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73화 (273/472)

273화. ‘포르말린과 유황!’

구민우의 집-

“음! 맛있어. 오늘은 더 맛있게 됐네. 고기랑 찌개 반찬까지. 간이 딱 맞네.”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이소리는 구민우가 집에 오면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엄마 닮아서 요리는 잘한다니까.”

찰칵-

각종 반찬과 된장찌개, 고추장 불고기를 만들어 사진을 찍은 이소리는 구민우에게 전송했다.

-맛있어 보이지?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저녁 준비했어. 시원한 맥주는 덤이야. 몸 조심히 잘 마무리하고 와. 사랑해♡

오늘 하루 종일 임신 축하를 받은 이소리는 기분이 좋았다.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은 물론 시댁 어른들과 직장 동료들까지. 다들 그녀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이소리는 요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분 좋은 날들을 마주한 거 같았다.

오랜 시간 스턴트맨으로 일하던 남편이 큰 영화사와 계약을 하고 뱃속에 찾아온 행운이까지.

그야말로 감사한 일뿐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남편이 위험한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저, 오늘 촬영이 이번 영화가 끝날 때까지 무사히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 끝났으면 하는 그 바람뿐이었다.

딩동-

“……!”

남편에게 톡을 보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이소리는 현관 벨소리에 인터폰으로 향했다.

“누구지?”

보통 촬영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직 남편이 올 시간도 아니었고, 이 시간에 벨을 누를 사람도 없었기에 이소리는 의아했다.

“누구세요?”

-이소리 씨 댁인가요?

“네, 맞는데 누구세요?”

-향기로운 세상에서 꽃 배달 나왔습니다.

“꽃 배달이요? 잠시만요.”

철컥-

꽃 배달이라는 소리에 오피스텔 공동 문을 열어 준 이소리는 잠시 뒤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배달 직원이 보낸 사람의 이름을 알려 줬다.

“구민우 씨, 아시죠?”

“네, 우리 남편인데요…….”

“남편분께서 이소리 씨 앞으로 꽃을 보냈어요. 받으세요.”

“어머! 세상에! 이걸 우리 남편이 보냈다고요?”

“네, 여기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철컥-

살면서 제일 큰 꽃다발을 받은 이소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분홍색, 하늘색을 포함한 오색찬란한 색을 뽐내는 꽃들이 온 집안에 향기를 퍼트리며 그녀에게 기쁜 마음을 수놓았다.

얼굴 위로 점점 미소가 드리워진 이소리는 꽃다발에 꽂혀 있는 카드를 펼쳤다.

-소리야, 갑자기 웬 꽃다발인가 싶었지? 생각해 보니까 내가 꽃다발을 해 준 적이 몇 번 없더라고.

다른 게 아니라 당신, 임신 축하해 주고 싶었어.

똑똑하고 예쁘고 마음은 더 예쁜 사람. 당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있잖아, 여보. 나 사실 아까 새벽에 결혼식도 못 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는 아주머니 말이 속으로 신경 쓰였다.

당신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계속 미안했거든.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고 하잖아.

예쁜 드레스 한 벌도 못 입혀 준 나 자신이 너무 못났더라.

소리야, 이번 영화 촬영만 끝나면 우리 결혼식 올리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줄게.

지금까지 나 하나 믿고 같이 살아 줘서 고마워.

앞으로 당신도 우리 행운이도 행복하게 해 줄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 이소리 사랑한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은 너야!

“미치겠다. 구민우 진짜…….”

학교 다닐 때부터 유난히 글씨를 못 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반듯한 그의 필체가 이 카드를 쓰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거야. 행운아, 이거 보여? 아빠가 보낸 꽃이야. 예쁘지?”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행복함에 젖어 들던 그때,

Rrrrrrrrr

식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여간 양반은 못 돼요.”

휴대폰 화면 위로 ‘내 사랑’이란 문구가 떠 있었다. 이소리는 당연히 남편 구민우라고 생각하고 밝게 전화를 받았다.

“쉬는 시간이야? 꽃 잘 받았어. 나 태어나서 이렇게 큰 꽃다발 처음…….”

-제수씨?

꽃다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던 그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이소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액션 팀 대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김창희 대표예요.

“아, 네. 대표님 잘 지내시죠? 그런데 대표님이 왜 그이 핸드폰으로 전화하셨어요?”

-그게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제 폰을 차에 두고 오는 바람에 일단 민우 걸로…….

말 그대로 정신이 없는 대표는 횡설수설했다.

-하! 씨. 이게 아닌데.

이소리는 어딘가 다른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순간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남편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지금까지처럼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이소리는 속으로 혼잣말을 쏟아냈다.

스턴트맨을 처음 시작한 그 날부터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잘해 온 남편이었다.

여러 위험 속에서도 다리 골절이 가장 큰 부상이었을 정도로 남편은 부상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동료들까지 부러워할 정도로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역시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고 조심해서 촬영 잘하고 올게.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기에 이소리는 남편이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곧이어 들려온 대표의 말이 그녀의 위로를 무너뜨렸다.

-제수씨? 놀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요.

실바람에 나부끼는 힘없는 나뭇잎처럼 핸드폰을 꼭 잡은 손끝이 의지와 상관없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민우가……. 다쳤어요.

“어디를요? 얼마나 다쳤는데요? 민우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와이어의 문제가 생겨서 높은 곳에서 추락해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벼, 병원이요? 그 사람은 지금 괜찮아요?”

-민우가 의식이 없어요.

“……!”

대표가 그 소리를 하자마자 이소리의 품 안의 있던 꽃다발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형형색색의 꽃잎이 속절없이 떨어졌다.

꽃다발을 받고 행복했던 시간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탁-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린 이소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하!”

-소리 씨?

“어떻게……. 흐흑!”

-소리 씨 괜찮아요? 소리 씨!

울음소리에 놀란 대표가 연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의 절규뿐이었다.

“흐으흑!”

이소리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는 주먹으로 내리치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 * *

우리병원 응급실-

“CPR~~~ CPR!!”

방금 구급대원과 통화를 마친 태경은 온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

“CPR?”

환자를 보고 있던 최모나와 이찬희도 그 소리에 반응하며 환자 진료를 서둘렀다.

크게 소리치던 태경은 빠르게 심폐소생실로 들어갔다.

“여기, 문 열어 놓고 환자 CPR 준비해요.”

“네, 원장님.”

간단한 오더였지만, CPR 소리를 들은 모든 의료진의 눈이 번뜩였다.

비교적 환자가 많지 않아 여유롭게 일하던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흘러가던 응급실 공기가 순식간에 긴장감에 휩싸였다.

“여기 기관 삽관 준비했습니다.”

“중심 정맥관 삽입 준비하겠습니다.”

“원장님? 초음파 준비했습니다.”

응급구조사가 초음파 기계를 밀고 들어왔다.

“환자 옷 자르게 막가위 갖고 와.”

“네, 수 쌤.”

“그리고 원장님께서 라인 중심으로 잡지만 우리도 말초 시도하게 가서 재료 많이 가져오고.”

“네!”

“그리고 고 쌤! 앞의 입구 자동문 그냥 열어 놔. 빨리!”

“알겠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다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기구를 들고 왔다.

덜컥-

곧이어 베드 하나가 문으로 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동시에 태경의 고개가 자석에 이끌리듯 문 쪽으로 향하며 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포르말린과 유황!’

성난 다섯 번째 바이탈이 문이 열리기도 전에 태경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다.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 말인즉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고 지금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도 같았다.

‘이건 외상 중에서도 심각한 부상이다.’

순식간에 응급실을 뒤덮은 지독한 냄새는 유지천이 있던 호스피스 병원에서 나던 그때의 냄새와 흡사했다.

“아까 전화 드렸던 OO 소방서입니다.”

“네, 여기로 오세요.”

“어!”

“……!”

구급대원에게 실려 온 환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태경을 비롯한 모든 의료진은 순간 경악했다.

외상 환자로 실려 온 환자가 병원에 자주 오는 구민우였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이 스턴트맨인 건 알았지만, 한 번도 큰 부상으로 실려 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불과 오늘 새벽에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아내와 함께 병원에 왔던 그였기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민우의 아내 이소리는 현재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 축하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민우 씨도 좋아하죠?’

‘지금 물리치료 받고 있어서 아직 말 안 했어요. 이따 말하려고요.’

‘들으면 엄청 좋아하겠네요. 다시 한번 축하해요.’

새벽에 이소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태경은 더 마음이 안 좋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보는 의료진이었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평소 잘 아는 사람이 환자로 오면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누구 하나 놀라서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의료진 얼굴에서 놀란 표정이 사라지고 다들 환자에게 집중했다.

“머리부터!”

“자! 옮길게요. 하나, 둘, 셋!”

구조대원과 간호사들이 구호에 맞춰 구민우를 들어 옮겼다.

구민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얼굴은 창백한 가운데 그 어떤 자극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치료를 위해 입고 있는 옷이 가위로 잘려나가자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이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노력이 보이는 몸이었다.

모든 생명이 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앞길이 창창한 젊은 구민우의 이런 모습을 보니 모두 마음이 안 좋았다.

“대원님, 어떤 상황이고 오는 동안 어땠는지 말해 주세요.”

태경이 기도삽관을 준비하며 소리쳤다.

“그 영화 촬영장에서 와이어를 매달고 찍다가 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관상 보이는 상처는 없으나 오는 동안 지속적으로 혈압이 떨어져서 현재 수축기 70대입니다. 발견 시부터 의식은 세미 코마(semi coma, 반 혼수 상태)로 현재와 같았습니다.”

“보호자! 환자 보호자 오고 있나요?”

“네, 어머니와 아내가 오고 있습니다.”

“선생님, 현재 수축기 65입니다.”

“놀핀(norpin, 말초혈관 수축제로 혈압 저하 시 쓰이는 대표적인 승압제)! 놀핀 달아요. 그리고 O형 수혈 바로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세미코마 상태로 누워 있는 구민우 옆에 태경을 중심으로 모여든 의료진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빨리! 혈액은행 가서 타 와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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