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75화 (275/472)

275화. 정신 차려!!

“제수씨?”

구민우의 부상으로 부리나케 울리는 휴대폰을 받던 그는 정신없는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오는 이소리를 보며 대기실로 달려온 것이다.

“안녕하셨어요. 저 김창희 대표입니다. 민우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것보다…….”

김창희 대표는 머리를 깊게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가장 아끼고 좋아하고 응원하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심 어린 사과는 정신없는 이소리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오직 남편의 부상에 쏠려 있었다.

“우리 민우 씨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와이어 장면을 찍다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김창희 대표는 사고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서 전달했다.

‘계약하기로 한 게 그렇게 좋아?’

자세히 전하지 않은 건 몇 시간 전, 촬영 대기 시간에 구민우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긴 한데 사실 진짜 좋은 이유는 따로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소속사가 하늘의 숲인데 거기 계약 건보다 더 좋은 일이 있다고?’

‘네, 대표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저한테는 이 일이 더 좋은 일이거든요.’

‘그게 뭔데?’

‘소리가 임신했어요.’

‘정말! 제수씨가 임신했다고? 그게 진짜야?’

‘네, 오늘 새벽에 병원에서 들었어요. 저 이제 아빠 됩니다. 대표님.’

‘야!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축하한다. 민우야.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주변에 임신한 사람들 보면 저렇게 좋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아내가 임신했다니까 기분이…….’

‘좋아 죽겠지?’

‘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그냥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아요. 아내가 막 위대하게 보이고 뭐든 다 해 주고 싶고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구민우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을 김창희 대표에게 숨김없이 표현했다.

오늘은 촬영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을 거 같았고 긴 대기 시간도 즐거울 뿐이었다.

‘민우 너,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걸렸어!’

‘대표님, 저 진짜 행복합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말과 함께 행복해하던 구민우의 표정이 떠오른 김창희 대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김 대표 역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만큼 임신 초기의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행여 사고의 전말을 듣다가 이소리가 놀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대표님?”

그런데 이소리의 생각은 달랐다.

“대표님, 저 민우 씨 아내예요.”

풀려 버린 눈빛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소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 그 사람 아내라고요. 그런데 촬영하다 사고 났다는 말만 듣고 제가 이해되겠어요? 적어도 내 남편이 어떻게 다쳤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네!”

나지막이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더니 보호자 대기실 안에 메아리쳤다.

“얼른요!!”

간절하다 못해 절박함까지 느껴지는 이소리의 표정에 김창희 대표는 결국 진실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옥상 건물로 건너뛰는 씬을 촬영하다가 와이어가 오작동을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와이어가 괜찮았어요. 그런데 반복된 NG 끝에 성공했는데 그때 하필 와이어 줄이…….”

“……!”

사고의 전말을 알게 된 이소리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동시에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하아!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게 오랫동안 스턴트맨 생활을 하면서 큰 부상이 없었기에 남편의 사고 소식은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수씨 임신 중이라 괜히 놀랄까 봐 말을 안 하려고 했습니다.”

“저기…… 죄송합니다.”

김창희 대표가 말을 하던 사이 갑자기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온 남자가 대뜸 고개를 푹 숙이며 이소리에게 사과를 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사과하는 그는 촬영장에서 초반 NG를 계속 내던 조연배우 김선호였다.

“죄송합니다.”

거듭된 사과에 이소리 역시 그가 김선호라는 걸 직감적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아까 김창희 대표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을 전부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같은 스턴트맨 출신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응원까지 했던 배우가 남편을 시기하는 사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순수하게 그를 응원했던 자신의 마음마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유감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선호가 함께 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구민우가 계약하기로 한 소속사 대표였다.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전, 이번에 구민우 씨와 계약하기로 한 하늘의 숲 대표입니다. 오늘 사고가 생겼지만, 계약 문제에 있어 회사 입장은 변동이 없습니다. 민우 씨에게 도울 일이 있으면 소속사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잠시만요. 우리 민우 씨가 그 유명한 회사랑 계약을 한다고요?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네? 지금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기뻐할 줄 아셨어요?”

사고 소식을 듣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이소리에게 계약 소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리 남편 지금 다쳐서 사경을 헤매는데 그깟 계약이 뭔 소용이냐고요?”

“민우 씨가 빨리 쾌차할 수 있도록 저도 힘쓰겠습니다.”

“그쪽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하늘의 숲 대표를 쳐다보던 이소리는 매서운 눈으로 김선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부러 NG 냈다고요? 왜, 그랬어요?”

“죄송…… 합니다.”

김선호는 불안했다. 두렵고 무서웠다.

이제 막 대중들의 눈에 들기 시작하고 인기란 이름표를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구민우에게 뺏길 것만 같았다.

구민우는 자기보다 더 잘생겼고 몸도 좋고 연기까지 잘했다. 정식 배우로 데뷔하는 순간,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질투가 났다.

그저 가볍게 예전 선배들에게 자기가 당했던 대로 구민우를 살짝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 정말 딱 거기까지였다.

결코 사고를 생각하며 NG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치 그 사고가 자신 때문에 난 것만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 남편이 그쪽 괴롭혔어요?”

“아, 아닙니다. 그런 적 없어요. 민우 씨가 부러워서 질투가 나서 장난을 좀 쳤어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당신은 지금 사람 목숨을 갖고 장난을 친 거라고! 알겠어!”

“…….”

“나가요!”

“……!”

“그쪽이 나라면 내가 지금 당신이 보고 싶을 거 같아요? 당신이 NG를 내지 않았으면 우리 민우 씨 사고 나지 않았을 거야! 그 얼굴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라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 민우 씨 가방이죠?”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김선호를 무시한 이소리의 눈에 남편이 촬영할 때 늘 갖고 다니는 가방이 눈에 띄었다.

“네. 민우 가방 맞아요. 아까 스텝이 챙겨 왔습니다.”

근육통에 먹는 약과 각종 파스, 수건, 몸풀기 줄넘기와 여분의 티셔츠가 어지럽게 가방 안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는 소지품들 사이에서 작은 민트색 박스가 손에 걸렸다.

“그거 아까 대기 시간에 민우가 근처 백화점 가서 산 겁니다. 예전에 제수씨랑 약속했던 거라고…….”

김창희 대표의 친절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소리는 저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게 반지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래전 대학생 때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백화점 쇼윈도에서 봤던 유명 브랜드의 반지였다.

‘민우야. 이 반지 예쁘지 않아?’

‘예쁘기는 한데 미친! 무슨 반지가 이렇게 비싸?’

‘하긴 비싸긴 하다.’

‘나 저렇게 비싼 반지 처음 봐.’

‘저게 오드리 헵번도 반한 반지라고 하잖아.’

‘그래? 갖고 싶어? 이 오빠가 나중에 사 줄게.’

‘오빠는 무슨……. 그리고 이렇게 비싼 걸 네가 어떻게 사.’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프러포즈할 때 저 반지로 할게.’

‘됐네요.’

‘어허! 진짜다. 두고 봐. 내가 성공해서 이소리 손에 저 반지 꼭 끼워 줄 테니까.’

여자들 사이에서 웨딩 링으로도 유명했지만, 워낙 고가의 반지였기에 남편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농담 같은 약속을 남편이 지킬 줄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편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특히 자신과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데 왜! 흐윽!”

순간 지난 일을 떠올리던 이소리가 민트색 박스를 잡고 울며 소리쳤다.

“왜! 이번 약속은 지키지 않은 건데……. 다치지 않겠다고 했잖아!”

“제, 제수씨?”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란 대표가 이소리를 달래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신이 직접 끼워 줘야지. 이런 거 사 오면 내가 좋아할 거 같아? 나랑 행운이는 당신이 아프지 않은 게 더…….흑!”

이소리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속상한 마음이 뒤엉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흐윽! 여보……!”

털썩-

서러운 아이처럼 숨이 넘어갈 듯 울던 이소리는 급기야 기절하고 말았다.

“제수씨!! 정신 차리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여기요!”

깜짝 놀란 김창희 대표가 쓰러지는 이소리를 부축하고 김선호와 그의 대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곧이어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여, 여기 이분 현재 임신 중입니다. 울다가 쓰러졌어요.”

“비켜 봐요!”

간호사들이 쓰러진 이소리를 챙기는 사이 콜을 받은 의진이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남편분, 사고 소식 듣고 울다가 쓰러지셨대요.”

“우선 베드로 옮겨서 검사하러 갈게요. 조심해요.”

“네, 선생님.”

“저기 선생님. 제수씨 괜찮을까요?”

“일단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르륵-

이소리를 베드로 옮긴 의진과 간호사들은 급히 보호자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하! 진짜 어떻게 하냐.”

구민우의 이어 이소리까지 쓰러지자 김창희 대표는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김선호는 안 그래도 미안함에 죽을 거 같은 마음이 더 안 좋아졌다.

* * *

집중 처치실-

태경은 가슴 아래 깊게 넣은 메스를 바닥으로 푸욱 힘주어 내려갔다. 그러자 구민우의 폐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메스를 깊게 찔러 넣은 것이다.

“……!”

“!?”

아무리 오래 응급실에 있었던 간호사들이라도 환자의 가슴을 메스로 열고서 폐와 심장을 눈으로 보는 경우는 없다.

사선을 넘나들고 별별 장면을 다 보는 곳이 응급실이라지만, 이러한 장면을 본 적은 결코 없었다.

“……!”

“서, 선생님…….”

“이, 이게 그러니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의료진이 할 말을 잃어버린 그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태경이 컷터(cutter, 펜치같이 생긴 수술 도구로 뼈를 자를 때 쓰임)를 집어 들었다.

“부어!”

그러더니 잔뜩 과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해! 얼른 붓지 않고!”

“네!”

바로 옆에 있던 간호사가 아까 까 두었던 다른 포비돈을 태경의 손과 컷터에다 들이부었다.

탁- 탁- 탁-

그리고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태경이 컷터로 구민우의 갈비뼈를 하나하나 부러트리면서 가슴을 벌리고 심장이 보이도록 시야를 확보했다.

멸균을 나름 지켰다고는 하지만, 태경의 단호한 눈빛은 그딴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멸균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환자를 살리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시, 심장이다. 응급실에서 심장을 볼 줄이야.’

이찬희는 놀란 마음을 달래며 속으로 말했다.

수술방에서도 드물게 있는 가슴 절개가 응급실 처치실에서 순식간에 진행됐다. 그것도 조심과는 거리가 멀게 갈비뼈를 사정없이 부러뜨리면서 말이다.

“뭐야!”

다들 어안이 벙벙해 있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 태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다들 정신 안 차려요! 일반적인 심낭압전이면 천자로 끝났었겠지. 하지만 구민우 환자는 혈압이 낮아질 정도로 출혈이 많은 환자고 이 상태에서 천자를 하면 유일하게 출혈을 막고 있던 압력이 사라지면서 출혈이 더 생기게 될 거예요. 다들 정신 차려요! 환자 이대로 보낼 거야?”

단호하고 분명하게 울린 태경의 외침은 놀란 의료진의 정신을 깨우기 충분했다.

“정신 차려! 바로 출혈 잡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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