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56화 (256/472)

256화. 결혼하기 싫어요.

의국실-

“의진아, 이거 뭐야?”

“뭐가요?”

진료실에 있던 태경은 의진과 함께 의국실에서 야식을 먹고 있었다.

“이거, 이 하얗고 긴 거 이거 말이야.”

“아~ 그거 분모자라고 요즘 떡볶이 사리로 많이 먹는데……. 선배 표장 진짜 웃긴다. 처음 먹어 봐요?”

“난 그냥 긴 떡인 줄 알고 먹었지. 이거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식감이 재미있잖아요. 탱글탱글하다고나 할까요?”

“내가 입맛이 촌스러워서 그런지 난 그냥 떡이랑 어묵이 제일 맛있다.”

태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묵 국물로 입가심을 했다.

“선배가 음식 가리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그러게. 내가 원래 음식에 편견이 없는데 이건 잘 모르겠네.”

“그럴 수 있죠. 참! 신지애 환자는 좀 괜찮아요?”

“아까 최 선생이 병동 회진 돌면서 확인했는데 표정도 그렇고 괜찮은 거 같다고 하더라고.”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아까 나랑 이야기했을 때도 그렇고 사람 자체가 씩씩한 거 같아.”

“다행이네요.”

“글쎄…….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왜요?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히 겉으로 보이는 게 괜찮은 거지 그 속이 괜찮은지는 모르잖아.”

“에휴! 그건 그렇죠. 다른 사람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오죽하겠어요. 진료 한 번 권해 보는 게 어때요?”

“정신건강의학과?”

“네.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안 그래도 퇴원하면 그쪽 진료도 볼 거래. 스스로 이 사태를 극복하려는 마음은 확실히 있는 거 같아.”

“대단하네요.”

“왜?”

어묵 꼬치를 먹으려다 말고 먼 산을 보고 있는 의진에게 태경이 물었다.

“……?”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어묵을 들고 멍하니 있어.”

“아, 그게 오늘 신지애 환자 일 보니까 이상하게 예전 일이 생각나서요.”

“예전 일?”

“네. 선배 제가 왜 OBGY(산부인과)를 계속하지 않는지 궁금해하셨었죠?”

“그렇지.”

궁금했다.

분명 재능도 있고, 열정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등 떠밀려 OBGY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냥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보다 의진은 처음부터 산부인과 의사가 목표였다.

그런 사람이 왜 그 좋아하는 산부인과에서 등을 돌렸는지 당연히 궁금했다.

일전에도 의진에게 서포터를 해 줄 테니 본격적으로 산부인과를 해 보라고 권했었다.

서두르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만 진료를 보다가 점차 늘려가는 식으로 해 보자고 했다.

그때 의진의 대답은 ‘생각해 볼게요.’였다.

당시 느껴지던 분위기가 뭔가 사연이 있던 것 같았지만, 태경은 쉽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진이 갑자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외국에 있었을 때 일이거든요.”

“봉사 갔을 때 말하는 거구나?”

“네. 맞아요. 선배 혹시 oo 나라 아시죠?”

“알지. 너 그렇게 멀리 갔었구나? 거기 오지라서 힘들었을 텐데…….”

“많이…… 어렸어요.”

“어? 누가?”

“그 아이요. 처음 oo 나라에 도착했을 때 한동안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진료를 본 적이 있었어요. 차가 없으니까 직접 오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의진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따고 일을 하다가 늘 꿈꿔 왔던 의료 봉사를 떠났다.

“처음에 그 나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말렸어요.”

“힘드니까. 안 그래도 의료봉사 자체가 힘든데 오지 쪽은 더 힘들잖아.”

“맞아요. 그래서 다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다고 다른 나라로 가라고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들도, 먼저 의료 봉사를 다녀왔던 주변 선배들까지 전부 말렸지만, 의진은 오지로 가겠다는 마음을 꺾지 않았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나는 의료 봉사였기에 의술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나라는 봉사를 오기 전, 이론으로 배우고 영상으로 접하고 말로 듣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전기, 수도, 건물 등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기초적인 문명조차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곳은 자연에서 얻은 진흙과 소똥,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사람들도 놀이도 먹을 것과 입는 것도 전부 자연 그대로에서 얻는 그런 곳이었다.

함께 갔던 동료들은 눈앞의 현실을 보며 한동안 막막했지만, 의진은 막막함 대신 열정을 내뿜었다.

지독한 냄새도 온갖 벌레도 모든 게 괴롭고 힘들기보다는 설레고 좋았다.

“다들 힘들어했는데 저는 현지 음식도 입에 잘 맞고 맛있었어요.”

“정말? 그 정도면 거의 현지인 수준 아니야?”

“맞아요. 다들 저한테 그 말 진짜 많이 했어요. 그렇게 마을마다 다니면서 진료를 보다 한 소녀를 만나게 됐어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난히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피부색도 쓰는 언어도 다른 태어나 처음 보는 외국인을 다른 아이들은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했지만, 그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반짝이는 햇살을 닮고 짙은 피부색에 커다란 눈이 보석같이 빛나던 소녀의 이름은 나띠미였다.

다른 사람들과 아이들이 다가오기 꺼릴 때도 앞장서서 먼저 다가올 정도였다.

나띠미와 친해진 의진은 이따금 얼굴을 찡그리고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괜찮으냐고 물으며 진찰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힘들었던 이유를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의 중요 신체를 훼손하는 할례라는 의식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는 건 돌이나 깨진 유리 등 멸균이 되지 않은 것들로 감염의 우려가 높았다.

일각에서는 죽음의 의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었다.

그 때문에 소변을 보는 것조차 고통인 경우가 많았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의진은 너무 놀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온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현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일로 힘들어하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미 일어난 일이었기에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약을 주고 진료를 더 자주 보면서 덧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모든 시설이 완벽한 한국이었다면 확실한 치료를 할 수 있었겠지만, 현지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진은 아이에게 더 신경 쓰고 더 마음을 나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이는 달랐지만, 친구처럼 지냈다.

언어는 달라서 완벽히 소통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나띠미는 의진을 언니처럼 가족처럼 따랐다.

봉사를 오기 전 미리 배웠던 색종이 접기로 시간이 날 때면 나띠미와 아이들에게 알려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흔한 컴퓨터나 장난감조차 없었기에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

이곳에서의 진료가 쉽지는 않았기에 의진에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출산하다가 아이를 잃은 산모도 있었고, 반대로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는 산모도 있었다.

부인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도 있었고, 한국이었으면 손쉽게 치료했을 가벼운 병이 여기서는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환자와 부대끼며 하루하루 의미 있는 시간이 지나 1년이 흘렀다.

다른 날과 같이 평범하던 어느 날, 의진은 종이접기 시간에 나띠미가 오지 않은 게 이상했다.

“항상 늘 일찍 와서 오늘 만들어 볼 종이접기를 저랑 먼저 해 보기도 하고 학급에 반장처럼 저를 도와주고 그랬거든요.”

“네가 많이 신경 쓰고 친한 아이인데 그런 친구가 안 보이면 걱정스럽지.”

“네. 진짜 딱 그랬어요. 선배도 아시잖아요. 의사 되고 조금 지나면 환자와 의사와의 거리가 나도 모르게 적당히 유지가 되잖아요.”

“그렇지. 초반에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가족 같고 내가 뭔가 하나라도 더 하면 왠지 모르게 살 거 같고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랬지.”

“맞아요.”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의사 면허를 받으면 진짜 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야말로 겁도 많고 열정이 넘치는 인턴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실수도 많이 하고 힘들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과할 정도로 넘치는 시기였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그 열정은 의사로서 짬이 쌓이고 환자를 겪을수록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된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의사의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너무 마음을 주다 보면 진료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의사도 사람이었다.

마음을 주고 신경을 쓴 환자가 생을 달리하면 그 감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환자와의 그 적정 거리가 마치 공식처럼 생겨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조금 예외였다.

‘언니가 좋아요.’

딱딱한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만난 나띠미는 의진을 마치 그 시절 열정 가득한 의사로 만들기 충분했다.

항상 유지하던 그 적정 거리가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걱정된 마음에 수업이 끝나고 집을 찾아갔는데 아이가 눈이 이만큼이나 부어서 울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아팠던 거야?”

“아니요.”

함께 간 통역사는 나띠미가 결혼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 소리를 들은 의진은 말 그대로 경악하고 말았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설마…….”

“선배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요. 혹시 조혼이라고 아시죠?”

“알지.”

조혼이란 혼인할 나이가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일찍 결혼하는 것으로, 아직도 일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우는 아이를 보며 너무 속이 상했어요.”

아이의 엄마를 붙잡고 설득했지만, 나띠미의 엄마 역시 조혼으로 결혼을 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라는 말로 이방인인 의진의 그런 태도를 오히려 불쾌해했다.

“저한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를 보면서 정말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띠미 엄마랑 상의 끝에 아이를 숙소로 데려왔어요.”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나띠미의 엄마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나띠미의 아빠가 친구들과 함께 숙소로 찾아왔다.

“정말 불같이 화를 냈어요. 제 방 창문도 깨고 행패를 부리면서 겁도 주고 말릴 틈도 없이 아이를 강제로 데려갔어요.”

“본인 아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네. 그쪽 나라들이 아직 인권이나 이런 의식이 부족하잖아.”

“맞아요. 나중에 통역사한테 들었는데 그 아빠라는 사람이 그랬대요. 왜 자기 집안일에 나서느냐고요. 한 번만 더 나섰다가는 죽인다고 했어요.”

협박까지 받았지만, 의진은 크게 겁나지 않았다.

본인이 해코지를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다시 나띠미의 집을 찾아갔지만, 아이를 볼 수는 없었다.

아이의 아빠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초를 서며 접근을 완전히 막은 것이다.

‘아버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 아직 어린아이잖아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내가 내 새끼 결혼시키겠다는데 당신이 뭔데 이 난리야? 네가 우리 가족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해.’

아침저녁으로 찾아갔지만,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휘두르기도 하고 동물의 피와 분변을 뿌리기도 하면서 의진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다.

‘언니 저 좀 살려 주세요. 결혼하기 싫어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울면서 애원하던 나띠미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도 진료를 마치고 아이의 집을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나띠미가 병원에 들렀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설마 아이가 아빠랑 같이 온 거야?”

“네, 맞아요. 근데 더욱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어요.”

해맑게 웃고 있는 나띠미를 보며 아이의 아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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