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오뚜기
시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이소리는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로 향했다.
“구민우 환자는 저쪽 끝 베드에 있어요.”
“…….”
“소리 씨?”
단숨에 남편에게 향할 것 같던 이소리가 미동조차 하지 않자, 임정숙 간호사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괜찮아요?”
“네, 괜찮긴 한데요. 선생님? 근데 막상 민우 씨를 보려고 하니까 자꾸만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쉽게 발이 안 떨어져요.”
“내 가족이 다쳤는데 왜 아니겠어요. 힘들면 내일 면회 시간에 와도 돼요. 괜히 무리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이 남편일 텐데……. 저 괜찮아요.”
“그래요. 혹시 갑자기 어지럽거나 또 쓰러질 것만 같으면 간호사 선생님들 있으니까 참지 말고 꼭 불러요.”
“네. 감사합니다.”
임정숙 간호사의 주의사항을 들은 이소리는 남편이 누워 있는 베드로 향했다.
드르륵-
수액이 걸려 있는 링거 폴대를 밀며 한 발짝씩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베드 위에 누워 있는 몇몇 중환자들을 지난 이소리 시야에 남편 구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여……보…….”
여러 대의 모니터와 선이 가득한 베드 위에 누워 있는 남편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멋진 얼굴에 생긴 상처와 몸에 있는 멍들이 사고의 충격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했다.
“나 왔어.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흐흑!”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을 오는 동안 절대 남편 앞에서 울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되새김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번 터진 눈물샘은 쉽게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건강했던 남편이 하루 사이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흐으흑!”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이소리는 쉽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입을 가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중환자실에 있던 간호사들도 울컥한 마음이 밀려왔다.
“하흑! 여, 여보 미안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진정된 이소리는 남편에게 대뜸 사과의 말을 꺼냈다.
“나는 당신이 늘 자랑스러웠거든.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당신을 지지한 게 후회스러워.”
스턴트맨이란 직업 자체가 부상을 피해 갈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벼운 부상은 늘 안고 살아가는 남편이었기에 이소리는 그런 부상으로 잔소리하기보다는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큰 부상으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니 응원하던 그 마음조차 후회스러웠다.
만약 자신이 스턴트맨이란 직업을 하지 못하게 말렸더라면,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라도 말렸더라면 오늘의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남편이 사고를 당한 게,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이 그랬지? 부상당하면 꼭 원장님이 치료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원장님이 당신 치료했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구민우의 손을 살포시 잡은 이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여보……. 있잖아. 살아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당신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원장님이랑 다른 선생님들이 당신 살리기 위해서 고생하셨어. 그러니까 당신 꼭 일어나야 해. 지금 당신이 많이 아플까 봐 일부러 잠들게 하신 거래.
어머님도 그렇고 영화 관계자 사람들도 다들 당신 걱정 많이 해. 그리고 우리 행운이도 아빠 걱정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얼른 자리 털고 일어나. 일어나서 당신 손으로 그 반지 꼭 끼워 줘. 누가 뭐라고 해도 나한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배우는 당신이야. 민우야 사랑해…….”
이소리는 잠들어 있는 구민우의 얼굴을 한동안 지그시 바라본 뒤 중환자실을 나갔다.
비록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지만, 그토록 보고 싶던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소리는 남편이 분명히 부상을 이겨 내고 다시 멋진 모습으로 복귀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뒤 중환자실을 나온 그녀는 곧장 병실로 향했다.
똑똑-
잠시 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핸드폰으로 남편의 사진을 보고 있던 이소리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님, 벌써 갔다 오셨…….”
의진의 권유로 오늘 밤은 영양제와 수액을 맞으며 병원에서 보내기로 했기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 갔던 시어머님이라고 생각했다.
“제수씨?”
그런데 병실 문으로 얼굴을 살짝 내민 사람은 액션 팀 대표 김창희였다.
“죄송합니다. 혹시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들어오세요.”
병실 안으로 들어온 김창희 대표는 혼자가 아니었다.
“제수씨, 실은 제수씨를 꼭 뵙고 싶다고 해서 같이 온 사람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구민우가 대역을 책임지고 있는 주연 배우 강혁도 함께였다. 촬영 일정을 마치고 아까 병원에 도착했던 그는 정신없던 상황 때문에 이제야 이소리에게 인사하게 됐다.
“강혁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소리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강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톱스타라 얼굴이 익숙하기도 했지만, 평소 남편이 틈만 나면 그의 이야기를 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혁이 형이 괜히 톱스타가 아닌가 봐. 사람이 진짜 진국이야.’
‘왜? 당신한테 잘해 줘?’
‘응. 촬영할 때 내가 힘들지 않게 감독님한테 미리 말도 해 주고 내 편의도 봐주고 인성이 참 훌륭해.’
‘보통 인기 얻으면 그러기 쉽지 않다고 하던데. 멋있네.’
영화 촬영장만 다녀오면 늘 강혁의 칭찬을 하던 남편이었기에 이소리 역시 그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먼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심려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민우를 더 챙겼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니요. 강혁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남편이……. 운이 없었던 거 같아요.”
“민우는 좀 괜찮은가요?”
“네, 일단 지켜봐야 하지만, 큰 고비는 잘 넘겼어요. 다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구민우의 상태를 전해 들은 두 사람은 제 일처럼 좋아하며 한시름 던 표정을 지었다.
“저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우리 남편은 더 이상 촬영을 할 수 없는 건가요?”
이소리는 아직도 구민우가 이번 영화에 캐스팅이 확정된 날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토록 바라 왔던 일이었기에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누구보다 촬영에 공을 들였던 남편이었다.
보통 대역을 맡던 스턴트맨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다른 스턴트맨으로 대체되는 게 흔한 일이었다.
주연 배우의 부상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 주겠지만, 스턴트맨의 부상을 기다려 주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깨어났을 때 영화 촬영을 못 하게 됐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 게 마음 아팠다.
스턴트맨이라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속이 상했다.
“다른 스턴트 배우분으로 바뀌겠죠? 저기 김 대표님. 민우 씨가 깨어나서 그 얘기 들으면 실망할 거예요. 이 영화 준비하면서 식단도 운동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거든요.”
남편이 더는 스턴트맨 일을 하지 않길 바라지만, 이번 영화는 달랐다.
그가 얼마나 이 영화를 위해 땀을 흘렸는지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하차 소식은 나중에 알았으면 했다. 하차 소식을 들으면 남편은 누구보다 속상해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해 주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는데 그 말을 민우에게 할 일을 없을 거 같은데요?”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소리를 보며 김창희 대표는 옆에 서 있는 강혁의 팔을 툭 쳤다.
“여기 강혁 이 친구가 민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놨거든요. 네가 직접 알려드려.”
“실은 민우가 부상을 당하고 감독님이랑 미국 영화사랑 급히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민우가 우리 영화에서 하차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제 말 믿으셔도 돼요.”
“그, 그게 정말이에요?”
“네, 제가 으름장을 놓은 건 아니고요. 민우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요. 저도 민우가 아니면 이 영화 찍고 싶지 않고, 미국 본사에서도 민우의 액션 연기를 워낙 높게 사기 때문에 먼저 기다리자고 했어요.”
영화의 개봉까지 3년이란 시간이 남았고 워낙 CG와 후작업도 많은 영화였다.
그 때문에 미국 제작사에서는 구민우가 부상을 딛고 일어날 때까지 몇 달이 걸려도 기다려 줄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구민우가 인정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강혁의 촬영은 구민우가 부상에서 일어나는 대로 진행하고, 다른 촬영을 먼저 하는 걸로 결정됐다.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촬영장에서 늘 남편을 잘 챙겨 주셨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감사해요.”
“아니에요. 제가 액션 연기가 부족한데 민우 덕분에 많이 늘어서 제가 더 감사하죠. 좋은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상과 재활에 관한 금전적인 부분은 영화 제작사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제수씨! 우리 민우 반드시 좋은 모습으로 일어나서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 녀석 별명이 오뚜기잖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 맞다. 그리고 핸드폰 한 번 꺼내 보시겠어요?”
“제 핸드폰이요?”
“그러지 말고 제 걸로 보여 드릴게요. 이것 좀 보세요.”
뭔가 보여 줄 거라도 있는 듯 김창희 대표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접속해서 건넸다.
갑자기 핸드폰은 왜 보라고 하는 건지 의아하던 이소리는 화면을 보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왜? 민우 씨 이름이 여기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가장 유명한 초록창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남편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구민우 배우님의 빠른 쾌유를 응원합니다.
강혁
스턴트맨 구민우
영화 촬영장 사고
강혁 별스타그램
영화 히어로 촬영 중단
구민우 얼굴
김선호
김선호 하차
내일 날씨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자주 오르는 공간에 남편의 이름이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구민우에 대한 기사 또한 상당히 많이 올라온 상태였다.
=유명 영화 촬영장에서 스턴트맨 사고.
오늘 저녁, 서울에 있는 영화 촬영장에서 세계적인 영화로 유명한 영화 히어로의 촬영을 하다가 스턴트맨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해당 스턴트맨은 국내 드라마와 영화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오늘 와이어 장면을 찍다가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 이분 진짜 액션 연기 잘하는 분이신데 사고 났다고 하니 안타깝네요.
-강혁이 언급한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아직 젊은데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다.
-구민우 배우님, 강 배우님 글 보고 왔어요. 강 배우님 때문에 알게 됐는데, 저도 어느새 팬이 됐거든요. 꼭 부상 털고 일어나시길 기도할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기사 밑에 셀 수 없이 달린 댓글 중 몇 개를 읽던 이소리는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게 다 혁이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네?”