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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250화 (250/472)

250화. 은밀한 속삭임

“지애야. 나 여기 있을게 얼른 갔다 와.”

“어, 알았어.”

철컥-

신지애는 밖에서 기다리는 곽용진을 뒤로한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어쩐지 그녀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당장에라도 설사가 나올 거 같다며 화장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신지애는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며칠 사이 핼쑥하고 초췌해 있었다.

슉-

“……신 차리자.”

세면대 수전에서 찬물을 튼 신지애는 세수한 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 뒤 손을 닦는 페이퍼 타월로 얼굴을 대충 닦은 뒤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장실 벽에 기대 출입문을 보며 서 있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날 즈음,

철컥-

뚫어져라 보고 있던 화장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엄마! 나 나올 거 같아.”

“조금만 참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

하지만 어린 딸과 함께 들어온 아이 엄마를 보며 신지애는 어딘가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그렇게 모녀가 화장실을 나가고 그녀는 다시 문을 응시했다.

화장실에 걸린 시계 초침이 속절없이 흘러 5분의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5분이 지날 때였다.

“자기야?”

화장실 출입문 밖에서 곽용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괜찮은 거야?”

걱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 나 다 했어. 나가.”

벽에 기대 있던 신지애가 대답하고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갔다.

철컥-

“괜찮아? 배 많이 안 좋아?”

곽용진은 화장실을 나온 신지애를 부축하며 물었다.

“힘들면 간호사 선생님께 말해 볼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기다리잖아. 기다리다 내가 정 힘들면 말할게.”

“그래 알았어. 일단 혈압부터 측정하자.”

“어. 알았어.”

먼저 혈압을 측정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잠시 기다리던 두 사람 사이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Rrrrrrrrr

“자기야? 나 대표님 전화 와서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혼자 괜찮지?”

“그럼. 괜찮지. 얼른 전화 받고 와.”

“그래, 알았어.”

곽용진이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신지애는 앞사람이 일어난 혈압 측정기에 앉아 혈압을 측정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혈압 측정 종이를 들고 간호사에게 향했다.

“저기요, 선생님?”

“네.”

“혈압 측정했거든요.”

“그거 저 주시면 돼요.”

“…….”

혈압 측정이 나온 종이를 간호사에게 건네면서 신지애는 종이 끝에 힘을 꼭 쥐고 있었다.

“저기……?”

간호사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쳐다보자 신지애가 그녀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 말고 움찔했다.

“자기야?”

그사이, 통화를 마친 곽용진이 신지애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다가온 것이다.

“다 했어?”

“어? 어. 다 했어.”

“환자분 저한테 뭐 하…….”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용진아 가자.”

어리둥절한 간호사를 뒤로하고 신지애는 곽용진과 함께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뭐지?”

“왜?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혼잣말하는 간호사에게 스테이션으로 들어온 선배 간호사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7번 환자 드레싱 좀 준비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50분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신지애 환자분?”

계속 대기하며 기다리던 신지애는 드디어 진료를 볼 수 있는 차례가 다가왔다.

“네, 저요. 저예요.”

“저쪽 13번 베드에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자기야, 이제 진료 볼 수 있나 보다. 다행이다.”

“그러게. 정말 다행……!”

“어!”

곽용진과 함께 베드로 향하며 말을 하던 신지애는 급하게 지나가던 최모나와 부딪혔다.

생각보다 세게 부딪힌 두 사람은 몸이 포개진 채 바닥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당황한 신지애가 최모나에게 사과를 전했다.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환자분 괜찮으신가요?”

“……주세요.”

신지애가 사과를 전하고 최모나도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자신의 귓가에 희미하고 작은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네, 전 괜찮아요.”

아주 작은 소리였긴 했지만, 분명히 귓가에 들렸던 말소리에 최모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지애를 쳐다봤다.

“제가 기운이 없어서 넘어졌네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말을 했던 것과 달리 눈앞의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환자분? 혹시 저한테 방금 무슨 말 하지 않았습니까?”

“네? 제가요? 아닌데요.”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아, 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신지애는 남자 친구와 함께 13번 베드로 향했다.

‘뭐지?’

최모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환청도 아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들은 말을 잘 못 들은 거 같지 않았다.

‘분명 들었는데…….’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지애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최모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순간 고개를 돌린 신지애가 아주 빠르지만, 분명하게 자신을 보며 입을 뻥긋거린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리 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 와. 주. 세. 요.’

그녀가 말한 다섯 글자는 확실하게 ‘도와주세요.’였다.

조금 아까같이 바닥에 넘어졌을 때 귓가에 속삭이던 말과 정확히 일맥상통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 쌤?”

13번 베드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최모나를 간호사가 불렀다.

“괜찮으세요?”

“예?”

“아니, 조금 전에 환자분이랑 부딪혀서 넘어지셨잖아요. 괜찮은가 해서요.”

“아, 네. 괜찮습니다. 저기 그보다 선생님? 혹시 저 환자랑 같이 온 남자분은 환자랑 어떤 관계인지 아십니까?”

“누구? 혹시 13번 환자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보호자래요.”

“보호자 말입니까?”

“네,”

“그럼 부부 사이인가?”

“아니요. 연인 사이인데 지금 같이 산다고 들었어요. 여자 친구가 아파서 왔는데 아까부터 기다리는 동안 남자 친구분이 물 떠다 주고 괜찮은지 묻고 그러더라고요. 여자 친구를 엄청 아끼나 봐요.”

정신없이 환자를 보던 간호사는 워낙 비주얼이 좋은 두 사람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근데 왜 그러세요?”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 쌤, 5번 환자 결과 나왔어요.”

“네, 지금 갑니다. 선생님, 13번 환자 5번 결과 보고 제가 보겠습니다. 혹시 이 쌤이 보려거든 내가 본다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최모나는 응급실 스테이션으로 5번 환자의 결과를 본 뒤 환자에게 돌아가 설명하고 진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응급실을 나가 접수처로 향했다.

“선생님, 저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최 쌤. 물론이죠. 뭔데요?”

“응급실 내원한 신지애 환자 말입니다. 혹시 아까 접수할 때 뭔가 이상한 점 없었나요?”

“이상한 거? 아니요. 그런 거 없었는데? 자기 아까 그 비주얼 커플 접수할 때 뭐 이상한 거 느꼈어?”

질문은 받은 접수처 직원이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둘 다 똑같았다.

“아니요. 남자분이 여자분을 살뜰하게도 챙기는구나 정도?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닙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접수처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최모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사이, 수술 후 외래진료를 끝낸 태경이 응급실에 들어왔다.

“13번 환자 아직 진료 전인가요?”

“네, 아까 최 쌤이 본다고 하셨는데 화장실 가신 거 같아요.”

“내가 볼게요. 환자 증상이 뭐죠?”

스테이션에 자리 잡은 태경은 응급실 환자 상황을 체크한 뒤, 아직 진료 전인 신지애의 증상을 살폈다.

“설사가 주 증상이라고 합니다.”

“수액 우선 5DW로 주시고 피검사랑 소변 검사, 복부 X-ray도 나갈 거예요.”

“네, 선생님.”

설사에서 중요한 것은 설사의 원인이 감염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염으로 의심되면 우선은 바이러스인지 세균성인지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에 따라서 치료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선 환자 몸속에 수분이 부족한 상태, 다시 말해서 탈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탈수가 진행되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가장 기초적인 것의 중요성은 계속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 기초적인 게 무너지면 생명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런 경우를 봤기에 태경은 신중하게 판단하려 했다.

챠륵-

“환자분 안녕하세요.”

커튼을 열고 13번 베드로 다가온 태경이 환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애야, 선생님 오셨어.”

“어……. 안녕하세요.”

베드 위에 지친 얼굴로 누워 있던 신지애가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건넸다.

“환자분, 편하게 누워 계세요.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설사가 심하다고 하시던데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그게……. 며칠 좀 됐어요.”

“배는 안 아프시고요?”

“설사하기 전에 약간 싸하게 불편한 거 외에는 크게 아프진 않은 거 같아요.”

“혹시 주변에 환자분과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분이 있나요?”

“아니요.”

“제가 남자 친구인데요. 전 괜찮습니다.”

옆에 있던 곽용진이 자신은 괜찮다며 분명하게 답했다.

“보호자세요?”

“예.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환자분, 설사 말고 다른 증상은 없나요?”

크게 설사를 일으키는 감염인 바이러스와 세균은 감염되는 부위가 다르다.

바이러스는 조금 가까운 장에 감염이 잘돼서 구토가 조금 더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에 세균성은 구토보다는 오한, 발열, 몸살 같은 전신 증상이 두드러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경향일 뿐, 딱딱 나누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증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외래를 통해 입원하는 환자들은 분변 검사를 통해서 감염균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지만 여기는 응급실이다. 약간의 융통성도 필요하다.

“몸살 기운이 있었던 것도 같고 구토도 하는 것도 같아요. 헛구역질은 하는데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나오지는 않고요.”

“아, 그러시군요.”

구토하는 것도 아니고 몸살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는 것도 아닌 애매한 대답이었다.

물론 이런 환자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어쩔 수 없이 세균성에 준해서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세균성일 때는 바이러스성에서 항생제 처방만 첨가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우선…….”

챠륵-

“선생님?”

태경이 환자에게 설명하려던 그때 최모나가 상당히 다급한 얼굴로 커튼을 열었다.

“진료 중에 죄송합니다. 집중 처치실에 있는 고철현 환자 상태가 좀 위급해서요.”

“……!”

최모나의 말을 듣고 있던 태경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현재 집중 처치실에는 위급한 환자가 없을뿐더러 고철현이란 환자도 응급실 리스트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 빨리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에 태경은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 알았어. 환자분 죄송하지만, 응급 환자 때문에 잠시 양해를 부탁할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최모나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신지애가 알았다고 답하자 태경은 13번 베드를 나와 집중 처치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최모나의 뒤따라 들어갔다.

“또 기다려야 하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곽용진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더니 신지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근데 자기야?”

“……응?”

“혹시 말이야…….”

커다란 손으로 신지애의 얼굴을 쓰다듬던 곽용진은 점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밀착하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자기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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