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8화 (248/472)

248화. VIP의 마음?

“이게 지금 무슨 경우입니까?”

통역사가 수행원이 하는 말을 통역하고 나섰다.

“비서관님 행동이 참 당황스럽네요.”

당연히 태경에게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던 비서관은 통역사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입니까?”

“예, 당신이요. 우리 VIP께서는 그 어떤 병원으로도 옮기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병원으로…….”

“선생님?”

대기실 분위기가 한창 심각해지던 그때, 이번에는 이찬희가 급히 들어오며 태경을 불렀다.

“이 선생, 무슨 일이야?”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환자분께서 깨어나서 병실로 옮겼습니다.”

“그래? 지금 환자분이 깨어나서 전 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잠시만요? 그럼 제가 직접 하마드 씨에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높은 사람의 지시를 받고 온 건지 비서관은 여전히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마취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하마드를 직접 만나 설득할 생각인 듯싶었다.

“고 비서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막 수술을 끝낸 분을 찾아가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옆에 있던 감덕찬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마디를 거들었다.

“의원님. 지금 VIP가 얼마나 중요한 귀빈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지시받은 사항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수행원분이 그러시는데 그럼 일단 병실로 가서 VIP께 물어보신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은 상황에 수행원이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결국 태경을 비롯한 감덕찬과 수행원, 비서관이 하마드의 병실로 향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좀 어떠신가요?”

하마드가 입원해 있는 1인 병실을 찾은 태경은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자세히 전했다.

“제가 고생일 게 있나요. 원장님께서 수고하셨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아프지 않아서 괜찮은데요?”

통역사를 통해 상태를 전한 하마드는 얼굴의 살짝 웃음까지 띠며 여유를 보였다.

“지금은 마취가 아직 덜 풀려서 그럴 수도 있어요. 이따 마취가 다 풀리고 불편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의원님까지 오시고, 다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하마드 씨, 밖에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함께 자리한 감덕찬이 하마드에게 상황을 전했다.

“문제라니요?”

“병원을 옮겨야 할 수도 있겠어요.”

“예? 병원을 옮기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오마르,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감덕찬의 말을 들은 하마드는 수행원에게 물었다.

“한국 정부에서 사람이 찾아왔는데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조금 전 보호자 대기실에서 있던 일과 밖에 비서관이 기다리고 있는 사실도 전했다.

잠시 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하마드는 비서관을 병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전했다.

“안녕하셨습니까, 하마드 선생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여기 계신 원장님께서 수술을 잘해 주셔서 괜찮습니다.”

이미 정부와 한차례 일을 한 뒤였기에 하마드도 비서관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건 그렇고 제 수행원에게 듣기로는 비서관님이 오신 이유가 병원을 옮기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예. 그렇습니다. 수술이야 이미 하신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회복 때까지 더 좋은 병원에서 모시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좋은 병원이요?”

“네. 여기 계시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을실 거 같아서요. 이동 또한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아니요. 안 옮깁니다.”

혼자 신나서 떠드는 비서관을 향해 통역사가 하마드의 뜻을 전했다.

“여기보다 좋은 병원은 없습니다. 비서관님이 말씀하신 좋은 병원이란 어떤 병원이죠?”

“예? 그건…….”

“설마 건물이 좋다고 좋은 병원이라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

정말 딱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려던 비서관은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편리할 순 있겠지만, 시설이 좋다고 해서 좋은 병원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병원이란 좋은 의사가 있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여기 계시는 김태경 원장님이 계시는 우리병원이 바로 좋은 병원입니다.”

그 말에 감덕찬 의원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비서관을 쳐다봤다.

“하지만 하마드 선생님…….”

“비서관님, 그만하시죠. 여기서 더 권한다면 이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

“수술 건은 한국 정부와의 일이 아닌 제 개인적인 일정인데 이렇게까지 관여하시면 제가 불편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만하고 가시죠.”

“아! 죄송합니다.”

하마드의 뜻을 이해한 비서관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한 번 더 권해 볼까도 했지만, 그의 눈빛이 상당히 단호하고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고 비서관. 자네 역시 시키는 일이라 난감한 건 알겠어. 하지만 여기서 더 하면 그때는 실례를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야.”

여기서 더 우겼다가는 감덕찬의 말대로 정부가 협의한 계약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에 그만하기로 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신경 써 주신 건 감사하지만 퇴원할 때까지는 편하게 있고 싶으니 제 개인적인 일정은 모른 척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제가 윗분께는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과는 제가 아니라 원장님께 드려야죠.”

“원장님,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그럼 빠르게 쾌차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뵙죠.”

비서관은 하마드와 태경에게 사과를 전한 뒤 병실을 나갔다. 결국 병원을 옮기는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원장님께서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한 일을 겪으셨습니다.”

하마드는 통역사를 통해 태경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환자분이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신경 쓰지 마시고 회복 때까지 마음 편히 지내세요.”

“네, 여러모로 정말 감사합니다.”

태경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준 뒤 감덕찬과 함께 병실을 나왔다.

“하마드 씨가 원장님을 깊게 신뢰하는 게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일개 평범한 의사일 뿐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네?”

“원장님이 평범하진 않죠. 아까도 그런 상황에서 정부 사람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흔치는 않거든요.”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아무튼 제가 아는 원장님은 절대 평범한 의사는 아닙니다.”

“참! 따님분은 잘 지내시죠?”

“선생님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그 뒤, 태경과 감덕찬은 병동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하마드는 수행원과 개인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잠시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요?”

“예, 그럼요.”

철컥-

무슨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려는지 하마드의 눈치를 받은 수행원은 늘 동행하는 통역사에게 자리를 비워 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일은 무슨.”

“그런데 왜 통역사를 내보내신 건지…….”

“조용히 자네한테 일 좀 시키려고.”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씀만 하시면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오마르?”

“네.”

“내가 마음을 좀 표현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마음이요? 아니, 갑자기 무슨 마음을 표현하십니까?”

마음이란 말에 수행원 오마르는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저는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항상 잘 챙겨 주시는데 무슨 마음마저 주시려고 하세요. 안 그래도 수술 끝나고 힘드실 텐데 지금은 그저, 회복에만 전념하셔야 합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원하게 혼자 김칫국을 마신 오마르를 향해 하마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 원장님을 말한 거야.”

“아하! 김태경 원장님이요?”

“그래. 이 사람아. 내 몸에서 암을 없애 주셨는데 나도 보답을 해야지.”

“그, 그렇죠. 그러면 뭐가 좋을까요?”

“어떤 선물이 좋을지 자네가 한번 알아봐.”

“제가요? 알았습니다.”

하마드는 수술을 잘해 준 태경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다며 수행원에게 티 나지 않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 * *

의국실-

“아까 진짜 선생님 카리스마 끝장났다니까요.”

이찬희는 조금 전, 보호자 대기실에서 있던 일을 의국실에 모인 동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병원에는 2명의 소식통이 있었는데, 한 명은 최 팀장이라면 나머지 한 명은 이찬희였다.

이 두 명의 포지션은 의외로 정확했다.

병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최 팀장이 주로 직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면 이찬희는 의료진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건 비서관님이 아닌 더 높은 분이 와도 똑같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 비서관이란 사람이 순간 움찔했다니까요.”

“우리 원장님이라면 그렇게 말하고도 남지.”

재미있는 소식이 있다는 말에 오늘은 항암을 하러 온 이동훈까지 합류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예전에 나랑 원장님이랑 같이 일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그때는 국회의원이었는데 좀 무개념이었거든. 다들 금배지 단 사람이라 말 한마디 쉽게 못 하는데 그때도 우리 원장님이 주변 눈치 안 보고 한마디 똑 부러지게 했지.”

태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동훈은 오늘 일을 들었을 때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환자를 공평하게 대하는 태경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근데 그 비서관이란 사람은 어디 소속일까요?”

“청와대 아니야?”

옆에서 지렁이 젤리를 씹고 있던 최모나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야! 최모나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청와대는 무슨 청와대야. 먹던 지렁이나 마저 먹어.”

“아니야. 최 선생 말 맞아. 아까 최 팀장님이 그러는데 그 사람이 무슨 석유왕 어쩌고저쩌고하는 거 보니까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온 거 맞는 거 같던데?”

“봐? 내 말 맞지? 저렇게 감이 없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우리 선생님 대단하시네. 아니, 근데 그런 대단한 사람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예전에 원장님이 수술해 준 사람의 지인이라고 하던데?”

“어쩐지. 그렇구나. 그럼 우리 선생님도 왕족을 수술한 거니까 혹시 막 석유를 선물로 받는 거 아닐까요? 아니면 드라마처럼 외제 차 한 대 딱 받으시려나?”

“쯧쯧! 왜 저러나 몰라. 참 쓸데없는 생각을 정성스럽게도 한다.”

이찬희의 말에 최모나가 혀를 차며 어이없어했다.

“뭐가?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재벌도 아니고 재벌 중에 진짜 재벌이잖아.”

“그건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뭐, 대단한 사람들 수술한 의사들 다 부자 됐게? 가만 보면 우리 이 선생이 은근히 순진하다니까.”

“역시 선생님께서 사람 볼 줄 아시네요. 제가 아직 순수해서 그렇습니다. 아이와 같은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그래? 순수하면 좋지.”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야! 개모나? 그건 아니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환자 보러 가게 일어나. 콜 들어온다. 선생님, 또 뵐게요.”

“그래, 최 선생. 수고해.”

“맞다! 근데 선생님은 언제부터 근무하세요?”

최모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찬희가 이동훈에게 물었다.

“원장님이 체력 좀 더 올리자고 해서 좀 더 이따 시작할 거 같아. 사실 빨리 일하고 싶은데 말 잘 들어야지.”

“체력이 중요하죠. 저도 일하러 가 볼게요. 또 뵙겠습니다.”

“그래, 이 선생도 수고해.”

한참 즐거운 수다 타임을 끝낸 이찬희와 최모나는 밀려드는 콜을 받으며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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