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의사의 삶이자 본분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 유지천이 있었다.
“선생……님.”
병실 가득 들어찬 잔인한 냄새와 함께 창밖을 보고 있던 유지천이 인사를 건넸다.
태경은 의식적으로 모니터와 함께 환자와 그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반인과 호흡 패턴이 다르다.’
모니터 속 호흡의 파동이 자발 호흡 구간이 작고, 유지천은 몰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자꾸 떨어지는 혈압으로 인해 승압제(혈압 올려 주는 약)를 최대로 쓰고 있는 것도 보였다.
승압제의 사용은 보호자의 선택이므로 아마도 가족들이 요청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천천히 인사를 건넨 유지천은 우리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마른 상태였다. 게다가 옆구리와 다리 쪽에 부종이 심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시한부에 빠졌고, 결국 치료를 중단했으니 상태가 좋아질 리는 만무했다.
“환자분, 잘 지내셨어요?”
“네, 선생님.”
그나마 미소를 띤 유지천의 표정이 태경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었다.
“선뜻 와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바쁘실 텐데 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도 뵙고 싶었어요.”
“진경아, 선생님 주스 좀 드려.”
“선생님, 이것 좀 드세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유지천의 말에 작은 음료수병을 건넨 김진경은 남편과 함께 잠시 자리를 피해 줬다.
“저희는 잠깐 나가 있을게요. 말씀 나누세요.”
드르륵-
“몸은…….”
한마디를 채 떼지 못하고 태경이 입을 닫았다.
‘환자분 몸은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고요?’
지금까지 의사로 살면서 셀 수 없이 많이 했던 당연한 말이 차마 입 밖으로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선생님, 저 괜찮아요.”
태경의 마음을 눈치챈 유지천이 오히려 담담한 말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솔직히 제 몸 상태가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상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때 여행 간다고 하셨는데 여행은 잘하셨어요?”
“네, 우리 진경이랑 이곳저곳 둘러보고 나중에는 남편이랑 아들도 같이 다녔어요. 저는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잖아요. 이거 한번 보시겠어요?”
유지천은 옆에 베드 위에 있던 사진을 태경에게 건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는 소중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그 사진 속에서만큼은 유지천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곳 많이 다니셨네요.”
“그렇죠? 진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선생님도 너무 병원에만 계시지 마시고 가끔 바람도 좀 쐬고 그러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갑자기 연락드려서 놀라셨죠?”
“조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유지천이 왜 연락을 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여기 담당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잠시 유지천이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고, 태경은 그 침묵을 깨지 않고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들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가까운 친지분들이랑 정말 친한 친구 보고 나니까 선생님이 뵙고 싶었어요.”
“저도 환자분의 근황이 궁금했어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우리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도 못했을 거고, 이렇게 좋은 추억을 남기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말을 했어도 결국 받아들인 건 환자분 본인의 의지였어요. 환자분 스스로 한 거예요.”
“선생님은 처음 봤을 때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세요.”
“감사합니다. 근데 왜 부산으로 오게 된 건지…….”
유지천이 퇴원하던 날 태경은 여행하는 지역의 호스피스 병원과 추후 머물게 될 지역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 리스트도 함께 알려 줬었다. 그런데 예정된 지역에 부산은 없었기에 이유가 궁금했다.
“맞아요. 원래는 다른 지역에 가려고 했어요. 근데 제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바로 부산에서 살던 시절이에요.”
유지천은 한때 남편의 일로 몇 년 동안 부산에 살았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이 태어났고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이비에 빠지지 않고 일상의 즐거운 기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삶을 정리할 곳은 부산으로 하고 싶었다.
“여기 오니까 그때 기억이 자주 떠오르면서 심적으로도 좋은 거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태경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이 힘들지 않아서 버틸 만해요. 선생님, 제가 요즘에 제 삶을 돌아보는데 딱 두 가지가 후회스럽더라고요.”
“두 가지요?”
“네, 하나는 우리 아들 결혼을 못 보는 거요. 진경이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했는데 막내 결혼하는 건 못 볼 거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보같이 사이비에 빠졌던 게 후회돼요. 근데 딱 거기까지예요. 후회할 뿐이지 그 생각에 사로잡혀 저 자신을 괴롭게 하지는 않아요.”
빈말이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고 죽음을 받아들인 유지천은 후회 속에 남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에게는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 주고 있고,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세상에 넘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줬어요. 딸에게도 사위에게도 남편에게도 하고 싶은 말 잊지 않고 전부 전했어요. 저에게 남은 시간이 하루일지 일주일일지 한 달일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남은 시간 가족들과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요.”
“잘 생각하셨어요.”
저렇게 생각하고 실천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심했을지 감히 예상할 수도 없었다.
태경은 덤덤하게 말하는 유지천의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유방암이잖아요. 여행할 때부터 지금까지 핸드폰으로 찾아보니까 유방암은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고 글을 자주 봤어요.”
유방암에 발생 원인 중 10%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환경적인 요인의 의한 것이다.
“저한테 이상 유전자가 있으면 아이가 물려받을 확률인 50%잖아요. 저는 이제 갈 사람이라 괜찮은데 내 자식은 안 그랬으면 해서요. 그래서 진경이 보고 선생님께 정기적으로 꼭 검진받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잘 좀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자식이 아픈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그런 존재다. 유지천은 이 상황에서도 오로지 남겨진 자식 걱정뿐이었다.
만약 딸아이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만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가 의사로서 믿을 수 있는 분이 선생님뿐이에요.”
“알겠습니다. 병원 오면 제가 그때마다 꼼꼼히 잘 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그 뒤, 태경은 유지천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나중에 온 남편과 아들과도 인사 후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제게 베풀어 주신 마음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로 남아 주세요.”
“네, 환자분.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까 병실로 들어와 인사를 나눴던 때처럼 다른 환자들에게 하던 ‘다음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환자분 제가 ㅁ…….”
“아니요. 선생님!”
아직 말이 끝나지 않은 태경의 말을 유지천이 급히 막아섰다.
“방금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려고 하셨죠? 그 말은 하지 마세요.”
유지천의 말대로 태경은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뭔가 직접적으로 미안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의사의 삶이자 본분이었다.
태경은 항상 의사로서 그 본분을 지키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픈 환자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이 무기력하고 환자에게 미안했다.
남들에게 천재 소리를 듣는 의사일지라도 죽음을 앞둔 환자 앞에서는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지식은 쓸모가 없었다.
의학적으로 이미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아픈 이들을 보면 가엾게 여기는 태경의 천성 때문이기도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제가 해야죠. 저처럼 말 안 듣는 환자가 어디 있겠어요. 처음 암 진단받았을 때도 제가 연락 끊을 때까지 선생님이 치료받으라고 매일 연락하셨잖아요. 선생님 같은 분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제가 자초한 일이에요.”
직접 겪어 본 사람으로서 유지천은 환자를 아끼는 태경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멀리 부산까지 와서 자신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긴 싫었다.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 가족들이랑 화해도 못 하고 사이비 시설에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여기 원장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마지막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요. 그래서 정작 가족들과도 인사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떠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저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태경은 유지천에게 따뜻한 말을 해 주려고 왔는데, 오히려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마지막은 웃는 얼굴로 인사해 주세요.”
“유지천 씨를 제 환자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태경은 진심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저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아주 밝은 미소로 화답하는 유지천의 모습을 뒤로하고 태경은 병원을 나왔다.
터벅터벅 택시 승강장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택시를 타지 않고 한동안 걸었다. 계속 걸어가다가 바다가 잘 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하!”
환자의 죽음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이 먹먹했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태경은 한참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있다 서울로 돌아왔다.
원래는 바로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병원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술을 먹지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술이 먹고 싶었다.
복잡한 머리와 속을 알코올의 힘을 빌려 쉬게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계산할게요.”
“오징어는 행사로 나온 건데 같이 담아드릴게요.”
“네. 수고하세요.”
병원에 전화해 응급환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태경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집으로 향했다.
“후우!”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 태경은 집주변에 크게 아픈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행이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느꼈던 사악한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와 달리 밤바람을 타고 코를 침범하는 1, 2단계 냄새가 고맙기까지 했다.
태경은 양복을 입은 그대로 평상에 위에 대충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크! 시원하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의 청량감이 답답한 속을 씻겨 주는 것만 같았다.
앉은 자리에서 두 캔을 내리 비운 태경은 마지막 캔을 들이켜며 유지천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 저 솔직히 고백하면요, 더 이상 욕심은 없는데, 그런데 딱 하나 간절히 바라는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보름이요. 딱 보름만 더 살고 싶어요. 그때가 우리 아들 생일이거든요.’
‘아드님 생일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저도 그러고 싶네요.’
유지천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부디 조금만 더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녀가 떠야 할 시간과 마주할 때 부디 고통 없이 편하게 가기를 기도하며 태경은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