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가방의 비밀
“아니, 소독 말고요. 저 봉합해 주세요.”
조금 전까지 대충 소독만 해 달라고 하던 이예진은 별안간 봉합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도 달리는 열차 안에서 말이다.
“봉합을 여기서요?”
“네.”
사실 지금 봉합을 하는 게 좋긴 하다. 벌어진 상처에 균이라도 감염된다면 그땐 간단한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기구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저걸로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태경은 이예진의 손끝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승무원이 가져온 구급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구급상자 안에는 봉합에 필요한 봉합 세트가 보였다.
“맞다! 봉합 세트. 이거 피부 꿰매는 데 사용하는 거라고 했는데…….”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승무원은 봉합 세트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열차를 탄 승객분이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일이 있었거든요. 다행히 명절 때라 만석이었고 승객 중에 의사 몇 분이 계셔서 그분들의 응급처치 후 다음 역에서 119에 실려 갔어요. 그런데 그때 계셨던 선생님 한 분이 봉합 세트가 있었으면 머리 찢어진 것도 꿰맬 수 있었을 거라고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친절한 승무원은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설명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우리 팀장님께서 응급 환자에게 필요한 거 다 구비해 두셨다고. 그때 의사 선생님 말씀 듣고 봉합 세트도 그래서 구입했어요. 이런 거 의사만 사용한다고 했더니 팀장님이 어차피 열차에 의사 한 명은 타지 않겠냐고 농담으로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오늘처럼 진짜 사용할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잘됐네요. 선생님 저 봉합해 주세요.”
승무원에게 말하던 이예진은 다시 태경에게 말했다.
“감염의 우려도 있고 봉합 반드시 해야 한다고 조금 전에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봉합 세트도 있겠다, 저도 여기서 하는데 마음이 편할 거 같아서요.”
확고한 이예진의 의견과 달리 태경은 생각 중이었다.
아까 문제가 있다고 한 그것 때문이었다.
봉합하는 기구는 문제가 아니었다. 태경 역시 승문원이 구급상자를 열자마자 봉합 세트를 가장 먼저 봤었다.
그가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마취였다.
“당연히 저게 있으면 봉합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취약이 없어요.”
“알고 있어요. 선생님. 그냥 해 주세요.”
“마취 없이 봉합해 달라고요? 괜찮겠어요.”
사실 이예진의 팔에 난 상처는 마취하는 거나 그냥 봉합하는 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냐 하면 마취 주사를 맞는 게 봉합만큼 아프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저 경우에는 마취도 여러 곳에 해야 하므로 더 그랬다.
사람 심리가 봉합하기 전에 마취 주사를 맞는 게 마음이 편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예진 말대로 마취하지 않고 봉합하더라도 무엇보다 봉합 시 환자가 움직이지 않아야 했는데 가능할까 싶었다.
“이 정도 상처는 마취하는 것도 괴롭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할게요.”
“그냥 해도 봉합할 때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네, 가능해요. 그리고 선생님 아까 저거 보셨죠?”
이예진은 아래쪽에 애지중지 내려놓은 가방에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일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거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완벽하게 잘 끝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제가 일 잘 끝낼 수 있게 봉합 부탁드릴게요.”
“그래요. 알겠어요.”
도대체 저 가방이 뭔지 승무원은 궁금했지만, 태경은 이예진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합시다. 봉합.”
“마, 마취 없이 봉합하시게요? 아프지 않겠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놀란 승무원이 이예진에게 괜찮은지 묻자 쿨한 답이 돌아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이후 태경은 승무원에게 양해를 구해 자신이 있던 특실로 이예진과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특실이 일반 좌석보다 크고 간격도 넓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돌아온 태경은 봉합할 준비를 마쳤다.
“마취랑 봉합이 비슷하다고 해도 막상 그냥 하려면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어요. 게다가 열차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봉합할 때 팔을 움직이면 안 돼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래 봬도 애들 둘이나 출산한 워킹맘이에요.”
체구도 작고 어리게 보인 그녀가 아이 엄마일 줄은 몰랐다.
“첫째 둘째 꼬박 15시간 10시간 진통하다 죽다 살아나면서 자연분만으로 출산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고통 참기 선수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세요. 여기 팔 딱 붙이고 미동도 안 할게요.”
“혹시 입에 물수건이라도 준비해 줄까요?”
태경은 이예진이 아파서 이를 꽉 깨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네, 선생님.”
다시 한번 상처 난 팔을 소독한 태경은 바늘을 들었다.
사실 봉합이야 밥 먹듯이 하는 일이고 특히 그의 봉합 실력이야 함께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수였다.
상처 또한 깊지 않았기에 솔직히 태경에게는 상당히 쉬운 경우였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었으니 지금 장소가 병원이 아닌 달리는 열차 안이라는 거였다.
그나마 방지턱이 있거나 신호 때문에 달리다 멈추는 걸 반복하는 차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집중하자…….’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 흐름을 느끼며 태경이 바늘을 이예진 팔에 찔러 넣었다.
“윽!”
바늘이 들어가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이예진이 얼굴을 잠시 찡그리며 탄식했다.
아무리 고통을 잘 참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픈 건 당연할 것이다.
태경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봉합을 해 나갔다.
그렇게 첫 바늘이 피부에 들어가고, 염려했던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봉합은 일정한 속도 때문인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프죠?”
“참을 만해요.”
“잘하고 있어요.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요.”
바늘이 직각으로 들어가서 상처의 깊이만큼 상처로부터 거리를 두고 들어간다. 그리고 상처의 아래까지 들어갔다가 같은 거리로 나왔다.
타이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지만, 환자가 온전히 느낄 통증이 신경 쓰였다.
태경은 5cm 정도 되는 상처에 4번 정도를 봉합하고 마무리한 뒤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 거즈로 상처를 덮어 준 뒤 당부를 잊지 않았다.
“다 끝났어요. 물 안 닿게 조심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봉합하는 동안에도 가방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이예진이 태경에게 고개를 돌리며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는요. 이예진 씨가 고생했죠. 아팠을 텐데 정말 잘 참았어요.”
“아니에요. 그런데 선생님 타이 진짜 잘하시네요.”
“간단한 봉합한 것뿐인데 칭찬을 들으니까 민망한데요.”
“봉합하는 것만 봐도 외과 의사 실력은 나온다고 하잖아요. 저 사실 아까 선생님 보자마자 속으로 살짝 놀랐어요.”
“절 아세요?”
“그때 아동 학대 인터뷰도 그렇고 방송 나온 거 봤거든요.”
“아, 그랬군요. 그런데 정말 잘 참네요.”
“저요? 처음에 바늘 들어갈 때만 따끔했지,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어요. 아마 제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더 그럴 거예요.”
“힘들죠?”
별안간 들려온 그 말에 보물단지처럼 가방을 지키고 있던 이예진의 시선이 잠시 태경을 향했다.
그러자 태경의 시선 역시 가방을 향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은 힘든지도 모르겠어요.”
이예진은 말을 하며 가방 손잡이를 소중히 잡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고 있던 아이스박스 모양의 가방은 사람의 장기가 담겨 있는 가방이었다.
저 가방 안에는 차가운 용액에 담긴 소중한 장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태경이 저 가방을 보자마자 알아챈 이예진의 직업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였다.
그녀가 팔에 난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긴장한 것도, 정신이 없는 것도 현재 장기를 이송 중이기 때문이었다.
장기 관련 코디네이터는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있다.
둘의 차이는 쉽게 설명하면 장기기증 쪽은 전국 지역별 담당자가 있으며 장기를 기증할 뇌사자를 관리한다.
또한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 소속으로 뇌사 추정자 사정과 뇌사 판정 조율, 기증 절차 등을 담당하며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라고도 한다.
반면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장기를 이식받은 수혜자를 관리하며 소속된 병원에서 일한다.
이예진이 이 경우에 속하며 이식에 대한 전반적인 절차 안내와 조율, 장기 구득 및 이송 조율 등을 담당한다.
“그런데 헬기로 이송하지 않고 왜 KTX를…….”
“맞아요. 앰뷸런스나 KTX도 이용하지만 급할 때는 헬기로 이송하는 경우가 많죠.”
이예진은 원래 헬기를 타고 장기를 이송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타고 갈 헬기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급히 KTX를 타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장기 받고 이제 헬기만 잘 타고 가면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기장님한테 연락받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았어요. 표 예매도 안 했는데 어떡하나, 혹시라도 KTX 타고 가다 열차에 문제라도 생겨서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예진은 아까 그 아찔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움찔했다.
“급하게 택시 타고 왔는데 열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늦을까 봐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러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지는 와중에도 장기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가방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넘어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한쪽 팔이 땅에 쓸리면서 상처가 났더라고요.”
“저런! 그래도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네, 그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피를 보고 저보다 더 놀랐는데 전 장기가 무사한 게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왜 혼자 가고 있죠?”
보통은 장기를 척출하는 의료진과 함께 움직였다.
“그게 나머지 분들이 아직 그 병원에 계세요.”
“아니, 왜요?”
“좀 문제가 있었어요.”
본원에서 출발하기 전, 의료진은 애매한 시간 때문에 식사를 못 할 거 같아 간단히 김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김밥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적출하는 내내 정신력으로 버틴 의료진은 적출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단단히 배탈이 났는지 금방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김밥을 먹지 않은 이예진이 혼자 이송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첫 이송이다 보니까 긴장돼서 그런지 전 배가 안 고팠어요.”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이예진은 지금, 이 순간조차 얼마나 긴장된 상태일지 태경은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이 이해됐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아직도 그 병원에서…….”
“네, 한 분은 결국 수액 맞고 계시고 한 분은 계속 화장실 왔다 갔다 하신다고 연락 왔어요.”
말도 안 되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병원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지곤 했다.
예전에 태경 역시 배가 안 좋은 상태로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수술 전 먹은 약 때문에 실례하진 않았지만, 그 당시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기저귀를 차고 들어갔었다.
“다들 참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아니에요. 선생님같이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분들이 대단한 거죠.”
“이예진 씨도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분이에요. 코디테이터 분들의 노력이 없으면 이식도 못 하잖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감사하네요. 그리고 저 사실 아까 선생님 말씀 듣고 봉합한 거예요.”
“내 말이요?”
안 그래도 태경은 이예진이 갑자기 봉합해달라고 했는지 그 부분이 궁금했다.
“네.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남의 목숨 귀한 만큼 내 목숨도 귀한 줄 알라고.”
“아, 그 말 때문에…….”
“맞는 말이기도 했고, 수혜자 가족분들이 미안해할 것 같아서요.”
이예진은 착한 마음씨를 가진 수혜자와 그 가족들이 다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신경을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기증을 진행하면서 내 몸을 돌본 적이 없었다. 항상 수혜자 관리가 우선이었고 모든 신경이 그쪽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태경의 말이 더 와닿아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도착해도 치료받을 시간도 없을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의료기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내 몸 돌보기가 쉽지는 않죠.”
“맞아요.”
“그런데 지금 이식하는 장기가 심장은 아니죠?”
“네, 지금 안에 들어 있는 장기는 폐에요.”
장기이식은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확보한 장기를 이송해서 환자에게 이식해야 한다.
사람의 몸에서 이식이 가능한 장기는 폐, 간, 심장, 신장, 췌장, 각막, 소장이다.
그중 심장은 4시간, 폐는 6시간, 간은 12시간, 신장은 24시간 안에 이식해야 하는데, 시간이 가장 짧은 심장일 경우 헬기로 이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됐어요?”
“저요? 우리 아빠 때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