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6화 (245/472)

246화. 진흙 속 물풍선

“메스 주세요.”

메스를 건네받은 태경이 배꼽 바로 아랫부분에 1.5cm 정도의 절개선을 넣었다.

“투스 포셉(tooth forcep, 갈고리가 있는 10cm 정도의 포셉) 주세요.”

두 사람이 절개선 양쪽을 포셉으로 잡아당기자 태경이 보비로 그 안을 조금씩 벌려서 들어간 뒤, 2cm 정도 되는 깊이를 들어간 후 검지를 넣어서 지방층을 파헤쳤다.

“파샤(fascia, 근막) 보이네, 코카(cocha, 가위처럼 생겼으며 갈고리 모양의 이가 끝에 있어서 무언가를 강하게 잡는 기구) 주세요.”

태경이 기구 끝으로 하얀색 파샤(근막)를 강하게 잡는다.

-드르륵

“하나 더 주세요.”

지방층 안으로 하얀 막을 기구로 잡고서 들어 올린 뒤 메스로 약간의 절개선을 넣는다.

“자, 트로카 주세요.”

이어서 끝이 뭉툭한 트로카(trocar, 배벽에 기구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기구로, 큰 나사 모양임)를 절개한 곳으로 밀어 넣자 연결된 CO2가 트로카를 통해서 배 안에 차올랐다.

그 뒤 같은 방법으로 총 4개의 트로카 사이트(트로카가 배벽에 거치되어 있는 장소)를 만들고, 카메라가 배꼽 바로 아래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슈욱-

카메라가 들어가자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복부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 때문에 넓어진 복강 내부가 잘 보이게 됐다.

아래로는 분홍빛과 지방의 노란빛 그리고 중간중간 옅은 붉은색 혈관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보였다.

태경은 먼저 소장을 덮고 있는 지방층을 걷어낼 생각이다.

“하모닉(Harmonic, 음파의 미세한 떨림으로 조직이나 혈관을 절개하는 기구로, 지혈과 절개를 동시에 진행함) 주세요.”

간호사가 지름 60cm 정도 되는 총 모양의 집게 형태인 하모닉을 태경에게 건넸다. 배 속에 기구 끝을 집어넣자 모니터 상에서 기구의 끝이 보인다.

태경이 왼손에 있는 단순 집게로 장간막 지방을 집어 들자 지방층 사이사이에 붉게 박동하는 동맥들이 보였다.

출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구를 집어서 지혈과 절개를 동시에 진행한다.

두두두둑-

하모닉 끝에 1cm 정도 되는 부분으로 지방을 잡자 기계음과 함께 뿌연 연기가 배 안에 퍼졌다. 지방층을 절개한 태경은 한쪽으로 지방층을 민다.

이후 붉은색을 띠는 위가 눈앞에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이 보이네.”

식도의 끝에서부터 십이지장 전까지 있는 위가 오늘의 주 무대인 것이다. 살색의 위와 아래쪽에 공격적으로 큰 혈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봐도 혈관이 많네요.”

“그렇지.”

위는 운동량이 많아서 혈관이 많이 분포된 장기이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혈관들이 큰 편이다.

“전, 가끔 이쪽 혈관들 볼 때마다 지렁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찬희 말이 맞았다.

그 혈관들의 모습은 마치 꿈틀대는 빨간색 지렁이와도 같았다.

오늘 수술은 위를 절반만 자르는 수술이라서 이 혈관들 대부분을 결찰해야 한다. 물론 이 혈관들조차도 오늘의 주요 위험은 아니다.

동맥은 하나의 상수도관과도 같다.

시작은 심장이고 말단에는 각 장기에 이어져서 공급되는 것이다. 위에도 심장에서부터 연결된 동맥이 있다.

이 위에 연결된 동맥보다는 조금 더 분지되기 이전의 동맥들 여러 개를 잡는 것이 오늘의 중점이다.

“찬희야, 그라스퍼 집어서 간 들어 봐.”

“네, 선생님.”

태경의 말에 이찬희가 그라스퍼(grasper, 여타 복강경 도구들과 같이 총 모양이고 목이 긴 도구로, 구조물 등을 잡는 기능을 함)를 복강 내로 쑤욱 집어넣자 모니터상에 기구 끝이 보였다.

2cm 정도 되는 집게 부위에 미리 배 안에 넣어 놓은 거즈를 잡아서 돌돌 말고 그 거즈로 간을 들어 올린다.

간을 들어 올리자 그 밑에 있는 복잡한 혈관 구조들이 지방에 둘러싸여 모습을 드러냈다.

‘전선이 따로 없군.’

위 주변의 혈관들은 전봇대의 복잡한 전선과 유사하다.

서로가 서로의 주행 방향을 갖고 제멋대로 뻗어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굉장히 위험하다.

마치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작은 물풍선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그것을 찾는 도구가 매우 날카로운 가위라는 것이 문제였다.

꼴깍-

그 위험함을 잘 알고 있는 이찬희가 마른침을 삼키며 더욱 집중했다.

태경이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지방을 하나하나 벗겨 들어가자 위 배출구 주변으로 방방 뛰는 혈관들이 보였다.

“헤모락(hemo-lock, 1cm, 5mm 정도의 작은 플라스틱 집게로, 혈관을 잡을 수 있음) 5mm 주세요.”

간호사가 기구에 헤모락을 끼워주자 태경이 혈관의 한 방향을 짚었다.

“하나 더요.”

이어지는 혈관 두 곳을 헤모락으로 잡고서 그 사이를 다시 하모닉으로 지혈과 절개를 동시에 진행한다.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지방과 혈관이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가 혈관이고 어디까지가 지방인지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찬희?”

“네, 선생님.”

“내가 방금 잡은 게 어떤 혈관이지?”

“아! 혈관이었습니까?”

“그럼, 혈관이지.”

지금 같은 경우 외과 전공이라고 해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찬희는 사실 태경이 멈추기 전까지 혈관인지도 몰랐다.

사실 태경이 수술을 잘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많은 경험으로 굳이 지방을 모두 걷어내지 않아도 혈관의 윤곽을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외과의가 아닌 다른 과의 의사들이 보아도 엄한 지방에다가 하모닉을 낭비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그래서 뭐인 거 같아?”

“어……. 라이트 가스트릭 아터리(Rt. gastric artery, 오른 위 동맥) 아닙니까?”

“맞아. 위는 대표적으로 공급받는 동맥들이 있어. 그것들의 위치와 이름 정도는 다 알아야 해.”

“네, 알겠습니다.”

“이제 위를 좀 들어 보자. 백콥(laparoscopic babcock, 그라스퍼보다 조금 더 집게 부분이 크며 잡은 후 고정이 가능한 기구) 들어와.”

이찬희가 기구를 집어넣고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 바로 위쪽을 잡았다.

“올려”

“네.”

이찬희가 위를 들어 올리자 마찬가지로 지방과 그 속에 파묻혀 있는 혈관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너무나 많은 혈관이 방방 널뛰고 있어서 일반인의 눈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 혈관들을 결찰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느 정도로 결찰하는 것이 적당한가는 모두 경험에 의한 판단이었다.

그냥 하모닉으로 단순하게 잡을지, 그보다 더 강하게 헤모락과 하모닉으로 잡을지는 순전히 태경의 영역이었다.

‘하모닉이 낫겠네.’

결정을 마친 태경이 하모닉으로 빠르게 혈관들을 잡아 가기 시작했다.

“음……. 이게 라이트 가스트 로에피플로익 아터리(Rt. gastroepiploic artery, 우위 대망 동맥)이야. 위의 윗면을 따라서 먹여 살리는 동맥이지. 얘는 하모닉으로만 잡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

“네, 선생님.”

“헤모락 10mm 주세요.”

간호사가 헤모락을 준비하자 태경은 기구로 잡을 혈관 주변의 지방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혈관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주변의 지방들을 떼어 낸다.

그 뒤, 어느 정도 공간이 만들어지자 헤모락으로 혈관의 위아래를 집어냈다.

“하모닉 주세요.”

일직선의 혈관에 잡혀 있는 두 개의 헤모락 사이를 하모닉으로 추가 결찰한다. 그러자 뿌연 연기와 함께 위의 주요 혈관 중 하나가 출혈 없이 끊어졌다.

“찬희야. 다시 잡고 위를 아예 번쩍 들어 봐.”

“네, 선생님.”

태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찬희가 위의 몸통을 다 들어 올리자 밑에서 위보다 더 하얗고 경계가 애매한 장기가 드러났다.

바로 췌장이었다.

“그라스퍼 하나 더 들어와 봐. 그리고 입 벌리지 말고 닫은 채로 밑의 췌장 눌러 봐.”

“네, 알겠습니다.”

지금 수술은 위의 윗부분만을 남기고 절제하는 수술이다. 즉, 위의 뒷면에서도 혈관을 잡아야 한다.

“……!”

이러한 시야 확보를 위해 아래에 있는 췌장을 누르자 이찬희가 적지 않게 놀란 얼굴을 했다.

“표정이 왜 그래?”

태경이 놀란 이찬희에게 물었다.

“그게 기구에서 느껴지는 복부대동맥의 박동이 너무 적나라해서요.”

사실이었다. 직접적으로 대동맥을 만진 것도 아닌데 기구를 통해서 전달되는 혈관의 박동이 어마어마했다.

“당연하지. 췌장 바로 밑에 직경이 1cm나 되는 동맥이 흐르는데 당연히 느껴지지. 그 박동이 세게 느껴질수록 네가 강하게 누르고 있다는 뜻이니까 너무 세게 누르지 마.”

“아……. 네. 선생님.”

“찬희야? 그거 터지면 즉사다.”

“네!? 즈, 즉사요?”

“선생님도 참. 이 선생이 바보도 아니고 그라스퍼 기구로 누른다고 그게 터지겠어요.”

모니터를 보며 하마드의 상태를 체크하던 의진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에이. 그렇죠? 지금 선생님이 저 놀리시는 거죠?”

화들짝 놀랐던 이찬희 역시 의진의 말을 듣고 태경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이어 돌아온 태경의 말에 의해 두 사람 모두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농담 같아? 아닌데.”

“아니라고요?”

“실제로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네?! 진짜요?”

“그게 정말이에요?”

“응. 어디였더라? 이쪽 말고 다른 지역으로 기억하는데…….”

태경은 복강경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기구로 누르고 있다가 복부 대동맥이 상처받은 거야.”

“그래서 환자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즉사했지. 의사는 그 일 때문에 의사 일 그만뒀고.”

“이게 진짜라는 거죠?”

“그렇다니까.”

“와! 정말 무섭네요.”

태경의 말을 들은 이찬희의 표정은 어쩐지 더 안 좋아진 듯 보였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해.”

“그럼요. 항상 조심하겠습니다.”

“자! 됐다. 그만 기구 빼.”

대화가 오가는 사이 태경은 위 뒷면에 있는 혈관들을 다 잡았다.

“GI(두꺼운 집게 모양으로, 장문합 등에 사용되는 스테이플러) 주세요.”

태경이 10cm 정도 되는 집게 모양의 스테이플러로 위 배출부를 잡고서 기계를 가동하자 기계음이 들려왔다.

드륵드륵-

잡았던 부위를 떼어 내자 잡고 있던 면이 절제되었다. 그리고 절제된 면에는 수많은 스테이플들이 일정한 간격과 강도로 위의 절단면에 붙어 있다.

“찬희야?”

“네, 선생님.”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가 나중에 수술하면 이 스테이플러로 절제하고 잡은 부위를 잘 봐야 해. 단순히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출혈은 없는지, 출혈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잡을지에 관한 것들 말이야.”

“네.”

“그런 의미에서 여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배출부는……. 전기로 지져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갑자기 시작된 질문에 이찬희가 답하자 살짝 못마땅한 태경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의사면 의사답게 말해. 지진다는 표현이 정확한 용어가 아니잖아.”

“네, 시정하겠습니다.”

이찬희가 말한 대로 스테이플러 심들이 무수히 박힌 표면에 전기로 가열한다.

“GI 하나 더 주세요.”

태경에게 GI가 건네지고 이번에는 위 몸통에서 조금 더 위쪽에다가 기구를 갖다 댔다.

지금 수술하는 하마드의 위의 몸통 바로 윗부분은 직경이 15cm 정도 된다. GI로는 3번 정도 해야 잘리는 길이였다.

반복된 작업을 통해 위를 절제한 뒤 스테이플러 마지막 부분에는 헤모락을 물어서 내용물이 새는 일이 없도록 한다.

위에서 내용물이 새면 대형 사고다. 위에는 위산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장관 내의 내용물이 복강 내로 새면 모두 다 대형 사고지만, 위산은 강한 산성이기 때문에 더한 통증을 야기한다.

한참이나 진행된 수술이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위와 소장 등은 스테이플러로 잡으면 끝이 아니야. 두 번 더 봉합해 줘야 해.”

“네, 선생님.”

“CR(복강경으로 봉합하기 위한 도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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