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혈관 덩어리
산모의 가족들이 보호자 대기실에서 초조함을 견디던 그 시각, 수술방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아윽! 배 아파요.”
다급하게 베드를 끌고 가던 의진은 산모의 배를 급히 촉진했다.
“……!”
그런데 의진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분만실 앞에서 잠깐 베드를 멈췄다.
“잠시만요.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나 볼게요.”
의진이 손가락을 넣어서 경부를 촉진하는 동안 태경은 산모의 배를 촉진해 보았다.
‘냄새는 다행히 2단계인데……. 이런! 엄청 크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태경은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그 정도로 근종의 크기가 컸다.
안 그래도 분만이나 제왕절개 등은 출혈이 가장 중요하다.
임신 말기의 자궁과 태반은 혈관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출혈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다른 모든 게 정상이라고 해도 출혈 때문에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산모의 오른쪽 배에 근종이 자리 잡고 있으면 정말이지 무서운 상황이다.
“경부는 이미 열렸네요.”
태경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의진이 말했다.
“들어가죠!”
“네, 선생님.”
의진의 말과 함께 간호사들이 베드를 분만실로 끌고 갔다.
조금 전, 산모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이대로 다른 병원으로 보냈으면 산모는 보나 마나 구급차에서 출산했을 것이다.
의진은 다시 한번 자신 선택의 다행이라 생각하며 산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아악!”
여전히 아파하는 산모를 조심스럽게 분만 침대로 옮기고 양쪽 다리를 분만 침대와 연결된 기구에 한 쪽씩 차례대로 올려놓았다.
“아… 악!”
계속된 통증에 산모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를 낳을 때 느껴지는 통증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며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첫째를 무사히 출산한 산모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렇게 아픈 줄 알았으며 임신을 안 했을 거예요. 저, 정말 죽다 살았거든요. 남편한테 둘째는 꿈도 꾸지 말라고 했어요.’
힘들었던 출산 과정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육아 또한 현실이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가 주는 기쁨과 사랑을 느끼며 둘째를 계획한다.
물론 모든 산모가 이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란 존재는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하고 대단할 존재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산모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고 있는 것이다.
“아아악!”
“산모님?”
산모가 또다시 비명을 지르자 의진이 말했다.
“많이 힘드실 텐데 저와 맞춰서 힘을 줄게요. 조금 이따가 제가 숫자를 말하면 그때 주면 돼요.”
아픈 와중에도 출산 경험이 많은 산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만실에 모인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기구들을 꺼내고, 태경과 의진은 손을 닦고 무균 가운을 입었다.
그사이 산모의 바자이나(vagina, 질)에서 피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미 막은 찢어진 것 같았다.
“선생님?”
의진이 다시 한번 바자이나(질)를 통해 보더니 태경에게 말했다.
“산모님 윗배 좀 눌러 보세요. 아이가 경부는 이미 벌어졌는데…….”
항상 수술방에서 흔들리지 않은 모습으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던 태경의 모습이 오늘은 좀 달랐다.
분만에 관해서는 의진만큼 알지 못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는 무엇이 맞는지 전적으로 의진을 믿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태경이 확신할 수 있는 건 다섯 번째 바이탈이 2단계라는 것이었다.
아까 산모가 들어왔을 때부터 느껴지던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여전했다. 그나마 3단계나 4단계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물론 출산 과정에서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태경은 산모의 배를 밀기 시작했다.
“정 선생, 이렇게 밀면 돼?”
“근종이 있어서 오른쪽은 밀지 마시고 너무 세게 하지도 마세요. 네, 이 정도가 좋아요.”
그렇게 태경이 의진의 주도 아래 쉬다가 밀기를 반복하며 5분의 시간이 지났다.
“네, 좋아요. 다시 가운 입으시고 제 옆으로 와 주세요.”
의진은 아이의 머리가 질 입구에서 보이자 의료용 가위를 든 채 산모를 강하게 독려했다.
“산모님 좋아요. 이제 힘이 들어가야 해요. 자! 하나, 둘, 셋, 넷……. 좀 더 조금만 더요.”
“으!”
구령의 맞춰 산모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넷째 아이 출산이라는 경험답게 힘든 와중에도 산모는 의진을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우리 산모님 정말 잘하고 계세요. 잠시, 숨 쉬고. 숨 쉬세요.”
“후우! 으아!”
“산모님, 너무 소리 지르지 마시고 이제 거의 다 끝나가요.”
질 입구를 보면서 산모를 독려하며 또다시 5분의 시간이 지날 때였다.
“자! 산모님 숨 쉬시고…….”
“후우!”
“자! 힘!!”
“윽!”
“마지막!!”
“으!”
지금 이 순간, 의진과 태경을 포함한 모든 의료진의 시선에서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거의 다 됐어요.”
이윽고 아이의 머리가 질 입구에서 살짝 밀려 나오려 하자 의진이 재빨리 질 입구를 왼쪽 뒤 방향으로 절개했다. 그러자 아이의 머리가 밀려서 나왔다.
아이의 머리가 보이자 목과 어깨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위아래로 당겨 아이를 온전히 빼냈다.
‘나왔다.’
밖으로 나온 아이를 보며 태경이 속으로 말했다.
분만의 과정을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현실로 겪어 보니 그런 과정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켈리!”
차분하지만 단호한 의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간호사가 얼른 켈리를 건넸다.
“으앙!”
힘찬 울음소리를 따라 자석처럼 산모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
의료진의 격려와 아이가 괜찮은 걸 확인한 산모의 표정 위로 잠시 안도감이 스쳐 갔다.
“으아앙!”
의진은 울고 있는 아이의 탯줄 가운데를 켈리(kelly, 기다란 집게)로 잡고서 가운데를 잘랐다.
이제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시름 놓은 줄 알았으나 의진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매섭고 긴장돼 있었다.
“정 선생, 아이가 잘 나왔네. 고생했어.”
태경이 의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니요. 선생님. 이다음이 중요해요. 이제부터가 진짜 더 중요해요.”
“……!”
의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간 태경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게 뭐지?’
발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태경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런데 질 입구에서부터 흐르는 피가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이미 바닥은 피로 흥건한 상태였다.
‘이런 젠장!’
그렇게 많은 수술을 경험한 태경조차 놀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물론 이중 상당수는 양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의 양이 많았다.
원래 분만 시 피가 많이 난다고는 하지만 질 입구에서 흐르는 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태경이 살짝 긴장된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자 의진이 자른 탯줄을 잡고서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산모에게 말했다.
“산모님, 후사(태반이 나오는 과정)도 좀 불편할 수 있어요.”
“……네”
산모는 힘겹게 대답했다.
의진이 탯줄을 잡고 서서히 당기며 한손으로는 산모의 배 위를 눌렀다.
조금씩, 조금씩 태반이 나오는 듯하더니 나오던 태반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
태반을 학생 때도 본 적 없는 태경이 보기에도 아직 반도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태반이 나오지 않으면 산모에게 지대한 출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온전한 후사와 온전한 자궁의 수축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지금 그 중요한 과정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침착하던 의진의 입에서 나지막이 거친 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런! xx.”
평소 전혀 거친 소리를 하지 않던 의진조차 절로 안 좋은 소리가 나올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산모에게 집중했다.
산모는 절개한 질 입구의 통증과 복부 전반의 통증으로 인해 인상을 쓰고 있었다. 현재 마취를 한 상태가 아니므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이미 아이가 나온 뒤라 더 이상 약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없으므로 태경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외쳤다.
“페치딘(마약성 진통제) 하나 걸어 주세요.”
“아니요.”
그 순간, 링거에 페치딘을 꽂아서 주려는 간호사를 의진이 말렸다.
“링거에 같이 주지 말고 그냥 한 앰풀 바로 짜 주고 옥시(옥시토신, 자궁수축을 유도하는 약물)도 하나 주세요.”
“네, 선생님.”
“정 선생? 아직 태반이 다 안 나왔는데 옥시 줘도 괜찮아?”
“우선 최대한 태반을 빼 보는데 출혈을 잡는 게 먼저일 것 같아서요.”
의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하자 그 의도를 파악한 태경이 태반을 잡을 수 있는 기구를 들어 의진의 손에 쥐여줬다.
“스페큘럼(speculum, 질 입구를 벌려서 안을 볼 수 있는 도구) 주세요.”
의진이 안을 잘 볼 수 있도록 태경은 조명 기구의 각도를 맞췄다.
“하!”
짧은 한숨과 함께 의진이 계속해서 기구로 질 안쪽을 찾다가 이내 자궁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악! 윽!”
산모의 통증이 분만실에 울렸지만, 태반을 다 끄집어내야 하므로 의진은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질 입구에서는 계속 피가 나오고 있었다.
“환자 혈압 좀 확인해 봐요.”
“네, 선생님.”
간호사에게 말한 의진은 계속해서 태반을 끄집어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태경이 보기에도 오른쪽 배에 있는 커다란 근종에 자꾸 손이 막히는 게 보였다.
그러다 근종에서 출혈이 생기면 그땐 손쓸 수도 없을지 모른다.
“아…….”
의진은 계속 잔류하는 태반을 꺼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나오지 않고 출혈만 계속되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 거즈로 자궁 입구를 막고서 옥시를 계속해서 투여했다.
“선생님, 잠깐 거즈로 막고 있어 주세요.”
“그래, 알았어.”
쉽지 않은 케이스에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의진은 급하게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
태경은 은사에게 전화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거즈로 자궁 입구를 막고 있었다.
“……!”
그런데 순간 그의 미간이 확 좁혀지며 표정이 변했다.
‘안 돼! 하! 씨.’
비교적 낮은 단계를 유지하고 있던 환자의 다섯 번째 바이탈 단계가 확 올라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어.’
안 그래도 산모의 상태를 보며 냄새가 진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2단계에서 4단계로 순식간에 다섯 번째 바이탈이 널을 뛰었다.
자칫 산모의 목숨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빨리 가서 정 선생 들어오라고 해요.”
“네, 선생님.”
태경의 말에 간호사가 분만실을 나가려는데 마침 의진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태경을 비롯한 모든 의료진의 시선을 받던 의진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일단,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