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57화 (257/472)

257화. 감염

해맑게 웃고 있는 나띠미를 보며 아이의 아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어쩐 일이세요?’

의진은 통역사를 통해 물었다.

‘의진 언니? 나 이제 괜찮아.’

‘안 하기로 했습니다.’

‘네!? 안 하다니…….’

‘결혼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렸던 우리 딸 결혼 그거 안 시키기로 했습니다.’

‘저, 정말이세요?’

‘응. 언니 정말이야.’

‘세상에!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친아빠를 앞에 두고 의진은 아이를 끌어안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말을 하려고 일부러 널 찾아온 거야?”

“아니요. 진료 때문에 왔더라고요.”

아이의 아빠는 나띠미의 진료를 보러 왔다고 전했다. 그동안 자신이 아이에게 무심했던 거 같다며 아이가 아픈 곳이 없는지 봐 달라고 했다.

할례로 인한 부분을 빼면 다행히 나띠미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다. 아이의 건강이 참 감사했다.

‘저기, 아버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나띠미에 아빠에게 의진은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아버님의 결정으로 나띠미는 앞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내일부터 더 행복하게 살 겁니다.’

내일부터 행복할 거라는 아이 아빠의 그 말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의진은 진료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띠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한눈에 다 보이는 집안을 몇 번이나 둘러보고 집 근처도 찾아봤지만, 아이가 보이질 않았다.

점점 느낌이 이상했다.

나띠미의 엄마는 잔뜩 흐린 하늘처럼 얼굴에 그늘진 채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나띠미는 왜 안 보여요?’

통역사를 통해 묻자 그녀의 입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오전에 딸이……. 딸이 결혼했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전날 결혼 안 시키기로 했다고 아버님도 그랬고 나띠미도 그랬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남편이 거짓말을 한 거예요. 정말 미안해요. 선생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이제 고작 열 살뿐인 어린아이라고요.’

전날 나띠미의 아빠가 결혼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는 거짓말을 한 이유는 결혼할 남자로부터 아이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더 경악스러운 것은 원래는 결혼은 두 달 뒤였지만, 나띠미가 초경을 시작하자 급하게 혼례를 치른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딸을 결혼시키는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도 결혼 적령기가 와서도 아니었다.

그저, 초경의 시작이 결혼의 이유였다. 임신이 가능한 몸이 되었으니 아이의 결혼을 강행한 것이다.

여기 사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다.

‘어머님! 이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냥 나띠미를 보낼 수는 없잖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사정해 보기도 하고 빌기도 했다.

그런 의진을 보며 나띠미의 엄마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자신의 등을 보여 줬다.

그녀의 작은 등 위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누가 그랬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제 등 보셨죠? 남편이 그랬어요. 저도 어린 나이에 시집왔어요. 도망치고 싶었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고되게 살다 보니 그 원망보다 오늘 마실 물을 구하는 일이 더 큰 걱정이었어요.’

그녀는 누군가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자신의 속마음을 울면서 털어놓았다.

‘가족들 먹을 게 어느 정도 해결되니까 그때서야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됐어요. 특히 우리 딸아이들이요. 혹시라도 나와 같은 길을 밟게 될까 봐서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 아니, 빌었어요. 내가 앞으로 더 잘할 테니까 우리 딸들은 제발 조혼으로 시키지 말자고요. 남편이 알았다고 했고 전, 그 말을 믿었죠.’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린 딸의 안위보다는 결혼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염소와 소가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일상이, 이런 문화가 당연했다.

‘남편이 저까지 속이면서 몰래 결혼을 준비했더라고요. 정말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았어요. 그런데 선생님. 제가 왜 참았는지 그게 궁금하시죠?’

‘……네. 그냥 이곳 문화라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신 건가 싶었어요.’

‘아니에요. 나띠미를 위해 참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 저도 엄마예요. 내 살가죽에 상처 나고 내가 아픈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데 내 새끼들 아픈 건 싫으니까요. 남편이 선생님께 말하면 나띠미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요.’

‘……!’

‘장난 같죠? 여기는 선생님이 살던 곳과 달라요. 말을 하면 들어주고 도와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에요. 잘못하다가는 내 딸이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의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조용히 주변에 물어 나띠미를 수소문했지만, 아는 사람도 말을 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괜히 아이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아빠가 알게 되어 아이가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더군다나 나띠미를 데려간 그 사람도 의진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선생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잊어 주세요.’

결국 의진은 결혼한 아이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일상에 집중했다.

예전보다 더 많이 환자를 만나고 진료 시간도 늘리고 먼 곳에 있는 아픈 사람도 자처에서 왕진을 하러 가고는 했다.

이따금 나띠미가 잘 있는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아이에 대한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둬 둔 채 점점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쌍둥이 산모의 출산을 끝으로 진료를 마치고 저녁 식사 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눈 뒤 하루를 마감했다.

쾅- 쾅-

주말이라 늦잠을 자려 했는데 누군가 방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 선생님?’

가끔씩 종종 있는 일이기에 급한 환자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응급 환자…….’

그런데 동료 의사 너머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울고 있는 나띠미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며 아이에게 안 좋은 생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딸을 살려 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의진은 잠옷을 입은 그대로 수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나띠미를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의 배가…… 만삭이었어요.”

놀라운 모습에 맥박이 심하게 뛰었다.

청소년 임신은 고위험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건강에도 안 좋다.

일단 심란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급히 출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나띠미는 남편으로부터 병에 걸려 균에 감염된 상태였고, 아이는 물론 태아의 상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선생님, 우리 딸만이라도 살려 주세요.’

‘아이를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밖에서는 딸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그녀의 엄마와 어린 아내보다는 아이를 살려 달라는 늙은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공존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저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나띠미 힘내 줘……. 제발! 조금만…….’

의진을 비롯한 모든 의료진은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죽을힘을 다해 아이에게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나띠미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고, 아이는 끝내 숨을 거뒀다.

뱃속에 아이도 이미 사망한 뒤였다.

사인은 과다 출혈과 감염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의진을 더욱 경악케 한 것은 나띠미의 장기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 어떤 말로도 분노한 심경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살릴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열악한 현지 상황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는 없어요.’

‘정 선생? 왜 이래?’

‘다들 얼른 정 선생 붙잡아!’

순간 치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간 의진은 메스를 들고 수술실 밖에 서 있는 나쁜 놈에게 달려들었지만, 동료들에게 제지당했다.

의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의 그 모습은 본 의료진 모두가 제정신일 수는 없었다.

나이 많은 남편이란 작자는 어린 아내가 죽었다는 말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의진은 동료들에게 붙잡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저 저, 악마를 가만히 두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이고! 우리 딸 아이고 나띠야 우리 딸……. 불쌍한 내 딸.’

통곡하는 나띠미의 엄마를 달래고 있던 남편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수술방으로 돌아온 의진은 그제야 앙상하게 마른 아이의 처참한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흐흑!’

그 모습을 보자 피가 흥건한 수술방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고작 어린아이였다.

아직 꿈조차 펼쳐 보지 못한, 못다 핀 한 송이의 꽃이 봉오리를 틔우기 전에 꺾여 버렸다.

마치 모든 게 본인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내가 그때 나띠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면, 부모를 더 강력하게 말렸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너 때문이 아니야.”

“네, 알죠.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의진은 그 뒤로 산부인과 진료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산모들을 만날 때마다 그날의 아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의진에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었다.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네. 조혼이라는 악습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네, 저도 그래요.”

그 일이 있고 난 뒤 진료를 볼 수 없었던 의진은 현지에서 이뤄지는 할례와 조혼을 조사했다. 그리고 자료 조사한 보고서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UN 아동 권리 위원회에 전달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고 해도 뭐라도 하고 싶었다.

다행히 UN 관련 부서에서도 매년 그 일과 관련하여 국제사회 호소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의진은 지금도 꾸준히 할례 및 조혼 피해자들을 위해 매년 기부를 잊지 않았다.

“한 달 정도 미국에 머물면서 담당자들을 돕고 들어와서 마취과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 혼자 많이 힘들었겠다.”

태경은 의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제는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면요. 음……. 선배가 우리병원에 처음 오셨던 날이요. 그날 선배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생각?”

“만약 그때 그 수술실에 내가 아니라 선배가 있었다면 나띠미가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무슨 소리야. 의진아 그건 절대 그렇지 않아. 그리고 난 산부인과 전문의도 아니잖아.”

“저도 알아요. 그냥 뭔가 제 마음속에 있는 아쉬움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알지. 의사라면 누구나 마음이 가고 기억에 남은 환자들이 있잖아. 그 아이가 너에게 어떤 환자였는지 알 거 같아.”

“네, 나띠미는 좀 특별한 거 같아요.”

“근데 결국 그 나쁜 놈은 처벌을 못 받은 거야? 아무래도 그 나라 정서상 처벌이 쉽지 않겠지?”

“현실이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결국 죄짓고는 못 사나 봐요. 그 나쁜 놈 죽었어요.”

“죽었다고?”

“네.”

나띠미가 하늘의 별이 되고 얼마 뒤, 의료 봉사를 도와주는 통역사로부터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의 심판도 처벌도 받을 수 없는 현지 문화에 벌이라도 받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진짜 죽을 줄은 몰랐다.

“우유를 먹고 급사를 했대요.”

“그거야말로 진짜 벌 받은 거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벌을 준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게 누군데?”

“나띠미 아빠요.”

의진이 그 나라를 떠나기 전 나띠미의 무덤을 찾은 뒤, 통역사와 함께 가족들을 찾았다. 그런데 인사를 할 때 아이의 아빠가 했던 말이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의 신체를 훼손하면 똑같이 갚아 준다.’

‘네?!’

‘우리 마을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말입니다. 이게 독초인데 즙으로 내려 한 방울만 마셔도 그 자리에서 소도 쓰러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진은 아빠가 나띠미의 복수를 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딸이 하늘의 별이 된 날부터 계속 꿈에 나타났는데, 원망하는 게 아니라 해맑게 웃고 있었다고 했다.

나띠미의 아빠는 그 모습이 더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스스로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수척해진 얼굴 위로 후회 가득한 눈빛을 보자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도 죄송합니다. 그때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 딸이 죽지 않았을 텐데…….’

처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아이 아빠의 모습을 보던 의진은 그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아이를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그날 선생님께서 딸을 살리기 위해 애쓰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기, 아버님?’

고개를 푹 숙이며 돌아서는 나띠미의 아빠를 보며 의진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말이었기에 꼭 해야 했다.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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