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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270화 (270/472)

270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 또 안전!

당당하게 앞장선 여자 뒤로 민망하게 웃는 남자가 함께 들어 왔다.

두 사람은 스턴트맨 구민우와 그의 아내 이소리였다.

“오늘은 또 어떤 일로 오셨어요?”

“이 사람 때문에요.”

“일단 두 분, 자리에 앉으세요.”

이소리는 바로 뒤에 서 있는 남편 구민우를 쳐다보며 자리에 앉았다.

“왜요? 민우 씨 어디 아파요?”

“아니요. 선생님.”

“그럼, 일하다 다쳤어요?”

“그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을 향해 꼼꼼히 물어보고 있지만, 사실 태경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을 하자면 의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태경의 진지하고 예민한 면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저번 주에도 병원에 왔던 구민우는 한마디로 건강한 상태였다.

그에 따라 다섯 번째 바이탈 역시 1단계였다.

보통 병원에 외래 진료를 오는 건강한 환자들이나 밖에 다닐 때도 희미한 2단계가 더 많았는데, 1단계, 그것도 약한 1단계이니 그가 얼마나 건강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우리 민우 씨가 어디가 불편해서 왔을까?”

“선생님, 이이가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 그래. 이거 봐!”

“제발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고 앉아.”

구민우가 양팔을 올리며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자 이소리가 그의 옆구리를 툭 찔렀다.

“아! 아파.”

그러자 187cm나 되는 장신의 그가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과한 표정으로 아픔을 호소했다.

“선생님, 보셨죠? 방금 이 사람이 저 때리는 거요. 제가 이렇게 맞고 삽니다.”

“오버 좀 하지 마. 선생님 오해하시겠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 대화만 들으면 사이가 안 좋은가 싶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두 사람은 우리병원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스턴트맨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 구민우와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소리는 고등학교 때 만나 10년이 넘는 연애 끝에 작년에 부부가 됐다.

동갑내기 부부로 장난기가 많기는 했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큰 두 사람이었다.

“소리 씨가 보기에 민우 씨 어디가 이상한 거 같은데요?”

“3일 전에 촬영하고 왔는데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요.”

이소리는 본인이 느끼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구민우의 신체 부위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촬영하고 늘 있는 일이라니까……. 아! 아! 자기야. 그만!”

신기하게도 아내가 손가락을 찌를 때마다 구민우는 외마디소리를 냈다.

“그럼 제가 한 번 볼게요.”

걱정하는 이소리를 뒤로하고 태경이 구민우의 몸을 살펴봤다.

“팔은 타박상이 있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내 앞에서 옷을 안 벗더라.”

“자기야, 이건 상처도 아니야. 내가 잘못 넘어져서 그래.”

“자랑이다. 그러게 잘 좀 넘어지지.”

팔에 난 가벼운 상처를 보자 이소리의 볼멘소리가 구민우의 고막을 찔렀다.

“허리는 일단 보기에는 괜찮은데……. 민우 씨, 허리 많이 아파요?”

“아니요. 선생님.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에요.”

“조용해! 선생님 그러지 말고 엑스레이 찍어 볼 수 있을까요? 이 사람 제가 걱정할까 봐 아파도 절대 말 안 하거든요.”

“그래요. 그사이 촬영했다니까 엑스레이 찍어 보고 확인하는 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구민우 님 이쪽으로 오세요.”

두 사람은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이 병원 단골이 된 것은 이소리의 건강염려증 때문이었다.

본인에 대한 염려가 아닌 구민우에 대한 염려증이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구민우가 스턴트맨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강염려증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죽어도 안 된다고 말리며 반대했었다.

벌이가 적은 것 때문에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부상에 대한 위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원했던 남편의 꿈을 꺾지 못하고 그의 손을 들어 줬다.

대신 다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다.

‘너 만약 일하다가 위험하게 다치면 그때는 무조건 그만둬야 해. 알았어?’

‘당연하지. 자기야 내가 우리 자기 위해서라도 안 다치고 열심히 할게.’

구민우는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직업 특성상 부상을 피해 가기란 쉽지 않았다.

피부가 찢어지는 건 기본에 근육통은 늘 달고 살았다.

‘뭐야? 또 다쳤어?’

‘다치긴. 이건 애교지. 나 하나도 안 아파. 걱정 마.’

성품 좋고 감각도 좋고 인물까지 좋은 구민우의 일거리는 점점 늘어 갔지만, 그와 비례로 이소리의 걱정도 늘어 갔다.

폭발하는 차에 뛰어들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물속에 빠지고 달려오는 차와 부딪히는 것, 그게 구민우의 일이자 삶이었다.

이소리는 남편이 출근하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함께 일하다 죽은 동료들도 있었기에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마치 소방서와 강력계 형사나 경찰 가족들이 마음 졸이며 살 듯이 이소리도 그랬다.

태경은 이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의 대한 이소리의 건강염려증을 이해하며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아무것도 아닌 상처로 병원을 자주 찾아와도 늘 웃으며 꼼꼼히 진료에 임했다.

“엑스레이 보니까 괜찮은데요?”

잠시 뒤, 구민우의 엑스레이 촬영 결과가 나왔다.

“괜찮은 거예요?”

“네, 괜찮아요. 보면 척추도 아주 곧고 문제 될 곳도 전혀 없어요. 아무래도 몸을 많이 쓰니까 근육이 뭉친 거 같아요.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봐. 내 말 맞지? 내가 요령이 있어서 안 다치게 잘한다니까.”

“그건 민우 씨 말이 맞아요. 상처 치료받고 오늘 촬영 있어요? 지금 시간 있으면 물리치료 한 번 받고 가요.”

“그래, 물리치료 받고 가자.”

“네, 선생님 그럴게요. 그리고 이 사람 진료도 좀 봐 주시겠어요?”

“날 왜?”

갑자기 구민우가 진료 이야기를 꺼내자 이소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왜긴 왜야. 소리 너 계속 속도 불편하고 입맛도 없다며.”

“요즘 밀가루 많이 먹어서 그냥 체한 거야. 내가 원래 잘 체하잖아.”

“그래도 온 김에 진료 봐. 나 보면 같이 보기로 했잖아.”

“알았어.”

“이쪽으로 앉아 보시겠어요?”

이민우의 상처 치료를 마친 태경이 이번에는 이소리를 진찰했다.

“혹시 최근에 몸이 으슬으슬 춥다고 느끼거나 그건 적 없어요?”

“어! 맞아요? 그랬어요. 좀 가벼운 몸살 같기도 하고 일하는데 잠이 오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잠시만요. 어. 나야. 지금 바빠?”

이소리를 진찰 후 이것저것 물어보던 태경은 의진에게 전화했다.

“환자분 진료 때문에 그런데 잠깐 올 수 있어? 고마워.”

“선생님, 저 어디 안 좋아요?”

그동안 병원에 왔을 때와 다른 태경의 행동에 이소리와 구민우는 긴장했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철컥-

“안녕하세요. 어! 소리 씨구나.”

태경이 말하던 사이 의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산부인…….”

“……!”

의진이 산부인과 진료도 한다는 걸 알고 있던 두 사람은 그녀를 보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구민우는 아내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이소리는 그런 남편과 의진을 번갈아 보며 강력히 부인했다.

“어머! 선생님 아니에요. 자기야 아니야.”

“알아요. 소리 씨, 그냥 한 번 진료만 봐요. 저랑 잠시 같이 가실까요?”

“진짜 아닌데. 자기 괜히 기대하지 마. 나 정말 아니다.”

“알았어. 얼른 갔다 와.”

“소리 씨, 마지막 생리 언제 했어요?”

“제거 원래 불규칙해서요. 어플에 저장해 놨는데…….”

철컥-

이소리는 의진을 따라 산부인과 진료를 보기 위해 잠시 진료실을 나갔다.

“선생님, 우리 소리 임신인가요?”

“일단은 임신 초기 증상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한데, 정확한 건 담당 선생님이 진료를 봐야 알 수 있을 거예요.”

“네, 그렇군요.”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에 민우 씨 나온다고 해서 봤습니다.”

“선생님께서요?”

“TV로 본 건 아니고요. 직원들이 알려 줘서 너튜브로 찾아왔어요. 멋있던데요?”

“진짜 유명한 분께 그런 소리 들으니까 민망하네요. 선생님, 저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요?”

“이거 비밀이라서 아내밖에 모르거든요. 저 사실 미국 영화사랑 계약해서 영화 찍고 있습니다. 그것도 M사요.”

“정말이에요? 거기 진짜 유명하잖아요? 민우 씨, 잘됐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내가 다 기분이 좋네.”

스턴트맨이란 직업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일인지 그동안 이소리를 통해 들었던 태경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오늘도 영화 촬영하러 가요.”

“그러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올라가서 물리치료하고 가요.”

“근육통 약 처방해 줄 테니까 수납하면서 받아 가고, 소리 씨는 진료 끝나며 물리치료실로 안내해 달라고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촬영 잘해요.”

“네, 선생님. 또 뵐게요.”

태경과 기분 좋게 인사한 구민우는 물리치료를 받고 이소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물리치료 잘 받았어? 좀 괜찮아?”

“확실히 받고 나니까 근육이 편하긴 하네.”

“그것 봐. 병원 오길 잘했지?”

“인정. 잘했어. 그리고 나 영화 촬영하는 거 선생님께 말했다.”

“미쳤어! 그걸 왜 말해! 비밀조항 잊었어?”

“괜찮아. 김태경 선생님 믿을 만한 분이잖아.”

“나도 아는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워낙 까다로운 회사였기에 이소리는 남편보다 더 조심했다.

“알았어. 맞다! 소리야, 잠깐만!”

“왜?”

아내의 손을 잡고 가던 구민우는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아까 산부인과 진료 본 거 어떻게 됐어?”

“그거……. 별거 아니야.”

“뭐야 왜 그래? 어딘 안 좋기라고 한 거야?”

“아니라니까.”

“이소리! 빨리 말해. 뭔데?”

“음! 놀라지 말고 들어.”

“…….”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구민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자기야 나, 임신이래.”

“뭐! 진짜야?”

“응. 진짜야.”

“우와!”

“엄마야! 뭐 하는 거야?”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구민우는 아내를 번쩍 안고 소리쳤다.

“우리 소리 임신했다! 나 아빠 됐다!”

“뭐해! 바보야 사람들 쳐다보잖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저 아빠 됐습니다.”

출근길에 그 모습을 보던 사람이 구민우와 눈이 마주치자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여보 나 내려 줘.”

“그래그래. 미안미안. 조심해. 소리야 고마워. 사랑해! 진짜 사랑해.”

구민우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벅찬 표정으로 이소리에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두 사람은 따로 아이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저 생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키우자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귀한 선물이 찾아오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왜 말 안 했어?”

“자기 오늘 중요한 촬영 있는데 저녁에 집에 오면 말하려고 했지.”

이소리는 오늘 촬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남편이 괜히 신경 쓸 거 같아 저녁에 말하려고 했었다.

“이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피검사 수치는 임신이 맞는데 아직 너무 초기라서 나중에 한 번 더 검사하자고 하셨어. 난 그냥 생리하려나 보다 했지. 임신인 줄 몰랐거든. 나 진짜 둔하지?”

“그게 왜 둔해. 자기는 생리가 불규칙하고 생리 증후군이 있으니까 모를 수도 있지.”

“선생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어. 그리고 임신 극초기니까 평상시처럼 생활하되 조심히 지내래.”

“당연하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무조건 조심해야지. 이따 저녁에 축하 파티 하자. 내가 당신 좋아하는 케이크 사서 갈게.”

“근데 민우야. 나 할 말 하나 더 있어.”

“뭔데? 뭐든지 말해. 내가 이소리를 위해서는 죽는시늉까지 할 수 있어. 아니, 죽을 수도 있어.”

“그 죽는다는 소리 취소해라. 그 소리 싫다고 했지?”

“취소. 미안.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튀어나왔어.”

이소리는 본인은 물론 스턴트맨을 하는 남편이 농담으로라도 ‘죽는다’는 입에 담는 게 싫었다.

“여보? 민우 씨?”

“뭐야 갑자기 왜 민우 씨래.”

“나 지금 장난 아니거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조금 아까 임신 사실을 고백할 때보다 이소리는 더 진지하고 심각했다.

“이제 우리 아이도 생겼으니까 더 조심해야 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앞으로 너무 위험한 촬영은 하지 말아 줘.”

마음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두라는 말이 반복됐지만, 이소리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원하고 행복해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리기보다는 그의 팬이 되어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늘 위험 속에 살아가는 남편을 말리고 싶어졌다.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불안감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영화만 끝나면 앞으로 위험한 촬영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구민우는 아내가 어떤 심정으로 저런 말을 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응원하며 참아 왔던 아내를 위해 이제는 자신이 양보할 차례였다.

“그리고 당신이랑 아이 생각해서 절대로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할게. 나 믿어.”

“당연히 자기 믿지. 나 구민우 바보잖아. 근데 자기야? 우리 아이 태명 뭐로 할까?”

“글쎄……. 씩씩이? 튼튼이? 축복이? 사랑이? 뭐로 하지?”

“행운! 행운처럼 우리한테 왔으니까 행운 어때?”

“좋은데? 행운아 안녕. 내가 아빠란다.”

“뭐야 그 느끼한 말투는.”

“내 꿀 보이스를 들려주는 거야. 아아! 우리 행운이 들리니?”

“아니요. 아빠.”

아이가 찾아온 두 사람은 행복한 일상은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뒤-

“소리야 나, 갔다 올게.”

구민우는 영화 촬영 장소로 출발하기 위해 이소리와 인사하고 있었다.

“알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됐지? 걱정하지 마.”

“알았어. 조심히 잘하고 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톡 해. 다 사 올게.”

쪽-

구민우는 아내를 한 번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춘 뒤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의 포옹은 그날따라 더 따뜻했고 입맞춤은 더 간절했다.

“여보! 파이팅!”

현관에서 인사를 나눈 것도 모자라 이소리는 창문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행운아, 오늘 아빠가 촬영 잘 끝낼 수 있게 빌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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