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74화 (274/472)

274화. 태경의 침묵

“빨리! 혈액은행 가서 타 와요. 빨리!”

“알겠습니다.”

“선생님, 블레이드 있습니다.”

태경이 기도삽관을 위해 기구를 구민우의 입속에 넣고서 목 깊숙이 밀어 넣었다.

육안으로 보이도록 고개를 숙이고 목구멍 안을 유심히 잘 보기 위해 왼쪽 손에 들려 있는 기구로 목 안을 들어 올리다가 힘을 뺐다.

“아, 씨! 카메라 주세요. 블레이드로 안 되겠어요. 아까 가져온다고 하지 않았나?”

평소라면 기구로 목을 있는 힘껏 들어 올리면 기도삽관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지금 구민우는 목의 외상이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이때 목에 무리한 힘을 주면 환자는 즉사의 위험이 있다.

따라서 약간의 힘으로 기구를 사용하다 보니 시야 확보가 어렵게 된 것이다.

“비디오스콥(videoscope, 기도삽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구 끝에 카메라가 달려 있음) 여기 있습니다.”

태경이 다시 왼손에 기구를 그리고 오른손에 기도삽관 튜브를 들자 이제는 막힘없이 구민우 목 안에 기구를 집어넣었다.

“24cm에 고정해 주세요.”

“중심정맥관 잡을게요. 준비해 주세요.”

“원장님, 오른손에 라인 잡았습니다.”

“우선 그쪽으로 혈액 넣어 주세요. 지금 타 왔나요?”

“네, 지금 왔습니다.”

“달아요. 그리고 짜요. 압력으로 넣어요.”

“선생님 현재 놀핀(norpin) 10마이크로그램으로 주입된 지 5분 되었고 수축기 70입니다.”

“이제 오르겠죠.”

옆에 있던 초음파 기계를 가지고 온 태경이 구민우의 옆구리에다가 프로브(초음파 기계 중 보고자 하는 곳에 갖다 대는 부분)를 갖다 댔다.

“혹시 피가 고여 있습니까?”

“아니, 간과 신장은 아니고 비장도……. 아니고 방광과 그 아래에도 없고…… 어디지?? 어디냐?”

“선생님 다시 수축기가 68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놀핀 더블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런! 젠장!”

별안간 태경의 입에서 다급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탐폰(cardiac tamponade, 출혈로 인해 심막 내 혈액이 축적되는 현상)이다.”

놀란 태경의 표정과 함께 이찬희와 최모나를 비롯한 간호사들의 시선이 초음파 모니터로 쏠렸다.

초음파 화면에서 심장이 뛰는 모습과 더불어 심장 주변의 투명한 혈액이 심막 내에 가득한 것이 보인다.

“하!”

심막 내 출혈 압박이 심장을 압박하게 되고, 이로 인해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인 의료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선생님! 천자 준비하겠습니다.”

초음파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바쁘게 움직이는 최모나와 이찬희와 달리 태경은 놀라울 정도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말 그대로 행동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

평소와 너무 다른 태경의 모습에 이찬희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환자의 응급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환자에게 필요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태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런 위급 중에서도 위급한 상황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왜? 저러시지?’

‘뭔데! 왜 가만히 계시는 거야?’

이찬희와 최모나가 상당히 의아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지금 집중 처치실 안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이상함을 느끼며 태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이렇다 할 말은 없었지만, 눈빛을 주고받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 너무나 당황하고 불안한 상황인 것이다.

마치 급류에 배가 떠내려가는 데 가장 중요한 선장이 조타핸들을 놓고서 가만히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선생님!!”

그런 불안한 적막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임정숙 간호사가 소리쳤다.

“환자 수축기 60에 박동 수는 130입니다. 천자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찬희는 마음이 다급하다 못해 쪼그라들 것 같았다. 하지만 차마 태경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했기에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물불을 안 가지고 환자를 위한 일이라면 최고의 오지랖을 선사하는 사람.

그런 천하의 태경이 지금 다급하다 못해 죽어 가는 구민우를 보며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선생님!!”

“…….”

상당히 무거운 시선으로 이찬희를 보던 태경이 다시 시끄러운 알림음이 들리는 모니터를 쳐다봤다.

“해 봐.”

그리고 짧은 정적을 깨뜨린 태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불과 몇 초 정적이었지만, 여기 모인 의료진의 체감시간은 마치 한 시간 같이 느껴졌다.

“네!?”

“이 선생이 해 본다며. 그러니까 해 보라고.”

“저, 그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마음이 다급해서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사실 이찬희는 아직 심낭 천자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잠깐만!”

심낭 천자를 해 보라는 말에 당황한 이찬희를 뒤로한 태경이 갑자기 포비돈 두 통을 들고 바로 구민우 옆에 두었다.

“이제 초음파 보면서 천천히 넣어 봐.”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갑자기 포비돈 통은 왜 들고 왔는지 아무도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심낭 천자를 본인이 아닌 이찬희를 시킨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천히 해 보라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마른하늘 위에 날벼락처럼 이찬희의 얼굴 위로 별안간 긴장감이 쏟아졌다.

심낭 천자는 그야말로 1cm만 어긋나더라도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술기다.

초음파 화면상에서 1초에 두 번 이상을 움직이는 심장을 피해 그 주변의 막에 정확히 찌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술기는 태경이 직접 하는 것이 맞았다. 적어도 상식선에서는 그랬다.

‘해 보자! 뭐든지 처음은 있잖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 보자.’

하지만 이찬희는 자신의 상식보다 태경을 믿기로 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다부진 말과 함께 이찬희가 초음파를 보면서 길고 두꺼운 바늘을 구민우의 심장막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

이어서 막에 다다르고 아주 약간의 힘을 주자 심장에 닿지는 않았지만, 막이 뚫리는 느낌이 전달됐다. 그리고 바늘을 통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환자 박동 수가 내려갑니다. 이제 110을 가리킵니다.”

“하!”

“다행이다!”

지켜보고 있던 의료진과 이찬희는 약간의 안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안도 속에서도 혼자 분위기가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태경이었다.

모두가 잠시 안도하는 순간에도 태경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저, 선생님. 이제 환자 이제 CT 촬영하면 될까요?”

“…….”

이찬희의 질문에 태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구민우의 혈압 수치와 심박동 수 그리고 심전도가 나오는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이제…….”

이찬희가 다시 한번 말을 하던 그때 태경이 손을 뻗어 말을 제지시켰다.

“…….”

‘왜 저러시는 거지?’

‘원장님이 오늘 좀 이상하신데?’

다들 속으로만 답답함을 토로할 뿐 태경의 행동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낭압전의 치료법은 당연히 고여 있는 피를 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의료진이 아니더라도 의료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 일반인이라며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모자라서 급하게 환자 CT 촬영 후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경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만약 태경을 모르는 다른 의료인들이라면 여기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쌍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태경의 저런 행동의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저 행동이 뭐든 그의 생각이 뭐든 간에 가장 환자를 생각하는 사람도 태경이었고, 가장 환자를 잘 아는 사람도 태경이었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까의 정적보다 훨씬 긴 1분의 정적이 흘렀다. 응급 환자를 앞에 둔 1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선생님,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시는…….”

이번에도 역시 답답한 임정숙 간호사가 이유라도 알고 싶어 말을 하던 그때였다.

띠- 띠- 띠- 띠-

갑자기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들리더니 구민우의 혈압이 사정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탁탁- 타다탁-

갑작스러운 경고음으로 모두가 정신없던 그 순간, 태경은 옆에 있던 포비돈 두 통을 뜯었다. 그리고 지체 없이 구민우의 가슴에 한 통 전체를 들이부었다.

그 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멸균 장갑을 착용한 태경이 구민우의 왼쪽 가슴 바로 아래 부위, 그러니까 정확히는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에 별안간 메스를 푹 찔러 넣은 것이다.

“어!”

“……!”

“어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의료진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바로 이어서 더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태경은 가슴 아래 깊게 넣은 메스를 바닥으로 푹 힘주어 내려갔다. 그러자 구민우의 폐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메스를 깊게 찔러 넣은 것이다.

“……!”

“!?”

아무리 오래 응급실에 있었던 간호사들이라도 환자의 가슴을 메스로 열고서 폐와 심장을 눈으로 보는 경우는 없었다.

* * *

한편, 태경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놀라고 있던 그 시각, 이소리가 병원에 막 도착했다.

“저기, 민우 씨! 우리 남편……!”

수납처 직원에게 묻던 이소리는 말을 하다 말고 곧장 응급실로 걸어갔다.

충혈되어 퉁퉁 부은 채 물기 가득한 두 눈이 병원을 오는 동안 그녀가 하염없이 울었다는 걸 증명했다.

“민우 씨!!”

응급실에 들어온 이소리는 남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챠륵-

“여보!”

그러더니 베드에 쳐진 커튼을 하나씩 열어 보며 구민우를 찾기 시작했다.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이소리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챠륵-

“여보?”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잠시만요!”

“민우 씨!!”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 돼요.”

“얼굴 한 번만……. 제 남편 괜찮은지 얼굴 한 번만 확인할게요.”

“보호자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요! 우리 남편 괜찮은지 얼굴만 볼게요.”

“남편분 현재 치료받고 계세요. 일단 대기실로 가서 기다려 주세요.”

두 명의 간호사들이 그녀를 간신히 어르고 달래며 응급실 밖으로 데리려 나가 보호자 대기실로 안내할 수 있었다.

“선생님! 남편! 우리 남편 괜찮은 거죠? 네?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지금 선생님들이 열심히 치료하고 있어요.”

환자의 아픈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보호자의 절절한 눈빛과 애타는 마음을 간호사도 잘 알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구민우가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게 없었기에 해 줄 말이 없었다.

그저, 집중 처치실에서 치료를 잘 받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랄 뿐이었다.

“보호자분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가 인사를 하며 보호자 대기실을 나가고, 멍하니 서 있는 이소리 곁으로 액션 팀 대표 김창희가 다가왔다.

“제수씨?”

구민우의 부상으로 부리나케 울리는 휴대폰을 받던 그는 정신없는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오는 이소리를 보며 대기실로 달려온 것이다.

“안녕하셨어요. 저 김창희 대표입니다. 민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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