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도박
단호하고 분명하게 울린 태경의 외침은 놀란 의료진의 정신을 깨우는 것과 같았다.
“정신 차려! 바로 출혈 잡아야 해!!”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심장에서 출혈이 나는 건가요?”
최모나에 이어 정신을 차린 이찬희가 멸균 장갑을 착용하고 구민우의 가슴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제가 괜히 천자를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어. 그리고 심낭 천자를 하지 않았어도 압력 때문에 환자가 죽었을 거야. 어쩔 수 없었어.”
전부 사실이었다. 그리고 심낭 천자 후 태경이 가만히 있던 건 환자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디시젼 메이킹(decision making, 의사결정)을 고민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 모두를 놀라게 한 지금의 처치가 나온 것이다.
“거기, 좀 더 들어 봐.”
“네, 보이십니까?”
“석션! 석션 줘 봐요.”
태경이 한쪽에는 석션을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멸균 거즈를 이용해서 시야를 확보하며 환자를 살펴보던 그때였다.
“찾았다!!”
마치 출구 없던 미로에서 출구를 만난 것 같은 시원한 외침이 들려왔다.
“거즈! 거즈 좀 더 줘!”
“네.”
간호사가 멸균된 거즈 한 뭉텅이를 기구를 이용해서 가슴속에 떨궜다.
“아니! 그 통에 있는 거 다 줘요!”
태경의 외침에 임정숙 간호사가 스테인리스로 된 거즈 통을 번쩍 들더니 뚜껑을 열고서 구민우의 가슴 안으로 전부 쏟아 부었다.
그리고 태경은 쏟아진 거즈를 덕지덕지 환자의 심장에 대고서 양손으로 꾹 눌렀다.
“바이크릴 2-0(숫자가 작을수록 큰 바늘과 두꺼운 실을 의미함) 주세요.”
태경이 누르다가 거즈를 치우고서 니들 홀더(needle holder, 집게 형식으로 끝에 바늘을 물어서 고정하는 기구)에 바늘을 물고서 유심히 본다.
“석션해 봐.”
벌어진 가슴 사이로 보이는 구민우의 심장은 여전히 방방방 뛰고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심장으로 심장 박동과 같이 박자에 맞추어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구민우가 벽에 충돌했을 때, 그 충격으로 심장에 상처가 난 것이다.
태경은 기구를 잡은 손목을 비틀어서 두꺼운 바늘이 상처의 좌우를 통과하게 했다.
이어서 반대쪽 손도 가슴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빠르게 타이를 했다. 그렇게 같은 행동을 한 번 더, 연속적으로 7번 정도를 반복한 뒤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놀핀(norpin, 말초혈관 수축제로 혈압 저하 시 쓰이는 대표적인 승압제) 지금 얼마나 들어가죠?”
“분당 40마이크로그람 들어갑니다.”
모니터 상에서 수축기는 60을 보이고 있었다. 태경이 다시 모니터를 보다가 급하게 들어가는 혈액과 수액들을 보더니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혈압측정 버튼 다시 눌러 보세요.”
“선생님, 혹시 동맥혈에 라인 잡아서 실시간 혈압을 측정합니까?”
“아니, 그건 나중에 하자.”
-위이이잉
기계가 작동해서 압박되고 기계에 다시 수치가 떴다. 수치상 수축기가 68로 표시된다.
“A line(동맥혈에 라인을 잡아서 실시간 동맥압을 측정하기 위한 라인) 지금 잡아 보세요.”
“알겠습니다.”
태경이 자신이 서 있는 반대쪽에 있는 구민우의 손목에 동맥혈 라인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필요한 선들을 연결하고 실시간 동맥혈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띠……. -띠 –띠
55…… 57…… 58, 60, 63…… 70. 동맥혈에 표시된 수치가 점점 오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하!”
그 수치를 본 태경이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마치 그 주먹에 기분 나쁜 포르말린과 유황 냄새가 한 대 맞은 듯 서서히, 아주 서서히 강도가 달라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확고했던 구민우의 다섯 번째 바이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른 상태였고, 언제 또 위급한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르기도 했다.
하지만 곧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나는 지독하던 유황 냄새가 점차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했다.
“세상에!”
“저 수치 좀 보세요.”
“수치가 달라졌어요.”
“선생님, 정말 대단합니다.”
이찬희와 최모나는 수치와 태경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라워했고 다른 의료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 모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원장님이야. 이럴 줄 알았어.’
태경이 환자를 살릴 거라는 믿음이었다.
“선생님이 환자를 살리셨어요.”
“아니야, 순전히 하늘이 도우시고 환자가 해낸 거야.”
“그래도 심장에 봉합하신 것이 혈압 상승의 주원인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저도 최 선생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니, 가슴을 여는 순간 대부분의 환자는 죽어. 나중에 논문 찾아 봐. 그리고 심장 봉합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 모든 게 다 너무 감사한 일이야.”
전부 다 맞는 말이었다.
수술방도 아닌 응급실에서, 그것도 환자의 가슴을 열어 갈비뼈를 일부러 부러뜨린 뒤, 심장을 봉합했다.
사실 태경은 도박을 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구민우는 진짜 죽었을 것이다. 가슴을 연다고 죽어 가고 있는 그가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만 죽어 가고 있는 환자를 진짜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대로 손을 놓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위험하지만 살리기 위한 도박을 해 보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도운 그의 도박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구민우를 살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태경은 이후 이찬희와 함께 자른 가슴을 임시로 빠르게 봉합했다.
“자! 다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환자 가슴은 우선 임시적으로 닫고서 CT 찍고 머리와 척추에 이상 없는지 확인할게요.”
“네, 선생님.”
“그리고 바로 수술방 가서 가슴 닫을게요. 복부나 머리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수술방에도 준비하라고 해 주세요. CT 전신으로 찍고 바로 올라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더가 끝나자마자 의료진 3명이 환자를 빠르게 CT실로 끌고 갔다.
털썩-
그리고 그제야 몸에서 긴장감이 빠져나간 태경이 의자에 푹 주저앉았다. 그의 양손은 포비돈 용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저, 선생님……?”
“네?”
임정숙 간호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당히 지친 태경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구민우 환자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아! 보호자요? 그래요. 내가 갈게요. 근데, 아내 이소리 씨는요? 아까 어머니랑 아내분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까 이소리 씨가 먼저 왔는데 보호자 대기실에서 쓰러졌대요.”
“쓰러져요? 이소리 씨 임신 중인데 괜찮대요?”
“네. 정 쌤이 소식 듣고 바로 오셔서 검사해 봤는데 다행히 이소리 씨도 아이도 다 괜찮대요.”
“구민우 씨 사고 소식 듣고 충격으로 실신했나 보네요.”
“네, 많이 놀란 거 같아요.”
“지금 어디 있어요?”
“병동에서 수액 맞고 있어요.”
이소리가 쓰려졌을 당시, 의진은 검사가 끝나고 일부러 응급실이 아닌 병동 입원실로 보냈다.
행여 응급실에 있다가 구민우의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이소리가 또 한 번 충격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남편 걱정으로 마음이 힘들겠지만, 현재 아이도 임신한 상태였기에 최대한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병동에 있다고 했죠? 올라가 보죠.”
“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병동으로 올라온 태경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사람이 꽤 많네요.”
“그러게요. 구민우 씨가 걱정됐는지 여기저기서 많이 왔더라고요.”
병실 문 밖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온 관계자들이 서 있었다.
그중에는 액션 팀 대표 김창희와 하늘의 숲 대표, 김선호 그리고 일정 때문에 늦게 도착한 주연배우 강혁과 감독 등이 있었다.
그들은 다들 구민우와 아내 이소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저기, 실례지만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시면 복도를 이용하는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불편할 수 있어요. 저쪽 휴게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안내를 하는 사이, 태경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원장님!”
베드에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던 이소리가 태경을 보며 반응하자 며느리의 손을 잡고 있던 구민우의 모친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님, 병원 원장님이세요.”
충격으로 실신했던 이소리는 아까보다 좋아진 상태였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민우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저기 선생님 우리 아들…… 괘, 괜찮은 건가요?”
“선생님, 민우 씨 괜찮은 거죠?”
“많이 놀라셨을 텐데 현재 구민우 환자는…….”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 두 사람에게 태경은 구민우가 받은 처치와 지금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원장님.”
“아가, 다행이다. 원장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보호자분, 실례지만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이소리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구민우 모친에게 태경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환자분은 아직 괜찮은 상태가 압니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산 게 아닙니다. 수술하다가 사망할 수도 있고 CT 촬영을 하다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는 말에 안도하던 이소리와 구민우 모친의 표정은 다시 걱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은 채 태경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검사상에서도 다른 출혈 원인이 없고 머리나 배의 다른 이상이 없다면 이미 급한 불은 끈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보호자를 대하는 태경의 말투와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 내용은 그러지 못했다.
항상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누구보다 보호자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태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상태와 다른 사실을 전할 순 없었다.
의사로서 안타까운 마음은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위로한답시고 쓸데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야말로 나중에 보호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특히나 구민우처럼 중증 외상 환자의 보호자에게는 듣기 힘들더라도 의학적인 부분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 그럼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원장님? 우리 행운이 아빠 깨어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그것도 두고 봐야 합니다.”
“아이고! 민우야…….”
“원장님?”
놀란 시어머니가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베드 위에 있던 이소리가 태경의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모았다.
“제발 부탁드릴게요. 우리 남편 평생 힘든 일만 하다가 이제 아빠도 되고 일도 잘 풀리기 시작했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제발 우리 남편 좀 살려 주세요. 필요한 건 뭐든 다 해 주시고 살아만 있게 해 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전 아들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원장님, 우리 민우 살려 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보호자분, 일어나세요.”
태경은 갑자기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려고 하는 구민우의 모친을 급히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 민우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님의 마음도 이소리 씨의 마음도 다 압니다. 두 분의 그 마음 명심하고 저도 의료진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철컥-
“저기, 선생님. CT 올라왔어요.”
세 사람이 대화하는 도중 임정숙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중요한 CT 결과가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