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희미한 냄새들의 실체
“그런데 어떻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됐어요?”
“저요? 우리 아빠 때문에요.”
“아버님 때문이라고요?”
“네. 선생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코디네이터 하기 전에는 간호사였어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현재 따로 전문 과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간호사 출신이 많았다.
“제가 간호사로 5년 넘게 일하고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까 뭐랄까 번 아웃이 왔어요. 정말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말이 딱 맞았던 거 같아요. 근데 하필 그럴 때 아빠 건강이 안 좋아지신 거예요.”
이예진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심장이 안 좋아 계속 약을 먹고 있었다. 10년 넘게 먹고 있던 약이 더 이상 듣지 않아 이식밖에 답이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장기이식이란 게 받고 싶다고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 뇌사자가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좋아진 몸으로 버티고 있던 어느 날, 병원에 뇌사자가 생겨 가까스로 심장을 이식받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다고 연락받았을 때 아빠도 가족들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식받는다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다행이네요.”
“네. 그때 정말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써 준 분이 장기이식 코디분이셨어요.”
갑자기 뇌사가 생겨 급하게 진행된 수술이었다.
늘 이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아빠와 가족들은 바랐지만, 막상 결정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걸 옆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관리하고 챙겨 준 사람이 바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코디네이터의 도움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를 그만둔 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열심히 교육을 통해 해당 병원의 코디가 된 것이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아버님은 현재 괜찮으세요?”
“네, 크게 문제 될 곳 없이 잘 지내고 계세요.”
“일하기 힘들지 않아요? 그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제가 올해 3년 차인데 솔직히 안 힘들다면 거짓말인 거 같아요. 늘 대기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관리하던 수혜자분이 기증받으면 더없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생긴 뇌사자와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아요. 이런 부분들이 힘든 거 같아요.”
태경 역시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장기이식을 해 봤기에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사정도 잘 알 수 있었다.
또한 현재 우리병원 환자 중에도 장기이식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기에 이예진이 하는 말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근데 솔직히 힘든 것보다 보람을 더 많이 느껴요. 그것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고요. 이런 말 들으면 웃으실지 모르지만 전 제가 자랑스러워요.”
“하나도 안 웃긴데요. 그리고 제가 봐도 이예진 씨 자랑스럽고 멋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네? 별말씀을요. 유명한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시니까 부끄럽네요. 어! 선생님 저 전화 좀.”
“편하게 받아요.”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던 사이 이예진의 핸드폰이 또다시 급하게 울렸다.
장기 이송에 관한 전화로 간단하게 끝날 것 같지 않았기에 태경은 눈짓으로 편하게 통화를 하라고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좌석에서 일어나면서 태경의 시선이 장기가 담겨 있는 가방에 잠깐 머물렀다.
솔직히 저 가방 안에 담겨 있는 폐의 기증자가 누군지 어느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예진 역시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인이 된 기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네, 정문에 앰뷸런스 대기 중이라고 연락받았어요. 네, 감사합니다. 바로 갈게요. 네.”
“저기 승객님?”
한참 동안 통화를 마친 이예진에게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승무원이 말을 걸었다.
“아고! 제가 특실에 너무 오래 있었죠? 안 그래도 저 지금 가려고 했어요. 의사 선생님도 불러 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예진은 승무원이 이만 원래 있던 일반실로 자리를 옮기라는 말을 하려는 줄 알았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안 옮기셔도 돼요.”
“네?”
“부산까지 가신다고 했죠?”
“네, 맞아요.”
“아까 선생님도 부산까지 가신다며 승객분과 자리를 바꾸셨어요.”
“아니, 그게 무슨…….”
조금 전, 이예진이 통화를 하고 있을 때 특실을 나온 태경은 승무원실로 향했다. 그리고 장기 이송과 업무 중 팔을 다친 이예진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승무원에게 양해를 부탁했다. 다행히 사정을 들은 승무원 팀장이 자리 교체를 허락했다.
“아니, 김태경 선생님이요?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이미 충분히 도와주셨는데…….”
승무원에게 사정을 들은 이예진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괜찮은데 그냥 제 자리로 옮길게요.”
“그러지 마세요. 선생님께서도 승객분 생각해서 일부러 그러신 거잖아요. 팔도 다치셨는데 여기 앉아서 편하게 가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예진은 승무원의 설득과 태경의 마음을 생각하며 이대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항생제 잊지 말고 꼭 드시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저기 승무원님, 잠시만요.”
이예진은 주머니에 있던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급하게 적더니 승무원에게 건넸다.
“죄송한데 이것 좀 그 선생님께 전해 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이예진은 승무원에게 쪽지를 건네며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뒤-
열차는 부산에 도착했고 일반석에 앉아 있던 태경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차 밖으로 나가 걸어나려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인사하는 이예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은 본 태경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인사를 받은 이예진은 소중한 장기가 든 가방을 들고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선생님, 치료해 주시고 좌석까지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늘 응원하겠습니다.
‘무사히 수술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경은 이예진이 준 쪽지를 떠올리며 장기를 이식받는 수혜자의 수술이 잘 끝나길 빌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더불어 여러 명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고 간 이름 모를 뇌사자의 명복을 간절히 빌며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기사님, OO동에 있는 해기쁨 호스피스병원으로 부탁드립니다.”
“혹시 주소 알고 계세요?”
“네, 제가 주소 알려드릴게요.”
그 뒤 부산역을 나온 태경은 택시를 타고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했다.
철컥-
“감사합니다.”
“선생님!”
택시에서 내리는 태경을 보며 유지천의 딸 김진경이 정문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가 모시러 간다니까요. 찾아오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전혀요. 오면서 부산의 풍경도 보고 편하게 왔어요.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봬요. 사실 그사이에 선생님을 봐서 그런지 전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사이에 절 봤다고요?”
“네, 예능 프로에 나오신 거 봤어요.”
“아, 그거요.”
“말씀을 어찌나 잘하시던지 가족들끼리 보면서 감탄했다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 팬입니다.”
김진경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가만히 함께 걷고 있던 남자가 불쑥 인사를 건넸다.
“누구신지…….”
“아! 맞다. 제가 소개를 해 드린다는 게 정신이 없었네요. 선생님, 이 사람 제 남편이에요. 여보,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진경이 남편 이동규하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결혼한 줄 몰랐어요.”
“얼마 안 됐어요.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 엄마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그냥 양가 가족들만 해서 조용하게 했어요.”
이동규는 회사 동료로 예전부터 김진경에게 마음이 있었다. 유지천이 퇴원하기 전, 사귀게 된 두 사람은 최근 부부가 됐다.
현재는 아픈 장모님을 위해 회사에 휴직계를 쓰고 김진경과 함께 부산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늦었지만, 두 분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아까 택시에서 내리면서 보호자분 얼굴이 좋아 보였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김진경은 엄마인 유지천을 간호했을 때와 달리 표정이 밝았다. 늘 삶에 찌든 모습만 봤던 태경은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저요? 우리 남편 때문인 거 같아요. 이 사람이 정말 잘해 주거든요. 근데 엄마를 생각하면 제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나 싶어요.”
“그럼요. 누려도 되죠. 유지천 환자는 보호자분이 더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부모님이랑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근데 환자분은 좀 어떠세요?”
“엄마요? 그게 좋은 것 같으면서 좋지 않고, 좋지 않은 거 같으면서 좋고…….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시겠죠?”
김진경은 답답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옆에 있던 이동규는 그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솔직히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요.”
조금 전까지 밝게 보였던 김진경의 얼굴 위로 약간의 그늘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병원 입구로 들어서던 바로 그때였다.
“……!”
순간, 태경이 크게 휘청하며 넘어질 뻔했다.
“어머! 선생님?”
“괜찮으세요?”
옆에 있던 김진경과 이동규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괜찮아요.”
“하긴 여기 계단이 좀 높아서 나도 저번에 넘어질 뻔했잖아.”
“정말? 조심하지.”
두 사람이 걱정하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태경은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으셔서 다행이네요.”
“제가 발을 잘못 디뎠나 봐요.”
사실이 아니었다.
튼튼한 두 다리는 똑바로 잘 걷고 있었다. 태경이 휘청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럴 수가…….’
바로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병원 정문에서부터 지독한 냄새가 희미하게 나기는 했었다. 아무래도 호스피스 병원이란 특성도 있었기 때문에 태경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희미한 냄새들의 실체가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태경에게 밀려와 쏟아져 내렸다.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끼면서 처음 맡아 보는 가장 지독하고 아찔하며 x같은 냄새들이었다.
지금까지 위급한 단계에서 나는 독한 냄새를 맡아도 휘청거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황이 타는 냄새와 시체 썩은 냄새,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독한 냄새가 섞여 후각을 유린하고 눈이 시릴 정도였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이었고, 냄새가 죽음 그 자체였다.
태경은 지금 풍기는 이 냄새가 다섯 번째 바이탈의 5단계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란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안 좋다…….’
더욱 잔인한 것은 병실을 지날 때마다 살짝 보이는 환자들의 행복한 얼굴이었다.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밝게 웃고 있는 환자들의 표정이 태경의 가슴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장 독한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끼며 여러 병실을 지나 제일 끝에 있는 병실 앞에서 멈췄다.
“선생님, 여기에요.”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태경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 유지천이 있었다.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