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스턴트맨 구민우
영화 촬영장-
“차량 문제없지?”
“네, 없습니다.”
감독이 무전으로 이야기하자 현장을 체크한 조감독의 답변이 빠르게 돌아왔다.
“자! 다들 긴장하고 레디……. 액션.”
탁-
감독의 시작 사인과 함께 곧장 슬레이트의 소리가 들린 뒤 촬영이 시작됐다.
액션 소리와 함께 007가방을 들고 달리는 컨테이너 트럭 위에 서 있던 구민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앞에 있던 배우가 대사와 함께 커다란 몽둥이를 휘두르자 미리 합을 맞춘 구민우가 좌우로 몸을 돌려 피했다.
“야! 이 새끼야! 그 가방 당장 내놓지 못해?”
몽둥이를 휘두르던 배우가 거친 대사와 함께 칼을 꺼내고 트럭의 머리가 코너링을 돌던 그때였다.
구민우는 옆으로 몸을 돌려 덤블링하며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컷!”
사인 소리와 함께 촬영이 종료되고 곧이어 만족스러운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민우 씨가 감각이 있어. 다치진 않았죠?”
“네, 괜찮습니다.”
미리 안전 매트가 깔린 정해진 장소에서 약속한 타이밍에 떨어진 거였기에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
구민우가 현재 찍고 있는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 제작사인 미국M사의 영화였다.
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콘텐츠와 한국 배우의 위상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콧대 높은 영화사에서도 한국 배우 캐스팅의 열을 올렸다.
이번 영화는 몇 년 전부터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영화의 후속편이었다.
원래 나오던 미국 배우들은 빼고 주, 조연을 맡은 한국 배우와 더불어 감독까지 한국인이 캐스팅됐다.
구민우는 여기서 주연을 맡은 한국 배우의 스턴트맨으로 캐스팅됐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다 보니 스턴트맨을 뽑는 오디션도 한 달 동안 진행됐으며, 경쟁률 또한 어마어마했다.
캐스팅 확정이 되던 날, 구민우는 아내와 함께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롭다는 M 영화사의 계약 조항 때문에 주연 배우와 팔 둘레, 허벅지 둘레 등 신체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구민우는 그마저도 즐거웠다.
액션 장면이 워낙 많은 영화였기에 주연 배우의 난이도 높은 모든 장면이 그의 몫이었다.
다른 스턴트맨보다 감각이 있고 스타일리쉬한 그의 액션 연기에 감독은 물론 영화사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와! 이거 영상 죽이는데? 민우 씨가 함께해서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아닙니다. 감독님이 잘 찍어 주셔서 잘 나온 거죠.”
“감독님?”
감독이 구민우를 칭찬하는 사이 트럭 위에서 함께 촬영한 조연 배우가 다가와 불편한 어투로 말했다.
“한 번 더 가시죠?”
“이번 거 영상 죽이게 나왔는데? 다시 갈 필요 없어.”
“제가 아까 팔 휘두르면서 동작이 어색한 거 같아서요.”
영화에 조연으로 나오는 남자 배우는 방금 한 촬영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재촬영을 요구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선호 씨 동작이나 표정 다 깔끔했는데? 민우 씨가 보기에도 괜찮았지?”
“예? 그럼요. 되게 멋있고 훌륭했습니다.”
“그래. 진짜 멋있었어. 그럼 다음 씬으로 넘어가지.”
“배우분들 10분 뒤에 B 세트장으로 와 주세요.”
감독의 말에 스태프가 전달 사항을 알리고 주변이 정리되는 와중에 조연 배우 김선호가 다가와 구민우에게 투덜거렸다.
“근데 민우 씨가 연기에 대해 뭘 안다고 멋있다는 거야?”
“네?”
“주인공 대역이나 하는 스턴트맨이 연기를 논하기는 웃기지 않아?”
“아니, 전혀 안 웃긴데?”
이쯤 되니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닐까 싶던 찰나 단호한 목소리가 김선호를 지적했다.
“그렇게 따지면 선호 씨도 연기를 논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선배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선호 씨는 민우 씨 마음 잘 알잖아.”
김선호가 꼼짝 못 하는 사람은 구민우가 대역하고 있는 주인공이자 오랜 시간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강혁이었다.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던 그는 화장실을 갔다 오는 길이었다.
“선호 씨, 설마 민우 씨 견제하는 거야?”
“예?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왜 견제해요. 그리고 전 민우 씨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한 거예요.”
“아……. 조언이었구나?”
“그럼요.”
조금 전까지 까칠함으로 일관하던 김선호는 톱스타 강혁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민우 씨 내 마음 알죠? 나 조언해 준 거예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따 오후 촬영 때 봐요. 선배님 저 메이크업 수정 좀 해야 해서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
“민우야, 괜찮아?”
“당연하죠. 형.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거 마셔.”
강혁은 매니저가 사 온 커피를 건넸다. 인품이 좋은 그는 자기 대신 어려운 장면을 촬영하는 구민우를 살뜰히 챙겼고 동생처럼 대했다.
“애가 욕심이 있어서 연기는 좀 되는데 성격이 똥이네. 쟤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동안 스턴트맨 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은 구민우였다. 같은 동료의 죽음부터 연예인들의 갑질에 사기까지 당했기에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선호 너 견제하는 거야. 이 바닥이 원래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거 너도 알잖아.”
“견제요? 연예인이 저를 왜 견제해요.”
“왜긴! 민우 너한테 자리 뺏길까 봐 불안해서 그렇지.”
“뺏기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무슨 말인지 구민우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 죽겠지? 저기 대표님 오시네. 직접 물어봐.”
“민우야?”
기분 좋게 웃은 강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가리키며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트럭 씬 잘 찍었다며?”
“대표님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내 새끼 중요한 촬영하는데 당연히 와야지.”
산적같이 생긴 남자는 구민우가 소속된 액션 팀의 대표이자 무술감독이었다.
“오늘 막내 드라마 촬영장 간다고 하셨잖아요.”
“들렀다 오는 길이야. 사실 너한테 할 말도 있고……. 혁이 씨가 별말 안 해?”
“안 그래도 방금 김선호가 절 견제한다고 그러질 않나 또 자리를 뺏긴다고 말하질 않아. 아무튼 희한한 말을 하긴 했어요.”
“제대로 말했네. 하긴 비슷한 포지션이니 똥줄이 탈 만도 하지.”
“비슷한 포지션은 또 뭐예요? 대표님, 좀 알아듣게 말하세요.”
“민우야, 이제 고생 끝났어. 너 인마 이제 연예인이야.”
“연예인?”
“하늘의 숲에서 너랑 계약하고 싶대.”
“뭐! 나를? 나를 왜요…….”
하늘의 숲은 구민우가 스턴트맨 대역을 하고 있는 강혁의 소속사였다.
그동안 구민우를 관심 있게 본 소속사 대표가 배우로서 정식 계약을 요청한 것이다.
“널 배우로 키우고 싶대. 하긴! 우리 민우가 잘생기고 연기도 잘해서 스턴트맨으로 있기에는 아깝지. 김선호가 까칠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야. 걔도 하늘의 숲 소속이고 게다가 스턴트맨 출신이니까 신경이 쓰이겠지.”
“…….”
“뭐냐? 너 왜 반응이 없어? 안 기뻐?”
“그게 아니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갑자기가 아니라 강혁이 2년 전부터 대표에게 널 추천했대.”
“대표님! 이게 다 사실이에요? 맞아요?”
“그래 이 새끼야? 내가 그랬지, 너 반드시 뜬다고. 민우야, 네가 해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사람 일은 정말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구민우는 임신한 아내의 배웅을 받고 집을 나오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앞으로 위험한 촬영을 하지 않는 것과 배우로 전향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더 이상 스턴트맨을 오래 하기는 힘들 거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바닥에서 스턴트맨을 하다가 배우로 전향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패하더라도 계속 오디션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막힌 타이밍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구민우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꿈만 같았다.
“정말 감사해요. 이게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은 무슨. 네가 열심히 해서 된 거지. 그리고 계약 기간 남은 거 그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계약해.”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막말로 계약할 때 내가 계약금 준 것도 아니잖아. 그동안 민우 너 때문에 회사도 많이 알려지고 신입 애들도 많이 늘어났어. 내가 네 덕을 봤지.”
대표는 진심으로 구민우가 더 잘되기를 바랐다.
“내가 봤는데 계약 조건도 좋아. 이따 그쪽 대표님이 너 촬영하는 거 보러 온다니까 잘해. 멋진 거 촬영한다고 오늘 오라고 했거든.”
“네, 집중해서 잘하겠습니다.”
구민우는 이 모든 게 아내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행운이가 진짜 행운만 주네. 아빠가 잘할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강혁에게 달려가 고마운 마음을 전한 그는 다른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기시간을 가졌다.
촬영장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촬영의 하이라이트이자 구민우의 촬영 순서가 다가왔다.
“오케이 컷! 혁이 씨, 좋아. 아주 흠잡을 곳 없어.”
강혁의 촬영이 끝나고 곧이어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와 똑같은 분장을 한 구민우가 다가왔다.
“민우 씨, 리허설 할 때처럼만 하면 돼. 평소 하던 대로 알겠지?”
“네, 감독님.”
“민우 씨, 부탁해요.”
“맡겨 주세요.”
감독과 강혁의 응원을 받은 구민우는 몸에 와이어를 착용한 채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번 촬영은 구민우가 주인공 대신 쫓아오는 나쁜 놈들을 피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면 조연 김선호가 아래에서 총을 쏘는 장면이었다.
처음 뛰는 건물 옥상과 건너편 옥상 그리고 바닥은 물론 하늘 위에 있는 헬리캠까지. 다각도로 찍기 위해 주변 곳곳에 카메라가 즐비했다.
또한 현장에서는 멀쩡한 건물에서 뛰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화에서는 엄청난 CG로 폭발하는 건물과 날아오는 총알 세례 사이를 뛰는 멋있는 장면이었다.
멋있는 장면인 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와이어를 달고 하는 작업은 언제나 위험도가 따른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구민우는 집중해서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장면이 아니었다.
바로 건물 사이 밑에서 총을 쏘는 김선호가 헬리캠 한 앵글에 나오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실수 없이 집중해야 했다.
“김선호 배우님, 잘 부탁드립니다.”
구민우는 감독의 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김선호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김선호가 연예인이라고 해도 스턴트맨인 구민우에게 맞추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요. 잘해 봐요. 나야 집중력이 좋으니까 민우 씨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네, 집중해서 잘하겠습니다.”
“분위기 좋네. 어려운 촬영이니까 다들 심기일전해서 좋은 그림 뽑자고. 파이팅!”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자리로 이동했다.
“다들 스탠바이 됐지?”
“네, 감독님. 다 준비됐습니다.”
“좋아! 레디~ 액션!”
감독의 힘찬 큐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갔지만 바로 촬영이 중지됐다.
“컷!!”
“죄송합니다.”
건물에서 뛰어오르기 전 달려오던 구민우의 발이 꼬인 것이다.
“민우 씨, 긴장했어?”
“아닙니다. 감독님. 제가 스텝이 엉켰어요.”
“그래, 좋아. 긴장할 거 하나도 없어. 대한민국 최고의 스턴트맨이 구민우잖아. NG 나도 되니까 마음 편하게 해.”
“네, 감사합니다.”
무전기로 감독의 응원을 받은 구민우는 다시 한번 몸을 풀고 정신을 집중했고, 들려오는 사인에 연기가 시작됐다.
“레디 액션!”
이번에 구민우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도 좋았고 무엇보다 멋있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점프한 모습이 예술 그 자체였다.
“컷! 다시!”
그런데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NG가 나고 말았다.
“선호 씨, 왜 그러세요?”
건물 아래에 있던 김선호가 NG를 낸 것이다.
“총이 먹통이네요. 소리가 안 나는데요?”
“리허설 때는 괜찮았잖아요?”
“그러니까요. 이게 왜 이러지?”
“이걸 안 풀었네요.”
주변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소품팀장이 확인하자 총의 잠금장치가 잠겨 있었다.
“그러네. 이런 정말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긴장했나 봐요.”
“감독님, 선호 씨, 총이 문제였는데 해결됐습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민우 씨, 쏘리.”
조감독이 무전으로 상황을 알리고 김선호는 감독과 구민우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렇게 다시 촬영이 진행됐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 NG 한두 번 나는 건 기본이었기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NG가 반복됐다. 그것도 모두 김선호의 NG였다.
“선호 씨, 표정이 어색한데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해 줘.”
“죄송합니다, 감독님. 다시 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긴장했나 봐요. 죄송합니다. 민우 씨, 고생하는데 미안해.”
어색한 표정을 시작으로 시작된 NG 퍼레이드는 총을 떨어뜨려서 한 번, 넘어져서 한 번, 엉뚱한 카메라를 쳐다봐서 또 NG가 났다.
“5분만 쉬었다 하자.”
계속된 NG에 감독은 와이어를 달고 고생한 구민우를 위해 잠시 휴식을 말했다.
“아! 저 미친 새끼.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보던 액션팀 대표가 표정이 굳은 채 김선호를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