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친구와 대화를 나눈 뒤 태경을 만나기 위해 기존 한국 일정까지 당기며 전용기를 타고 날아왔다.

자신의 목숨을 맡길 의사를 만나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선생님을 빨리 뵙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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