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52화 (252/472)

252화. 이상한 일?

“확인 한 번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옆에 있던 최모나가 몸을 살짝 틀며 곽용진의 시선을 막았고, 태경이 신지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환자분, 아까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혹시 장염 말고 다른 증상 때문인지 확인 좀 해 볼게요.”

“아, 네. 선생님.”

뒤쪽에서 임정숙 간호사와 최모나가 곽용진을 상대하자 태경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 말이 진짜라고 생각한 신지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시선을 최모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 환자분 다리를 쭉 펴시고 제가 배를 좀 눌러 볼게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태경은 상체를 살짝 낮춘 뒤 설명을 하며 글자를 적은 왼손을 자신의 복부 쪽에 바짝 갖다 댔다. 그리고 신지애가 볼 수 있도록 손바닥을 펼쳤다.

등 뒤에 있는 곽용진의 시선에서는 태경의 손바닥이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눈을 두 번 깜빡이세요. 그리고 제가 아프다고 묻는 말에 무조건 아프다고 하시고요.

“환자분, 다리를 좀 더 쭉 펴 주세요.”

꿀을 발라 놓을 것처럼 신지애의 시선은 여전히 최모나를 향해있었다. 태경은 다시 한번 말을 하며 시선을 끌기 위해 복부에 있는 왼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

드디어 왼손의 적힌 문구를 본 신지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ㅅ…….”

순간, 신지애가 저도 모르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태경이 아주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미세하게 가로저었다.

곧이어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 눈동자가 정확히 두 번 깜빡거렸다.

‘도움이 필요한 게 맞았어.’

일단은 최모나가 했던 말이 사실인 걸 알게 됐다. 이제 신지애와 곽용진을 떨어뜨려 놓을 차례였다.

“어떠세요?”

“아! 아파요.”

“여기 아파요?”

“……네.”

살짝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신지애는 눈치가 꽤 빨랐다. 태경이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추며 잘 따라왔다.

“그럼 이쪽은요.”

“아, 아…….”

“여기도 아프고요?”

“네. 거기도 아파요.”

“다리 못 펴겠어요?”

“네, 좀 힘드네요.”

“무슨 일인가요?”

임정숙 간호사와 대화를 마친 곽용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무래도 CT 촬영을 해야겠네요.”

“CT요?”

“네, 현재 환자분 증상이 설사로 인한 장염 증세 말고도 맹장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라서요. 설사로 인한 복부 통증이 아닌 다른 통증 양상이 있어서 신체 검진을 해 봤는데…….”

여러 의학적인 문구를 곁들여 설명하는 태경의 말은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일단 CT를 찍어 보는 게 가장 정확할 거 같습니다. 결과 나오면 그때 설명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지애야, 괜찮아? 많이 아프지 않아?”

“아직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고맙긴. 당연하지.”

“지금 CT실로 바로 이동할게요.”

“보호자분은 환자분 소지품도 있으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예. 알겠습니다.”

예상 못 한 CT 촬영에 조금 놀란 곽용진은 다행히 따라나서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 뒤, 태경의 사인을 받은 최 팀장은 빠르게 경찰에 신고했고 신지애는 기본 검사를 마친 뒤 태경과 최모나와 함께 응급실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곽용진이 따라나서지 않았기에 굳이 CT실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철컥-

“환자분, 괜찮으세요?”

“감사……합니다.”

괜찮은지를 묻는 태경의 말에 신지애는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답했다.

“환자분, 제가 한 가지 물어볼게요. 저희에게 도움 요청하신 거 맞나요?”

“네, 맞아요. 아까 이 여자 선생님께 제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도와 달라고 했어요.”

“혹시 함께 온 남자는 보호자가 아닌가요?”

“네……. 저 사람 보호자 아니에요. 전 남자 친구예요. 저 남자가 절 괴롭히고 있어요.”

“그래요. 현재 경찰에 신고한 상태니까 조금만 기다렸다 경찰 오면 그때 다 말씀하세요. 다행히 환자분은 장염 증세 말고 다른 쪽으로 이상이 있지는 않아요.”

임정숙 간호사에게 전화로 기본 검사 결과를 받은 태경이 설명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실은 병원에 오려고 상한 음식이랑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먹었어요.”

“아니, 그럼 일부러 장염에 걸리려고 그런 겁니까?”

“네, 안 그러면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었어요.”

“환자분, 일단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니까 힘들어도 마음 단단히 붙잡고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건지 설명할게요.”

“아, 네.”

괜히 시간을 오래 끌다가는 곽용진이 눈치를 챌 수도 있었기에 태경은 두 사람을 완전히 분리시킬 방법을 설명한 뒤 함께 응급실로 돌아갔다.

“결과 알려 드릴게요.”

잠시 뒤, 태경은 곽용진과 신지애에게 CT 결과를 설명했다.

“여기 보시면 이쪽 보이시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환자분은 현재 급성 충수염입니다.”

CT 사진은 인터넷에서 올라와 있는 충수염 사진이었다. 태경은 아주 정성스럽고 적극적으로 증상을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충수염 그 자체였다.

“그래서 지금 수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수, 술이요? 우리 지애가 수술해야 한다는 건가요?”

수술이라는 말에 곽용진은 상당히 놀라 되물었다.

“예, 맞습니다. 한시가 급해서 빨리 수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환자분께 수술 동의서 설명해 드릴게요. 최 선생? 부탁할게요.”

“네, 선생님.”

그 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고 신지애는 머리에 캡을 쓴 채 수술실 앞까지 이동했다.

“지애야. 내가 찾아보니까 충수염 그거 아무것도 아니래. 그냥 한숨 푹 자고 나온다고 생각해. 알았지?”

“응. 용진아, 걱정하지 마. 나 잘하고 올게.”

“선생님, 저희 지애 수술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지애가 태경과 함께 통제구역이라고 쓰인 문으로 들어가고 곽용진은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보호자께서는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대기실. 모니터에 뜬 신지애가 수술 중이란 글자를 보며 그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사이, 신지애는 태경의 도움으로 병실로 옮겨 안전을 확보하고 장염에 따른 수액을 맞았다.

“선생님, 경찰에서 왔는데요.”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요.”

철컥-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안으로 남녀 경찰 두 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oo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병원 원장 김태경입니다.”

“신고하셨다고요?”

“네, 여기 환자분께서 도움을 요청해서 신고했습니다.”

“여성분께서 신고하신 건가요?”

“네, 제가 전 남친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어요.”

“데이트 폭력이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여자 경찰의 말에 신지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는 1년 전에 만났어요.”

1년 전 모델 일을 하고 있던 신지애는 곽용진이 셰프로 있던 레스토랑에서 촬영하다 그를 만났다.

가족들이 미국에 있는 신지애와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곽용진은 타지에서 혼자 일한다는 공감대로 인해 빨리 친해졌다.

‘용진이 너 진짜 요리 잘한다. 어쩜 이렇게 맛있어? 내가 먹어본 스파게티 중에 제일 맛있다.’

‘정말? 그 정도야? 너무 비행기 태우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 진짜 최고야.’

힘든 촬영 일정이 끝나면 곽용진은 문 닫은 레스토랑으로 신지애를 불러 직접 저녁을 차려 주기 일쑤였다.

‘지애야, 나 너 좋아해. 내가 앞으로 더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그러니까 나랑 만나자. 진짜 잘할게.’

자상한 성격에 늘 공주처럼 자신을 대하는 곽용진을 보며 신지애는 그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귀게 됐고, 주변 모두가 부러워하는 멋진 연인이 되었다.

‘지애 씨, 지금 좋아. 눈 감고 고개 들고. 한 번 더. 굿!’

‘잠깐 쉬었다 촬영할게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지애 씨 남친 아니야? 오늘도 도시락 싸 온 거야? 항상 고마워요.’

‘뭐야! 오늘 쉬는 날 아니잖아?’

‘브레이크 타임에 잠깐 들렀어. 이것만 주고 가야 해.’

‘힘들 텐데 뭐 하려고 왔어? 자기야 진짜 고마워.’

‘우리 공주님 촬영하는데 내가 응원해 주려고 왔지? 진짜 예쁘더라. 나 아까 또 반했잖아.’

‘하여간! 못 말려.’

곽용진은 신지애가 촬영이 있는 날이면 손수 싼 도시락이나 간식을 가져왔다.

또한 생리할 때면 진통제와 죽을 사다 줄 만큼 여자 친구에 관련된 일이라면 열 일을 제쳐 두고 우선으로 하며 그녀를 대했다.

늘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사랑에 신지애는 점점 더 그를 사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사귄 지 몇 달이 지나서 곧 동거하게 됐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동거를 시작할 때 즈음 곽용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애야, 오늘 촬영 9시에 끝나지? 내가 데리러 갈게.’

‘근데 나 오늘 스태프분들과 뒤풀이 있어서. 중요한 분들도 오셔서 빠지기 힘들 거 같아. 먼저 가.’

‘그래? 알았어. 대신 너무 늦게 오지 마.’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뒤풀이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몇 시간 뒤 곽용진 그 장소에 등장했다.

‘어머! 용진 씨 왔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지애가 술을 잘 못 해서 걱정돼서 왔어요.’

‘우리 오늘 뒤풀이인 거 몰랐구나? 얼른 와서 같이 한잔해요.’

분명 뒤풀이라고 말했고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온 게 의아했다.

‘용진아, 내가 오늘 뒤풀이라고 했잖아? 안 와도 됐는데…….’

‘자기 술이 약하니까 집에 올 때 힘들까 봐. 오지 말걸 그랬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걱정돼서 왔다고 미안하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걱정이 아니었다.

하나둘씩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화장대 위나 서랍에 있던 물건들의 위치가 바뀌었고 가방 안과 옷을 뒤진 흔적들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자신이 예민하다고 느꼈던 신지애는 물건에 표시해 두었고, 그제야 이상함을 확신했다.

점점 더 걱정이 앞서던 그때, 헤어짐을 결심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남자 모델과 촬영이 있던 날이었다.

‘지애 씨 어떡하지? 방금 연락 왔는데 아무래도 이거 촬영 일정 미뤄야겠어.’

‘예? 왜요?’

‘지훈 씨가 사고를 당했다네.’

커플 콘셉트로 오랫동안 촬영을 하던 친한 남자 모델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델 일을 시작할 때부터 친했던 동종 업계 사람으로, 서로 응원하는 사이였다.

소식을 접한 신지애는 며칠 뒤, 병원에 입원한 동료 모델을 찾아갔다.

‘지훈아, 괜찮아? 이게 무슨 일이라니.’

‘누나 나, 묻지 마 폭행당했어. 진짜 환장할 거 같아.’

‘뭐! 묻지 마 폭행?’

‘응.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을 겪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범인은 잡았어?’

‘사고당한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아직 범인도 못 잡았어. 경찰 말로는 시간이 꽤 걸릴 거래.’

‘아니,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한다니.’

‘내 말이. 보통은 원한 관계이거나 주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해서 수사해 보면 결국 용의자가 추려진다는데, 묻지 마 폭행은 그게 쉽지 않대. 누나도 알겠지만 내가 주변에 원한을 살 만한 그런 인성은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동료 모델은 성실하고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서 늘 칭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참나. 농담하는 거 보니까 살 만하구나?’

‘어이없는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잖아.’

‘맞다! CCTV에 찍히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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