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77화 (277/472)

277화. 구민우의 루틴

철컥-

“저기, 선생님. CT 올라왔어요.”

세 사람이 대화하는 도중 임정숙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중요한 CT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환자는 바로 수술방으로 이동한다고 연락 왔습니다.”

“알았어요. 바로 확인할게요.”

잠시 뒤, 병동 스테이션에서 구민우의 CT를 확인한 태경의 옆으로 이소리와 시어머니가 다가왔다.

“구민우 환자 CT 결과가 나와서 두 분께 설명해드리기 위해 불렀습니다.”

“우리 아들 좀 어떤가요?”

“이쪽으로 가까이 와 보시겠어요?”

태경은 머리와 흉부, 그리고 하지까지 구민우의 전신 CT를 다시 한번 빠르게 보며 답했다.

두 사람이 오기 전, 태경은 이미 CT를 꼼꼼하게 보고 또 보고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없는지 세세하게 살핀 뒤였다.

“사진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네, 원장님.”

결과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이었다.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태경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지금 CT를 보면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행히 머리에는 출혈이나 골절은 없습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머리에 큰 부상이 없다는 말에 두 사람은 안도했고 태경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머리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 척추와 그 안의 신경이에요. 구민우 환자는 충격에 의해 심장에 상처가 생길 정도였으니 척추뼈에도 손상이 예상되었습니다. 현재 CT에서 골절이 보이긴 해요.”

“어, 어떡해, 우리 아들…….”

설명을 듣고 있던 구민우 모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원장님, 그런 민우가……. 우리 민우가 팔다리를 못 움직이는 건가요? TV에서 척추를 다치면 그렇다고 하던데요.”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환자분은 정말 다행히도 그렇진 않습니다. 모니터를 보시면 여기 그리고 여기와 여기 이렇게 총 세 군데의 척추뼈가 골절되었는데 표현이 그렇지만, 신경은 건들지 않게 골절이 됐어요. 여기 보시면 이 하얗고 투명한 사잇길이 척수 신경이거든요. 골절이 여기랑 평행하고 또 그 주변은 고정된 채로 되어서 나중에 척추뼈에 핀을 박고 고정하는 수술 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휴! 세상에!”

“어머님!”

태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민우의 모친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흑! 민우야 우리 아들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리고 그제야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한 듯 흐느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병동 스테이션에 있던 의자를 갖고 나와 모친에게 건넨 태경은 보호자들의 눈물을 조용히 기다려 줬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CT상 더는 급한 불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가능한 기다림이었다.

2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옆에서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던 이소리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어머님, 원장님 설명 아직 남은 거 같은데 더 들어 봐요.”

“그래,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머님, 물론 구민우 환자는 지금 당장 사망이나 전신 불구의 위험성은 조금 (*비켜 간)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는 동안 심장이 눌렸고 출혈이 많았으며 전신의 다발성 골절로 통증이 매우 심할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응급실에서 급한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가슴을 열었기에 그 통증이 어마어마합니다. 따라서 환자에게 마약을 투여해서 그 통증을 조절할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도삽관을 해서 환자의 호흡을 조절할 겁니다. 수술이 끝난 뒤에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고 얼마나 있을지도 몰라요. 이후에도 아직 저혈량으로 인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어요. 요약하자면 우선은 다행인 건 맞지만 아직은 안심하기는 일러요.”

“네, 선생님. 무슨 말인지 잘 알았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여전히 눈물을 훔치는 시어머니 옆에서 이소리가 다부진 모습으로 답했다.

“원장님, 아들 꼭 좀 살려 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전 일단 수술방에 들어가서 급하게 열었던 환자의 가슴을 잘 닫고 다시 찾아뵐게요.”

두 사람과 대화를 마친 태경은 급하게 수술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병동 휴게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영화 관계자들은 마음을 졸인 채 수술이 잘 끝나길 바랐다.

모여 있던 관계자들은 이소리와 구민우 모친에게 다가가 사과를 전하고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시간 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구민우의 수술이 끝나고 태경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을 다시 찾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요. 수술은 어떻게…….”

“절개했던 가슴 수술은 잘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수술이 잘됐다는 말에 두 사람은 어쩔 줄 모르며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현재 구민우 환자는 의식이 없고 며칠이 지나야 깨어날 겁니다.”

“네!? 왜요?”

의식이 없다는 말에 침착했던 이소리의 눈빛이 순식간에 걱정으로 뒤덮였다.

“환자의 지금 상태로는 힘들어서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워요. 추후 자발 호흡이 서서히 돌아오는 데, 그때 깨울 겁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현재 환자를 위해 일부러 재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척추 수술은 아까 설명해 드린 대로 현재 진행하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환자분이 깨어나면 그때 진행하겠습니다.”

“어휴! 감사합니다. 원장님이 제 은인이세요. 제 아들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눈물을 흘리며 인사하는 구민우의 모친과 이소리는 허리까지 숙여 가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 감사를 전해도 모자랄 정도로 태경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아닙니다. 환자분이 애써 주셨어요. 저랑 의료진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게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저기, 원장님……?”

인사를 하고 보호자 대기실을 나가는 태경의 뒤를 이소리가 급히 따라 나와 불렀다.

“네, 소리 씨.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리 행운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킨 이소리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빠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소리는 다시 한번 남편을 살려 준 태경에게 인사를 전했다.

누구보다 임신을 기뻐하던 남편이 배 속에 아이도 보지 못한 채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무서웠었다.

그런데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자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몰랐다.

“민우 씨는 원장님이 살리신 거예요. 꼭 원장님이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의사여도 구민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민우 씨는 그렇게 생각 안 했을 거예요. 민우 씨는 부상에 관한 문제라면 늘 원장님만 믿었거든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따뜻한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태경을 보며 이소리는 언젠가 TV를 보며 남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기야? 자기도 촬영할 때 루틴이 있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사람 미국에서 유명한 액션 배우잖아. 그런데 저 사람은 촬영하기 전에 깨끗한 붕대를 조금 잘라서 신발 안에 넣는대.’

‘신발 안에? 왜?’

‘그러면 아무리 위험한 촬영을 해도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부상 방지 루틴이래. 자기도 있나 해서.’

‘신기하네. 난 루틴까지는 아닌데 비슷한 게 있는 거 같아.’

‘정말! 자기도 그런 게 있었어? 뭔데?’

‘그냥 뭔가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 꼭 우리병원에서 진료받는 거?’

‘어! 왜?’

‘글쎄……. 원장님이 치료해 주면 뭔가 괜찮을 거 같은 믿음이라고나 할까?’

‘그럼 그때 다리 골절당했을 때도 일부러 촬영장 근처 병원이 아니라 우리병원까지 택시 타고 (*가서) 치료받은 거야?’

‘응. 맞아. 다들 가까운 응급실 가라고 했는데 나는 원장님한테 진료 봐야 찝찝함이 없는 거 같아. 그냥 원장님이라면 적어도 환자 갖고 장난을 치지 않겠구나 싶더라고.’

‘하긴, 원장님이 사람 자체가 되게 신뢰감이 가득한 그런 느낌이 있긴 해.’

‘소리야? 만약에 말이야…….’

‘이상한 소리 할 거면 하지 마라.’

‘그런 거 아니니까 들어 봐. 만약 내가 큰 부상으로 다치게 되면 그때도 꼭 원장님한테 진료 봐야 한다. 알았지?’

‘뭐래! 이상한 소리 맞잖아.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랬지? 빨리 취소해.’

‘그냥 웃자고 한 소리야.’

‘됐고! 취소하라고.’

‘취소! 퉤퉤퉤!’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의 말이 지금 상황에서 돌이켜보니 정말 다행인 듯싶었다.

물론 모든 의사가 의학적으로 대단하다는 걸 이소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를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적어도 태경만 한 의사는 없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은 살릴 수 있는 환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세요.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니까요.’

아까 병실에서 의진이 했던 말처럼 태경이 남편을 포기하지 않아서 살린 것만 같았다.

이소리는 태경을 비롯한 우리병원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가! 소리야?”

복도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이소리를 대기실에 있던 시어머니가 급히 불렀다.

“네, 어머님.”

“너, 몸은 좀 괜찮지?”

“네, 이제 괜찮아요.”

“그러면 얼른 여기 선생님 따라서 중환자실로 가 봐.”

“중환자실이요?”

“면회 가능하대. 민우 얼굴 봐야지.”

“이 시간에 면회가 가능해요?”

“지금 구민우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서 잠깐 면회가 가능해요. 내일부터는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고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부연 설명을 더했다.

“그러면 제가 아니라…….”

이소리는 잠시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머님이 다녀오세요.”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에 이소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눈앞에 시어머니를 보니 가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선뜻 나오질 않았다.

임신하고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 보니 엄마로서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보지 못하는 아들이 다쳐서 수술까지 했으니 시어머님은 그만큼 더 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소리야.”

그런데 시어머님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내가 아니라 네가 가는 게 맞아. 나는 내일 봐도 돼. 민우도 네 목소리 들으면 힘내서 더 빨리 일어날 거야. 가서 얼굴도 보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와. 난 괜찮아.”

구민우의 모친 역시 아들이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며느리에게 양보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어머님. 저보다 …….”

“소리야, 얼른 가 봐. 민우가 기다리겠다. 간호사 선생님 저 말고 우리 며느리가 면회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소리 씨,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얼른 갔다 와.”

“네, 어머님.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이소리는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