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산모의 자궁 안에…….
“일이 생기다니요, 응급 환자예요?”
“네, 그런데 환자분이 산모님인데 아이가 곧 나올 거 같다고……. 응급 분만 건이에요.”
“응급 분만이요?”
“네. 그게 조금 전에 전화 한 통이 왔었대요.”
조금 전-
조용한 응급실에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한 통이 울렸다.
‘네. 우리병원입니다.’
-거기 우리병원이죠? 지금 45세 임산부가 진통이 오는데 저희 병원에서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요.
‘어머! 그래요? 산부인과 선생님 계시니까 환자분 보내 주세요.’
때마침 전화를 받은 의료진이 막내 간호사였다.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발을 떼고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였다.
가끔 의진이 응급실에 오는 산모들의 초음파나 간단한 진료는 봤었다. 그러다 보니 막내는 당연히 분만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병원 의료진도 오늘 태경이 들었던 의진의 사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그녀가 분만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연히 누군가는 막내 간호사에게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전화를 받은 막내 간호사는 곧장 수간호사인 임정숙에게 전달했고, 두 사람은 바로 의국실로 달려온 것이다.
“제가 물어봤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해요.”
막내 간호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떨궜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까 마음 쓰지 마요. 그리고 지금은 죄송하기보다는 환자가 우선이니까 일단…….”
말을 하던 태경은 잠시 의진에게 시선을 돌려 살짝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 깻잎 논쟁으로 웃고 떠들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분만 환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의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119에 연락해서 우리 병원 분만이 안 된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요.”
찰나의 순간 생각을 하던 태경은 결국 이송할 것을 결정했다.
의진에게 이야기를 들은 지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에게 무리한 부담감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도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급하니 분만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건 의진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뭔가 분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본인이 나서서 했겠지만, 산부인과 그것도 분만은 다른 분야였다.
아무리 오지랖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한 태경이라도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전화부터……. 아니에요. 그냥 내가 전화할게요.”
“선생님!”
태경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나가려던 그때였다.
“전화하지 마세요.”
가만히 침묵이 지키던 의진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뭐라고?”
“할게요.”
“정 선생,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 환자, 분만 제가 할게요.”
“정 쌤? 방금 한 말 진짜예요?”
“네, 진짜예요.”
“의진아, 너 괜히 무리해서 그럴 필요 없어.”
태경이 의진에게 걸어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무리하는 거 아니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예요.”
아까 ‘분만 환자’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의진은 처음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정확한 브리핑을 듣지는 못했지만, 임정숙 간호사의 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는 저 말은 진짜일 것이다.
그만큼 산모의 출산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뜻했다.
현재 이송 가능한 병원 중 출산이 가능한 병원은 대학병원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 병원으로 이송한다면 어림잡아 그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그 말인즉 산모는 도로를 달리는 119구급차 안에서 출산할 확률이 높다는 걸 뜻했다.
의진은 산모와 아이가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산모를 외면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나띠미의 이야기를 본인 스스로 털어놓았다.
그건 의진에게는 큰일이자 하나의 터닝 포인트와 같았다.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때 기억과 심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됐다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런 날 응급 분만 산모가 오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우리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그토록 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분만이 다급한 환자가 119에 실려 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오늘처럼 구급대원이 전화로 이송이 가능한지 묻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임정숙 간호사나 다른 의료진이 사정을 말하고 거절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막내 간호사가 전화를 받고 분만을 앞둔 산모가 급히 오는 중이었다. 그런 산모를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의진의 마음속에 산모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두렵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추월한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본능이 그녀를 일으켰다.
“정 선생, 정말 할 수 있겠어?”
다시 한번 단호하게 확인하는 태경에게 의진은 분명하게 답했다.
“네, 선생님. 객기로 하는 말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그래, 좋아. 해 봐.”
태경의 허락이 떨어지자 의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네, 우선 아이 상태를 알아야 해요.”
의진은 산모와 아이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임 선생님? 아이 주수랑 태반은 잘 있나요? 애 자세는요?”
“다 정상인데 하나 특이한 게 있어요.”
“특이한 거라니요?”
“자궁 안에 근종이 있는데 그게 좀 커요.”
“일단 알겠어요. 시간 없으니까 일단 수술방 준비부터 하죠. 선생님 수술방으로 이동해요.”
“그래. 알겠어.”
태경은 의진과 함께 서둘러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이 어시스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긴장되네.’
그러고 보니 산부인과 분만은 인턴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동안 수술방을 제집보다도 더 많이 들어갔지만, 오늘은 기분이 조금 달랐다.
슬쩍 의진을 쳐다보니 긴장하는 자신과 달리 전혀 긴장하는 거 같지 않았다.
“선생님? 잠시만요.”
수술 전 손을 씻는 스크럽을 하려 하는데 의진이 말렸다.
“우선 손 씻지 마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 말에 태경이 급하게 가운을 입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근종이 있다고 꼭 제왕절개 하는 건 아니잖아?”
“네, 맞아요. 근종 크기에 따라 그리고 위치에 따라 다르거든요.”
근종은 쉽게 설명하면 근육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조직 일부가 과하게 증식한 것을 말한다.
자궁근종은 양성 질환 종양으로 자궁 평활근에 생기며 여성에게 흔한 병이다.
임신을 계획하다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임신 중에 생기는 경우도 있으며 월경 통증이 심해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전혀 몰랐다 우연한 기회 아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여성 호르몬과 유전적 요인, 스트레스 등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근종은 피가 지혈이 안 될 수 있어서 함부로 제왕절개를 할 수가 없어요. 들어가다가 근종을 건들기라도 하며 위험하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그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고 분만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분만이라…….”
태경은 임신한 환자들을 충수염으로 수술하거나 다른 외과적인 수술을 한 경우는 많았어도 분만은 인턴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또한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물론 분만은 아이를 받는 산부인과 의사 말고는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수술에 있어서는 생전 긴장하지 않은 태경은 분만이라는 낯선 상황에 살짝 긴장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한 티를 내진 않았다.
오랜만에 분만하는 의진의 옆에서 제대로 된 어시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괜히 그 긴장감을 의진에게까지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수술방의 모든 준비가 끝나고 산모가 도착했다.
“으악! 저 배가 너무 아파요.”
베드에 실려 병원으로 들어온 산모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호소했다.
“선생님! 우리 와이프 좀 살려 주세요.”
산모 뒤로 함께 온 남편이 할 말이 많은 듯 의료진을 보자마자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 사람이 출산 베테랑이거든요. 배 속에 있는 이 녀석이 넷째 출산이에요. 첫째부터 셋째까지 진통도 별로 없고 문제없이 잘 낳았는데, 갑자기 넷째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이게 무슨 일인지 원…….”
고통스러운 아내 옆에서 남편은 난감한 듯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던 부부는 아이가 생길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낳았다.
남들은 하나만 갖기도 힘든 아이를 셋이나 있으니 더 건강하게 바르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하물며 셋째까지 모두 아들이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생기는 대로 잘 낳자 주의였지만, 아들만 내리 셋을 낳으니 두 사람은 은근히 딸이 갖고 싶었다.
‘여보, 우리 딸 하나만 더 낳을까?’
‘괜찮겠어? 지금도 저놈들 등쌀에 힘들잖아.’
‘여보가 많이 도와주잖아. 그리고 셋에서 하나 더 늘어난다고 크게 힘들 거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딸은 아들 키우는 거랑 다르다고 하잖아.’
‘솔직히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지. 근데 당신 나이도 있는데…….’
‘내가 이래 봬도 임신 체질에 셋째까지 애도 쑥쑥 잘 낳았잖아. 걱정하지 마. 그리고 당신 말대로 나이가 있어서 안 생길지도 몰라.’
‘그래. 우리 나이도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시도나 해 보자. 그래도 생기면 좋겠네.’
‘나도. 딸 생기면 좋겠다.’
그렇게 금실 좋은 부부는 아무 기대 없이 열심히 부부생활에 임했고, 감사하게도 딸을 임신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
부부는 언제나 그렇듯이 셋째까지 다녔던 동네 병원에서 출산하려 했다.
지금까지 정기검진을 통해 경과를 보던 그쪽 의사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종 때문에 그 병원에서 도저히 출산할 수가 없었다.
다니던 그 병원 의사 역시 산모의 상태를 알고 있었고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분만을 하려고 보니 예상과 달랐다.
계속 분만을 진행하기에는 위험했기 때문에 의사는 재빨리 우리병원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선생님! 저 너무 아파요. 이러다 아이 잘못되는 거 아니죠?”
산모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아이부터 걱정하고 나섰다.
“선생님, 우리 집사람 왜 이런가요? 이런 적 없었는데 막내 출산하러 갔다가 구급차 타고 이리 왔습니다.”
“산모님 힘드시니까 말 많이 하지 마시고, 보호자분은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우선 안으로 이동하죠.”
아내가 누워있는 베드를 다급하게 밀고 뛰어가는 의료진을 보고 있던 남편은 어렵게 발길을 돌렸다.
“하! 미치겠네. 진짜…….”
걱정과 초조한 가득한 표정으로 그가 향한 곳은 보호자 대기실이었다.
“일단 전화부터 해야겠다.”
남편은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
그런데 집에 있어야 할 장모님이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아니, 장모님이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말도 마. 저 녀석들이 엄마 걱정된다고 얼마나 들들 볶던지. OO 병원에 전화하니까 이쪽으로 이송됐다길래 놀라서 택시 타고 왔어.”
“아빠아~!”
“아빠.”
남편이 장모님 뒤로 시선을 넘기자 쪼르르 앉아있는 아이들이 아빠를 불렀다.
말수가 적고 듬직한 고등학생 첫째와 까불이 중학생 둘째, 순둥이 초등학생 셋째까지 삼형제가 총출동한 것이다.
“너희들 학교 가야지. 여기 왜 왔어?”
“이미 준비 다 했고, 학교 가려면 두 시간이나 더 남아서 괜찮아요.”
아이들은 교복에 책가방까지 메고 등교 준비를 한 채 병원에 왔다.
“아빠, 내가 병원 오면서 할머니 휴대폰으로 찾아보니까 여기 원장님이 그때 방과 후 프로 거기에 나온 그분이래.”
셋째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력도 엄청 좋고 천재 의사라고 하던데 엄마랑 막내도 잘 봐주실 거야.”
“너 바보냐?”
그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동생의 말을 정정하고 나섰다.
“그 선생님은 산부인과 전공이 아니라 엄마 못 봐.”
“의사 선생님이잖아. 의사 선생님은 아픈 사람 다 보거든!”
초등학생인 셋째는 아직 의사의 전공이나 이런 개념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 선생님은 엄마처럼 임신한 사람 보는 게 아니라고.”
“그럼, 엄마는 어떡해? 우리 엄마 죽어? 아! 왜 때려!”
죽는다는 말에 둘째가 손바닥으로 막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형이 뭔데 때려.”
“네가 재수 없는 소리를 하니까 때리지. 죽긴 엄마가 왜 죽어.”
“이놈들, 여기서 싸우는 거 아니야.”
“할머니, 그게 아니라 둘째 형이 나 때렸어.”
“맞을 만하니까 때렸지.”
안 그래도 아내 때문에 정신이 없는 남편은 아이들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다.
“야! 둘째, 셋째 이리 와 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마디를 하려는데 다행히 아빠의 마음을 눈치챈 첫째가 동생들을 통제했다.
“아까 형이 병원 오기 전에 분명 싸우지 말고 목소리 크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응.”
“엄마 지금 막내 출산 때문에 병원에 온 거야. 그런데 둘이 싸우면 돼? 안 돼?”
“안 돼.”
“둘째는?”
“안 싸울게.”
“서로 악수하고. 형이 휴대폰 줄 테니까 돌아가면서 게임 한 번씩 하고 얌전히 앉아 있어. 알았지?”
두 동생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첫째의 말을 따랐다.
아이들이 조용해지자 남편은 장모님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아내가 무사하길 기도했다.
‘제발! 아내도 아이도 무사하게 도와주세요. 제발……. 지켜 주세요. 살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