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7화 (246/472)

247화. 다른 병원으로 이송

“위와 소장 등은 스테이플러로 잡으면 끝이 아니야. 두 번 더 봉합해 줘야 해.”

“네, 선생님.”

“CR(복강경으로 봉합하기 위한 도구) 주세요.”

간호사가 검과 같은 모양의 CR 도구에다 봉합 바늘을 물어서 건넸다. CR은 검과 같은 손잡이에 둥근 목이 길게 있고 끝이 바늘을 물 수 있도록 1cm 정도의 집게가 있는 기구다.

검과 같은 손잡이인 이유는 봉합할 때 손목을 돌려서 봉합하기 위함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복강경으로 봉합을 원하는 깊이만큼 원하는 강도로 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같은 외과의라도 복강경 경험이 다분해야 했다.

물론 경험 많은 태경은 당연히 가능한 일이었다.

수려한 속도로 위의 절단되고 스테이플러로 봉합된 면을 따라서 CR로 한 땀 한 땀 봉합해 나갔다.

적당한 깊이로 원하는 곳에 봉합을 진행해 나갔다. 한 땀씩 조심히 묶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위는 근육 덩어리라서 강하게 봉합을 해도 찢어지지가 않지만, 위산에 의해서 봉합이 더 잘 풀리므로 위 덩어리를 끌어다가 한 번 더 봉합해야 한다.

두 번째 봉합은 위 겉면에다가 바늘을 집어넣어서 절단면을 두고서 양쪽에 있는 위들이 겹쳐지게 봉합한다.

“자! bag 주세요.”

배 속으로 백을 집어넣고 벌려서 잘라낸 위의 아랫부분을 담는다.

성인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위 일부분이 백에 담겨졌다.

그 뒤, 태경은 카메라가 들어가던 트로카 사이트를 더 절개해서 지름이 4cm 정도 되는 구멍을 만들었다.

이후에 비닐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배에 있는 구멍 사이로 위와 비닐이 쑤욱 빠져나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다섯 번째 바이탈은 참 정직했다.

‘그래! 이거지.’

하마드의 몸에서 위암 부분이 나오는 순간, 3단계인 지독한 분뇨 냄새도 그 자취를 감췄다.

“자! 검체 나가요.”

미리 준비되어 있는 멸균된 테이블로 걸어간 태경이 그 위로 백을 열어서 하마드 몸속에서 꺼낸 위를 내려놓았다.

그 후 위를 가위로 잘라서 내부에 위암 부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한 뒤, 잘린 면을 멸균된 가위로 얇게 잘라서 물이 담긴 보틀에 넣었다.

“잘린 검체 부분 frozen(수술 중간에 얼려서 보는 병리검사. 양성 시 남은 부분을 더 절제해야 함) 나갈게요.”

태경이 다시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로 돌아오자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그라스퍼를 건넸다.

배속에 쑤욱 기구를 집어넣고서 소장을 끌어다가 위의 남은 부분으로 갖고 간다. 이제 위의 남은 부분과 소장을 연결해 줄 순서다.

소장에 전기소작기로 0.5cm 정도의 구멍을 내고 남은 위의 부분에도 구멍을 낸 뒤, GIA 스테이플러 양면을 각각 위와 소장의 구멍에다가 넣었다.

그러면 소장의 한 단면과 위의 남은 부분이 맞닿게 된다. 그리고서 기기를 작동시키면 소장과 위의 남은 부분 사이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그 구멍 주변의 소장과 위의 연결 부위는 수많은 스테이플러 심으로 고정된다.

“자 CR 주세요.”

스테이플러라는 아주 유용한 기기가 나왔어도 언제나 마지막은 바로 이 봉합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손목을 여기저기로 돌려가면서 10cm 정도 되는 문합 부위 앞뒤로 봉합을 한 땀씩 해 나가는 것이다.

손목을 꺾다가 적당한 깊이가 되면 다시 다른 쪽으로 나오게 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대부분의 외과의조차도 할 수 없는 복강경 봉합을 태경은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얼마나 경험이 쌓고 연습해야 선생님처럼 할 수 있는 걸까?’

“원장님?”

이찬희가 태경의 봉합을 보며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간호사가 말했다.

“병리과에서 연락 왔는데요. frozen 음성(급속냉동으로 본 검체에 암이 없음을 의미)이랍니다.”

“좋아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소장 닫고 끝냅시다.”

소장을 끌어다가 위에다 연결해 주면 끌어올려진 소장의 틈으로 다른 소장이 기어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장 사이 공간을 봉합으로 촘촘하게 메꿔 주어야 했다.

4cm 정도 갈라놓은 구멍으로 다시 소장을 끄집어낸 뒤 소장과 소장 사이를 외과적 타이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찬희야?”

“네, 선생님.”

“한번 해 봐.”

“네, 네?!”

기계적으로 대답하던 이찬희는 질문의 뜻을 이해한 뒤 되물었다.

“제, 제가요?”

“뭘 그렇게 놀라? 왜? 싫어?”

“아니요.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많이 해 봤잖아. 그대로만 해.”

“네.”

이찬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소 연습한 대로 타이를 하나하나씩 해 나갔다.

태경은 누구보다 이찬희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후배가 어느 정도 타이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동안 태경의 완벽주의자 성격 때문에 타이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버벅대지만, 연습 많이 했구나?”

이찬희의 모습을 지켜보던 태경이 흐뭇한 미소를 마스크 안으로 숨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맡길게.”

“네?”

“타이, 계속해 봐.”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약하게. 지금 힘이 너무 들어갔어. 그러다가 소장 찢어져. 힘 빼고.”

“네. 선생님.”

“약간 부드럽게 매듭이 들어가야 해. 좀 더 부드럽게, 그렇다고 느리게 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 힘만 빼면 돼. 그렇게. 좋아.”

태경은 후배에게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이찬희도 태경의 독려에 신이 난 듯 집중해서 타이를 마무리해 나갔다.

“자! 다 됐다. 이제 배만 닫읍시다.”

타이가 마무리되고 태경은 통상적인 수술처럼 배를 층층이 봉합했다.

4cm 이상으로 배를 절개하지 않았기에 봉합 역시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하마드의 모든 수술이 드디어 끝이 났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난 기록지 쓰고 대기실에 있을게 환자분 깨면 연락 줘.”

“네, VIP 깨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맞다. VIP였지. 깜빡했네.”

수술에 집중한 태경은 환자가 하마드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선생님도 참 그걸 잊으시면 어떡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병원 첫 번째 VIP 환자인데 잊으면 안 되죠.”

이찬희가 수술방을 나가는 태경을 향해 말하자 의진이 고개를 흔들며 대신 답했다.

“그보다는 선생님한테는 모든 환자가 VIP라서 그럴 거야. 다들 동등하고 중요한 환자니까 딱히 하마드 씨라고 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야. 다른 환자 수술할 때처럼 똑같이 최선을 다하신 걸 거야.”

“하긴, 선생님은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죠.”

수술방을 나온 태경은 바로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의원님?”

“원장님!”

보호자 대기실에는 하마드의 가족 대신 감덕찬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걱정 많으셨죠? 수술 잘됐습니다.”

“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수술이 잘됐다는 말에 감덕찬과 옆에 있던 통역사는 밝은 표정으로 안심했다.

“사실 뭐, 걱정도 안 하고 있었…….”

“저기요.”

감덕찬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가던 그때였다.

“실례합니다.”

말끔한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몇몇이 구두 소리와 함께 대기실로 급히 들어왔다.

“아니, 고 비서관?”

“감 의원님 안녕하세요. 또 뵙습니다.”

가장 앞장서서 들어온 남자는 감덕찬과 친분이 있는 듯 아는 척을 했다.

“그런데 자네가 여긴 어쩐 일로 온 건가?”

“하마드 선생님 때문에 왔습니다.”

“하마드 씨?”

“네.”

“일단 인사부터 나누지. 이쪽은 우리 병원 원장님이자 하마드 씨의 주치의인 김태경 원장님. 원장님, 이쪽은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고영호 비서관과 직원들입니다.”

감덕찬이 소개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비서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고영호입니다.”

“김태경입니다.”

“원장님, 수술은 잘된 건가요?”

“네, 수술은 잘됐습니다.”

“그럼, 시간 끌 거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이런 말씀 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하마드 씨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합니다.”

“네? 이송이요?”

“아니, 고 비서관.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VIP를 편하고 좋은 병원으로 모시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정부와 중요한 계약을 한 하마드는 정부 입장에서 말 그대로 귀빈이었다.

그런데 하마드가 감덕찬을 제외하고는 수술 사실을 극비로 한 탓에 정부 관련 사람들은 그의 수술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윗선에서는 서울 시내 크고 좋은 병원이 많은데 하마드가 변두리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내 못마땅한 듯 보였다.

행여 나중에라도 귀빈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외교 문제로 이어질까 싶었기에 그를 좋은 병원으로 옮기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하마드 씨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원장님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봐! 고 비서관,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경우가 아니잖아? 안 그래?”

감덕찬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 정부에서 하는 일이니 일개 의사인 제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겠죠.”

“아니, 원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하마드가 어떤 마음으로 원장님을 찾아왔는지 잘 알고 계시잖아요.”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던 태경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감덕찬은 살짝 당황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이해야 그냥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하마드 씨가 이 건에 대해 동의했나요?”

“……예?”

“아니, ‘예’가 아니라 제 환자분이 수술 후 병원 이송에 관해 알고 있고 동의를 했는지 물어본 겁니다.”

“아! 그거야…….”

태경의 말에 비서관이 말꼬리를 흐리며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군지 강조했다.

“저기 원장님.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시나 본데, 저와 여기 있는 사람들 정부 사람입니다.”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아까 말씀하셔서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을 제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요.”

“하지만, 하마드 씨는 제 환자입니다. 환자 본인과 이야기도 되지 않는 건을 주치의로서 저는 승인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이건 비서관님이 아닌 더 높은 분이 와도 똑같습니다.”

“……!”

“게다가 환자분은 저에게 수술과 치료를 받으려고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그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환자를 아무런 상의 없이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정 이송하고 싶다면 하마드 씨와 직접 이야기하세요.”

“이보세요, 원장님. 이게 지금 어떤 사안인지 잘 모르시나 본데요.”

태경의 똑 부러진 말에 당황하던 비서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바로 뒤이어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STOP! STOP!”

바로 본국과 통화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하마드의 수행원이었다.

그 수행원은 하마드가 처음 병원을 방문했던 날 태경에게 소리를 높였던 바로 그 수행원이었다.

그는 수행원 중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대기실을 빠져나온 통역사가 얼른 수행원에게 가서 상황을 전달한 것이다.

“이게 지금 무슨 경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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